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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08

 

 

(5)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아까 여기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중생이 과거부터 태어나는 즉 말하자면 미래까지를 간단히 말하는, 과거부터 현재를 통해서 미래까지 나아가는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간단히 풀이하는 이것이 십이인연법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 가운데서 무명(無明), 무명 이것은 과거세 헤매는 영혼 때 있는 우리 번뇌가 이것이 무명이란 말입니다.

 

물론 지금 번뇌도 무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지만은 십이인연법에서 말하는 무명은 이것은 과거세 영혼 때 우리가 가지는 무명인 것입니다. 이런 무명 때문에 그때는 부부간도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영혼도 역시 그런 부모한테 딱 들어선단 말입니다. 영혼이 무명이 없으면 가사 부모의 연이 있더라도 그때는 안 들어옵니다. 그때는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가 없지요. 아까 말씀마따나 천상이나 극락 가버려서 사람으로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허나 무명 때문에, 무명의 무게 때문에 거기에 알맞은 부모를 만난단 말입니다. 그것이 무명이고 무명 때문에 결국은 그와 같이 부모 만나서 그때는 행()이라, 내가 부모한테 태어나야 쓰겠구나. 행이고, ()은 어머님의 태안에 막 들어올 때 한 생각 말입니다. 수태일념(受胎一念)이라, 태에 들어가는 한 생각 그때가 식인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무명과 행 이것은 과거(過去)에 해당하고 말입니다.

 

(), 명색(名色), 육처(六處), (), () 다섯은 이것은 현재(現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사 금생에 받은 일념(一念)이것이 식()이고, 또한 태안에서 몸과 마음이 자라는 즉 말하자면 겨우 몸과 마음과 구분 하는 것이 이것이 명색(名色)이고 말입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더욱 자라서 안()()()()()()가 즉 말하자면 눈, , 입이 다 붙어서 말입니다. 제대로 사람 몸을 갖춘 태아(胎兒) 때가 육처(六處)고 말입니다.

 

막 낳아서 두 살, 세 살 때 접촉(接觸)하는 사물에 접촉하는 멍사모르고(멋모르고) 그때가 이것이 촉()이고 말입니다. 또 한 가지 육칠세 이후에 결국은 사물(事物)에 대하여 고락(苦樂)을 느끼고 할 때가 이것이 수()란 말입니다.

 

과거(過去), 과거 영혼(靈魂) 때는 무명(無明)과 행() 둘에 해당하고, 현재에 식()을 받아서 마음 받아서 엄마의 태()를 통해서 태어날 때가 즉 말하자면 식, 또는 태안에 자라는 마음과 몸, 또 마음과 몸이 자라서 눈과 코가 다 생겨서 육신(肉身)이 제대로 갖추어지는 이것이 육처(六處), 금생(今生)에 나와서 처음에 어릴 때 사물에 접촉하는 그때가 촉(), 또는 더 커서 육칠 세 이후에 사물에 대하여 고락(苦樂)을 느끼면 그때가 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식(), 명색(名色), 육처(六處), (), () 이것은 현재(現在)에 해당합니다.

 

현재에 우리가 발해있는 몸이란 말입니다. 마음과 몸에. 그러고서 애욕(愛慾)을 느끼고 또 갖고 싶어서 우리가 욕구하고 말입니다. 즉 이것은 현재에 다시 짓는 업에 해당하고 말입니다. 현재 애욕에서 다시 갖고 싶어 하는 취()와 있을 유(), 유와 이것은 현재 짓는 우리 업()에 해당합니다. 이런 업에 따라서 미래에도 역시 다시 태어나는 생()과 미래에 죽는 노사(老死)가 있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은 과거(過去)나 현재(現在)나 미래(未來)를 통 털어서 우리 중생의 태어나는 여러 가지 관계를 말씀했단 말입니다. 이상 십이인연 중에서 무명(無明)과 행()의 이()저기 있는바와 같이 무명과 행 둘은 곧 혹업(惑業), ()은 이것은 번뇌(煩惱)와 똑같습니다. 미혹할 혹(), 번뇌란 말이나 또는 혹이란 말이나 똑같은 뜻입니다.

 

아까 말한 즉 맨 처음에 있는 무명과 행의 둘 이것은 곧 혹, 즉 번뇌나 업의 둘로서, 아까 여기 있는 무명 이것은 번뇌고 이것은 업 안 되겠습니까. ()이니까. 둘은 곧 혹()()의 이()로서즉 번뇌와 업의 둘로서 과거세(過去世)의 원인()에 속하고또는 여기 있는 식(), 식 말입니다. 엄마의 태안에 막 붙어서 들어오는 식과 그다음에 엄마의 태안에서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우선 그렇게 구분될 수 있는 그때가 명색(名色)이요.

 

명색과 육처(六處) , , 입 또는 그와 같이 육신이 구분 지을 때 말입니다. 육신이 구분될 만치 클 때가 육처고, () 이것은 태어나서 2, 3세 동안에 사물에 대하여 접촉하는 그때가 촉이고, ()는 보다 더 커가서 육칠세 이후에 사물에 대해서 고락(苦樂)을 느낄 때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명색(名色)육처(六處)()()5()는 과거(過去)의 혹(()과거의 번뇌(煩惱)와 업()()에 연()하여 수()- 금생(今生)에 받을 - 현재(現在)의 과()에 속()하니’ ‘()는 과현일중인과(過現一重因果)’란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일중의 즉 말하자면 한 가닥의 인과에 속한단 말입니다. 일중인과(一重因果),

 

또한 애()()의 이()는 현재(現在)의 혹()이요이것이 애취란 말입니다. 십사 오세 이후에 강성한 애욕을 청하는 애와 또 보다 성인이 된 후에 그때는 보다 더 애욕이 더욱 성해서, 제 경에 - 여러 가지 경계에 - 추구해서 꼭 내가 인제 취해야 쓰겠구나 하는 즉 말하자면 그와 같은 강성한 때, 이런 애취 이것은 현재(現在)의 번뇌(煩惱)란 말입니다. 현재의 번뇌요. 즉 혹()이요. ‘()란 현재의 업이며’ - 여기 있는 유()란 말입니다.

 

취 번뇌에 의해서 종종의 업을 지어서 당래(當來)의 과()를 정하는 위니 유()란 곧 업으로서 이런 유란 현재의 업입니다. 현재의 우리가 애욕 때문에 여러 가지 하찮은 욕구 때문에 업을 짓는단 말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업이며, ‘()()의 현재(現在) ()에 연()하여 미래(未來)의 생()또 미래에서 추구하는 노사(老死)의 과()를 감()할새노사의 과()를 느낄새 말입니다. ‘차는 현미일중인과(現未一重因果)이다.’ 이것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한 가닥 일중의 인과(因果)이다.

 

위의 과현일중(過現一重)과 현미일중(現未一重)을 합칭(合稱)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 하는데,’ 위의 과(), () 과거(過去)와 현재의 한 가닥의 인과(因果)와 또 현재와 미래의 일중의 한 가닥의 인과를 합칭해서, 한꺼번에 칭해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란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인과와 현재와 미래의 인과를 이와 같이 양인과를 합하면 이것이 삼세양중의 인과란 말입니다. 삼세양중의 인과라고 하는데, ‘() 양중(兩重)의 인과(因果)에 의()하여 윤회(輪廻)가 무궁(無窮)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에 의하여 윤회(輪廻)가 아까 말한바와 같이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그와 같이 육도(六途)에 뱅뱅 도는 윤회가 무궁함을 - 다함이 없음을 - 알 수가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명(無明)을 못 끊으면 즉 번뇌(煩惱)를 못 끊으면 그때는 우리 생명(生命)이라는 것은 몇천 생, 몇만 생도 윤회하고 마는 것입니다.

 

시초에 내가 나올 때도 역시 무명 때문에, 무명 때문에 있단 말입니다. 무지 때문에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무지는 무엇인가? 아까도 말했습니다만 내 생명의 본바탕을 모른단 말입니다. 즉 우주의 본질을 모릅니다. 나라는 것은 사실은 원래 없는 것인데, 단지 진리(眞理)를 모르기 때문에 나라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나라고 고집하는 것이지 사실 나는 그때는 없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한 나를 고집하는 그런 무명, 천지우주(天地宇宙)의 본바탕을 모르는 그런 무명, 그런 무명 때문에 행()이 있고 해가지고서 부모님 연()만나서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명을 못 끊어버리면 내내야 죽은 후에도 역시 다시 똑같은 업()을 지어서 뱅뱅 돈단 말입니다. 몇 만생 되어도 역시 무지를 못 끊으면은 무명을 못 끊으면 인간의 윤회는 그때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요는 문제는 결국은 무명을 끊는, 무지를 끊는, 그것이 우리가 수행하는 문제인 것이고, 이와 같이 생사(生死) 거듭하는 몇 만생 동안 그저 죽고 살고 또한 전쟁이 있고 무엇이 있고 해서 여러 가지 참화를 겪고 말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역사(歷史)만 본다고 하더라도 그런 유구한 동안에 겪은 인생의 고난(苦難), 고난은 모두가 다 이와 같이 무지 때문에 결국은 무지를 못 끊어서 윤회하는데서 그것이 발생한단 말입니다.

 

열반(涅槃)은 무엇인가?

열반은 무명(無明)을 끊어서 영생(永生)의 자리에 들어갈 그때가 열반입니다.

성불도 마찬가지고 말씀입니다. 성자(聖者)란 것은 이와 같이 인생고(人生苦)의 원인을 확실히 알고서, 인생고의 원인은 내내야 이것이 무명이고... 가지가지의 업()을 짓는단 말입니다.

 

<끝부분 일부 녹음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