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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81

 

 

200185일 보살계(菩薩戒) 수계식(3)

 

2 불투도(不偸盜)!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지니라.

너희 불자들이여 일체의 재물(財物)에 바늘하나 또는 풀 한포기라도 짐짓 훔치지 말지어다. 보살(菩薩)은 마땅히 불성(佛性)에 효순(孝順)하는 불성에 따르는 그런 마음과 자비심(慈悲心)을 내여 항상 모든 사람들을 도와 복()이 되고 즐거움이 되게 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남의 재물(財物)을 훔치는 자는 보살의 바라이 죄 이니라.’

 

훔치는 것도 역시 우리가 사기를 일부러 한다거나 소매치를 한다거나 그런 것만 훔치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수입 아닌 것을 갖는 가령 우리가 무슨 사업(事業)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업에서 나오는 이윤(利潤)을 자기 혼자만 독점(獨占)한단 말입니다. 이것도 훔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마땅히 자기 신성한 노동(勞動)의 댓가만을 취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주의는 사실은 물질적(物質的)인 경제적인 면에서 본다 할지라도 철저한 진정한 사회주의(社會主義)입니다. 그 유물(唯物)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우리 정신적(精神的)인 내면적(內面的)인 사회주의란 말입니다. 따라서 정당한 수입 아닌 것을 우리가 함부로 한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의 복덕(福德)의 종자(種子)를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복()을 지어야 공부하기도 쉽고 또 좋은 인연(因緣)을 만나서 공부가 잘될 것인데 우리가 복덕을 훼손을 시키면은 그만치 인연도 잘 못 만나고 또는 그때그때 여러 가지 장애(障碍)가 많단 말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이러한 우리 복덕의 원인을 없애는 투도(偸盜), 정당한 재물이 아닌 것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3 불음계(不淫戒)! 음행(淫行)하지 말라.

우리 재가불자(在家佛子)들은 당연히 결혼을 해서 식구 가족이 다 있는 것이고 한데 음행(淫行)하지 말라고 하면은 이것은 어긋난 말씀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재가불자라 하더라도 음행을 않는 것을 전제로 하셔야 됩니다. 원칙으로 하셔야 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우리 인간이 지금 중생(衆生)들이 사는 세계가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아닙니까. 욕계, 색계, 무색계인데 우리가 윤회(輪廻)한다는 것은 뱅뱅 돌아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렇게 여가 태어나고 저가 태어나고 한다는 것은 윤회 아닙니까. 그런데 윤회로 해서는 윤회를 한다고 생각 할 때는 해탈(解脫)의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人間)존재의 구경(究竟)목적이 무엇인가? 이것은 해탈에 있단 말입니다. 그 윤회를 떠나서 우리가 영생하는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참다운 마음의 고향(故鄕), 우리 생명의 고향에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목적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도 역시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떠나서 열반락(涅槃樂)이라. 해탈의 그러한 영생의 구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삼계윤회(三界輪廻),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를 사실은 떠나야 되는 것인데 욕계, 색계, 무색계 가운데서 욕계가 가장 낮은 세계입니다. 욕심(慾心)을 미처 못 떠난 세계(世界)란 말입니다. 욕심이란 것은 어떠한 것인가? 모든 욕망(慾望)이 욕심이 되겠지만은 가장 중요한 욕심은 이것은 식욕(食慾)이라. 먹는 욕심이라. 또 그다음 욕심이 남녀 이성간의 이성욕(異性慾)이란 말입니다. 그다음 욕심이 잠욕입니다.

 

따라서 욕계의 상징은 바로 욕심을 의미하는 것인데 욕심 가운데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식욕이나 남녀 이성 욕이나 또는 잠욕이나 그런 욕인데 음행이것은 남녀 이성간에 욕심 아닙니까. 그렇게 부처님 법문은 심심미묘(深深微妙)해서 우리 재가불자님들은 제대로 잘 못 지키니까 육재일날, 육재일은 81415232930일 육재일만이라도 식욕을 좀 참아서 식욕을 절제해서 한 끼만 먹어라. 또는 그날은 고기도 먹지 말라. 그다음 내외간도 같은 방을 쓰지 말라 이런단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 뿐만이 아니라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다 그렇습니다. 육재일을 정해서 우리 재가 불자님들은 의지가 약하니까 평생 동안 절제하고 살수는 없으니까 육재일만이라도 출가한 셈치고 출가(出家)한 수행자(修行者)인 셈 치고서 그와 같이 욕심을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가불자님이라 하더라도 음욕(淫慾)을 절제하는 것을 음욕을 가급적이면은 끊는 것을 원칙으로 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서구 서기 전 400년 전에 나온 플라톤, 플라톤이 있지 않습니까. 위대한 철인(哲人)아닙니까. 플라톤, 플라톤의 이데아론 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그 이데아라는 것이 실상(實相)인 것이지 다른 현상적(現象的)인 것은 모두가 다 허망(虛妄)하단 말입니다. 우리 금강경(金剛經)에도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그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다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 같단 말입니다.

 

그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또는 풀끝에 이슬 같고 번갯불 같고 항시 이렇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응당여시관(應當如是觀)이라. 금강경에 있는 응당여시관이라, 항시 그와 같이 응당히 봐야 우리가 오류(誤謬)를 안 범한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우리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이 사실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현상적인 것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철학적(哲學的)으로도 소박실제론(素朴實際論)이라, 어려운 말씀을 써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은 소박실제론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 중생들은 소박하게 나는 나요 이것은 이것이요. 금은 금이요. 은은 은이요. 우리 중생들이 감각으로 보는 그것을 사실로 본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이 보는 것은 사실은 우리 감각(感覺)의 속임수입니다. 실지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 가르침은 제가 항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상식(常識)이 아닙니다. 상식이 아니라 실상(實相)적인 지혜(智慧)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겉으로 봐서 우리 중생이 보이듯이 검다 희다 또는 좋다 궃다 그러는 것이지 본래로 본바탕으로 본다고 생각 할 때는 그런 것이 없단 말입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時空)이라.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가 다 내 몸이요, 그대 몸이요, 이것이고 저것이고 인연 따라서 잠시간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있는 것 같이 보이나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그것은 순간순간 찰나찰나 변화해서 마지않습니다.

 

순간 찰나 찰나 변화무상(變化無常)한 것은 사실은 어느 공간(空間) 어느 시간대(時間帶)에도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불교는 상식론이 아닙니다. 하나의 실상을 그대로 말씀 한거란 말입니다. 우주 생긴대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단 플라톤이나 그런 분들 뿐만이 아니라 위대한 철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은 다 한가지로 말씀했단 말입니다. 이 현상계(現象界) 이것은 꿈같은 것이지 실지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플로티누스란 철인도 일자(一者). 우주(宇宙)는 하나의 실상(實相)뿐인 것이지 가상(假想)이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가상은 그때그때 변화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변화무상한 것은 일초전과 일초후가 똑같지가 않단 말입니다. 2500년 전에 우리 부처님은 어떻게 그렇게 업()이 가볍고 깨달아서 우주의 실상을 보셨던가? 그 뒤에도 무수한 도인(道人)들이 다 그와 같이 그런 말씀을 우리한테 역설(逆說)하고 강조하고 그렇게 하셨건만은 우리 중생(衆生)들은 잘 못 알아먹는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의 흐리멍덩한 눈으로 봐서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 가상(假想)인 것입니다.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몽환포영이라, 몽환포영인 것이니까 응당여시관(應當如是觀)이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 같은 것을 그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실상을 증명할 수가 있단 말입니다. 금생(今生)내내 애쓰고 산다고 하더라도 가상(假想)만 가지고서 가상가운데서 그때그때 시비(是非)를 하고 죽는단 말입니다. 가상이 뭣이 많이 있으면 좋다 그러고 가상이 자기한테 자기 몸뚱이 이로우면 좋다고 그러고 말입니다.

 

다 그래서 이 음욕(淫慾)문제, 음욕문제 굉장히 여러분들께서 깊이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음욕을 끊지 못하면 결국은 자멸(自滅)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시중에 나가서 차가 얼마나 번잡합니까.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20년 후에는 인구(人口)팽창을 이대로 두면 막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의술(醫術)은 더 발달되어서 노인들은 더 불어나고 말입니다.사람이 많아지면 그만치 차요 뭣이요 모두가 다 공해(公害)때문에 우리가 숨 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가정(家庭)생활을 하는 내외(內外)라 하더라도 꼭 음욕(淫慾)에 대해서 남녀 이성간의 욕망(慾望)은 우리가 절제해야 됩니다. 다만 부부(夫婦)간의 동기(同期)로 해서 같이 서로 격려하고 같이 동기가 돼서 진리(眞理)를 닦으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부부간의 관계를 맺되 정말로 성자(聖者)들이 우리한테 당부하는바와 같이 청정(淸淨)하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육재일도 육재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30일 내내 육재일 비슷하게 우리가 살면 된단 말입니다. 그러면 복()을 더 받고 몸도 더 건강하고 말입니다. 그런 것도 우주(宇宙)에 대해서 그때는 우리가 공헌(貢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신 분들은 동기가 되어서 그와 같이 아주 훌륭한 동기로 해서 같이 공부를 하시고 아직 결혼을 안 하신 분들은 가급적이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불망어(不妄語). 망어(妄語)를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보지 못 한 것을 보았다 말하거나 본 것을 보지 못했다 말하여 몸이나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항상 바른말을 하고 바른 소견(所見)을 가져야 하며 또한 일체중생(一切衆生)들에게도 바른말과 바른 소견을 갖게 하여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일체중생에게 삿된 말과 삿된 소견(所見) 삿된 업()을 내게 하는 자는 보살(菩薩)의 바라이 죄니라. 보살의 무거운 죄이니라.’

 

마땅히 우리가 진리(眞理)에 걸맞는 말씀을 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인생(人生)이 너무나 참 짧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다 제해 버리면은 정말로 수행(修行)할 동안은 참 지극히 짧은 동안밖에는 안 됩니다. 우리 불자님들 가운데서 이번에 45일 동안 공부하시는 것도 정말로 대 용단을 내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동안을 가급적이면 많이 가지셔야 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우리가 과거전생(過去前生)에 습관성(習慣性), 과거전생에 심은 습관성도 많지만은 금생(今生)에 나와서도 잘못 생각하고 잘못 배우고 잘못 행동한 그런 습관성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쉽사리 좀처럼 녹일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 가급적이면 우리가 오로지 공부할 수 있는 이른바 불교말로 하면 별시수행(別時修行)이라. 사흘이고 나흘이고 한 달이고 몇 년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시셔야 됩니다.

 

그래야 업()이 녹아진단 말입니다. 업이 녹아져야 우리 본래적(本來的)인 성품(性品)인 불성(佛性)이 그때는 바로 빛나온단 말입니다. 우리가 흐린 물도 자꾸만 휘저어 버리면은 맑을 그럴 겨를이 없지 않습니까. 가만두면은 그때는 앙금이 가라않고서 훤히 그때는 바닥이 보인단 말입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은 본래로 무량(無量)의 자비(慈悲)와 지혜(智慧)와 행복(幸福)과 그런 능력을 갖춘 그런 것이 우리 불성(佛性)인데, 우리 불성을 자꾸만 중생(衆生)이 잘못생각하고 분별시비(分別是非)하고 그런 것 때문에 흐려 논단 말입니다.

 

그래 그런 마음을 안정을 시켜야 됩니다. 안정을 시킬려면은 사흘이고 나흘이고 닷새고 한 달이고 몇 년이고 우리 마음을 고요하니 명상(瞑想)생활로 해서 수련(修練)을 시켜야 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평생 내 마음 수련하는 것이 내가 금생에 태어난 하나의 보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셔야 그래야 기회를 낼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만연히 살면은 그런 기회가 오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정말로 이번 45일 동안 50 넘으신 원로 교수님들도 계시고 아주 참 여러분들이 굉장히 훌륭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5 술을 먹거나 술을 팔지 말라.

우리 중생(衆生)들은 너무나 버릇 때문에 필요 없는 짓을 많이 합니다. 술이 그것이 우리 건강에 대해서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술 때문에 이루어진 해악(害惡)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마음이라는 것은 철두철미 영롱(玲瓏)하게 맑혀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더라도 버릇이 있어가지고서 잘못 배우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견해(見解)를 갖는 그것 때문에 우리 마음이 항시 혼탁(混濁)하단 말입니다. 혼탁한 마음에다가 더구나 술이나 먹고 어영부영하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중한 자기 생명(生命)을 우리가 그만치 훼손(毁損)을 시키고 그만치 자기 스스로 파멸(破滅)을 시킨단 말입니다. 또 그것이 비단 우리 마음에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 항시 말씀 드립니다만은 건강이라는 것이 우리 음식과도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음식을 바로 먹고 절제해서 먹는다고 생각 할 때에는 웬만한 병()은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재가불자님들 너무 많이 자십니다. 너무 많이 자시고 거기다가 고기고 뭣이고 굉장히 많이 먹지 않습니까. 참 주의 하셔야 됩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몸만 무겁고 비대만 하고 또 그만치 여러 가지 병을 거기에다 묻어오고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제일 좋고 제일 가볍고 제일 쉽습니다. 마음도 몸도 제일 건강한 법입니다. 부처님 평생 동안 80세에 가셨는데 80세까지 사뭇 다 탁발 안했습니까. 그 따가운 인도(印度)에서 머리에다 아무것도 쓰지도 않고 맨발로 다니면서 탁발했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공자님이나 다 우리 표본적인 그런 분입니다. 그런 분들 사는 데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표본이 없으면은 그렇게 살기가 어렵겠지요. 허나 그런 표본이 있어놔서 우리가 본을 따르면 된단 말입니다.

 

술장수 하는 불자님들이 계시면은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느 땐가는 없어져야 됩니다. 할 수 없이 하시게 되시면은 내가 파는 술을 자시고서 정말 불심(佛心)을 보다 돈독히 내 가지고서 깊은 수행(修行)을 하여지이다. 이렇게 기원드리면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그렇게 하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