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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9

 

요즘에 염불하는데 기왕이면 염불선을 하고 싶다,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시겠지요. 저같은 사람도 일반염불과 염불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문제가지고 고민도 하고 그랬습니다마는 여러분들께서도 염불하는 분들은 기왕이면 그냥 염불 뿐 아니라 염불선도 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염불선의 체계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염불을 꼭 자기식으로 해야 한다는 그런 분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염불은 꼭 고유하니 어떤 음정에 따라서 그렇게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리 내도 좋고 안내도 좋고 다 좋은 것입니다. 계행 지키면서 염불하면 더욱 좋고, 계행을 지키지 못하면 못한 대로 염불해도 좋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또는 소리를 내고 안내고 상관없이 염불하는 것은 어느 때나 좋습니다. 장사할 때나 밥 먹을 때나, 밥 먹을 때 소리 내는 것은 어렵겠지요. 염불이라 하는 것은 부처를 생각하는 것이므로 소리를 안내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따라서 염불이란 것은 소리를 내고 안내고 상관없이 언제나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빨리 해도 무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 식으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극락세계에 가서 보면, 극락세계에서 꼭 어떤 식으로 하란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극락세계란 것은 그야말로 모두가 다 광명정토光明淨土, 우리 사람 같은 존재가 극락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모두가 광명세계입니다. 몸도 광명 몸입니다.

 

그 물질이 아닌 광명으로 만들어진 무량의 몸입니다. 물질 아닌 몸이니까, 극락세계 중생은 개체個體인 동시에 바로 전체全體입니다. 자기 몸과 우주가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몸이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사실 극락세계 중생뿐만 아니라, 우리 중생도 우리 존재도 우리가 똑바로만 본다고 생각할 때는, 제법의 공자리를 느끼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제법공입니다. 따라서 제법의 공자리를 느끼고 불생불멸한 그런 도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이 몸도 역시 개체인 동시에 전체입니다.

 

개체와 전체는 절대로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과법을 알면 그냥 짐작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이른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중중무진이란 것은 모두가 다 한 고리로 얽혀 있다는 말입니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몸인 것을, 우리 중생은 전체를 못 보니까 나 따로 너 따로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인연법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 본래로, 우리가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하나의 몸인 것을 우리 중생은 그 바탕을 보지 못하니까 성품을 보지 못하고 중생의 상만 보니까, 나 따로 너 따로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로 볼 수만 있다고 그러면 저절로 참다운 자비가 나옵니다.

 

참다운 무주상행無住相行을 하지 말라 해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데, 남한테 베풀면서 나라는 상을 내겠습니까? 따라서 그 근원적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염불한다 할 때 일반 보통염불과 염불선의 차이가 무엇인고 하면, 염불선이란 것은 근원적인 문제, 본체를 여의지 않고 염불하면 그것이 염불선이 됩니다.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마음으로 그와 같이 정말로 깨닫지를 못해서, 내가 증명證明을 못해서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다는 소식은 모른다 하더라도, 천지 우주는 본래로 불생불멸이고 참다운 진여불성 자리가 바로 내 자성이기 때문에, 진여불성 자리를 안 여의고 염불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염불 참선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내 밖에 계신다, 이렇게 생각해서 할 때는 염불참선이 못됩니다. 보통 염불은 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염불 참선이 못된다 하더라도, 또 염불을 열심히 하다 보면 마음으로 모아진단 말입니다.

 

마음이 모아지면 본래가 둘이 아닌지라, 결국 그때는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혼란의 시대 아닙니까? 그 산업사회란 것은 무서운 사회아닙니까?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고 그 물질이란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인데, 사람 욕심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무시무시한 경쟁사회가 안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은 사람끼리 화해할 수도 없고, 갖가지 폐단도 나오고 또 환경 파괴가 나오고 그러겠지요. 모두가 다 바른 진리를 모르는 데서 오는 무명심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폐해입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존재의 근원에다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생명의 본체에다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생명의 본체 이것이 불성이고 법신이고 또 진여불성이라, 부처님께서 마르고 닳도록 말씀하신 법신, 진여, 불성 또는 실상 실재, 또는 주인공, 이런 말씀이 모두가 다 하나의 도리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두어야 참다운 대승불교가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열반이고 바로 극락입니다. 그래서 불생불멸한 진리를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대로 사바세계가 극락세계입니다. 또는 우리 몸 이대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전체 우주의 생명과 내 생명이 뿔뿔이 분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생명인 것을 우리가 본바탕을 보지 못하고 상만 본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의 인식능력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업장 때문에 우리 마음이 통일되어서 깊은 삼매에 들어서 정작 진여불성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가 근본바탕을 본단 말입니다. 그 바탕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고, 우주가 하나의 생명으로 다 통일되어 버립니다. 여기까지 꼭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사윤회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선이 염불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삼매는 참선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개념상 억지로 따지고 보면 차이가 있는가 모르지만 삼매란 말이나 선이란 말이나 같은 뜻입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우주의 본생명 진여불성과 하나되는 것이, 이른바 참선의 목적입니다. 삼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삼매에 든다는 것은, 산란스런 마음을 쉬어서 우주의 본바탕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삼매 또는 참선 가운데서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가? 기왕이면 우리 불자님들 쉬운 방법으로 하시고 싶어 하시겠지요? 가장 쉬운 방법이 염불삼매입니다. 해 본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마음을 통일시키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별별 생각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 생각을 하나로 모아 가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렇게 어려우니까 화두란 법도 나왔단 말입니다. 천재적인 분들이나 과거전생에 업장이 가벼운 분들은, 마조나 임제나 백장같이 그냥 바로 직지인심이라. 그냥 바로 내가 부처란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범상凡常한 사람들은 그 여러 가지 잡다한 정보과다 시대에서는 좀처럼 우리 마음을 통일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이른바 삼매 참선에 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때 가장 쉬운 방법이 염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두 참선할 때도 병에 많이 걸립니다. 참선통이란 말입니다. 그와 같이 화두에 따르는 병은 있는데, 병을 다스리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참선할 때 상기上氣가 되고 여러 가지 병이 많지 않습니까? 병 다스리는 것을 부처님 법으로 하면 참 쉽습니다. 이것저것 다 놔 두고서 염불하면 다 고쳐집니다. 머리가 상기되어서 곧 깨질 듯해도, 의심하는 마음을 놓고서 그 천지 우주가 무량의 공덕을 갖춘 부처님으로 충만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할 때면 다 풀립니다.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우리가 부처님 공부할 때는 행복감이라든가 몸도 마음도 가볍고 그런 것을 느껴야 되겠지요. 이른바 법희라, 법에 대한 기쁨도 없이 공부하기는 곤란스럽습니다. 법희라는 기쁨도 극락세계의 우리 이상향, 그 장엄한 세계 모든 것이 다 원만히 갖춰진 우리 고향에다 마음을 두고 항시 생각할 때 우리 갈등은 바로 해소가 되는 것입니다. 또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미타불은 영원한 무생청정보주명호라, 이름자체에 일체 공덕이 갖춰져 있어서, 마음만 모아지면 참선병이라든가 세간의 병을 다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때그때 곤란스러울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또 더러는 무던히 많이 살았으니까 생명이 혼수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때도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지속시키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다 풀려갑니다. 이 우주란 것이 그 부처님의 공덕으로 충만해 있어서, 정말로 마음이 부처님한테 모아지면, 차를 타면 차 엔진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있고, 바람 불면 바람소리도 나무아미타불하고 있고 말입니다. 시냇가에 가면 시냇물도 나무아미타불, 신묘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불을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지 마십시오. 소리 낼 때는 내도 좋고 소리 내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그 나무아미타불 소리를 나쁜 귀신들은 제일 두려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쁜 것들은 우리한테 침범을 못합니다. 동시에 선신들은 법을 지키려고 해서, 우리가 염불하면 우리를 에워싸고 있고 말입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나 가장 소중한 공부 방법이, 또는 우리 마음을 가장 쉽게 통일시키는 방법이, 바로 염불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법희라, 법에서 느끼는 행복, 또는 선열이라, 마음이 통일되면 통일된 데서 느끼는 행복이 굉장히 큰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꼭 소리를 내야만 하고 안내야 하고 그런 한계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소리내면 낸대로 좋고 또는 안내면 안낸대로 좋고 또는 기왕이면 고기도 안먹고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고기먹고 싶으면 먹으면서 해도 괜찮습니다.

 

기왕이면 고기 안먹고 계행 지키면서 하면 훨씬 효험이 있습니다. 남하고 싸울 때도 염불하면 좋고 말입니다. 어느 때나 하다보면 자기 본래 마음자리로 차근차근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 순간 찰나도 놓치지 마시고 우리가 필경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 바로 극락세계에 마음을 두셔야 합니다. 어느 때나 극락세계는 꼭 가야하는 것이고 우리가 깨달아버리면 바로 이대로 이 자리에서 극락세계의 영원한 행복을 다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극락세계의 이미지를 놓치지 마시고,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염불해서 다시없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