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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0

 

 

우주는 바로 생명뿐입니다. 우주가 바로 생명뿐이라는 말은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왼다하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이 저쪽 하늘 높은 데 계신다, 애써 내가 부르면 타협적으로 나한테 와서 부른 만큼 공덕이 되겠지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덕이 되지요. 그 공덕이 되나 그 공덕은 작은 공덕입니다. 큰 공덕은 못 됩니다. 어떤 공덕이 큰 공덕인가. 아미타불과 나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실 둘이 아닌 것입니다. 둘이 아닌 것인데 우리가 그 관계를 잘 모르니까 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가 하나의 생명인데 하나의 마음자리인데 우리 스스로가 국한(局限)을 세우고 한계를 세우는 것이지 본래의 자리에서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하나의 생명이라고 보는 것이 이른바 실상관(實相觀)입니다. 이른바 실상염불(實相念佛)입니다. 우주의 본래 모습 생긴대로 염불해야 실상염불입니다. 실상염불은 바로 그때는 염불선(念佛禪)이 되어 버립니다.

 

기왕이면 염불하더라도 염불 참선이 하나가 되는 염불선을 하시고 싶겠지요. 염불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면 우주의 생긴 그대로 인정하시고 공부하면 그것이 실상염불이 됩니다. 그러면 동시에 염불참선이 됩니다. 우리가 가령 기독교를 믿어서, 기독교를 믿어도 불교와 같은 선이 유행하고 있는데 참선을 좀 했으면 좋겠다이렇게 마음먹은 사람은 그렇게 또 할 수가 있습니다. “, 주여, 하느님역시 참선을 합니다. 우주의 실상을 그대로 관조하니까 말입니다.

 

사실은 옛날 그리스의 위대한 성자들은 하나의 도리(道理)에다가 우리 마음 초점을 맞추었어요.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라든지 플로콜로스(Plokoros)의 일자(一者라든가 말입니다. 일자라는 것은 바로 하나의 생명자리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다 그랬습니다. 또는 칸트(Kant)의 물자체(物自體)라든가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이 무엇이다, 저것이 무엇이다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이 현상적으로 헤아리는 것이지 참다운 존재 자체가 아닙니다. 존재 자체라는 것은 우리 중생은 보지를 못합니다. 시각이 짧아서 말입니다. 성자가 돼야만 비로소 존재의 실상을 훤히 느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선방에서 공부를 안한다 하더라도, 어디서 언제 공부를 하신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본래의 마음자리 즉 생명자리를 안 놓치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참선공부입니다. 선방에 있다 하더라도 본래(本來)의 자리를 놓쳐버리면 그것은 참다운 참선공부가 못된단 말입니다.

 

어느 때 어느 처소(處所)나 어느 모양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주인이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선방에 있다하더라도 내 공부, 내가 하니까 나만 좋은 것이지 사회에는 봉사도 안하고 빚만 진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주(宇宙)가 하나의 마음자리라서 토굴 속에서 혼자 공부한다 하더라도 마음 닦고 있으면 그때는 우주를 정화시킨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우주를 정화시키는데 어떻게 우리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가불자님들이 집안에 계신다하더라도 그 마음자리, 보는 것마다 모두가 다 진여불성 아님이 없다 생각하시면 벌써 훌륭한 참선이 됩니다. 아까 외우신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에서 내외생멸상內外生滅相인 무수중생無數衆生의 무상제행(無常諸行)을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인 달하여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大行相)으로 사유관찰(思惟觀察)할지니라.” 이것이나 저것이나 바람부는 것이나, 물이 흘러가는 것이나 다, 아미타불의 행동범위란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느 것도 부처님 모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벌써 훌륭한 참선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다 있는 것이지 어느 처소 어느 상황에서 해야만 공부가 잘 된다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깊은 삼매에 든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불자님들이 비록 집안에 계신다 하더라도 역시 고요한 처소에서 이틀이나 사흘이나 일주일이나 또는 할 수 있으면 3개월 동안 그렇게 그렇게 한 번씩 해보셔야 삼매에 들어갑니다. 삼매에 들어야 마음 공덕을, 득력(得力)을 제대로 얻어서, 깨달아서 체험할 수 있단 말입니다.

 

세속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장애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공부가 안되는 것은 아니나 삼매에는 못 듭니다. 삼매에 들기가 어렵습니다. 삼매에 든다는 것은, 오로지 마음이 하나의 장소에, 하나의 처소에 딱 모아져서 흔들리지 않아야 삼매입니다. 그렇게 들어가야 참다운 진여불성을 스스로 깨달아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에 들어 있는 무량공덕, 상주부동(常住不動)하고 영생불멸(永生不滅)하고 또는 만덕(萬德)을 갖추고 있는 그런 공덕을 스스로 수용해 쓴단 말입니다. 삼명육통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신통묘지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도인이 잘 안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깊은 삼매에 잘못 든단 말입니다. 세상이 하도 소란스럽고 근기가 약해서, 오랫동안 잘 참아야 할 것인데 말입니다.

 

150년 전에 간 인도의 라마크슈나, 그분은 아깝게 52세에 가셨습니다. 여기 50넘으신 분들도 계시지요. 아깝게 52세에 가셨어요. 그 양반은 12년 동안 세상을 떠나서 산에 가서 오로지 그야말로 삼매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참다운 성품, 불성, 자성과 하나가 딱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그분은 학문은 전혀 안 배운 분입니다. 그러나 비베카난다라는 자기 제자가 학문적인 체계를 세웠어요. 그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통묘지를 부릴 수 있는 삼매에 든다고 생각할 때는, 우주의 참다운 법성하고 불성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군데서 오로지 정진해야 됩니다.

 

3개월동안 참선공부 한다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은 용맹정진(勇猛精進)이라. 밤낮으로 안자고 안눕고 하는 기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리 재가 불자님들도 가끔은 그런 기회를 만드셔야 돼요. 부처님 가르침 믿고 마음 편하게 모두가 부처니까 좋지 않는가 생각하는 분도 좋아요. 그러나 그걸로 해서는 힘을 얻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부처가 안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부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기왕 될 바에야 최선을 다해서 금생에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너무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마는 부처님 공부하실 때 꼭 일상삼매(一相三昧)라는 것을 기억해 두십시오.

 

일상삼매는 모두가 다 하나의 실상입니다. 둘이 있고 셋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명의 실상(實相)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일상삼매라고 어느 도인들이나 철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주의 실상을 안 놓치고서, 우주가 우리 중생이 보듯이 천차만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상이기 때문에, 실상에다가 마음을 두고서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것이 일상삼매고, 그 다음에는 일행삼매(一行三昧). 일행삼매는,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그 자리를 생각생각에 간단(間斷)이 없이 그대로 지속시킨단 말입니다. 참선의 교과서같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도 일상삼매 일행삼매라는 말씀이 여섯 군데나 있습니다. 그리고 육조단경의 부촉품(付囑品), 부촉품이라는 것은 결론같은 경이 아니겠습니까마는, 부촉품에 가서 그대들이 만약 여래(如來), 부처님의 종종무량(種種無量)의 법을 통달하려고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증()할지니라󰡓 이렇게 말씀했단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도, 제가 여태까지 말씀한 것도 모두가 일상삼매 일행삼매를 역설하고자 한 것임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스님 뿐만 아니라 사조도신(四祖道信)스님 달마스님도 마찬가지로 말씀하시고 강조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제가 예를 들어서 말씀드릴 수가 없으나 어느 도인들이나, 대승불교의 할아버지라는 마명(馬鳴)스님이나 또는 용수(龍樹)보살이나 또는 달마(達摩)대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다 법문과 글의 요지가 일상삼매 일행삼매입니다. 일상삼매는 다시 말씀드리면 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의 실상이란 말입니다. 거기다가 마음을 두고 거기다가 잠시간 마음을 둬도 다른 것 생각하면 흩어져 버리겠지요.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지속시키는, 이른바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 생각 생각에 상속시킨단 말입니다. 그것이 일행삼매입니다.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꼭 명심하셔서, 참선 선방에서 공부하시든지 또는 세속에 계시든지, 될수록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고 주무시면 주무시는 그 동안에도 공부가 되어갑니다. 주무시는 그 동안에도 공부가 안되면 또 막 일어나자마자 눈뜨자마자 또 일상삼매 일행삼매를 아차하고 다시 챙기셔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생명자체가 금생에 있는 동안, 빨리는 못 깨닫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임종(臨終) 때는 틀림없이 훤하게 확철대오(廓徹大悟)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위없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