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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61

 

 

우리 인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일 것인가를 아는 일입니다. 부처님 법문 가운데에 화엄경』 「문수보살품에 심시보장제일법(心是寶藏第一法)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른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보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이 부족하고 바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행동도 거기에 따라서 바르게 나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무지를 극복하고 바른 믿음이 되어야, 우리 행동도 거기에 따르는 순수하고 거룩한 행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의 근본 성품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 나는 내 근본 성품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우리 중생은, 누구나 다 근본적으로 교양이 있고 많은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성의 순수성과 순수한 성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범부중생의 통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자가 되어야 비로소 참다운 자성(自性)을 압니다. 자성, 이것은 우리 인간성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인간성의 순수한 자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바로 불성(佛性), 이것이 자성입니다. 또는 법 법()자 성품 성()자 법성(法性)이 자성이고 법성이나 우주성(宇宙性)이 자성입니다. 또 요즘 말로 표현하면 우주 생명이나 우주 에너지나 다 같은 말로써 자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자성은 우리 중생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며 깨달은 성자의 분상에서만 알 수 있다고 한다면 굉장히 어렵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래 성품은 중생의 나쁜 버릇 때문에 잠시간 자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지 어느 때 어느 순간이고 우리를 떠나있지 않는 것입니다.

 

불성이나 법성이나 자성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와 떨어져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실존적인 현재 이래로 항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 자성은 금생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세나 현재나 미래나 인간성의 본질인 자성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나지 않고 죽지 않지요. 무시이래(無始以來), 과거에 시작함이 없어놔서 과거도 비롯함이 없어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미래도 끝도 없이 불생불멸로 존재하는 것이 이른바 우리 자성의 인간성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자성은 인간에게는 인간성의 본질이요 본래면목이지만, 다른 동물이나 일반 무생물에는 어떨 것인가?” 이렇게 의문을 갖는 분이 계시겠지요.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인 이 자성은, 사람의 본질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이나, 이 모든 존재의 본질인 동시에 실상(實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기는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또 우리 인간에게서 가장 급박한 것은 우리 자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성을 깨달으면 성자고, 깨닫지 못하면 범부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자성이 비록 이와 같이 소중하고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들을 합니다. 성인들은 업장이 가볍고 업장을 소멸시킨 분들이고, 다른 전생에서 많이 닦아서 금생에 성인이 된 것이지, 쉽게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님들, 우리 인간성 본래 자리인 자성 불성을 깨닫는 것은, 사실은 가장 쉬운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것을 잘못 배우고 잘못 느끼고 잘못된 습관성으로 버릇이 잘못 굳어져버렸단 말입니다. 그것뿐이지, 자성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도 자성은 우리한테서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장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이나 대세지보살이나 보살님들 이름도 많고 부처님 명호도 많습니다. 그 보살님들이나 부처님 명호의 실상이 바로 방금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 자성인 동시에 우주의 본성이란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중생의 그릇 따라서 그때그때 방편으로 취한 말씀이 많기 때문에 같은 뜻인데도 그릇따라 달리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자성불(自性佛) 또는 법성(法性) 또는 실상(實相), 실재(實在), 주인공(主人公) 하나의 도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뜻이 자성(自性)의 뜻과 똑같은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생명 자체가 바로 자성이고 불성이기 때문에,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 우리가 되찾고 깨달아야 할 것이 불성(佛性)인 동시에 자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성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느끼고 있단 말입니다. 가깝기도 하고 지금 내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많은 도인들 가운데서, 특히 조주(趙州)스님 같은 분은 자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추구도 하고 그때그때 공부하는 것은 󰡒마치 소를 탄 사람이 소를 찾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우리 본성이 자성이니까 불성이 자성을 떠나있는 것이 아닌데 잘못 알아서 불성이나 본래면목이 저 피안(彼岸)이나 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고 멀리 구하는 것을 봅니다. 사실은 자성은 바로 불성이고 법성 또 그 자리는 바로 생명 자체기 때문에, 내 생명인 동시에 우주 생명자체입니다. 따라서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나 사실은 똑같은 것입니다. 기독교 바이블에도 먼저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그대에게 주어지리라 하고 마태복음서에서 써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굉장히 소중한 성자의 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밥 먹고 결혼하는 것보다, 가장 먼저 진리를 구하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불경에도 말할 것 없이 바로 자성이 내 성품이고 우주의 성품이고 도리기 때문에, 자성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제일 요긴한 일입니다. 더러는 자성을 구하는 일이 그렇게 소중하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다 물리치고서 자성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것을 염려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일상생활을 무시하고서 자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승화, 장엄시킨 공부가 바로 자성을 구하는 공부입니다.

 

불성자리는 너의 본성인 동시에 나의 본질이고 우주의 본성이고 우주의 근본생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본래 생명이라는 자성자리를 사실은 우리 중생들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근본성품인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에 대해서 부처님은 아주 절묘(絶妙)하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자성 불성이라 하는 것은, 이른바 만공덕(萬功德)의 자리입니다. 지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행복으로 보나, 어떤 자리보다 완벽한 것이 자성 자리입니다. 곧 불성 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나아간 만큼 행복도 지혜도 건강도 훨씬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실은 그대로 부처님 말씀을 옮긴다 해도 그대로 옮기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몇 천분의 일도 옮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 내 자성, 우주의 본성에 있는 공덕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너무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령 자기를 생각할 때 자기 몸뚱이를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우주의 진리 그대로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우리 상식과는 맞지 않는 점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과감히 단호하게 우리의 상식을 버려서 진리에 따라야지 우리 상식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몸뚱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나라고 하면 바로 자기 몸뚱이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뚱이는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성이 아닙니다. 불성이 아닙니다. 분명하게 알으셔야 합니다. 우리 몸뚱이는 인연 따라서 과거생에 우리가 업을 지어서 업대로 금생에 받은 허상이고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사실 이 몸뚱이는 자성에 들지 못합니다. 자성(自性)이나 불성(佛性) 이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영원히 죽지 않는 불생불멸하고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생명자체입니다. 따라서 자성은 비단 나의 자성으로 해서 끝나게 된 것이 아니라 너의 자성이나 우주의 자성이나 우리 자성이나 모두가 하나의 생명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일원적(一元的)으로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이 아닌 이원적 삼원적인 말들은 모두가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일원적(一元的) 진리(眞理)를 아시게 되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나 모든 문제에 있어서도, 마치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뜨거운 화로에다 눈을 넣으면 금세 녹아 버리듯이 녹아서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