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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16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 제일 쉬운 문은 부처님을 생명으로, 부처님을 하나의 우주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우주 생명으로 받아들일 때는 내 마음이 어떤 형태가 되든 우리 마음의 본체도 똑같이 바로 우주 생명입니다. 천지 우주가 다 진여 불성이거니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도 부처님은 균등하게 들어 있습니다. 불교의 표현으로 일미평등(一味平等)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마음이나, 어떤 누구 마음이나, 우리한테 잠재해 있는 본래 성품은 다 일미 평등한 불성입니다.

 

따라서 그 자리를 믿는 것이 또한 대승적(大乘的)인 신앙입니다. 모든 존재의 근본을 믿는 것이 대승적인 신앙이고 대승적인 신앙을 가져야 비로소 참선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냥 선방에 들어가서 화두 의심하고 명상하고 염불해야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자리가 근본자리, 본래면목자리에 놓여 있어야 비로소 참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공부하시든지 간에, 화두를 하시든 묵조를 하시든, 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시든지 간에 여러분 마음이 본래 생명의 본체자리인 진여불성에 입각하면 모두 다 참선인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어떤 제한이나 위축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선방에 앉아 애쓰고 가부좌를 틀고 공부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견해인 "일체 존재가 부처 아님이 없다" "내 마음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하고 똑같은 마음이다"라고 확신을 못하면 참선이 아닙니다. 또 같은 염불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면 부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호법선신도 보호하겠지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본래 면목자리에 입각하지 않고 명호만 부르는 것은 염불참선이 못됩니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고 천지 우주가 다 부처님 덩어리다" 이렇게 확신하고 명호를 불러야 염불선이 되고 참된 염불이 되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는다거나 불경을 보면서 공부를 선택할 때 지도하는 스님 또는 선사가 근원적인 문제에다 즉 우주만유의 실상에다가 마음을 두고, 본체를 여의지 않는 공부를 이끌었다면 남을 그릇되게 지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이 높고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분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근원적인 문제, 생명의 실상 자리를 중요시하지 않는 분이라면 자기 공부가 미숙할 뿐만 아니라 남을 잘못 인도하는 이른바'한 소경이 많은 소경'을 이끄는 것 같아서 굉장히 큰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공부하시는 분들은 그 점을 잘 감별을 하셔야 됩니다.

또한 우리들은 참선을 좀 하신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윤회는 일반사람들이나 생각할 일이지 참선하는 사람은 윤회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치로는 부처님 가르침의 윤곽을 알고 진여 불성에 대한 체계를 세웠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우리 존재는 과거의 업에 얽매어 있습니다. 알기는 알아도 아직 미운 놈은 밉고 자기에게 좋게 해준 사람은 좋고 합니다. 이것이 과거 생의 업입니다. 금생에 죽을 때 지어놓은 업을 다 없애지 못하면 중생계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가, 나라는 존재의 업장이 얼마나 무거운가에 대해서 깊이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 얼굴은 모든 자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잘못 살아서 부처님을 닮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겁장엄(百劫莊嚴)이라, 무량세월 동안 남에게 베풀고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서 얻으신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를 보든, 어떠한 경우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부처님 사상대로 부처님 본체를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것을 보나 다 부처님 화신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컨대 집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도 미울 때는 그냥 미워집니다. 진심도 내고 때리기도 하는 등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상에서 보면 좋은 일을 하나 나쁜 일을 하나 다 부처님 화신입니다. 조금도 부처님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애완용 개를 기른다 하더라도 근원 자리에서 보면 역시 부처님 화신으로 봐야 본연대로 본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은 선방이나 절 같은 특정 장소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최선의 생활 방법이 됩니다. 그래야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쌓을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자기 동료, 부하직원도 부처님 화신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상만 보고 성품은 못 봅니다. 본체를 못 봅니다. 본체를 봐야 성불할 것인데 현상만 가지고 좋다 궂다 따지고 시비 분별하면 공부를 성취할 가망이 없습니다. 여러 보살님들께서는 깊이 새겨들으십시오. 지금 우리 중생은 모든 전도몽상을 여의고, 시비분별을 여의셔야 됩니다. 모든 것이 고향을 못 보게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우리로 하여금 전도몽상 속을 헤매이게 만드는 동굴이 됩니다. 우리는 전도몽상이라는 동굴 속에 우리를 가둬 두는 무명에 싸여 있습니다.

 

무명을 떠나 참다운 생명의 고향 자리를 향하셔야 합니다. 우리 생명의 고향 자리가 바로 부처님 자리입니다. 또한 그 고향 자리의 이름이, 생명 자체의 이름이 아미타불입니다. 거꾸로 보고 바로 보지 못하는 전도몽상을 여의고 우리의 고향, 성불의 고향 자리에 빠르게 가는 길이 "아미타불" 염불수행으로 '나무(南無)'를 넣어서 부르시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여러 불자님들께서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우리 생명의 고향에 모두를 바칩시다. 관세음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장보살도 또한 같습니다. 부처님의 공덕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나무아미타불 이름 하나"만으론 표현을 못합니다. 하나의 부처님, 곧 아미타불 부처님뿐인데 아미타불의 공덕에다 또 각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름은 수없이 많아도 부처님은 오직 하나의 부처인 아미타불뿐입니다. 아미타불 이외의 부처님은 아미타불의 별명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공덕 기운이 지구 덩어리에 있으면 지장보살입니다. 산에 있으면 산신(山神), 물에 있으면 용왕(龍王)이란 말입니다. 또 부처님을 자비로운 쪽으로 표현하면 관세음보살, 지혜로운 쪽으로 부처님을 부를 때는 문수보살, 부처님을 원력(願力)으로 표현하면 보현(普賢)보살이라 부르는 것이지 이름(명호)에 따라서 각각 뿔뿔이 따로따로 하나씩 다른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온 우주에 하나인데 이름(명호)만 역할 따라서 여러 부처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부르든지 모두 다 하나의 우주 생명입니다. 이렇게 아시고 부르면 그만큼 우리 마음도 빨리 넓어지고 동시에 부처님이 우리한테 베풀어지는 공덕도 훨씬 큽니다. 부처님의 공덕이 우주에 충만해 있어서 명호를 한번 부르면 부른 만큼 부처님의 가피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지독히 미워하면 그 미운 기운이 미워하는 그 사람한테 가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남을 저주하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 염파(念波)의 파동이 간단 말입니다. 또 그 사람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를 모시면 그 사람한테 그러한 기운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들, 딸들에게 기도를 모시면 일본에 있는 자기 아들한테 그 기운이 가는 것입니다. 기도해 준 대상에게 가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한다면 그런 정성스런 그 기운이 그 사람에게 갑니다. 정성들인 만큼 갑니다.

 

우주는 부처님 기운으로 공간도 없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흠모하고 부처님 이름을 외울 때는, 중단없이 염불을 하면 부처님을 생각하는 공덕이 성장해 옵니다. 차츰 우리 마음에 부처님 기운으로 꽉 차 버리면 성불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부처님 기운이 꽉 차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을 생각하는 염불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됩니다.

 

가거나 오거나 자거나 누울 때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주무시면 자기는 잠자버려서 모르지만 옆 사람이 들으면 잘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공부를 하셔야 잠재의식에 때묻어있는 몹쓸 생각이나 업장을 녹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업장이 무겁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벌써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노릇 하는 것 자체가 허물입니다.

 

허물을 벗기는 가장 쉬운 문이 이행문(易行門) 곧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염불하는 것을 염염상속(念念相續)이라 합니다. 이렇게 하셔서 마음이 통일되고 사무쳐야 업장이 녹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금생에 꼭 윤회를 벗어나 내생까지 안가고 금생에 전도몽상을 벗어나 성불하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