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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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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42 우리 불자님들 확실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대적인 문명을 자랑하면서 그 물질을 쪼개고 쪼개가지고서 종당에는 다 하나의 우주(宇宙)의 기(氣)인 에너지만 남는 것인데 그 에너지의 참다움은 무엇인가. 참다운 정체는 무엇인가. 이것을 모르는데 부처님 가르침만이 참다운 모양을 안단 말입니다. 이른바 본체(本體)를 안단 말입니다. 에너지의 정체가 불교(佛敎)로 하면은 이것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부처의 성품이란 말입니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핵심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란 뜻이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따라서 대승불교(大乘佛敎)를 말한 사람들이 남한테 보시(布施)하고 또는 사회사업을..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41 참선이란 것은 뭣 때문에 하는 것인가? 참선은 이것은 허튼 허망한 것에 걸려있는 허망한 것에 집착해 있는 우리 마음을 다 풀어버리고서 본래의 마음자리, 본래의 순수한 마음자리로 간단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할 일은 무엇인가? 인간의 할 일도 그러니까 훤합니다. 무명을 떠나서 참다운, 참다운 깨달음으로 간단 말입니다. 참다운 깨달음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 번뇌, 그 모양에 사로잡혀서 모양 보고 참말로 있다고 생각하고 모양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우리가 부숴버리고서 모양을 떠나버린 이른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그런 참다운 생명(生命)을 얻는단 말입니다. 우리 범부(凡夫)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양만 가지고 상만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상만 말입니다. 상만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딱 우..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40 부처님이 우리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시는 그 마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대자대비(大慈大悲) 아닙니까. 대자대비(大慈大悲)라. 우리 보통 사람은 자비심(慈悲心)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부처님의 자비심은 보통 자비심이 아니라 조금도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衆生)들은 자비심이나 남한테 좀 베푼다 하더라도 꼭 뭣인가 좀 남아있단 말입니다. 내가 남한테 베풀면 저 사람 나를 좀 좋게 알겠지 라든가 말입니다. 또는 그 눈에 보이는 보상(報償)이 아니더라도 무슨 보상이 좀 있겠지 하는 그런거라든가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는 그런 것이 아니라 조금도 그런 삿된 것이라든가 개인적인 헤아림이 없단 말입니다. 어째서 부처님은 그러한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낼 수가..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39 이른바 법신(法身)이라. 법신 자리에 법신 자리에다가 우리 마음을 항시 머물게 한단 말입니다. 법신이란 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 불(佛)자, 마음 심(心)자, 바로 불심(佛心)이고 말입니다. 또는 부처 불(佛)자, 몸 신(身)자, 그때는 불신(佛身) 그래도 무방한 것이고 말입니다. 또는 법 법(法)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 그래도 무방한 것이고 같은 뜻이에요. 모두가 다 법성이나 불성이나 불신이나 또는 불심이나 똑같은 뜻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일체 존재의 근본 바탕을 말한단 말입니다. 사람의 바탕을 말할 때는 그때는 불심 말해야 가장 더 타당이 되겠지요. 그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모든 존재의 근본 바탕 자리인데 거기다가 마음을 두지 않는 한에는 우리 마음은 온전히 다스려지지가 않습..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38 인생(人生)이 허망(虛妄)한 것인데 허망한 인생 가버리기 전에 우리가 힘을 얻어야 됩니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이른바 득력(得力)이라. 득력이란 것은 우리 공부가 행습(行習)이 돼서 다른 삿된 것이 거기 낄 수가 없이 오롯이 이렇게 물이 흘러가듯이 흘러가는 것이 이른바 득력이란 말입니다. 기왕 불교를 믿으면 또는 불교를 믿는 것이 참다운 자기를 찾는 길이고 참다운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이라고 하면은 그보다도 더 위대하고 급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길은 또 우리가 어디서 누구한테 빌려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른바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은 소를 타고 소를 지금 찾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을 모를 때는 자기가 소를 타고 소를 찾고 있는 것을 모르지만은 그 불성(佛性)이라..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37 부처님 법문 가운데는 방편가설인 그런 법문도 있고, 또 그런가 하면은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대총상법문이 있곤 합니다. 대총상법문은 무슨 법문인고 하면은 이것은 그 부분적인 또는 임시적인 시설로 이루어진 법문이 아니라 부처님 법의 체용성상(體用性相)이라. 그 부처님 법의 본체(本體)라든가 또는 현상적인 문제라든가 모두를 다 모조리 담아서 총괄적으로 말씀하신 법문이 대총상법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 같이 외우고 있는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은 이른바 대총상법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부처님 법문 가운데는 이른바 삼신일불(三身一佛)이라, 부처님의 그 본체(本體) 본바탕인 법신(法身)과 또는 부처님한테 갖추어 있는 모든 성품공덕(性稟功德) 한량없는 지혜(智慧) 또는 만 가지 그런 억만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36 오늘은 또 영가(靈駕)들 천도식이 있습니다. 영가들 천도식에 대해서 제가 또 몇 말씀 주지스님께서 부탁하시고 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영가라는 것은 우리 인간 존재가 무상하나마 존재하듯이 영가도 우리 중생의 우리 인간존재의 눈에는 지금 안 보이지 않습니까. 안 보이나 분명히 무상하지만은 항시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러지만 인간 존재가 존재하듯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옥(地獄)도 마찬가집니다. 지옥이나 또는 아귀(餓鬼)는 내내야 영가나 모다 그런 귀신세계 아닙니까. 아귀나 또는 축생(畜生)은 인제 개나 소나 돼지나 그런 세계가 아닙니까. 또는 아수라(阿修羅) 아수라도 우리 사람의 눈에는 안보입니다. 그러나 싸움 좋아하는 싸움을 좋아하는 그런 또 영체의 세계가 있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 가서 우리..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35 우리 불자님들 꼭 그 대승 불법을 생각하셔서 모두가 다 진여연기라, 참 진(眞)자 같을 여(如)자, 인연 연(緣)자, 일어날 기(起)자 말입니다. 진여불성이라 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존재하는 우주의 생명 자체입니다. 우주의 아주 실상 자체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 이 자리는 조금도 치우침이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비록 인간존재로 태어나서 몇십 년 동안 살다가 죽어갑니다만 그렇더라도 우리 인간 자체는 절대로 우리 물질적인 몸뚱이와 더불어서 소멸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존재는 바로 생명 자체 생명 진여불성이 바로 우리마음 자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즉 따라서 무시 이래로 과거에 이 지구가 생겨나고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는 그때는 그냥 광명천지(光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