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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07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07

 

(4)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6. ()

 

그다음은 6에 가서는 ()이라, (), ()()때 사물(事物)에 대()하여 아직 고락(苦樂)을 식별(識別)할 수는 없고 다만 사물(事物)에 접촉(接觸)하고자 하는 위()접촉할 촉(), 2-3, 여기서는 이미 출산 되어서 사람 몸을 받았지요.

 

2, 3세 때가 되어서 사물(事物)에 대하여 자기가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에 대해서 아직 고락(苦樂)의 괴롭고 즐거운 것을 식별(識別)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어린애가 어떻게 괴롭다, 좋다, 그렇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만 사물에 대하여 그때는 접촉(接觸)을 하고 싶단 말입니다.

 

어린애가 이것저것 만지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의 자기가 성장하고자 하는 몸부림 아닙니까. 이때는 아직은 고락의 괴롭고 즐겁고 하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다. 분별(分別)도 못하고 말입니다. 이와 같은 때가 즉 말하자면 십이연기(十二緣起) 가운데 여섯 번째 촉에 해당합니다. 즉 말하자면 접촉만 하고 싶을 때, 어려서 물정(物情)을 모르면서 말입니다.

 

7. ()

 

그다음에 일곱 번째는 (), (), ()() 이후(以後)에 사물(事物)에 대()하여 고락(苦樂)을 식별(識別)하고 차()를 감수(感受)하는 위()

받을 수(), 6, 7세 이후에 그때는 더 성장해서 사물에 대하여 자기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에 대하여서 고락을 식별하고 그때는 괴롭고 즐거움을 좀 안단 말입니다.

 

어린애가 처음에는 불이 있어도 불인지를 모르고 가지만 나중에는 경험도 하니까 불은 뜨겁다하고 싫어하는 것이 그와 같이 말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런 것을 조금 알 때가 육칠 세 이후란 말입니다. 이후에 사물에 대하여 고락을 식별하고 이것을 감수(感受)하는 좋고 나쁘고를 안단 말입니다. 따라서 좋은 것은 더 취할라하고 그른 것은 피하고 하는 것이 육칠세 이후에 어린애들 심리(心理) 현상 아닙니까.

 

8. ()

 

그다음에 여덟 번째 (), 십사오세(十四,五歲) 이후(以後)에 종종(種種)의 강성(强盛)한 애욕(愛慾)을 생()하는 위()를 말함.’ 사랑 애(), 십사오세 이후에 그때는 더 성장해서 종종 가지가지의 강성한 강()하고 성()한 애욕(愛慾)을 성하는 그런 때란 말입니다. 춘기(春氣)가 발동해서 벌써 그때는 그야말로 참 하나의 사춘기(思春期)가 되어서 말입니다. 누구나 십사오세 이후에는 강성한 이성(異姓)에 대해서 애욕을 느낀단 말입니다.

 

9. ()

 

아홉 번째 (), 성인(成人) 이후(以後)에 애욕(愛慾)이 우성(尤盛)함에 따라 제경(諸境)에 치구(馳驅)하여 소욕(所欲)을 취구(取求)하는 위()를 말함.’

 

성인기 이후에 십사오세도 넘어가서 그때는 어른스러운 때가 되어가는 셈 아닙니까. 십사오세 이후에 성인이후에 애욕이 더욱, 더욱 우(), 성할 성(), 더욱 성함에 따라 제경에 모든 경계(境界)에 치구라, 이것은 달릴 치(), 몰 구(), 즉 말하자면 왔다 갔다 쏘아 다니고 말입니다. 그렇게 분별없이 싸다니는 것을 치구라고 합니다. 달릴 치(), 몰 구(), 물정(物情)을 잘 모르고 선악(善惡) 분별을 잘 모르는 것이니까 그때는 그야말로 참 애욕만 생겨가지고서 턱없이 모든 경계에서 갔다 왔다 하면서 함부로 날뛴단 말입니다.

 

그렇게 실패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로 유혹도 받고 하는 셈 안 되겠습니까. 하여튼 소욕(所欲)을 하고자 하는 바를 다만 구할라고 애쓰는 그런 때가 취란 말입니다. 여기에서 자는 마음 심()이 없으면 하고자 할 욕()’자이고 마음 심()이 있으면 욕심 욕()’자입니다.

 

() 이것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다 어른스럽게 즉 말하자면 성인이 되어가지고서 애욕이 더욱더 성해가지고서, 성하면 따라서 그것을 취 할라고 하니까 여러 경계에 왔다 갔다 그와 같이 자기 스스로 싸대고 그와 같이 덤벙대고 하겠지요. 제경(諸境), 여러 가지 경계에 싸대면서 하고자 하는 바를 취 할라 한단 말입니다.

 

10. ()

 

(), 그다음은 십()(), (()의 번뇌(煩惱)에 의()하여 종종(種種)의 업()을 지어 당래(當來)의 과()를 정()하는 위()니 유()란 곧 업()으로서, ()이 능()히 당래(當來)의 과()를 함유(含有)하므로 유()라 명().’

 

(()에 아까 말한 즉 말하자면 여덟 번째 애와 또 아홉 번째 취, ·취의 그런 번뇌(煩惱), 갖고자 하는 욕심(慾心)부리는 것도 내내야 한 가지 번뇌 안 되겠습니까. 번뇌라는 것은 결국은 뭣을 모르는 것도 번뇌이지만은 가질 라고 애쓰고 욕망(慾望)을 내고 말입니다. 그런 것도 역시 번뇌에 해당합니다. ·취의 그런 번뇌에 의하여, 사랑도 번뇌요. 또는 미움도 그때는 번뇌입니다.

 

애취의 번뇌에 의하여 종종(種種)의 업()을 지어역시 미워하고 사랑하고 또 여러 가지 욕구가 있는 것이니까 따라서 반드시 거기에 따른 행동이 있겠지요. 그와 같이 번뇌에 의해서 가지가지 업을 짓는단 말입니다. 그런 행위를, 나쁜 행동 좋은 행동 행위를 짓는단 말입니다. 행위를 지어서 당래의장차 돌아오는 미래(未來), 과거(過去)에 행위를 지어 놓으면 또 금생에 받듯이 금생에 행위를 지으면 그때는 또 역시 미래(未來)에 받는단 말입니다.

 

장차 돌아오는 미래의 과(), 과를 정하는 위()란 말입니다. 금생에 우리가 애욕을 내고 또는 욕구를 내고 해가지고서 그러한 애취, 애취에 의해서 우리가 행동하면은 그때는 그것이 업이 되어서 장차 우리가 받는단 말입니다. 당래의 장차 오는 미래의 결과를 우리가 받는단 말입니다. 그러한 업으로서, 업이 능히 당래 장차 미래의 과를, 결과를 포함해 있으므로 유()라고 말한단 말입니다.

 

어째서 십()을 유()라고 말 하는고 하면은 금생에 하는 행동이, 금생에 해놓은 모든 행동이 과거의 업의 결과이지만은 또한 동시에 미래의 결과를 포함해 있단 말입니다. 포함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유라고 말한단 말입니다.

 

11. ()

 

십일(十一)에 가서 ()은 현재(現在)의 업()[()]에 의()하여 미래(未來)의 생()을 수()하는 위()를 말함.’

 

()이라, 낳는다 말입니다. 현재의 업 즉 말하자면 유()란 말입니다. 현재의 업에 의하여 미래의 생을 받는 그런 유를 말한단 말입니다. 금생에 업이 없으면 그때는 사람으로 안 태어납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자체가, 사람만치 태어날 정도로 업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업이 더 가벼우면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이고, 업이 없으면 극락으로 갈 것인데, 극락 갈만치 업장이 없는 그런 정도가 못되고 또 천상 갈만치 가벼운 업도 못되기 때문에 사람만치 밖에는 안 되어서 사람으로 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를 아시는 분들은 섣불리 우리 인간을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그런 말을 못쓰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고 하면은 인간보다도 훨썩 더 높은 단계의 것이 많이 있으니까. 그때는 인간은 어중쭝한 것밖에 못되는 것인데 인간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될 것인가 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인간을 만물의영장이라는 말을 못쓰는 것입니다.

 

밑에도 많이 있지만은 또 역시 천상이나 극락도 있는 것인지라, 그와 같이 인간은 아직은 업이, 업이 인간 될 만치, 불교적으로 말하면 그때는 오계(五戒), 살생(殺生)하지 않고, 투도(偸盜)하지 않고, 사음(邪淫)하지 않고, 또는 거짓말, 욕설(辱說), 이간(離間)하는 말 하지 않고, 술 먹지 않고 이런 등등의 오계를 지켜야 만이 사람도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인도환생(引導還生)은 못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계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만은 이와 같이 현재에 지은 여러 가지 번뇌나 업에 의해서 내세(來世)에 생을 받는단 말입니다.

 

12. 노사(老死)

 

십이(十二)노사(老死)는 내세(來歲)에서 노사(老死)하는 위().’

노사(老死), 늙어서 죽는단 말입니다. 내세에 역시 또 우리가 태어나면 그때는 반드시 늙고, 병들고 또 죽어야 쓰겠지요. 이와 같이 열두 가지의 속성으로 해서 과거세에 우리가 과거(過去)에 무명(無明)을 지어서 말입니다.

 

조금 복잡하나 아까 말씀마따나 사제법문(四諦法問),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육바라밀(六波羅密), 이런 것은 우리가 몇 십번 외워서 몇 십번 보고서 외워두면 굉장히 필요합니다. 그래야 딴 경전(經典)을 본다고 할 때에 그때그때 아, 그렇구나. 해가지고서 납득이 잘 간단 말입니다. 이런 개념을 몰라버리면 그때그때 막혀가지고서 참 곤란스러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