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15

 

 

우리 불자님들 뜻을 굳세게 해서 육조단경이나 달마스님 어록을 보십시오. 우리 마음을 근원적인 데다 두십시오. 화두를 왜 듭니까? 가령 이뭐꼬화두를 든다고 합시다. 끝끝내 이뭐꼬화두를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화두를 빨리 타파하라는 것입니다. 타파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화두를 타파해서 진여불성 자리, 생명의 근원 자리를 우리보고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달마대사 어록을 보면, 우주의 순수 에너지와 내 마음이 본래로 둘이 아닙니다. 이렇게 느끼는 것을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 그럽니다. 안심법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마음이 편안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이 가장 편안하겠습니까? 그것은 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동시에 내 마음의 근원되는 우주의 생명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서, 그것이 둘이 아니고 원래 우주 자체가 모두 다 하나의 생명 뿐이다, 하나의 부처님 뿐이다, 이렇게 알고 느낄 때입니다. 이것이 다시 말해 안심법문입니다. 우리가 기왕이면 가장 고도한 차원의 명상을 해야 할 것인데 가장 고도한 차원의 명상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존재의 실상을 보고서 실상을 그대로 느끼고서 실상을 여의지 않는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천지 우주가 하나의 불성입니다. 진여불성에다 우리 마음을 두어야 비로소 우리 주체성이 확립되는 것입니다. 자기 소외다, 스트레스다, 요즘 별스러운 말로 불안스러운 우리 마음을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마음의 의지처가 확실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을 어디다 붙일 것인가?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데다 우리 마음을 붙인다고 생각할 때는 항시 불안합니다.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것은 결국 다 변하고 마는 것이니까, 그 무상한 허망상대에다 우리 마음을 붙이면 절대로 우리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참다운 명상이 못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불멸의 우주에 존재하는,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 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주체성이 확립되는 것이고, 동시에 그런 공부를 해야 최상의 명상법이 되는 것입니다. 명상을 바로 한다고 할 때는 경안輕安이라, 불교 말로 하면 법희선열法喜禪悅, 법을 닦아 나가면 거기에 따르는 기쁨이 나옵니다. 또 명상을 하다 보면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이 무한 공덕장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서 그 기쁨이 한량없습니다.

 

명상할 때는 기본적인 자세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우리 욕계 중생은 음식 때문에 굉장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저 색계만 올라가도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생사윤회하는 중생만이 음식을 필요로 합니다. 색계나 무색계는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래는 다 부처인데, 음식을 무던히 좋아하니까 색계도 못가고 무색계도 못가고 욕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부처님 법은 그야말로 절묘합니다. 예컨대 모든 계율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명상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절대로 많이 드시지 마십시오.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몸만 무겁고 찌꺼기만 많이 생깁니다. 오래 사는 비결은 책마다 소식하라고 했습니다.

 

부처님 법은 어느 면으로 보나, 즉 계율로 보나 선정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모두 다 성불하는 법입니다. 성불의 3대 강령이 계ㆍ정ㆍ혜 삼학이지 않습니까? 계율 지키고 명상을 깊이하여 참선 염불하고 지혜로써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써 앞으로 깨달아서 증명한다 하더라도, 깨치기 전에 먼저 이치로 알아야 합니다. 이치로 아는 것은 천지 우주와 모든 것이 모두 하나의 생명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이치로 아는 것입니다. 명상해서 우리가 그 자리를 체험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육재일六齋日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누가 육재일 말도 안해요. 육재일이란 것이 원래 8, 14, 15, 23, 29, 30일이라 해서 한 달에 여섯 번 하는 것인데, 육재일 날은 하루에 한 끼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육재일에는 일종식하고 고기도 안 먹고 술도 안 먹어야 됩니다. 부부 생활도 그때만큼은 청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우리 인간생활을 보다 정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인간생활을 영원으로 차근차근 이끌어 가야지요.

 

부처님 법은 우리한테 최상의 행복을 보장하는 가르침이고, 사회적으로 보나 어떤 면으로 보나 최선의 가르침입니다. 그러한데서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지금 모든 철학이 부처님 지혜를 차근차근 따라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바 제법이 공이라는 그 자리까지는 현대과학도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공의 알맹이는 무엇인가? 생명 자체는 무엇인가? 이것을 모른단 말입니다. 이것은 불교 아니면 알 턱이 없습니다.

 

기독교 역시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하늘이라는 것이 당시 하늘 어디엔가 계시는 사람 같은 모양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의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성자의 가르침만이 눈에 안보이는 세계, 눈에 안보이는 생명 자체를 그대로 밝혀 놓았습니다. 그런 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둬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두는 것이 참다운 명상이고 참다운 종교인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외도가 하는 명상이라든가 범부가 하는 명상이나 소승의 명상을 떠나 최상승 명상법으로 닦으셔서, 다시없는, 위없는 경계를 이루시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