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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5. 중각보왕삼매염불직지

제십사(第十四)별명객도소수삼매 (別明客途所修三昧)

제십사(第十四)별명객도소수삼매 (別明客途所修三昧)

객(客)으로 만행(萬行)하여 다니는 도정(道程)에서 닦아 수행(修行)하여야할 삼매(三昧)를 별도(別途)로 규명(糾明)함


도장(道場)을 이미 갖추어 구비(具備)하고 진열(陳列)하기를 마쳐 낱낱이 의식(儀式)답지 않은 것이 없다면 어찌하여 시절(時節)을 부질없이 지내겠는가 당연(當然)히 가르침을 의지(依支)하여 관혜(觀慧)로써 운행(運行)하고 오묘(奧妙)한 경계(境界)로써 이해(理解)하여 이 뛰어난 마음을 계승(繼承)하고 조작(造作)이없는 행(行)을 수립(竪立)하여 나가면 생사(生死)의 바다가 반듯이 마르고 정토(淨土)에 반듯이 왕생(往生)하리라 때에 어떤 객(客)이 앉자 있었는데 화기(和氣)로운 용모(容貌)는 자여(自如)하고 단아(端雅)하고 장중(莊重)하여 안으로는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模襲)은 온축(蘊蓄)한듯하였다


홀연(忽然)히 일어나서 예배(禮拜)하더니 질문(質問)하였다

지금의 스님 모습(模襲)을 관찰(觀察)하니 마음을 운전(運轉)함이 광대(廣大)하며 심천(深淺)을<깊고 옅음을> 모두 해탈(解脫)하였음을 곧 알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도장(道場)을 건립(建立)하고 공사(供事)를 구비(具備)하여 편안(便安)한 마음으로 적멸(寂滅)에 처(處)해야만 바야흐로 수행(修行)을 발기(發起)한다 말씀 하시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境遇)로는 후배(後輩)로 태어나서 근기(根機)가 우둔(愚鈍)하고 견문(見聞)이 천박(淺薄)함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강호(江湖)와 바닷가를 비틀거리고 유랑(流浪)하면서 국경(國境)이나 성읍(城邑)을 두루 유력(遊歷)하였습니다 혹(或)은 떠나고 혹(或)은 오면서 고요함에 처(處)하여 공부함에 진력(盡力)하고자 했음이나 노력(勞力)하고 힘써도 성취(成就)하지 못한다는 것을 헤아려 인지(認知)하였습니다.

가령 여행(旅行)하는 도중(途中)에 도장(道場)을 빌리지 아니하고 육시(六時)로 도(道)를 행(行)하며 삼업(三業)이 이지러 괴리(乖異)함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문(呪文)과 경전(經典)을 지송(持誦)하고 명호(名號)를 칭송(稱誦)하고 예참(禮懺)을 낱낱이 의식(儀式)답게 행(行)하여 안양(安養)나라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기약(期約)하는 것이 도량의 공행(功行) 과 동일(同一)하다면 저희들은 받들어 시행(施行)하겠습니다


크신 자비(慈悲)로 아직 듣지 못한것을 계적(啓迪)하시여 시작(始作)하고 마침의 방편(方便)을 자세(仔細)하게 드리워 주십시오.

대답(對答)하노니 위대(偉大)하다 질문(質問)함이여

세상(世上)사람들이 삼매(三昧)를 수행(修行)하고자한다면 반듯이 필요(必要)한 백(百)가지 일을 구족(具足)히 한 연후(然後)에 수행(修行)을 시작(始作)해야 한다 말한다 지금 그대의 뜻은 그 류(類)들의 견해(見解)에서 뛰어났다 말할만하다 이 질문(質問)이 아니었다면 내가 온축(蘊蓄)한 것을 발명(發明)하여 나머지 근기(根機)를 두루 모두 덮게 하지는 못하였으리라

대채로 성인(聖人)이 드리우신 가르침은 일미(一味)의 비에 삼초(三草) 이목(二木) 이 각각(各各)이 영화(榮華)롭게 피어나는 것과도 같음이라 하물며 더군다나 염불삼매(念佛三昧)는 군기(群機)를 널리 섭취(攝取)하여 포섭(包攝)하였다

 


그대가 결정(決定)코 정토(淨土)왕생(往生)을 추구(追求)한다면 사위의(四威儀)가 모두 도(道)의 오묘(奧妙)한 작용(作用)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어찌하여 특별(特別)하게 객(客)으로 다니는 길이 방해(妨害)롭겠는가 그대가 여기에 나아가 수행(修行)을 수립(竪立)하고 자(者)하는 사람이라면 최초(最初)에 속이지 아니하는 깨끗한 마음을 먼저 세워야한다

덕(德)을 간직하면 아름다움이 밖으로 노출(露出)되는데 광채(光彩)를 뽐내어 자랑하지 말 것이라. 처음 시작(始作)으로부터 문득 내외(內外)가 안온(安穩)하고 마땅하게 행(行)하며 다음으로는 모든 외연(外緣)을 놓아버리고 만(萬)가지 일을 방하착(放下着)해야 함이라


미리 정토(淨土)의 경전(經典) 주문(呪文) 오회(五悔) 참법(懺法)을 익숙하게 독송(讀誦)하고 극(極)히 날카롭게 달통(達通)해야 한다.

또한 실천(實踐)할 위의(威儀)를 수습(修習)하여 반듯이 단아(端雅)장중(莊重)하기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하며 진정(眞正)한 신심(信心)을 발기(發起)하며 대비(大悲)의 지혜(智慧)를 운행(運行)하여 두루 중생(衆生)들을 이익(利益)하게하고 예토(穢土)와 정토(淨土)의 ▪청정(淸淨)함 ▪더러움 ▪괴로움 ▪즐거움의▪ 두 가지 과보(果報)를 이치(理致)와같이 관찰(觀察)하여 성찰(省察)하여 진실(眞實)하게 싫어하고 기뻐해야 함이라


여기에서 수행(修行)을 시작(始作)하면 이미 객(客)으로 다니는 길에 거처(居處)가 한결같지 않다 해도 구름과 같고 물과 같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하리라

그러함으로 장엄(莊嚴)한 도량이 반듯이 필요(必要)한 것이 아님이라

다만 한결 같이 청정(淸淨)한 몸과 마음으로 분수(分數)를 따라 깨끗하고 훌륭한 의복(衣服)을 입고 육재일(六齋日)에 혹 어느 처소(處所)에 객(客)으로 있든지 조그만한 향화(香花)의 공양(供養) 이라도 갖추어서 삼보(三寶)에 공양(供養)하고 보시(布施)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표시(表示)하도록 함이라

 

삼보(三寶)의 앞에서 크게 무름을 끓고 이마를 조아리며 광대(廣大)한 원력(願力)을 세우며 불퇴전(不退轉)을 맹서(盟誓)할 것이며 현재(現在)의 처소(處所)나 다시 태어나는 세상(世上)에서도 이것으로 귀의(歸依)하고 다시는 중도(中途)에서 후회(後悔)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한다 비록 도량의 장엄(莊嚴)함은 없다할지라도 이날로써 시초(始初)를 삼고 형체(形體)와 수명(壽命)이다하도록 매일(每日)같이 육시(六時)에 이 법(法)으로 수행(修行)하며 향(香)등불 의 유무(有無)는 굳이 필요(必要)로 하지말지라


질문(質問)함이라 삼매(三昧)는 꼭 일심(一心)으로 해야 함니다만 인사(人事)는 만(萬)가지 단서(端緖)가있음이라 어떻게 수행(修行)해야만 불사(佛事)와 세사(世事)가 서로 방해(妨害)하지 아니함일까요.

대답(對答)함이라 

비유(譬喩)하자면 새를 포획(捕獲)하여 새장에 넣는 것과 같음이라

몸은 새장에 있음이나 마음은 수림(樹林)이 우거진 동산(東山)을 그리워해도

둘 다 방해(妨害)하지 아니함이라 새장은 그 몸만 계박(繫縛)할뿐 저가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매달아 두지  못함이라 일은 몸을 구속(拘束)할뿐 내가 왕생(往生)을 원(願)하는 굳은 뜻마저 구속(拘束)할 수 없음이라 소위(所謂) 삼계(三界)는 새장과 같고 이 몸뚱이는 새와 같다는 것이다 벗어나기를 추구(追求)함에 원왕(願王)이 되며 원림(園林)은 이에 정토(淨土)가됨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알지라


허망(虛妄)함으로 반연(攀緣)하는 만(萬)가지 단서(端緖)가 진실(眞實)한 마음을 방해(妨害)하지 아니함을 깨달아 알아야 함이라 어찌 하물며 객(客)중(中)에서 다른 일로 하여 약간의 번뇌(煩惱)로움이겠는가 자신(自身)이 저것을 간섭(干涉)하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이 탄연(坦然)하여 진수(進修)하기에 좋으리라 질문(質問)함이라

법문(法門)의 차제(次第)를 다시 자세(仔細)하게 하여 정진(精進)하여 수행(修行)하는 사람이 일에 임(臨)하여 의혹(疑惑)함이 없도록 하시기를 원(願)합니다 대답(對答)함이라


낮으로 삼시(三時)에 밤으로 삼시분(三時分)을 어기지 않도록 하라 이것이 차제(次第)라 이제 객중(客中)으로 있으면서 그날의 초시(初時)에 도달(到達)하여 가령(假令) 불상(佛像)이 계시는 처소(處所)이거나 혹(或)은 스스로 불상(佛像)을 몸에 모시고 다닌다면 의당(宜當)히 입으로 염송(念誦)하고 몸으로 예배(禮拜)해야한다 혹(或)은 마음속으로 묵묵(黙黙)히 염송(念誦)하고 몸으로는 예배(禮拜)하며 불상(佛像)을 마주하고 수행(修行)하여도 된다.

가령(假令) 불상(佛像)은 없고 혹(或)은 경권(經卷)만 대(對)하며 서(西)쪽을 향(向)하여 멀리 예배(禮拜)하거나 혹(或)은 동향(東向)만 제외(除外)하고 방향(方向)을 따라 예배(禮拜)를 수행(修行)하여 닦을 경우(境遇)라도 당연(當然)히 도장(道場)의 의식(儀式)처럼 구비(具備)하게 해야 함이라


이에 시간(時間)이 길을 가는 도중(途中)이거나 배를 탔거나 부득(不得)이 일체(一切)몸의 동용(動用)의 일을 다스리며 제쳐 두지 못할 경우(境遇)에 해당(該當)하면 불사(佛事)와 세사(世事)를 함께 운행(運行)하여도 무방(無妨)하리라 또 이렇게 생각하라 이 세상(世上)의 일은 본래(本來)몸을 봉양(奉養)하는 것이며 나의 몸이 도(道)를 실천(實踐) 한 공덕(功德) 또한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곧 삼매(三昧)와 더불어 동체(同體)되리라 질문(質問)함이라 저의 마음은 두 가지 작용(作用)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습니다 어떻게 두 가지 일을 동시(同時)에 운행(運行)할까요 대답(對答)함이라 그대는 왜 어찌하여 새장속의 새에 대한 비유(譬喩) 를 듣지 못하였든가 이미 자세(仔細)히 밝혀졌으리라

또 한 마음인데도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고 몸으로는 동작(動作)하고 마음으로는 동작(動作)하고 마음으로는 기억(記憶)하는 것이 서로 방해(妨害)롭지 않아 응용(應用)이 다함이 없다 어찌 두 가지 일에만 그치겠는가.

응용(應用)이 다함이 없음으로 일체(一切)동용(動用)하는데 나아가서 일심(一心)으로 소아미타경(小阿彌陀經) 한 권(卷)이나 혹(或)은 상품(上品)혹은 릉엄경(楞嚴經)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염불원통장(念佛圓通章)을 지송(持誦)하며 미치여 정토주(淨土呪)를 염송(念誦)하되 혹(或)은 세 번 혹(或)은 일곱번 백(百)여번에 이르도록하라


또 아미타(阿彌陀)부처님 명호(名號)칭양(稱揚)하기를 혹(或)은 삼백(三百)번 오백(五百)번 천(千)번 내지(乃至)는 숫자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程度)로 하면서 참회(懺悔)에 들어가서 불사(佛事)를 행(行)하라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칭념(稱念)하기를 회향(迴向)하고나서 참회(懺悔)에 들어가는데 이에 그 예참(禮懺)의 의식(儀式)은 자운(慈雲)스님의 참의(懺儀)에 모두 나와 있다.

일체(一切)를 공경(恭敬)하는 마음으로 차례(次例)로 삼보(三寶)에 예배(禮拜)하고 향(香)을 사르며 부처님을 찬탄(讚嘆)하는 것이다 예불(禮佛)참회(懺悔)가 불상(佛像)을 돌며 귀의(歸依)하는데 이르기까지 모두 그 문의(文義)의 마디가 단락(段落)을 따라 하나 하나 나의 이 몸이 실제(實際)로 정토(淨土)의 부처님 앞을 공경(恭敬)히 마주 하고 있다고 상상(想像)하라


혹(或)은 도장(道場)의 형상(形像)불(佛)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첨례(瞻禮)하고 도는 것을 낱낱이 명료(明瞭)하게 하여 혼란(混亂)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예배(禮拜)가 끝나면 부처님의 백호상(白毫相)을 등(等)을 관(觀)하며 시간(時間)을 헤아렸다가 중지(中止)한다 이때에 앞에서처럼 경(經) 주문(呪文) 불호(佛號)를 염송(念誦)하며 회향(迴向)을 마쳐야 초일분(初日分)의 불사(佛事)가 되는 것이다


이 상상(想像)으로써 예배(禮拜)하는 것이 도장(道場)의 수행법(修行法)과 동일(同一)하나 다만 몸소 예배(禮拜)를 더 하는 것이 상이(相異)할뿐이다 또 그 염송(念誦)하는 음성(音聲)도 사람 사는 경계(境界)의 좋아하고 싫어함을 따라서 조성(造成)해야 하나니 음성(音聲)과 침묵(沈黙) 이 상반(相半)해야 할 경우(境遇)는 가라앉음이 크고 넓으며☛<침대(沈大)>☚ 우아(優雅)함이 묵직하여 ☛<아중(雅重)>☚ 두 어깨 너머 사람들이 은은(隱隱)히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절대(絶對)로 다른 사람과 많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

 

또 일을 시작(始作)하기 이전(已前)에 먼저 부처님 앞에 향(香)을 사루어야 하지만 혹(或)향(香) 이 없을 경우(境遇)에는 손을 따라 잡히는 물건(物件)을 향(香)으로 여기며 우선 흩고 시간(時間)이 이르기까지 상상(想像)으로 운행(運行)해도 된다. 나머지 시간(時間)에는 홀로 앉고 홀로 경행(經行)할 것이며 시끄러움과 사람들 사이의 담론(談論)▪희롱(戱弄)▪비웃음▪찬탄(讚嘆)▪노래▪글씨를 쓰는 등(等)▪ 사람이 정념(正念)을 잃게 하는 온갖 일을 멀리 하도록 한다 이것이 하루 초분(初分)의 불사(佛事)이다 그날의 중분(中分) 후분(後分)과 밤의 삼분(三分)도 또한 그렇게 하는데 이것이 육시(六時) 행법(行法)이다


야반(夜半)에 사람들이 쉬고 경계(境界)가 고요하면 공부(工夫)가 낮과 같이 않다는 것을 생각해야함이니 수행(修行)하는 사람이 생사(生死)의 큰일을 위한다면 어떻게 게으름을 따라 제 마음 되로 수면(睡眠)을 취(取)하겠는가 비록 극(極)한 추위와 더위를 체험(體驗)한다 할지라도 삼가 옷을 벗지를 말라

법복(法服)과 헤아리는 염주(念珠)는 가까운 처소(處所)에 두며 수건과 정수(淨水)는 앉아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 필요(必要)한 물건(物件)이 있으면 모두를 미리 준비(準備)하도록 한다 또한 신근(信根)의 후(厚)하고 박(薄)함을 관찰(觀察)하여 다른 사람을 뇌란(惱亂)하지 말고 사람들이 싫어하게해서도 안된다.


여기에 걸림이 없다면 그 음성(音聲)은 금슬(琴瑟)처럼 화기(和氣)로워 짐이니 미세(微細)하면서 침중(沈重)하고 크면서 유순(柔順)하여 천신(天神)이 기쁜 마음으로 내려와서 보호(保護)하고 귀신(鬼神) 축생(畜生) 이같은 음성(音聲)만을 듣고도 해탈(解脫)함을 얻음이니 이에 그 공부(工夫)가 더욱 깊어짐이라 혹(或)은 선박(船舶)이나 다른 집의 비천(卑賤)한 처소(處所)에 있거든 경계(境界)를 두루 살피고 사람을 살피며 일심(一心)으로 정진(精進)해야 한다 방편(方便)을 완곡(緩曲)하게 굴리며 그 수행(修行)을 극진(極盡)히 하고 절대(絶對)로 그 가운데서 타인(他人)의 허물을 일으키거나 타인(他人)의 죄악(罪惡)을 드러내지 않도록 할 것이며 또 사람의 기쁨을 극진(極盡)히 하거나 사람들의 찬미(讚美)가 집중(執中)되도록 해서도 안된다 시간(時間)과 처소(處所)를 편리(便利)하게 만났다 해도 혹(或)다른 일이나 특이(特異)한 사람이 장애(障礙)하거든 궁벽(窮僻)한 처소(處所)를 택(擇)하여 단정(端正)히 서(西)쪽을 향(向)해 앉도록 하라


합장(合掌)에서부터 소리와 침묵(沈黙)을 복응(服膺)하는 것까지 마땅함을 따라 앞에서 상상(想像)으로 예배(禮拜)하는 것 처럼하며 일 할 때와 다르지 않게 할 것이다 가령(假令)일을 하다가 일이 끝나고 몸이 한가(閑暇)하거든 그 참회(懺悔)의 다소(多少)에 구애(拘礙)됨이 없이 내지(乃至)는 한 구절(句節) 한 번의 예배(禮拜)라도 원만(圓滿)하게 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곧 연음(連音)으로 염송(念誦)하며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 앞에서 몸소 예배(禮拜)를 원만(圓滿)히 하라 또 부처님 앞에서 단정(端整)히 예배(禮拜)할 때 갑자기 다른 황급(遑急)한일이 생겨남에 참회(懺悔)의 다소(多少)에 구애(拘礙)됨이 없이 내지(乃至)는 한 글귀 한 번의 예배(禮拜)라도 원만(圓滿)하게 할 것이며 입참(入懺)을 많이 못했다 해서 거듭 참회(懺悔)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객중(客中)에서 상상(想像)으로 하는 예배(禮拜)는 부득(不得)이 한 경우(境遇)지만 한가(閑暇)한 시간(時間)에 상상(想像)으로 하는 예배(禮拜)라고 하여 이에 그 몸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또 이 상상(想像)의 예배(禮拜)를 일하는 시간(時間)에 덧붙여하고 한가(閑暇)하게 남은 시간(時間)을 헛되게 버려서도 안된다 믿음이 얕은 사람에게 갑자기 수행(修行)을 권(勸)해서도 안되며 깊이 믿는사람이라 해도 가만히 계시(啓示)하여 그가 스스로 뽐내게 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 교화(敎化)한 공덕(功德)을 자기(自己)에게 돌리지 말 것이니 마치 봄이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나 그것을 공(空)으로 여기지 않음과 같이 할 것이다 도장(道場)을 의지(依支)하여 수행(修行)함을 순일(純一)한 가운데서 용이(容易)하게하는 수행(修行)이라하며 객중(客中)을 따라 닦는 것을 역경(逆境)속에서 용이(容易)하게하는 수행(修行)이라한다 역경(逆境)속에서 쉽게 하는 수행(修行)을 순일(純一)한 가운데서 쉽게하는 수행(修行)에 비교(比較)한다면 그 차이(差異)가 천지(天地)가 아득히 먼 정도(程度)일뿐이 아니다 역경(逆境)속에서도 용이(容易)하게하는 수행(修行)이야말로이에 그 공덕(功德)이 현저(顯著)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질문(質問)함이라

이 상상(想像)으로 하는 예배(禮拜)와 몸소하는 예배(禮拜)는 동일(同一)할까요

답변(答辯)함이라

그대는 삼업(三業)에서 의업(意業)이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의 주체(主體)가

된다는 것을 듣지도 못하였는가 주체(主體)가 이미 주의(注意)를 기울여 상상(想像)을 하는데 신업(身業)구업(口業)에 어찌 미치지 못하겠는가 또 참회(懺悔)하는 가운데 사념(思念)으로 운행(運行)하는 향화(香華)에 이몸▪ 마음이▪ 두루 이른다는 지취(旨趣)가 왜 사념(思念)의 상상(想像)일뿐이겠는가 여기에 비례(比例)하면 알리라


그렇다면 마음의 상상(想像)으로만 예배(禮拜)하고 몸과 입은 운행(運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요

대답(對答)함이라

의업(意業)이 승묘(勝妙)하긴 하나 만일 신업(身業)과 구업(口業)까지도 완전(完全)히 할 수 있다면 삼업(三業)을 원만(圓滿)하게 수행하여 닦는 것이다 그 묵묵(黙黙)히 염송(念誦)하는 의미(意味)도 여기에 비례(比例)하면 알리라

또 이 상상(想像)으로 하는 예배(禮拜)의 숫자를 남은 시간(時間)의 예배(禮拜)로 메운다면 그 수행(修行)이 더욱 장(張)하리라


질문(質問)함이라

육시행법(六時行法)을 하는 외(外)에는 어떻게 마음을 쓸까요

대답(對答)함이라

혹(或) 은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관(觀)하며 주문(呪文)과 경전(經典)을 지송(持誦)하고 명호(名號)를 칭양(稱揚)하며 정례(頂禮)하는 등(等)의 행(行)을 염념(念念)에 잃어버리지 않고 기한(期限)을 극복(克復)하여 왕생(往生)하도록 해야한다. 이는 마치 길 가는 사람이 빨리 걸으면 신속(迅速)히 도착(到着)하고 느리게 걸으면 더디게 도착(到着)하는 것과도 같음이니 마땅히 이와같이 용심(用心)해야 한다 만일 수행인의 심력(心力)이 나약(懦弱)하여 육시(六時)의 행법(行法)을 구비(具備)하여 닦아 수행(修行)하지 못할 경우(境遇) 에는 경전(經典)과 제목(題目)만을 정(定)하여 매일(每日)같이 혹(或) 삼오시(三五時)를 행(行)하라 많이 더하는것을 싫어 할 것이 아니나 일시(一時)에 증감(增減)하여 그 수립(竪立)한 행(行)을 변경(變更)해서도 아니된다


질문(質問)함이라

객중삼매(客中三昧)의 말씀은 원융(圓融)하고 차례(次例)가 있어 세간(世間)에서 드물게 들어 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장(道場)에 의지(依支)하여 그렇다면 도장(道場)에 의지(依支)하여 수행(修行)하는 것은 필요(必要)로 하지 않을까요.

답변(答辯)함이라

가령(假令) 사람이 바다에 빠졌다하자 배를 구(求)하다가 얻지 못하고 홀연(忽然)히 횡목(橫木)을 만나 우선 그것을 붙잡고 언덕에 도달(到達)하는 것과 같다 어찌하여 배가 없다하여 이에 그 나무마저 버리고 스스로 죽음을 자초(自招)하겠는가 더구나 객중(客中)에서는 거주(去住)가 주인(主人)에 따라 싫증을 내기도하고 기뻐하기도 하여 거리끼어 방해(妨害)됨이 없음을 얻음이라 가이 공부(工夫)에 진보(進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위와같이 하는 것이 객(客)의 길에서 수행(修行)하여 닦는 객중삼매(客中三昧)이다 이 삼매(三昧)는 경계(境界)도 매우 심오(深奧)하고 공능(功能)도 광대(廣大)하다 부처님의 오묘(奧妙)한 마음에 계합(契合)하여 칭양(稱揚)함이 다함이 없다 사삼매(四三昧)가운데서-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라 명칭(名稱)하며 또는 -수순사위의삼매(隨順四威儀三昧)-라 이름하기도 한다 바로 대근기(大根機)를 덮는 것이며 작은 지혜(智慧)작은 근기(根機)라 해도 분수(分數)를 따라 이익(利益)을 받을 수 있다

이 삼매(三昧)로서 도장(道場)에 비교(比較)한다면 혹(或) 몸소 예배(禮拜)하는 것은 부족(不足)하나마 나머지 의식(儀式)은 동일(同一)하다 그대는 의당(宜當)이 삼매(三昧)로서 정진수지(精進受持)하여 한결같은 뜻으로 서(西)쪽으로 취향(趣向)하여 절대(絶對)로 어정어정 하면서 다시는 생사(生死)에 침체(沈滯)하여 막혀서는 아니된다


위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의 정행(正行)을 삼아야 함이라 나는 요즈음 사람들을 관찰(觀察)해보았다 혹(或)은 이 도(道)에 뜻이 있는 사람도 있음이나 그 쉬운것을 겨우 듣자마자 바로 쉽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증득(證得)하였다고 허망(虛妄)하게 말하는가하면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듣자말자 바로 퇴굴심(退屈心)을 내어 대번에 그 뜻을 다 잃어버린다 믿는 마음이 간절(懇切)한 사람이 있다 해도 사견(邪見)의 무더기를 유입(流入)하여 가만히 서로 전수(傳授)하며 사람을 그르치는 경우(境遇)가많다


그 전수(傳授)하는 법(法)은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심지어는 차마 들어주지 못할 정도(程度)의 것도 있다 모두가 인심(人心)을 그물질하여 스스로 인정(認定)하는 것들로서 비행(非行)이 점점(漸漸)커지면 스승과 제자(弟子)가 함께 그릇쳐 잘못됨에 함몰(陷沒)함이라 어떻게 그대가 올바른 마음으로 하심(下心)하여 질문(質問)하는 간절(懇切)함만 하겠는가


객(客)이 일어나서 예배(禮拜)하며 말하였다

모(某)는 객중(客中)에서 기구(祈求)하게 지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생사(生死)가 덧없고 무상(無常)하다는 생각을 할때마다 부지런히 수행(修行)을 하려했으나 체득(體得)하지 못하였습니다 입과 몸만 봉양(奉養)하는 것을 염려(念慮)했을 뿐 법(法)이 행(行)해지는 도장(道場)에서 수행(修行)을 일으키지 못한 것을 한(恨)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숙생(宿生)의 인연(因緣)으로 다행(多幸)하게도 이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감로수(甘露水)로 머리를 씻음에 청량(淸涼)한 기운(氣運)이 골수(骨髓)까지 사무쳤다 말 할 만합니다. 감(敢)히 뜻을 결단(決斷)하여 수지(受持)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원한(怨恨)이 있다 해도 친(親)하게 여기며 다시는 남은 한(恨)이 없게 하겠습니다.


이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자 무거운 짐을 쉬어 버린 듯 평탄(平坦)하고 자유(自由)롭습니다 원(願)컨대 세세(世世)생생(生生)에 정대수지(頂戴受持)하여 차라리 명근(命根)을 끊을지언정 맹세코 물러나거나 망실(忘失)하지 아니하겠습니다 두루 일체(一切)의 법문(法門)을 모두 요지(了知)하여 한곳에 있거나 객(客)으로 있는 역순(逆順) 가운데서도 도(道)의 작용(作用)이 장애(障礙)함을 받지 않고 동일(同一)한 삼매(三昧)를 이루겠습니다 군생(群生)의 큰 다행(多幸)이라 할 만하며 불교(佛敎)를 배우는 사람의 크나큰 행복(幸福)이라 말할만합니다


여기에서도 수행(修行)이 가능(可能)하다면 온갖 세무(世務)에 치달려 사방(四方)으로 유탕(流蕩)하느라 피로(疲勞)한 삶인 판매(販賣)하는 가게나 ▪시장(市場)▪길가에서하는 장사▪ 백공(百工)의 기예(伎藝)▪ 남자(男子) ▪여자(女子) ▪늙은이▪ 어린이 ▪노비(奴婢)▪ 황문(黃門)의 내시(內侍)▪

다른 사람의 지배(支配)를 받으며 자유(自由)롭지 못한 자(者)나 일체(一切)의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옷을 입고 밥 먹는 어묵동정(語黙動靜) 과 감옥(監獄)에 갇힌 자(者)라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사이에서 수행(修行)하지 못할 때가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더구나 출가(出家)한 사부대중(四部大衆)과 재가(在家)한 사민(四民)으로서 살 곳이 있어 거처(居處)할 만하며 한가(閑暇)하여 수행(修行)하여 닦을 만함이겠읍니까


하고 싶은 것이 모두 갖추어지고 자유(自由)로운 사람이라면 왜 그 수행(修行)에 진수(進修)하지 못하겠습니까

객(客)은 또 말하였다

극락(極樂)은 십만억(十萬億) 불국토(佛國土)를 지나야 할 만큼 멀다고 들었습니다 먼 길만 바라보아도 겁(怯)이 나는데가 왕생(往生)하는 사람들은 일생보처(一生補處)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몸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대답(對答)하여말하였다

저들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시방(十方)의 허공계(虛空界)가 모두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음이 청정(淸淨)하다면 십만(十萬)리(理)가 먼 것이 아니며 마음이 더럽다면 눈과 눈썹 사이도 오히려 먼것이다 마음이의 청정(淸淨)만을 기약(期約)할뿐 무엇 때문에 거리를 계산(計算)하겠는가


가령(假令) 잠깐 잠을 자며 꾸는 꿈속에서 천리(千里)를 가는 것과도 같다 어찌 평상시(平常時)의 시간(時間)에 비교(比較)하겠는가 그러나 이치(理致)도 있고 국토(國土)에도 왕생(往生)이 가능(可能)하나 절대(絶對)로 마음만 청정(淸淨)하면 다시 저 국토(國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을 구(求)하지 않아도 된다 말해서는 안된다

이에 거듭 예배(禮拜)하며 말하였다 공경(恭敬)히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또 말하였다 모(某)가 처음 이 말을 듣고 먼저번에는 듣지 못한 것이었으므로 자기(自己)의 의사(意思)를 따라 그 말을 하셨겠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에야 삼매(三昧)의 명칭(名稱)을 들어니 성전(聖典)으로부터 유래(由來)하여 근기(根機)의 마땅한데 감응(感應)하였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마치 청천(靑天)의 밝은 해와도 같아서 후학(後學)의 훈계(訓戒)가 될만하다하겠습니다 왜 저만을 위해 자세(仔細)히 말씀하십니까 원(願)컨대 붓으로 기록(記錄)하여 영구(永久)히 장래(將來)의 훈계(訓戒)함을 삼았으면 함니다 다시 도장(道場)에서 닦을 시종(始終)의 미세(微細)한 정행(正行)의 법문(法門)도 구비(具備)하여 이 세상(世上)을 이익(利益)되게한다면 다행(多幸)스러움이 더욱 크겠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아름답고 훌륭하다 그대의 의사(意思)가 극진(極盡)함이여 저들에게도 말해주도록 하겠노라 객(客)이 이에 공손(恭遜) 하게 물러났다


그의 이름은 행일(行一)이며 자는 지서(志西)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일찍이 지각선사(智覺禪師)<영명수선사(永明壽禪師)>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을 매우 익숙하게 읽었다하였다---뒤에는 여산(廬山)에 노닐면서 시조(始祖)인 혜원선사(慧遠禪師)의 유적(遺蹟)을 뵙고 인(因)하여 발원(發願)하고 염불(念佛)하였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