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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35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35

 

불교 수행법인 팔정도 가운데 불교의 일체 수행법이 거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팔정도 가운데 가장 허두가 무엇입니까. 정견(正見)이라, 바를 정()자 볼 견()자 바른 견해란 말입니다. 바른 견해는 바른 생각,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관입니다. 바른 견해는 어떤 것인가?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두가 다 허망하다. 다 꿈같고 허망하다이렇게만 보는 것이 소승적인 정견이고, 대승적인 정견은 방금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떠한 것이나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부처란 말입니다.

 

밉게 보는 것은 우리가 번뇌에 가리어 있어서입니다. 특별히 누구만 좋게 보는 것도 역시 번뇌에 가리어 있어서입니다. 평등무차별(平等無差別)이라, 평등하게 보아야 한단 말입니다. 반야심경을 줄줄 외운다 하더라도 미운사람 밉게 보이고 좋은 사람 좋게 보이면 공부는 아직 멀었습니다.

 

반야심경도 모르고 금강경도 모른다 하더라도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로 구성 돼 있다. 천지우주는 바로 부처님뿐이다이렇게 생각해야 대승적인 가치관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때에 누구한테 듣기 싫은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누구한테 미운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염불의 본뜻은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닌 것을 우리가 재확인한단말입니다. 또 한 가지 뜻은 내가 본래 부처인데 잘못 생각해서 지금 중생이 됐는데 내가 부처하고 안 떠나야 하겠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애쓰고 강한 의지로 부처님을 여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는 자기만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을 그대로 볼 수가 있겠습니까. 생명이 원래 나와 남이 둘이 없거나 자기만 집을 두 채나 세 채나 가질 필요가 있습니까.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견(正見)이란 말입니다. 정견, 바른 견해를 가져야 정사유(正思惟), 생각도 바로 나오는 것이고 또는 정어(正語), 바를 정(), 말씀 어()자 말도 바르게 나온단 말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이데올로기가 복잡하고 각 주의사상, 여러 가지 그런 종교관이 다양하게 서로 얽혀 있는 때는 모두를 다 통틀어서 하나의 진리로 나아가는 우리가 그런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걸 보고 불교 용어로 하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때릴 타()자 이룰 성()자 한 일()자 조각 편()자 말입니다. 모두를 갖다가 부수어서 하나로 딱 만들어 버려야 한단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통일원리란 말입니다. 우주를 하나의 진리로 통일을 시켜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돼야 마음의 불안이 가시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분이 불안한 마음이 있으면 그때는 바로 믿고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바른 생활보고 우리는 정명(正命)이라, 우리 몸으로 하는 바른 행동은 정업(正業)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돼야 그때는 바른 정진(精進)이라, 정정진(正精進)이란 말입니다. 정념(正念)이라, 그런 바른 생각을 보다 더 깊이깊이 사무치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해야 정정(正定)이라, 바른 삼매로 마음이 하나로 딱 모아진단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인연 따라서 각 원소가 잠시간 합해져서 세포를 이루어서 우리 몸이 되었습니다. 인연 따라서 각 원소가 산소나 수소나 그런 것들이 잠시간 결합되고 저렇게 운동하고 해서 세포로 해서 이 몸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 몸뚱아리가 일초 전과 일초 후에 같습니까. 어느 순간도 이 몸뚱이가 같을 때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의 고통은 무엇입니까. ‘내 몸뚱아리 내 것이고 가장 소중하다.’, 불교말로 하면 이 몸뚱아리를 보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한테 좋게 하면 탐심(貪心)이 되는 것이고 나한테 싫게 하면 그때는 진심(瞋心)이 된단 말입니다. 탐심을 내고 진심을 내고 그런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면 마음은 더욱 더 어두워집니다. 성자의 길은 훤히 트인 광명으로 가는 것이고 우리 중생은 모두가 지금 어둠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 어둠으로 가는 것인가. 아까 말씀드린바 유병(有病)이라. 허망 무상한 것을 실지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속물근성을 떠나는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단호하게 예수가 간 길, 공자가 간 길, 석가가 간 길을 우리가 더듬어 가야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기의 참다운 생명이 비춰오는 것이고 참다운 행복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우리 본래성품이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진여불성까지 우리가 가야 비로소 참다운 안심입명이 있습니다. 내 생명의 본바탕인 불성까지 못 간다고 생각할 때는 항시 우리는 불안스럽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염불도 하고 주문도 외우고 참선도 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무엇인가이것은 진여불성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의 대명사, 진여불성의 대명사’, 이것이 나무아미타불이고 관세음보살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냥 이름만 불러도 명호불사의(名號不思議). 그 진여불성이라는 그 생명을 바로 표현한 이름이기 때문에 가령 우리가 김아무개 박아무개라고 부르면 그분들 이미지가 떠오르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부처님 이름이기 때문에 그 이름만 불러도 그때는 우리가 진여불성자리의 힘이 우리한테 솟아오른단 말입니다. ‘! 나무아미타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명의 본바탕인 동시에 우주의 본체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우리가 부처님 이름을 외운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한테 오는 기운이 훨씬 더 강한 것입니다.

 

따라서 염불의 본뜻은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닌 것을 우리가 재확인한단말입니다. 또 한 가지 뜻은 내가 본래 부처인데 잘못 생각해서 지금 중생이 됐는데 내가 부처하고 안 떠나야 하겠구나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애쓰고 강한 의지로 부처님을 여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할 때 참선은 상근기인 사람들이 하고 염불은 하근기인 사람들이나 하는 수행이다는 편견을 갖기 쉽습니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염불은 부처가 10만억 국토 밖에 있다가 우리가 애쓰고 기도하면 우리한테 와서 도와준다.’ 이렇게 타력적으로 믿는 염불은 참다운 염불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방편염불인 것이고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고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이다이렇게 생각하고 염불할 때는 그것이 바로 참다운 염불인 동시에 그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본질을 안 떠나야 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뭣고란 화두를 하고 또는 ()’자란 화두를 참구해도 본바탕을 떠나버리면 그때는 참선이 못됩니다. 비록 우리가 이름은 하나님이라고 외우건, 뭐라고 외우건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 마음이 천지 우주의 본바탕을 떠나지 않아야 참선입니다. 이런 도리만은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마음자리가 내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생명의 근본자리에 입각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것이 바로 참선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알으시고 또 한 가지 꼭 명심해 둘 것은 우리 스님네 가운데도 더러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장보살이 따로 있고 또는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고 이와 같이 따로따로 뿔뿔이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보살이름도 하도 많고 또는 부처님 이름도 그렇게 많은 것인데 따로따로 있다고 생각할 때는 불교가 다신교가 돼서 그때는 참다운 불법이 못됩니다.

 

따라서 이것도 역시 오류가 없도록 잘 외워두셔야 할 것은 부처님이 따로따로 뿔뿔이 계시지 않단 말입니다. 천지우주가 하나의 진리인데 어디가 부처님이 따로따로 뿔뿔이 있겠습니까.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그런 부처님이 이분 따로 있고 저분 따로 있다고 생각할 때는 불법을 바로 아는 것이 못됩니다. 다만 진여불성자리는 일체공덕을 다 갖추어 있단 말입니다. 자비도 원만하고 지혜도 원만하고 또는 행복도 원만하게 다 갖추어 있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거기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자비도 많아지고 지혜도 밝아지고 한단 말입니다.

 

우주의 진리인 진여불성을 자비로운 쪽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관세음보살이고 또는 지혜로운 쪽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문수보살이고 또는 우리 중생의 영혼을 저 극락세계나 천상으로 인도하는 그런 쪽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지장보살이고 또는 한 번에 다 몰아서 이른바 총대명사는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인연 닿은 대로 지장보살을 외우나 또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나 상관이 없습니다만 지장보살을 외운다 하더라도 다른 보살하고 차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외운다고 생각할 때는 지장보살의 뜻을 참다웁게 모르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관세음보살 외운다 하더라도 천지우주가 바로 관세음보살이다이렇게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인생과 우주의 모든 생명의 본바탕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습니다. 부처님을 한번 외우면 외운만치 우리의 피는 그냥 맑아옵니다. 나와 남을 구분해서 다른 사람 미워할 때 한번 미워하면 미워한 만치 우리 피는 그냥 오염돼 옵니다. 욕심을 내면 욕심을 내는 순간 거기에 상응되게 그냥 반사적으로 우리 피도 오염돼 옵니다.

 

무엇보다도 바른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른 생각과 우리 건강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부처님 되는 길은 가장 행복스러운 길이고 또는 금생에 못 되면 몇 만생 뒤에라도 꼭 부처가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안 되면 결국은 사람으로 또는 돼지로 몇 천 번 윤회하게 됩니다. 부처가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는 길은 우리 행복과 상응된 정비례의 길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른 견해인 천지우주가 부처뿐이다. 부처는 무한한 행복이나 지혜나 자비를 갖추고 있다이렇게 믿으면서 지금 하시는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도는 화두를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그렇게 하셔서 꼭 금생에 머리카락부터서 발끝까지 충만해 있는 그런 부처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 말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