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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5. 중각보왕삼매염불직지

제18(第十八) 나현중의(羅顯衆義)

제18(第十八)  나현중의(羅顯衆義)

여러 가지 의미(意味)를 나열(羅列)하고 현현(顯現)하는


대저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일행삼매(一行三昧)라 지칭(指稱)한다. 대개(大蓋) 수행인(修行人)이 깊은 의미(意味)를 잘 이해(理解)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지녀 저 국토<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만을 생각하고 이에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만을 기억(記憶)사념(思念)하여 몸과 국토(國土)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인지(認知)하고 기억(記憶)하고 사념(思念)함도 또한 하나임을 깨달아 인식(認識)하면 일행삼매(一行三昧)라 이름 할 수 있다.


비록 일행(一行)이라 하였지만 또한 일체(一切)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의  한량(限量)없는 법문(法門)과 모든 공덕(功德)의 행(行)으로써 조도(助道)를 삼아야만 왕생(往生)의 행업(行業)이 신속(迅速)히 성취(成就)됨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일체(一切)의 모든 행(行)이 정토(淨土)를 위해 수행(修行)할뿐지 별도(別度)의 기로(岐路)가 없는 것을 또한 일행(一行)이라하며 마치 뭇 여러 가지 흐름이 큰 바다로 흘려 들어가면 한가지로 동일(同一)하게 바다라 이름하듯이 만(萬)가지 선행(善行)이 동일(同一)하게 마침내 한곳으로<만선동귀(萬善同歸)> 돌아가는 것을 일행(一行)이라 지칭(指稱)한다.


이러한 연유(緣由)로 하여 일체(一切)의 사념처(四念處) ▪오정근(五正勤) ▪오근(五根)▪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사홍서원(四弘誓願)▪ 육도(六度)가 모두다 이에 정토(淨土)의 행이라 내지 탄지(彈指)의 선행(善行)과<손가락 을 튕길 찰나(刹那)의 선행(善行) >산란(散亂)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念佛)과 혹(或)은 한번 명호(名號)를 칭념(稱念)하는 것과 한손을 들고 한번 예배(禮拜)하고 한번 찬탄(讚嘆)하며 한번 첨앙(瞻仰)하는 것과 나아가서 한 개의 향(香)▪ 한 방울의 물▪한 송이의 꽃▪하나의 등(燈)▪한 개의 공양구(供養具)▪혹(或)은 일념(一念)을 수습(修習)하여 십념(十念)에 도달(到達)하며▪하나의 보시(布施)▪하나의 계율(戒律)▪하나의 인욕(忍辱)▪선정(禪定)▪지혜(智慧)인 일체(一切)의 선근(善根)을 오로지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로 회향(迴向)하여야한다


이렇게 행(行)하면 원력(願力)을 수지(修持)하는것이 때문에 신속(迅速)하고 완만(緩慢)함이 있다하여도 모두가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을 성취(成就)하게 된다 경전(經典)에서 비유(譬喩)로 말 한 것과 도 동일(同一)하다 옛날의 어떤 한사람이 작은 량(量)의 물을 큰 바다에 투척(投擲)하면서 파괴(破壞)되지도 분실(紛失)하지도 상이(相異)하지도 마르지도 아니하고 다겁(多劫)을 경과(經過)한다 해도 요컨대 원래(元來)의 물로 되돌아가라고 발원(發願)함이라


그 사람이 다겁(多劫)을 지나고 나자 발원(發願)하여 부탁(付託)했던 것과 같이 과연(果然) 원래(元來)의 물을 도로 얻게 되었는데 파괴(破壞)되지도 건조(乾燥)하여 마르지도 아니함이라  서방정토(西方淨土)에 회향(迴向)함도 이와같음이라 작은 선근(善根)을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함에 회향(迴向)하는 것이 오히려 마치 작은 량(量)의물을 바다에 투척(投擲)하여 부탁(付託)하는 것과도 같음이라


다른 생(生)을 경유(經遊)하드라도 착한뿌리를 망실(忘失)하지 아니하고 또한 파괴(破壞)되거나 다하지 않고 저기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한다는 것을 의심(疑心)할 여지가 없음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대승(大乘)소승(小乘) 유루(有漏) 무루(無漏) 산심(散心) 정선(定善) 사상(事想) 관혜(觀慧)를 모두다 일행(一行) 이라하는데 모두가 왕생(往生)을 성취(成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도사견종성(外道邪見種性)은 이에서 제외(除外)된다 그 때문에 하고자 하는 마음만 구비(具備)한다면 반듯이 발원(發願)과 왕생(往生)이 서로 위배(違背)되지 않음이라

 

또한 경전(經典)에서 부처님에게 의지(依支)합니다 나무 불(佛)을 한번만 칭념(稱念)하여도 다 부처님의 도(道)를 성취(成就)한다 하였는데 진실(眞實)로 깊이 신(信)하여 믿을만하다 인심(因心)을 발기(發起)하거나 선행(善行)을 수립(竪立)하거나 신심(身心)을 조복(調伏)하여 자기(自己)를 다스리지 아니하면서 감응(感應)을 먼저 희구(希求)하는 사람과는 함께 상대(相對)하여 말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석가모니(釋迦牟尼)성주(聖主)박가범(薄伽梵)께서 일대(一代)의 지극(至極)한 가르침 가운데 한량(限量)없는 해탈(解脫) 행원(行願) 총지(摠持) 로 상응(相應)하는 무수(無數)한 법문(法門)이 있지만 오직 염불(念佛) 의 한 가지 문(門)이 가이없이 원만(圓滿)하여 두루 모두를 포괄(包括)하여 감싸고 있을 뿐이다


염불법문(念佛法門) 의 구족(具足)함은 마치 이에 저 큰 바다가 여러 가지 중류(衆流) 를 삼켜 흡수(吸收)함이나 본성(本性)은 증(增)하거나 감손(減損)함이 없는 것과 같으며 여의주(如意珠)를 높은 깃대 위에 올려놓으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소원(所願)대로 만족(滿足)시켜주지만 휴손(虧損)함이 없는 것과 같음이라 이 보왕삼매(寶王三昧) 도 능(能)히 포섭(包攝)하고 능(能)히 구족(具足)한 것이 또한 이와 같음이라.

이러한 의미(意味)가있기 때문에 처음 우리 부처님 세존(世尊) 박가범(薄伽梵)께서 이 삼매(三昧)로 써 중회(衆會)에 고(告)하시기를 재삼(再三)하신 것이다 저모임에서 받들어 법문(法門)을 청문(聽聞)한 대근기(大根機)의 인재(人才)로서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등(等) 삼승(三乘)성현(聖賢) 과 천용팔부(天龍八部)같은 무리들로 이에 마음을 다 받쳐서 귀의(歸依)하여 신(信)하지 않는 자(者)가 없었다.


동토(東土)에 법(法)이 유전(流轉)하자 대지인(大智人) 이 여산(廬山)에서 부처님이 유촉(遺囑)하신 교화(敎化)를 천양(闡揚)하였는데 신봉(信奉)하는 사람들은 바람이 풀 위를 스치듯 천하(天下)의 인망(人望)을 다하여 이에 그 가르침을 찬미(讚美)하지 아니함이 없음이라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이후(以後) 지금까지 이천삼백여년(二千三百餘年)이 되었다

그 가운데 성현(聖賢) ▪고승(高僧) ▪거유(巨儒) ▪농부(農夫) ▪상인(商人) ▪필부(匹夫) ▪필부(匹婦) ▪노비(奴婢)▪내시(內侍)에 이르기까지 혹(或)은 스스로 실천(實踐)하며 다른 사람에게 권(勸)하기도 하였고 혹(或)은 문장(文章)을 저술(著述)하여 서원(誓願)을 발(發)하기도 하였다


법(法)은 보배처럼 귀중(貴重)히 여겼고 몸은 티끌처럼 가볍게 생각하였다

어려운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죽음에 임(臨)해도 뒤돌아보지 아니하였다 뛰어난 몸으로 행(行)을 수립(竪立)하여 이 도(道)를 힘써 수행(修行)한 사람이 이에 그 몇이나 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혹(或)은 수행(修行)을하며 따라서 기뻐하였고 혹(或)은 믿고 귀의(歸依)하였으며 내지는 체득(體得)한 것을 따라 자기(自己)의 극진(極盡)한 정성(精誠)으로 수행(修行)한 사람은 그 숫자가 더욱 많았다 진실(眞實)로 이르는바 하늘에 떠있는 별과 진사(塵沙)와 같은 숫자로도 그 많은 것을 비유(譬喩)하지 못한다 한 것이였다.


혹(或)은 반신(半信)하거나 불신(不信)하여 유예(猶豫)하며 결단(決斷)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저 국토(國土)의 의성(疑城)변지(邊地)에 왕생(往生)하거늘 항차 바르게 믿고 수행(修行)하는 사람이겠는가 전기(傳記)에 실린 것은 만(萬)에 하나도 미치지 못할 정도(程度)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그들의 은혜(恩惠)를 받았었다 어떻게 필설(筆舌)로 다 기술(記述)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도품(道品)을 따로 수행(修行)하고자 함이나 자심(自心)을 의지(依支)하여 빌릴뿐이므로 혹(或)은 퇴전(退轉)하여 마구니를 보는 환란(患亂)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법문(法門)만은 부처님의 힘을 의지(依支)할뿐이므로 수행(修行)하면 반듯이 성취(成就)하여 다시는 마업 의 방해(妨害)함이 없이 영원(永遠)히 퇴전(退轉)하지 아니함이라 또 이 삼매(三昧)를 수행(修行)함에 마구니만 멀리할 뿐 아니라 인간(人間)의 일체(一切) ▪현관(縣官)의 구설(口舌)이나 시비(是非) ▪환란(患亂) ▪수화(水火)▪도적(盜賊) ▪악인(惡人)으로 의한 흉사(凶邪)와 내지(乃至)는 일체(一切)호랑이 ▪짐승▪ 귀신(鬼神) ▪도깨비▪ 요정(妖精)의 길상(吉祥)하지 못한 일들이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또한 일체(一切)전염병(傳染病) ▪상한(傷寒) ▪종기(腫氣)▪하천(下賤)▪눈 ▪귀▪ 코 ▪혀의▪ 모든 병(病)에도 뇌란(惱亂)되지 않는다

그의 원행(願行)처럼 부족(不足)함이 없이 모든 것을 배격(排擊)하여 물리칠 수 있으나 그러나 사람의 명문(名聞)▪이양(利養)▪감애(甛愛)▪연적(軟賊)▪진심(嗔心)▪진화(嗔火)만은 부처님의 힘이 있다 해도 스스로의 허물이므로 구제(救濟)하지 못함이니 수행인(修行人)은 더욱 깊이 정진(精進)하여 반듯이 격퇴(擊退)하여 물리쳐야한다

만일 한 생각이라도 어물정 어물정 했다가는 반듯이 빼앗기게 되리라 그러나 저 연마(軟魔)는 믿음이 천박(淺薄)하여 탐욕(貪慾)스럽고 게으르며 실념(失念)한 사람만을 해칠뿐 정진(精進)하는 사람에겐 강렬(强烈)한 불기운(氣運)에 연마(鍊磨)한 쇠가 물을 만나면 반대(反對)로 견고(堅固)해지는 것과 도 같음이라


어떻게 소소(小小)하게 여기며 감(敢)히 가까이 하면서 무시(無視)하여 곁눈질 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수행인(修行人)이 부처님을 의지(依支)하여 마(魔)구니를 배척(排斥)해 버리면 이 몸이 안락(安樂)한데 그칠 뿐 아니라 또 삼매(三昧)를 성취(成就)하여 천상(天上)인간(人間)이 보호(保護)하고 돕는 것이다 임종(臨終)할 때 왕생(往生)을 정념(正念)하면 그 왕생(往生)할 즈음 상서(祥瑞)로운 감응(感應)이 하나둘이 아니다 혹(或)은  하늘나라의 음악(音樂)이 방(房)안에 가득하기도하고 혹(或)은  특이(特異)한 향기(香氣)가 집안에 가득하기도 한다. 혹(或)은  신이(神異)한 광명(光明)이 몸을 비추기도하며 혹(或)은  보배로운 연화좌(蓮華坐)가 현전(現前)하기도 한다 혹(或)은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직접(直接)와서 맞이하여 영접(迎接)하기도하고 혹(或)은 보살(菩薩)이 연화대(蓮花臺)를 손수 주며 제접(諸接)하기도 한다.


내지(乃至)는 죽음의 시간(時間)이 이르러 왔다는 것을 미리알고 정념(正念)을 어기지 않으면 모든 장애(障礙)가 홀연(忽然)히 텅비게 된다 그리하여 스스로 목욕(沐浴)하고 가부좌(跏趺坐)하여 대중(大衆)을 모아서 설법(說法)하고는 차수(叉手)하며 고별(告別)을 나누기도 한다. 혹(或)은 다시 사람에게 도(道)에 진수(進修)하라 권면(勸勉)하는 게송(偈頌)쓰기를 다하면 붓을 던지고 합장(合掌)하며 떠나기도 한다 혹(或)은 임종(臨終)한 뒤에 온몸이<전신(全身)이>살아있는 것과 같으며 치아(齒牙)와 뼈에서 나온 몇 개의 청명(淸明)한 사리(舍利)는 태워도 파괴(破壞)되지 않는다


광채(光彩)는 일반적(一般的)인 것과는 다르게 오색(五色)이 선명(鮮明)하며 상서(祥瑞)로운 물질(物質)은 허공(虛空)에서 맴돌며 흩어지지 않는다.

연기(煙氣)가 이르는 곳마다 사리(舍利)가 구슬처럼 흐르다가 부딪치는 물질(物質)마다 발생(發生)하는데 이는 이목(耳目)으로 항상(恒常)기억(記憶)하고 있는 것 들이다 평소(平素)에 실천(實踐)하기를 명백(明白)히 하여 정진력(精進力)으로 감득(感得)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와같을 수가 있었겠는가.


슬프다 ! 요즈음사람들이여 혹(或)은 수행(修行)을 했는데도 효과(效果)가 없는 것은 대체로 신근(信根)이 천박(淺薄)하고 인지(因地)가 진실(眞實)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수행(修行)함은 세우지 않고 우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하여 안으로는 자신(自身)을 뽐내고 밖으로는 광채(光彩)를 나타내고자한다 사람들이 공경(恭敬)히 공양(供養)한 소득(所得)이 있기를 바라며 심지어는 정토(淨土)의 경계(境界)를 보았다고 허망(虛妄)하게 말하기도 한다. 혹(或)은 소소(小小)한 경계(境界)와 꿈속에서 선상(善相)을 보면 옳고 그름을 식별(識別)하지 아니하고 먼저 말하고자 한다


이들의 비열(卑劣)하고 하천(下賤)한 견해(見解)는 반듯이 위와 같은 마려(魔侶)<마구니 도반(道伴)>에게 혹란(惑亂)되어 원행(願行)이 퇴실(退失)하여 생사(生死)의 괴로운 세계(世界)로 다시 떨어져 추락(墜落)하리니 삼가 조심(操心)하여 경계(警戒)하지 않았서야 되겠는가 도장(道場)에서 지송(持誦)하며 참회(懺悔)하고 발원(發願)하는 의식(儀式)을 주위(周圍)에서 알지 못하게 할 수 없는 것은 대체로 어쩔 수 없는 경우(境遇)에서 나온 것이다. 왜 그 자취(自趣)를 특별(特別)하게 노출(露出)시켜 관행(觀行)이 파괴(破壞)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곧 수행인(修行人)이라면 자세(仔細)히 살피고 가만히 알차게 행(行)하여 안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덕(德)을 드러내지 말아야한다


집에 도달(到達)할 때 위에서와 같은 강연(强軟)의 두마구니에게 현혹(眩惑)되지 않아야 한다 수행(修行)하는 도중(途中)에 오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하고자하며 호상(好相)이 희미(稀微)하게 보일 경우(境遇) 덕(德)을 온축(蘊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귀에 들리게 한다면 그 수행(修行)은 반듯이 전복(顚覆)하리라 그 때문에 혜원조사(慧遠祖師)께서는 성상(聖相)을 세 번이나 친견(親見)하였으나 평일(平日)에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임종(臨終)할 때만 제외(除外)한다


이렇게 행(行)하기를 지극(至極)히 기도(祈禱)하고 기도(祈禱)함이라 또 이 삼매(三昧)의 체성(體性)이 원만(圓滿)하기는 하나 이해(理解)는 광대(廣大)하게 해야 하며 실천(實踐)은 모든 미세(微細)한 조장(條章)을 극진(極盡)히 해야 한다 모든 외람(猥濫)한 폐단(弊端)을 개혁(改革)하고 내지(乃至)는 조그만한 작죄(罪)라 할지도 큰 두려움을<경외(敬畏)함>품(禀)어야 한다.

또 이해(理解)는 대승(大乘)의 가르침을 따르고 행(行)은 소승(小乘)의 학문(學文)을 의지(依支)해야만 이 염불삼매(念佛三昧)에 합치(合致)할 수 있다.



가령(假令) 소승(小乘)의 행(行)을 작게 여기지 않고 소승(小乘)의 행(行)으로 이해(理解)의 원만(圓滿)함을 따라 원만(圓滿)함이 소승(小乘)의 행(行)을 떠나지 않는다면 소승(小乘)이 곧 대승(大乘)을 성취(成就)하게 된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의 해행(解行)이 나뉘지 않는 한 가지 이치(理致)라야 세견(世見)을 바로 초월(超越)할 수 있다 경전(經典)에서 말하기를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로서 봉양(奉養)하고 ▪사장(師長)을 섬기며 ▪자비(慈悲)로운 마음으로 살생(殺生)하지 아니하고▪열 가지 선업(善業)을 수행(修行)하며▪삼귀의(三歸依)를 수지(受持)하고 ▪중계(衆戒)를 구족(具足)하며 ▪위의(威儀)를 범(犯)하지 않고▪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며▪인과(因果)를 깊이 믿고▪대승(大乘)을 비방(誹謗)하지 않아야한다 하였다 수행자(修行者)에게 정진(精進)하여 수행(修行)하기를 권(勸)함이라


이상(已上)의 여러 구절(句節)로써 한결같은 나의 법행(法行)으로 삼으라 고인(古人)들에게는 제각기 법훈(法訓)의 일장(一章)이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기술(記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의 마음을 보호(保護) 하여 과시(誇示)하거나 혐의(嫌疑)하지 말며 행동(行動)을 자약(自若)하게하라 대승경(大乘經)을 지송(持誦)하여 제일의(第一義)를 이해(理解)하고 착한 벗을 친근(親近)하고 선각(先覺)에게 묻기를 청(請)하며 자기(自己)의 견해(見解)를 고집(固執)하고 자기(自己)의 장점(長點)을 이끌어 내지 말라


인욕(忍辱)의 뜻을 간직하고 경(經)을 의지(依支)하여 실천(實踐)하며 정법(正法)을 듣고 승니(僧尼)를 훼방(毁謗)하지 말며 세간(世間)의 잡다(雜多)한 선행(善行)을 쉬고 명리(名利)를 탐(貪)하지 말라

사악(邪惡)함을 멀리 떠나 반듯이 충직(忠直)하게 일을 처리(處理)하며 허물은 자기(自己)에게 돌리고 꾸며 기만(欺滿)하는 말을 깊이 경계(警戒)하라 혼란(混亂)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부처와 같이 보며 기능(伎能)을 버리고 왕생(往生)만을 구(求)하면 반듯이 청정(淸淨)하리라 이 같은 등(等)의 한량(限量)없는 선행(善行)을 다 수습(修習)해야만 정도(正道)를 도울 수 있다.


다시 세상(世上)의 오염(汚染)된 마음을 끊고 증오(憎惡)와 사랑의 두 경계(境界)에서 모든 남은 어려움이 없어야한다 응연(凝然)한 마음이 한결 같아야 반듯이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는데 그 공덕(功德)은 매우 위대(偉大)하여 다 기술(記述)하지 못할 정도(程度)이다

이 때문에 이 법(法)<염불법문(念佛法門)>가운데 행(行)를 가만히 닦아 고매(高邁)하면서도 명예(名譽)를 드러내지 않고 저 세계(世界)<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한 사람이 그 몇이나 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므로 전기(傳記)에 실린 유명(有名)한 사람들은 큰 바다에 한 방울과 같은 작은 수자(數字)일뿐이다 어떻게 그 수자(數字)를 다 계산(計算)하여 헤아리겠는가 가령(假令) 어떤 사람이 교계(敎戒)를 의지(依支)하여 이 행(行)만을 수행(修行)한다 해도 한량(限量)없는 원업(冤業)의 중생(衆生)들에게 이익(利益)을 주게 된다.


더구나 부모(父母)형제(兄弟)자매(姉妹)사장(師長) 법문(法門)의 권속(眷屬) 및 평일(平日)에 나의 환란(患亂)을 풀어주고 나를 이끌어 준 사람이 그 이익(利益)을 획득(獲得)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이 행(行)만을 수행(修行) 하더라도 은혜(恩惠)를 보답(報答)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 때문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念佛)하여야한다 아미타(阿彌陀)부처님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두 대사(大士)의 경계(境界)는 매우 심오(深奧)하여 고해(苦海)중에서는 친근(親近)하기가 어려우며 기억(記憶)하고 사념(思念)하는 것도 어렵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능(能)히 기억(記憶)하고 사념(思念)하는 사람은 반듯이 해탈(解脫)하기 때문이다


명호(名號)를 듣는 것도 어려운데 더구나 친근(親近)히 함이겠는가 경(經)에서 말하기를 가령(假令) 선남자(善男子)선여인(善女人)이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명호(名號)와 두 보살(菩薩)의 명호(名號)만을 들어도 무량겁(無量劫)의 생사(生死)의 죄(罪)를 소멸(消滅)하여 제거(除去)한다 하였다 더구나 기억(記憶)하고 사념(思念)하는 사람이겠는가

가령(假令) 염불(念佛)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사람 가운데 분다리화(芬陀利華)<붉은연화(蓮華)>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그 사람의 훌륭한 벗이 되어 도장(道場)에 앉자계시면서도 모든 부처님의 집안에 태어나게 함이라


이 때문에 대체(大體)로 저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중생(衆生)들은 몸과 마음이 함께 괴롭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특별(特別)히 괴로운 처소(處所)에서 가장 심오(深奧)하게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행(行)하신 것이다

근기(根機)의 마땅한데 바르게 감응(感應)하는 것은 물과 같고 달과 같음인데 이는 감응(感應)의 도(道)가 교합(交合)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세존(世尊)박가범(薄伽梵)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심으로부터 열반(涅槃)에 드시기까지 그 음성(音聲)을 두 가지로 하시지 않으셨다 설법(說法)은 화엄회상(華嚴會上)으로부터 시작(始作)하여 영취산(靈鷲山) 법화(法華)도량에서 종극(終極)의 완성(完成)을 이룰 때 까지 옥음(玉音)으로 포교(布敎)하셨는데 칭찬(稱讚)과 기록(記錄)하여 진술(陳述)함으로서야 어떻게 이에 그 극진(極盡)함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저 회상(會上)에 있었던 대심승지(大心勝志)의 인재(人才)들은 이 지취(旨趣)를 승순(承順)하여 모두가 원(願)을 일으키고 왕생(往生)을 구(求)하였다 하물며 우리들은 말세(末世)의 우둔(愚鈍)한 근기(根機)로써 생사(生死)에 유랑(流浪)하는 자(者)들이겠는가 식(識)이 있는 무리들은 모름지기 이 가르침을 피부(皮膚)와 뼈에 각인(刻印)하도록 하라 이로부터 미타(彌陀)의 원력(願力)이 끊어지지 않고 대대(代代)로 인재(人才)가 궁핍(窮乏)하지 않아 성인(聖人)은 이로써<염불법문(念佛法門)>앞에서 창도(唱導)하시고 훌륭한 사람은 이로써<염불법문(念佛法門)>뒤에서 계승(繼承)하였다 확연(確然)하게 시방(十方)삼세(三世)에 두루 하는데 어찌 천하(天下)에만 그 칠 뿐이며 거침없이 육도(六道)사생(四生)에 충만(充滿)하였는데 어찌 인륜(人倫)에만 그 칠 뿐이겠는가.


천신(天神)이 교화(敎化)를 향(向)하고 귀물(鬼物)이 그를 순종(順從)하며 인비인(人非人)도 우러러 찬탄(讚嘆)하지 않음이 없었다 행사(行事)에 실리고 전장(典章)에 갖추어져 해장용궁(海藏龍宮)까지도 가득히 넘치고 견고(堅固)하게 모두가 군기(群機)에 감응(感應)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다 우리부처님 아미타세존(阿彌陀世尊)의 원력(願力)의 소치(召致)로 그러한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를 최후(最後)의 악(惡)한 세상(世上)에 나의 법(法)이 소멸(消滅)할 때 이 교전(敎典)만<아미타경(阿彌陀經)>은 백년(百年)을 더 머물면서 군유(群有)를 제도(濟度)하리라하셨다 그렇다면 이 법(法)이<정토염불법(淨土念佛法)>어찌 우리들 뒤떨어진 사람들에게 지극(至極)한 훈계(訓戒)가 아니겠는가 팔팔구곡(八八鴝鵒)이라 하는새는<앵무(鸚鵡)새> 어리석은


망상(妄想)인 이류(異類)중(中)에 떨어져있었으나 사람을 따라 명호(名號)를 칭양(稱揚)하고 삼매(三昧)의 힘을 받들었기 때문에 매장(埋葬)한 처소(處所)에서는 연꽃이 피어났다


더구나 사람이겠는가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하다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말하리라 나는 말세(末世)인 후오백세(後五百歲)에 태어났다 그 때문에 사람의 근기(根機)가 천박(淺薄)하여 의혹(疑惑)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 다시 이견(異見)의 삿된 이해(理解)로 각각(各各)이 고집(固執)이 동일(同一)하지 않아 서로 번갈아 유인(誘引)하며 올바르게 실천(實踐)하는 사람들이 혹란(惑亂)을 당(當)하게함으로 상심(傷心)한 감회(感懷)가 회포(懷抱)에 가득하다 이 때문에 저 선교(禪敎)정토(淨土)의 모든 문장(文章)과 모든 경권(經卷)에서 극(極)히 심오(深奧)하고 지극(至極)히 중요(重要)한 의미(意味)만을 취(取)하여 이 말을 짓는다

 

유(類)로써 편차(編次)를 이루고 세간(世間)에 유포(流布)하여 삿됨을 배척(排斥)하고 정도(正道)를 나타낸다 널리 원(願)하는 것은 법계(法界)의 중생(衆生)들이 이 설법(說法)가운데에서 한번보고 이해(理解)하여 진실(眞實)한 마음을 깨우쳤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의보(依報)정보(正報)가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알며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의 의보(依報)정보(正報)가 본성(本性)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통달(通達)해야 한다 함식(含識)이라면 모두 동일(同一)하게 왕생(往生)하여 그 계위(階位)에 깊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다시 선각(先覺)들은 자비(慈悲)에 인색(吝嗇)하지 말고 깨닫지 못한 사람을 보거든 법(法)답게 교도(敎導)하라 목전(目前)의 사람이 혼매(昏昧)하거든 근기(根機)에 따라 병(病)에 응(應)하며 그윽하고 은미(隱微)함을 분석(分析)하여 선설(宣說)할 것이다.


저가만일 일념(一念)에 신해(信解)하여 행원(行願)을 반듯이 성취(成就)하고 왕생(往生)을 기약(期約)한다면 공덕(功德)은 칭찬(稱讚)하거나 기술(記述)하지도 못한다 이보(異報)의 뇌고(牢固)로 하여 신락(信樂)함이 깊지 못하여도 한 구절(句節)만이라도 정신(情神)에 물이들면 인연(因緣)의 종자(種子)가 성취(成就)되어 더욱 더 이익(利益)한 것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리니 발심(發心)을 권(勸)한 공덕(功德)이 위대(偉大)하다 하지 않겠는가

가령(假令)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하여 자기(自己)의 마음을 스승으로 하지 않고 속이거나 허망(虛妄)하지 아니하게 이 정교(正敎)를 따라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하자 비록 자신(自身)은 수행(修行)하지 않았다 해도 이미 실천(實踐)한 것이며 자신(自身)은 배우지 않았다 해도 바로 배운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인가


법계(法界)는 한 모양(模樣)으로 자타(自他)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의 어떤 사람은 자신(自身)은 일생(一生)동안 수행(修行)하지 않았었다 다만 두 차례(次例)에 걸쳐 자기(自己)의 소유(所有)를 모두 기울여 평등(平等)한 마음으로 염불회상(念佛會上)을 건립(建立)하고 사람들에게 같이 염불(念佛)하자고 권(勸)하였을 뿐이다 그 때문에 임종(臨終)할 때에 왕생(往生)을 성취(成就)했다고 한다 그 사건(事件)은 밝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알지라 자비(慈悲)로운 마음을 발(發)하여 섭수(攝受)의 모양(模樣)을 보이고 저 사람들을 이익(利益)되게 고자 염불(念佛)을 권(勸)하는 사람은 소득(所得)이 홍다(弘多)하여 무상법왕(無上法王)<아미타불(阿彌陀佛)>의 사신(使臣)이 되는 것이다


다만 자기(自己)를 고집(固執)하여 단정(斷定)코 수행(修行)을 필요(必要)로

하지는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 때문에 염불삼매(念佛三昧)의 매우 심오(深奧)한 법문(法門)은 바다와도 같다 이익(利益)을 나타내는 일을 어떻게 다 말하겠는가 부족(不足)하나마 들은 것을 기록(記錄)하여 세상(世上)의 권발(勸發)을 삼을 뿐이다.


*분다리화: 백색(白色)의 연꽃을 말함 아뇩달지 <팔공덕수(八功德水)연못>에서 피며 인간(人間)세상(世上)에서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