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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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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7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7 우리 인간성은 아라한도를 성취하면, 누구나 다 삼명육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성은 정말로 끝도 가도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것인데, 중생들은 아라한도를 성취할 만하게 제대로 닦지를 못할 뿐입니다. 삼매를 성취해야 자기를 초월할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닦는 길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우선 철저하게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이른바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계율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음식을 함부로 먹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우리의 생리(生理)와 심리(心理)가 본래 둘이 아니라서 서로 상응(相應)하기 때문에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우리 마음도 흐리멍덩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몸도 오염이 됩니다. 그래서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5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5 불자님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보의 홍수 가운데서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몰랐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것저것 알기는 많이 알지만,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마땅한 인간의 할 일을 모른단 말입니다. 인간의 당위(當爲)를 모른단 말입니다. 다행히 부처님 가르침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고 가야 할 길을 압니다. 그러면 부처님 가르침은 무엇인가. 부처님 가르침에서 본다면 이 세상은 허망무상(虛妄無常)합니다. 다 환상(幻像)이나 같단 말입니다. 있는 것이 사실로 있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 보고 잘못 느껴서 있는 것같이 보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입니다. 착각해서 보..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4 달마스님 법문이라는 두 가지 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입니다. 우리가 종교를 믿을 때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종교를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평온히 하고 모든 사람끼리 서로 화해하고 더불어서 영원한 자성청정한 진리로 나가는 것이요,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인데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을 잘못 믿는 것입니다. 어째서 우리 마음이 편안한 안심법문이 중요한가?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다, 이런 말씀을 흔히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깊이 느끼고 명심해서 그렇게 실천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정말로 바..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1 자성이란 말을 여러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자성이란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인데, 자성은 우리 본래 마음인 본성本性 아닙니까? 우리 중생들은 본성을 잘 모릅니다. 내 본성을 내 마음이지 않는가, 이렇게 어렴풋이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성이 내 마음이면 내 마음은 어떤 것인가. 내 마음의 깊이는 얼마나 깊고 또 내 마음은 얼마나 넓은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면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또 마음 깊이도 부박浮薄합니다. 옹졸한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좁습니까? 또 마음이 깊은 사람은 한도 끝도 없이 묵직하여 그 사람의 속을 알..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0 우주는 바로 생명뿐입니다. 우주가 바로 생명뿐이라는 말은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왼다하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이 저쪽 하늘 높은 데 계신다, 애써 내가 부르면 타협적으로 나한테 와서 부른 만큼 공덕이 되겠지”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덕이 되지요. 그 공덕이 되나 그 공덕은 작은 공덕입니다. 큰 공덕은 못 됩니다. 어떤 공덕이 큰 공덕인가. 아미타불과 나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실 둘이 아닌 것입니다. 둘이 아닌 것인데 우리가 그 관계를 잘 모르니까 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가 하나의 생명인데 하나의 마음자리인데 우리 스스로가 국한(局限)을 세우고 한계를 세우는 것이지 본래의 자리에서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하나의 생명이라고 보는 것이 이른바 실상관(實相觀)입니다..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9 요즘에 염불하는데 기왕이면 염불선을 하고 싶다,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시겠지요. 저같은 사람도 일반염불과 염불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문제가지고 고민도 하고 그랬습니다마는 여러분들께서도 염불하는 분들은 기왕이면 그냥 염불 뿐 아니라 염불선도 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염불선의 체계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염불을 꼭 자기식으로 해야 한다는 그런 분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염불은 꼭 고유하니 어떤 음정에 따라서 그렇게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리 내도 좋고 안내도 좋고 다 좋은 것입니다. 계행 지키면서 염불하면 더욱 좋고, 계행을 지키지 못하면 못한 대로 염불해도 좋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8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8 우리 인간이라든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허망 무상하지만 우리 인간 존재나 그 허망 무상한 본래의 참다운 자리가, 이른바 부처님의 법신이고 바로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관무량수경에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염불수행자 인중분다리화[念佛修行者 人中芬陀利華]라, 가장 청정하고 향기로운 연꽃이 분다리화입니다. 그래서 염불수행자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참답고 향기로운 연꽃같은 그런 존재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외도와 정도를 알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그런 철학적인 깊은 것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냥 우리가 영생불멸한 실상 자체의 이름을 외우는 자는, 그대로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향기로운 연꽃과 똑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위기승우[觀世音..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7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7 불교는 정말로 우리 인생의 보배로운 가르침이지만,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고 또 부처님의 명호를 외는 염불의 가르침과 우리의 이상향인 극락세계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참다운 종교적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만큼 염불과 극락세계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정토삼부경에 있는 하나의 경입니다. 그래서 관무량수경의 전체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대강 말씀드리면, 관무량수경의 관은 볼 관[觀]자, 무량수는 한도 끝도 없는 그런 영생의 생명이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무량수불입니다. 영생의 생명이란 뜻입니다. 그런가하면 아미타불의 이름은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 아미타불이란 것은 대상화시킬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