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5일 보살계(菩薩戒) 수계식(4)
제 6 사중(寺中)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출가(出家)한 보살이나 재가(在家)한 보살이나 비구(比丘)나 비구니(比丘尼)의 허물을 자기 입으로 말하거나 남을 시켜 말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외도(外道)학인과 이승학인 이승은 성문연각승입니다. 성문연각승이 불법(佛法)에 대하여 비법비유를 말하더라도 항상 자비심(慈悲心)으로 이들을 교화(敎化)하여 대승(大乘)에 대한 신심(信心)을 내도록 해야 할 것이어늘 보살이 도리어 불법 중에 허물을 말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내내야 재가 불자님들, 이른바 우바새 우바이 선남자 선여인 그 이중과 또 출가한 불자들 비구 비구니 합해서 사부대중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부대중가운데도 역시 그때그때 비판적(批判的)인 안목(眼目)을 가지고서 험담(險談)들을 많이 합니다. 그나 이런 것은 주의 하셔야 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어떻든 간에 불법(佛法)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계(世界)에 있어서 굉장히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법은 이것은 부처님 법은 우주(宇宙)의 진리(眞理)이기 때문에 우주의 진리가 보다 융성하고 보다 더 빛나고 그래야 할 것인데 조금 허물이 있다고 해서 우리 사부대중끼리 서로 비판(批判)하고 또는 비방(誹謗)을 한다고 생각할 때는 부처님 법을 그마만치 약하게 만든단 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부처님 법에 대치가 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리(眞理)를 지키기 위한 것이 우리 사명이니까 마땅히 허물이 있으면은 직접만나서 은근하게 우리 정성을 다해서 충고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뭇 비방한다고 생각 할 때는 필요 없이 오해를 사는 것이고 또는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소중한 부처님의 부처님 가르침을 그만치 약화를 시킨단 말입니다.
제 7 불자탄 훼탁이라.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誹謗)하지 말라.
‘너희불자들이여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他人)을 비방(誹謗)하거나 또한 남을 시켜 자기를 찬탄(讚嘆)하고 다른 이를 비방하게 하지 말지니라. 보살(菩薩)은 응당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대신하여 남의 훼방을 받아서 나쁜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은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자기의 공덕(功德)을 드러내고 남의 칭찬할 일을 숨겨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훼방(毁謗)을 받게 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
우리 불자님들은 관포의 지극히 훌륭한 우정(友情)을 들으신 적이 계실 것입니다. 관포란 것은 관중과 포숙인데 서기 600년 전 분이어요. 공자보다도 한 100년 더 이상 오래된 그런 때 태어나신 분인데 관중과 포숙이란 분이 아주 친한 친구란 말입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는 포숙이란 친구가 먼저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참 제환공이라, 제환공을 섬겨서 상당한 지위에 올라갔었는데 그 포숙이가 보니까 자기 친구인 관중이 자기보다도 훨썩 사람이 총명해 보인단 말입니다.
총명해 보이는데 사람이 갖다가 관중이란 분이 너무나 비판적(批判的)이기 때문에 나라의 허물을 비판하다가 불경죄에 걸려가지고 죄를 받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래 가만두면 관중이 죄를 받아서 귀양 가가지고 죽게 보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포숙이 제환공 한테, 제환공은 나라를 다스리는 제후의 우두머리인데 제환공 한테 말씀하기를 저 관중이 나보다도 훨썩 사람이 총명(聰明)합니다. 그래서 내가 제환공 당신을 모시는 것보다도 지금 죄를 받아서 귀향 가게 된 관중을 기용을 하시면은 훨썩 더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제환공 당신한테도 훨썩 큰 공덕(功德)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건의(建議)했단 말입니다.
그런게 제환공이란 제후(諸侯)의 우두머리도 총명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말을 들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당장에 직위(職位)를 만들어가지고 할 수 없어놔서 그래서 관중이 자기 직책(職責)을 양보를 했습니다. 제가 있는 것보다는 저 관중이라는 친구를 기용을 해서 쓰는 것이 훨썩 여러 가지 국민 대중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유용 할 테니까 꼭 그렇게 해달라고 자기 직책을 다 내놓으면서 그렇게 간청(懇請)을 드리니까 제환공도 거기에 감동(感動)을 받고서 관중을 기용(起用)해서 포숙의 자리보다도 더 높은 자리를 줬단 말입니다.
관중은 아주 그 훌륭한 분이기 때문에 제환공을 섬겨가지고 정말로 참 하나의 제나라를 중국에서 그 당시에 가장 위대한 가장 세력이 강한 패자를 만들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주나라의 튼튼한 주석을 놓은 것이 관중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100년 후에 나온 공자(孔子)도 관중을 찬탄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관중이 없었더라면은 북쪽 오랑캐한테 우리 문화민족(文化民族)인 한족이 핍박을 당하고 할 것인데 다행이 관중 덕택으로 오랑캐한테 유린당하지 않고서 이와 같이 문화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그런 찬탄(讚嘆)을 했다고 그래요.
그래 그 위대한 사람들은 절대로 남을 함부로 비방않습니다. 정말로 신의(信義)있게 친구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그와 같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단 말입니다. 오늘날 정치인(政治人)들 보면은 참 딱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높은 자리 좀 올라 갈라면은 높은 자리가 많이 있으면 좋겠지만은 다 올라 갈 수가 없으니까 서로 피차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야 되겠지요. 그 선거운동(選擧運動)할 때 보면은 참 딱하지 않습니까. 배울 대로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그러는가 말입니다.
역시 참 그와 같은 분들도 부처님 보살계(菩薩戒), 남을 비방(誹謗)하지 말라는 그런 계율(戒律)을 꼭 한 번씩이라도, 자기 스스로 지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이론적(理論的)으로 알면 좋을 것인데 모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너무 지나친 행동을 취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땅히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던가 꼭 남을 찬탄을 해서 보다 더 높은 쪽으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정말로 우리 스스로 정성만 드리면은 꼭 훨썩 더 선량(善良)하고 드디어는 결국은 성자(聖者)가 되고 만단 말입니다.
우리가 윤회(輪廻)해서 그때그때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그런 여러 가지 나쁜 갈래로 갈수도 있지만은 또는 우리 인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가 우리 인간의 본래성품(本來性品) 자리가 바로 불성(佛性)이기 때문에 어느 중생(衆生)이나 다 누구나 똑같이 종당에는 다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늦게 되고 빨리되고 그 차이 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이면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인연(因緣)을 만들어 줘야 한단 말입니다. 그 야스퍼스란 철인도 말하기를 참다운 실존적(實存的)인 우정(友情)이 무엇인가? 실존적인 우정은 무엇 인고 하면은 그 사람을 참다운 실상인 영원적(永遠的)인 해탈(解脫)로 인도하는 그것이 그 사람한테 대한 참다운 우정(友情)이라고 말씀했단 말입니다. 참다운 우정은 역시 성자(聖者)의 가르침 따라서 성자의 길로 편달을 시켜주고 그 길을 더불어서 가는 것이 참다운 우정입니다.
내외간(內外間)의 정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이 되었으면은 부부간에 서로 격려해서 애정만 그냥 쏟을라고 말고서 정말로 참다운 우정 서로 피차 성불(成佛)로 가는 도반(道伴)이 되어서 서로 책선도 하고 서로 충고도 하고 그렇게 꼭 하셔야 될 것입니다.
제 8 자기 것을 아끼고 남을 욕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너희는 인색(吝嗇)하지 말며 남을 인색하도록 가르치지도 말지니라. 보살은 일체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할 것이어늘 보살이 나쁜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돈 한 푼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라도 보시(布施)해 주지 아니하고 법(法)을 구하는 이에게 한구절의 법문(法門)도 말 한마디 게송(偈頌)도 일러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쁜 말로 욕설을 하는 자는 보살(菩薩)의 무거운 죄니라. ’
여기에 있는 바와 같이 보살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남이 달라고 생각할 때 사실은 모든 것을 줘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모든 것을 줘야 한다는 말은 무엇인고 하면은 자기와 남을 절대로 둘로 생각을 말고서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기가 욕구 하는 것을 남한테도 똑같이 베풀어라는 그런 뜻입니다.
일반보살과 일반보살이 아닌 사람의 행동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고 하면은 아까도 제가 허두에서 말씀 일러 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철학적(哲學的)으로 종교적(宗敎的)인 깊은 뜻으로 해서 모두가 다 하나의 존재(存在)다 하나의 실상(實相)이다. 저 사람과 나와는 원래 한 몸이다.
원래 한 몸으로 생각하고 베푸는 것은 참다운 보살입니다. 허나 한 몸으로 알지 못하고서 구분해서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고 이렇다. 이렇게 일반적인 상식적(常識的)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자기가 우월감(優越感)에서 저 사람은 나보다 못사니까 내가 좀 베풀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남한테 베푼다고 생각 할 때는 결국은 하나의 위선(僞善)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선이 안될라면은 우선 진리(眞理)적으로 철학적(哲學的)으로 우리가 기본(基本)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천지(天地)가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거든 하물며 모든 것은 결국은 나와 더불어서 꼭 하나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일원적(一元的)으로 따지는 이것이 굉장히 참 중요합니다. 진리와 진리 아닌 차별이 어디가 있는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眞理)란 것은 천지우주(天地宇宙)를 모두가 다 하나의 존재(存在)로 본단 말입니다. 하나의 생명(生命)으로 봅니다. 하나의 진리로 봅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것은 둘로 보고 셋으로 보고 나누어서 본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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