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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5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55

 

불자님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보의 홍수 가운데서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몰랐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것저것 알기는 많이 알지만,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마땅한 인간의 할 일을 모른단 말입니다. 인간의 당위(當爲)를 모른단 말입니다. 다행히 부처님 가르침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고 가야 할 길을 압니다. 그러면 부처님 가르침은 무엇인가. 부처님 가르침에서 본다면 이 세상은 허망무상(虛妄無常)합니다.

 

다 환상(幻像)이나 같단 말입니다. 있는 것이 사실로 있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 보고 잘못 느껴서 있는 것같이 보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입니다. 착각해서 보고 무명 때문에 사실로 느껴진단 말입니다. 분명히 느끼시기 바랍니다.

 

어째서 있지 않는 것인가. 인연 따라서 잠시간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지 사실로는 있지가 않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제법공(諸法空) 도리를 몇 십번 몇 백 번 듣고 하시겠지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오온개공도 물질이란 다 비었다는 것입니다. 왜 비었을 것인가. 인연 따라서 잠시 동안도 머물지 못하고 변화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어려운 말로 하면 공간성(空間性), 시간성(時間性)이 없단 말입니다. 무엇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시간성이 있고 공간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인연생의 법은 인연따라 이루어진 것은, 사실은 시간성과 공간성이 본래로 없습니다.

 

오늘 천도 받는 영가들이시여! 생본무상(生本無常)이라, 우리가 태어났더라도, 본래는 태어남도 없습니다. 불생불멸한 것이 우리 생명의 본바탕이기 때문에 거품같은 모양으로 해서 이런 사대색신(四大色身)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이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변화무상하단 말입니다. 따라서 멸본무멸(滅本無滅)이라, 이 육신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 자체는 그대로 영원(永遠)히 존재한단 말입니다. 불생불멸한 생명의 존재는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조금도 이울어짐이 없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 자체가 바로 법신불(法身佛)입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 자체를 인격화(人格化)시킬 때, 이것이 나무아미타불이요, 약사여래요, 관세음보살이요 하는 것입니다. 불생불멸한 영원한 생명자리에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무생물(無生物)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른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이라는 것도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그 뜻입니다. 아미타불을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속에 갖추어 있는 공덕(功德)이 끝도 갓도 없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입니다. 아미타불의 공덕을 나타내는 명호(名號)입니다.

 

이른바 광명무량(光明無量)이라, 진리 광명이 한도 끝도 없이 많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내가 생명이거니 내 생명의 본고향 자리가 바로 법신불이고, 바로 영원한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대로 우주생명(宇宙生命)이란 말입니다. 󰡒부처님은 우주 생명이니까 훨씬 크고, 내 마음자리는 아주 왜소(矮小)해서 별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 같으면 비교가 되겠지마는, 물질이 아닌 마음, 순수 생명은 비교가 안됩니다. 하나 가운데 일체가 다 들어가고, 일체 가운데 하나가 들어가고[一中一切多中一]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단 말입니다. 우주는 오직 하나의 진리입니다 [法性圓融無二相].

 

아침에 와서 보니까 주지 스님 염불소리가 온 도량에 쩌렁쩌렁 울려서 저도 환희심을 냈습니다. 영가들고 춤을 추면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도록 될 것으로 저는 확신을 합니다. 우리 인간의 영혼들이 우리가 생각할 때 눈에 안보이니까, 영혼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렇게 의심 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존재가 허망무상하지만 이와 같이 존재해 있듯이, 영혼도 우리 중생의 제한된 육안에는 안보인다 하더라도, 천안(天眼)이라든가 또는 법안(法眼)이라든가 불안(佛眼)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분명히 인간 모양으로 존재해 있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생명인데 그 생명이 갈 곳을 잘 모르면, 이른바 중음(中陰)에서 오랫동안 헤매이는 것이고, 갈 곳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그냥 천상(天上)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초승(超昇)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극락,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지는 사람들은, 그것은 우리 중생들한테 좋은 일 많이 하고 좋은 데에 태어날 것을 이와 같이 권선징악(勸善懲惡)적으로 말씀하셔서 가르치려는 것이지, 극락이 어디 있을 것인가? 또 아, 천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천상도 어디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들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도 본래(本來)에서 본다면,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꿈이요 허깨비 같단 말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그때그때 변화무상(變化無常)한 것입니다. 따라서 천상 세계도 다 변화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극락세계라는 것은 생명 자체가 본래의 생명이 안주(安住)하는 자리, 자기 고향에 돌아간 자리란 말입니다. 따라서 극락세계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태어난 분들은 모두가 다 몸이 광명의 몸[光明身]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극락이 있는가 없는가 그런 것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열심히 보시면, 부처님께서 어떻게 극락세계를 말씀했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지식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극락은 분명히 우리 생명의 본고향에 돌아가는, 진여불성 자리로 돌아가는 성자(聖者)의 영들이 안주(安住)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이른바 극락은 영생(永生)의 고향이나 똑같습니다. 우리는 극락에서 쉬다가 다시 중생계(衆生界)로 돌아온다고 생각할 때, 중생들이 불쌍하면 그때는 수원수생(隨願受生)이라, 다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원력(願力)을 세워서 중생계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내려오기도 하고 또는 지옥도 가고 하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는 온전한 자유, 참다운 자유,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요, 참다운 자유의 자리입니다. 진여불성이 되어가지고 모든 인간의 고뇌(苦惱)가 없고 오직 행복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가 극락세계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명(假名)에 불과한 허무의 자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광명을 몸으로 하고 바로 우주(宇宙)를 몸으로 하는 그런 자리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순수생명 자리이기 때문에,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가 다 우주를 몸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