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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18

 

 

성불 해탈을 위한 수행정진(修行精進)에는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염불과 참선은 계율을 닦는 불교의 도덕율(道德律)과 더불어 가장 근본적인 수행덕목(修行德目)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수행(修行)들은 따로따로 정진하는 별개의 공부 방법이 아니라 서로 필수적으로 상호보완하여 공부해야만 비로소 위 없는 지혜인 반야바라밀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더러는 말하기를 참선에는 아예 염불이 필요하지 않고, 염불에는 굳이 참선의 도움이 긴요하지 않다고 강변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염불이란 개념 자체가 우리의 본래면목이자 바로 우주 생명자체인 진여불성(眞如佛性)인 부처님을 흠모하고 참구(參究)하는 공부요, 참선이란 모든 상대적인 상()을 여의고 존재의 근본자성(自性)인 진여불성과 혼연히 일체가 되는 공부이기 때문에 필경 염불이나 참선이나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성불의 묘법입니다.

 

그러기에 문수설반야경(文殊設般若經)에 염불시불(念佛是佛)이요 망념시범부(妄念是凡夫)라 하여 모든 존재의 실상이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생각하면 바로 부처요 무명심(無明心)으로 분별하면 바로 범부중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염불을 방편적으로만 생각하여 부처님을 마음 밖에 대상적으로 존재한다고 법집(法執)하는 염불은 진정한 염불이 될 수는 없으며 더욱이 염불선(念佛禪)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염불선이란 자성미타 유심정토(自性彌陀 唯心淨土)라 하여 어디까지나 자성불(自性佛 佛性)을 여의지 않고 염불을 해야 하며, 마음이 청정하면 언제 어디나 다 극락세계라는 열린 마음으로 염불을 해야만 염불선(念佛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참선을 말할 때도 화두공안(話頭公案)만을 참구(參究)해야만 진정한 참선이 되고 여타의 수행법은 차원 낮은 방편공부 정도로만 생각한다든지, 또는 잠자코 묵상(黙想)에 잠기는 이른바 묵조선(黙照禪)만을 최고의 참선법이라고 집착하는 것 또한 불조정전(佛祖正傳)의 보편적인 참선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4조 도신스님(四祖道信; 580-651 중국 선종의 제)은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서 역설하기를 능가경(楞伽經)의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과 문수설반야경의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참선 수행의 요체(要諦)라고 밝히셨는데 모두가 다 염불과 참선을 융합한 수행법입니다.

 

그리고 혜능스님(慧能; 638-713 중국선종 )도 육조단경(壇經)에서 귀의삼신불(歸依三身佛)을 몸소 삼창(三唱)으로 고구정녕하게 선창(先唱) 설법하였고 다시 단경 부촉품에서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강조하였는데, 모두가 염불삼매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한껏, 번연(飜然)히 마음을 열고 진여연기(眞如緣起)의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으로 통찰할 때 일체만유는 본래로 불생불멸하고 불구부정한 부처 아님이 없기에 본래 부처가 부처임을 자각하여 부처를 깨달아가는 공부가 바로 염불 참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