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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5. 중각보왕삼매염불직지

제십육(第十六)양불하화지력(揚佛下化之力)

제십육(第十六)양불하화지력(揚佛下化之力)

부처님께서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시는 힘을 칭양(稱揚)함

 

이상(以上)에서 기술(記述)한 가지가지 방편(方便)은 중생(衆生)들이 마음을 발기(勃起)하고 진행(進行)하여 위로 부처님의 지혜(智慧)를 구(求)하는 마음이라 그러나 우리 세존(世尊)여래(如來)부처님 박가범(薄伽梵)께서 아래로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시는 원력(願力)의 가지가지 방편(方便)이 이르지 아니하는바가 없어 중생(衆生)들이 위로 보리(菩提)를 구(求)하는 마음보다 백천만(百千萬)배(倍)나 더하여 도저히 비유(譬喩)할 수가 없음을 깨달아 알지못한 것이다


경(經)에서 말씀하신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자비(慈悲)광명(光明)은 법계(法界)를 널리 두루 비추어서 중생(衆生)들을 고루게 덮어주시고 크게 구호(救護)함이 되어 주시여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아니하게 하신다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자비(慈悲)원력(願力)은 법계(法界)에 두루 하여 중생(衆生)들을 제접(諸接)하시며 대섭수(大攝受)가 되시여 빠뜨리지 않게 하신다 이러한 까닭으로 시방(十方)세계(世界)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두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섭지(攝持)되는 것이 마치 자모(慈母)가 어린아이를 사랑스럽게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며 염려(念慮)하는 생각을 잃치 않는 것과 같음이라


부모(父母)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한 세상(世上)에 그치여 이에 과보(果報)가 다하면 문득 쉬게 되지만 자비(慈悲)한 부처님이 중생(衆生)들을 생각하시여 염려(念慮)하시는 것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버려 여이지 아니 하신다 이러한 의미(意味)가 있음으로 우리부처님의 대원력(大願力)가운데에서 그 명호(名號)를 한번만이라도 칭양(稱揚)할 수 있다면 팔십억겁(八十億劫) 생사중죄(生死重罪)를 한꺼번에 능(能)히 소멸(消滅)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처럼 실(實)로 뜻이 심오(深奧)하다 하겠다.


대개(大蓋)우리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원력(願力)은 항상(恒常)세간(世間)에계시면서 중생(衆生)들을 구호(救護)하심이니 중생(衆生)들이 능(能)히 사념(思念)만한다면 어찌하여 왜 신속(迅速)히 감응(感應)하지 않으시겠는가

비유(譬喩)하자면 저 자모(慈母)가 물이나 불속의 환란(患亂)에서 어린 자식(子息)을 구(求)하는 것과도 같음이라

어찌 어린 자식(子息)이 구(求)해 주기를 기다리겠는가 만은 어린 자식(子息)이 구(求)해주십시오 라고 애원(哀願)한다면 어머니는 반듯이 애민(哀愍)히 하는 마음이 곱절이나 배가(倍加)됨이라 오직 저가 역겁(歷劫)도록 도주(逃走)하여 스스로 퇴실(退失)함을 달게 여기며 구원(救援)을 받아들이 않았기 때문에 실(實)로 구제(救濟)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저가 오역죄(五逆罪)를 완전(完全)하게 짓고 십악(十惡)이 마음속에 가득 찼으며 허망(虛妄)한말로 훼방(毁謗)하고 헛된 속임수로 설법(說法)하여 짓지 아니한 죄업(罪業)가없었다 이리하여 임종(臨終)할 때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지게 되어 악도(惡道)의 형상(形狀)이 나타나서 지옥(地獄)에 반듯이 들어 갈 사람이라도 만약 선지식(善知識)이 염불(念佛)하도록 하는 가르침을 만나 이를 행(行)하였다고 하자 이 사람은 괴로움 때문에 일념(一念)에 뉘우치고 그 명호(名號)를 열 번만 부를 수 있어도 지옥(地獄)의 모양(模樣)이 정토(淨土)로 변(變)하여 왕생(往生)을 성취(成就)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관행(觀行)으로 장엄(莊嚴)하고 지은 죄업(罪業)을 먼저 씻어 버린 사람이라면 왜 감응(感應) 하지 않겠는가 비유(譬喩)를 해보자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호랑이를 만나 호랑이가 두려워 나무위로 올라갔다가 이로 인(因)하여 실성(失聲)을 했다 그 때문에 겨우 나무 불(佛) 이라고 세 글자를 부르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歲月)이 흐른 후(後)에 석가(釋迦)를 만나 도(道)를 얻은것과 같다 더구나 저가 명(命)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괴로움에 핍박(逼迫)되어 맹렬(猛烈)하게 십념(十念)을 가다듬는다면 감응(感應)이 왜 나타나지 않겠는가.


질문(質問)함이라 저는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원력(願力)이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관찰(觀察)해보니 지옥(地獄)으로 들어가려는 사람과 생명(生命)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만 구제(救濟)할뿐 이미 들어간 사람은 구제(救濟)하지 않듯 함니다 구제(救濟)하지 않는다면 아미타(阿彌陀) 부처님이나 모든 부처님의 원력(願力)도 두루 하지 못한 처소(處所)가 있다고 알아야 할런지요.


대답(對答)함이라 그대는 듣지 못 하였는가

모든 법(法)의 발생(發生)은 오직 유심(唯心)의 나타난 것일 뿐 일체(一切)의 인과(因果)와 세계(世界)의 미진(微塵)도 마음을 인(因)하여 자체(自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든 법(法)도 오히려 중생(衆生)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음을 알았다면 아미타(阿彌陀)의 본체(本體)를 떠나 원력(願力)이 두루하지 못한 곳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존재(存在)하겠는가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지옥(地獄)에 들어간 사람이 장구(長久)한 겁(劫)에 고통(苦痛)을 받을까요 구호(救護)해주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답(對答)함이라 

그대는 지금 시장(市場)의 도살장(屠殺場) 안을 관찰(觀察)해야 한다 생물(生物)을 모아놓고 밤낮으로 살생(殺生)을 계속(繼續)하여 쉬지 않아지만 이에 그 살생(殺生)함을 제지(制止)하였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리라 살생(殺生)의 인(因)을 제지(制止)하지 못하였다면 지옥(地獄)의 과보(果報)또한 구제(救濟)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살생(殺生)은 저들에게 있고 과보(果報)는 나에게 있다 다만 인과(因果)는 도망(逃亡)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원력(願力)이 두루하지 못하여 지옥(地獄)에서 구호(救護)하고자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비유(譬喩)하면 어떤 사람이 경(經)의 의미(意味)를 약간 깨달아서 부처님의 오묘(奧妙)한 마음에 합(合)한 것과도 같다


그러나 몸으로 짓는 세가지 업(業)과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業)등의 악(惡)은 숙습(宿習)이 계승(繼承)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소멸(消滅)하여 제거(除去)하지 못하였다 소멸(消滅)하여 제거(除去)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목숨이 끝날 때에 착한 벗이 염불(念佛)하도록 권(勸)하는것을 만나지 못함으로 인(因)하여 지옥(地獄)으로 곧 바로 들어가서 지옥(地獄)가운데서 한량(限量)없는 괴로움을 받았다 비록 모든 괴로움을 받기해도 착한 인(因)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괴로운 일을 밝게 살피고 경계(境界)에 부딪히는데도 마음으로 그것을 깨달아 알았다


이에 마음으로 깨달아 알았고 중생(衆生)과 부처가 일체(一切)라는 것도 알았으며 일체(一切)이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여래(如來)의 청정(淸淨) 미묘(微妙)한 마음이라는 것도 알았다 중생(衆生)과 부처가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고통(苦痛)을 받을 때 모두 꿈속의 일과 같아 저 괴로움의 모양(模樣)이 바로 보리(菩提)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마음이 순숙(純熟)하여 착오(錯誤)가 없어기 때문이다


또 다겁(多劫)동안 지옥(地獄)에서 받을 극고(極苦)의 과보(果報)를 재촉하여 일시(一時)에 가볍게 받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여기에서 뭇 여러가지 고통(苦痛)을 받는다 해도 괴로움의 모양(模樣)이 없다는 것을 얻고 반대(反對)로 대신(代身)받을 괴로운 마음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몸이 벗어나기를 구(求)하지 않는데 이는 오묘(奧妙)한 이해(理解)로써 부처님의 마음과 합(合)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날 공양(供養)했던 부처님이나 내지(乃至)는 명호(名號)와 형상(形像)에 귀의(歸依)하여 공경(恭敬)한 부처님 및 경전(經典)중에서 신해(信解)했던 부처님 혹(或)은 사념(思念)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근기(根機)에 감응(感應)하여 서로 투합(投合)했던 부처님이계셨다


저 부처님들은 반듯이 자신(自身)이 이해(理解)하고 신(信)했든 경계(境界)와 같이 다시 이같이 광대(廣大)하여 허공(虛空)의 한계(限界)가 무량(無量)함과 같은 위덕(威德)을 나타내신다.

자비(慈悲)의 광명(光明)이 치성(熾盛)한 부처님은 상호(相好)신통(神通)이 외외혁혁(巍巍赫赫)하게도 저 지옥(地獄) 최정상(最頂上)에 도달(到達)하시여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을 퉁기시는 사이에 자비(慈悲)로운 음성(音聲)으로 고칙(告勅)하신다 그 지체(支體)에서는 자비의 큰 광명(光明)을 놓으시며 그 음성(音聲)은 광명(光明)을 따라 지옥(地獄)연원(淵源)의 밑바닥까지 곧 바로 이르신다 그 지옥(地獄)에 소유(所有)한 ▪철성(鐵城)▪ 철문(鐵門) ▪철망(鐵網) ▪동주(銅柱)와 내지(乃至)는 ▪도산지옥(刀山地獄)▪ 검수지옥(劍樹地獄)▪확탕지옥(鑊湯地獄) ▪노탄지옥(鑪炭地獄)의 일체(一切)괴로움의 도구(道具)에 이르기까지 자비(慈悲)한 광명(光明)의 비추어줌을 받는 것은 모조리 꺽이고 파괴(破壞)되어 희열(喜悅)하지 않는 곳이 없다 마치 그림자나 바람처럼 끝내 종적(蹤迹)이 없다



또 일체(一切)우두마면(牛頭馬面)의 귀리(鬼吏)옥졸(獄卒)과 동구(銅狗) 철응(鐵鷹)철사(鐵蛇) 철추(鐵嘴)인 모든 충조(虫鳥)들이 광명(光明)의 비춤을 받기 때문에 마치 보살상(菩薩像)처럼 자애(慈愛)롭게 여기며 애념(哀念)하게 된다 고통(苦痛)을 받는 지옥(地獄)의 괴로운 죄수(罪囚)들도 홀연(忽然)히 본심(本心)을 성취(成就)하고 착한 생각을 증익(增益)하며 저 광명(光明)을 보고 고칙(告勅)을 들으면 깊이 우물 밑에서 은하수(銀河水)를 바라보듯 눈을 들어 부처님의 수승(殊勝)하게 뛰어나신 자마금색(紫磨金色) 염부단금(閻浮檀金)이신 몸을 우르러본다


그리고는 환희(歡喜)하여 용약(踊躍)하며 두면(頭面)으로 정례(頂禮)하고 허물을 뉘우치며 자책(自責)한다 같이 고통(苦痛)받는 사람들이 보리(菩提)의 마음을 함께 발(發)하고 광명(光明)을 따라 부처님의 처소(處所)에 곧 바로올라가면 부처님은 이마를 어루만지며 수기(授記)를 내린신다 부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예배(禮拜)하며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청문(聽聞)하고 오도(悟道)를 생각하면 즉시(卽時) 날으는<비상(飛上)하는> 유희(遊戱)의 신통(神通)으로 청정(淸淨)한 부처님국토<佛國土>에 왕생(往生)하여 부처님이 상주(常住)하시는 처소(處所)와 동일(同一)하게 된다.


대보살(大菩薩)이 무상도(無上道)를 성취(成就)하여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시는 것은 가(可)히 극치(極致)를 다하기 어려운것 과도 같은 것이다.

질문(質問)함이라

만일 인과(因果)를 따른다면 부처님의 광명(光明)도 수승(殊勝)하게 이해(理解)한 사람만을 비추어서 벗어나게 하고 여러 죄수(罪囚)들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해야 함께 한가지로 동시(同時)에 벗어날까요

대답(對答)함이라

비유(譬喩)하건데 어떤 한명의 악역(惡逆)한 사람이 관청(官廳)의 재앙(災殃)에 걸려든 것과 같음이라 감옥(監獄)에 들어가는 때에 한 가지 악(惡)이 인(因)<씨앗>이 되어 뭇 여러가지 악(惡)이 함께 발생(發生)한다

이렇게 되면 반듯이 전전(展轉)히 처자(妻子) 부모(父母) 친척(親戚) 아는 사람 등에게도 연좌(連坐)되어 동등(同等)하게 고과(苦果)를 받는다.


선행(善行)을 한사람이 지옥(地獄)을 벗어날 때도 이와같음이라 어찌 같이 고통(苦痛)받는 사람들이 더더욱 착한 마음을 내어 모두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받들고 즐거운 처소(處所)에 왕생(往生)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다면 우리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원력(願力)이 일체(一切)의 시간(時間)과 처소(處所)에 두루 하신 것이다 왜 특별(特別)하게 지옥(地獄)에 들어간 중생(衆生)이라고 해서 구호(救護)하지 않으시겠는가

만일 지옥(地獄)의 과보(果報)가 다하지 않았는데 먼저 벗어나고자 하고 지옥(地獄)의 인(因)이 착함이 없는데 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내려 비추게 하고자 한다면 될 수가 있겠는가 다시 저로써 자기(自己)를 반성(反省)한다면 왜 스스로 뉘우쳐 참회(懺悔)하지 않겠는가


질문(질문)함이라

가령(假令) 지옥(地獄)의 과보(果報)가 다 할 때를 기다려 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비춘다면 나는 반듯이 과보(果報)가 다하여야만 스스로 벗어나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비추기를 기다리겠습니까

대답(對答)함이라

만일 부처님의 광명(光明)이 아니라면 과보(果報)가 다하여 벗어난다 해도 삼악도(三惡道)의 어디에 태어나야 할지를 모른다 이렇게 되면 반듯이 각각(各各)자중(自重)하기를 지극(至極)히 보잘 것 없이 하여 전전(展轉)히 다겁(多劫)다무량겁(多無量劫)부사의겁(不思議劫)을 지나야만 바야흐로 사람 가운데 이른다 그래도 빈궁(貧窮)하고 하천(下賤)하여 추악(醜惡)한 많은 병(病)으로 모든 괴로움을 받게 된다

 

또 구(求)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 때문에 악(惡)한 생각이 더욱더 심(甚)해진다 만일 조그만한 착함도 없다면 다시 지옥(地獄)으로 떨어져 마치 맹인(盲人)이 가시덤불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리라 무엇을 따라서 벗어나겠는가.

가령(假令) 부처님의 광명(光明)으로 내려 비추시는 위력(威力)을 받는다면  무거운 것은 점점(漸漸)이 가볍게 받으며 긴 것은 점점(漸漸)이 짧게 받으며

많은 것은 점점(漸漸)이 적게 받는다

또 한번 지옥(地獄)에서 벗어나면 불국토(佛國土)에 바로 왕생(往生)하거늘 어찌 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비추시는 것을 구(求)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가 이런 견해(見解)를 갖는다면 크게 무거운 죄(罪)를 얻게 되리라.

경(經)에는 말하기를 만약 대천세계(大千世界)속에 가득한 불이라도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만 생각하면 바로 무사(無事)히 지날 수 있음을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다 더구나 한 몸의 불을 소멸(消滅)하지 못하겠는가하였는데 곧 이와 같은 의미(意味)다 또 말하기를 아미타여래박가범<阿彌陀如來薄伽梵)>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격렬(激烈)하고 간절(懇切)하시다


내지(乃至)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의 불기둥 속에서도 모든 중생(衆生)을 대신(代身)하여 모든 고뇌(苦惱)를 받으며 방편(方便)으로 구제(救濟)하시어 안양국(安養國)에 왕생(往生)하게 하신다고 하셨거니와 더구나 아직 떨어지지 않은 사람을 구호(救護)하지 않으시겠는가 또 말하기를 저 부처님의 자비(慈悲)의 힘은 세간(世間)일체중생(一切衆生)을 두루 덮어신다

저 부처님의 몸을 칼로 찍거나 향(香)을 바르거나에 관계(關係)없이 자비(慈悲)의 힘 때문에 두 가지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다 거두어 섭수(攝受)하신다하였다 이 때문에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원력(願力)이 중생(衆生)을 하화(下化)하는 적극적(積極的)이고 간절(懇切)한 마음은 자비(慈悲)에서도 볼 수있는 것이다


더구나 갖가지 형체(形體)의 몸으로 중생(衆生)과 동일(同一)하게 모든 시간(時間)과 장소(場所)에서 교화(敎化)의 불사(佛事)를 지으심이겠는가 실(實)로 헤아리기 어렵다 만일 진실(眞實)하게 믿지 않는다면 법(法)을 아는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혹(或)은 중생(衆生)의 전체(全體)가 부처라 하나 잘 모르겠다 누가 구(求)하는 사람이고 누가 구제(救濟)를 받는 사람인지를 하고 말한다면 그를 향(向)하여 -그대는 아직 깨달음이 부족(不足)한 사람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