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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101)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8. 궁금증 풀고 정견(正見)으로 정진(精進)하세(13)

 

7) 유교와 불교

 

수다원의 초과()는 아직 일곱 번 천상에 올라갔다가 다시 일곱 번 인간에 내려 와야 하는 윤회가 남아 있소. 그런데 그의 도력()은 마음대로 움직여도 살생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경지라오.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벌레들이 저절로 피한다오. 수다원이 땅을 파서 농사를 지으면, 흙 속의 벌레가 네 치(四寸) 이상 떨어지게 옮겨 간다오. 하물며 이삼사과(二三四果)야 말할 게 있겠소?

 

유교 가운데 공부하는 서생은 놓아두고, 성인(聖人)으로 말해 봅시다. 성인은 진실로 대부분 큰 권위(大權)을 나투시는 분이시니, 그 근본은 말할 수가 없소. 만약 성인이 나투는 자취만으로 말한다면, 아마도 보고 생각하는 미혹을 말끔히 끊어 버린 경지에도 견줄 수 없을 것이오. 하물며 무명을 깨뜨리고 법성(法性)을 증득한 41지위의 법신(法身) 대사에게 비할 수 있겠소?

 

설사 밝은 덕을 밝히는(明明德)것이 무명을 깨뜨리는(破無明) 것과 견줄 수 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무명을 깨뜨리는 것도 41 단계의 지위가 있으니, 맨 처음의 초주() 지위에 견주겠소, 아니면 맨 마지막의 등각(等覺)의 지위에 견주겠소?

 

가령 맨 마지막의 등각 경지에 견준다고 하더라도, 아직 유교의 밝은덕(明德)을 밝히는 수행은 궁극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것이오. 다시 나머지 한 푼의 무명마저 말끔히 깨뜨려(서 부처가 되어), 비로소 정성과 밝음이 하나가 되고, 처음 깨달음과 본래 깨달음이 둘이 아닌 궁극의 경지가 되기 때문이오.

 

그래서 본바탕은 같지만, 수행 공부를 진행하여 증득하고 도달해가는 과정(단계)은 다르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오. 세간 사람들은 같다는 말만 들으면, 곧 유교가 불교를 완전히 포섭한다고 생각하오. 또 다르다는 말만 들으면, 곧 불교가 유교를 완전히 배척한다고 오해하기 일쑤요. 유교와 불교가 서로 같으면서 같지 않고,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오. 그래서 각자 자기 문중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서로 시끄럽게 논쟁하면서, 정작 불보살과 성인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중생을 구제하시려는 본래 마음은 모두 깡그리 잃고 마는 것이오.

 

8) 부처님 비방(詩佛)

 

불법이 중국에 전래된 이후, 역대 제왕들이 모두 우러러 받들었소. 오직 삼무(三武)만이 불법을 소멸시키려 했으나, 그 뒤 바로 더욱 흥성해졌소. 비유하자면, 겨울에 천지가 꽁꽁 얼어붙는 한파는, 바로 이듬해 봄 여름의 왕성한 새 생명을 성취시키기 위한 준비인 셈이오. 밝은 태양이 하늘한복판에 떴는데, 손바닥 하나로 어떻게 가릴 수 있겠소? 하늘을 우러러 침을 뱉어 봤자, 도리어 제 얼굴만 더럽히게 되오.

 

삼무(三武),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424~452 재위)와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561~577 재위)와 당()의 무종(: 841~846 재위)을 가리키오. 이들은 모두 애당초 불법을 깊이 믿어, 지극한 정성으로 배우고 닦았소. 그러다가 북위의 태무제는 최호(崔浩)의 현혹을 믿고, 북주의 무제는 위원숭()의 모함을 받아들였으며, 당 무종은 이덕유(李裕)와 도사(道士) 조귀진(趙眞)의 비방을 믿었다오.

 

그러나 불법을 훼멸시킨 지 오래지 않아, 주동자와 보조자 모두 극도의 재앙을 당했소. 북위의 태무제는 불교를 폐지한 후 오륙년이 못 되어, 최호의 전 가족을 몰살하고 자신도 시해당하였는데, 그 뒤를 이은 황제가 곧 불법을 크게 부흥시켰다.

 

북주의 무제(武帝)도 불교를 폐지한 후 위원숭을 내쫓아 죽였는데, 5년이 못 되어 자신은 악질에 걸려 온 몸이 문드러져 죽었다. 그가 죽은 지 3년이 못 되어 수 문제(文帝)가 천하를 물려받아, 불법을 크게 부흥시켰소.

 

당의 무종()도 불교를 폐지한 후 1년이 못 되어, 조귀진은 주륙당하고 이덕유는 유배 갔는데, 무종은 도사가 만들어 준 금단(金丹)을 먹고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오. 그 뒤를 이은 선종(宣宗)이 불법을 다시 크게 일으켰소. 또 송()의 휘종(徽宗)도 처음에는 불법을 깊이 믿었는데, 나중에 도사 림령소(林素)의 요망스런 말을 듣고, 마침내 불상을 모두 도상(道相)으로 바꾸었다오. 그리고 부처님을 대각선(大覺金仙)이라 부르고, 스님을 덕사(德土)라고 부르면서, 도사의 옷을 입고 법사(法事: 종교 행사, 佛事 또는 法會에 해당) 때마다 도사의 뒤에 자리 잡았다오.

 

그런 칙령을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경성(京城)에 큰 홍수가 나서 성안이 마치 호수나 바다와 같았소. 군신(君臣) 모두 놀라 두려워하며 림령소에게 물을 그치게 하라고 칙령을 내렸는데, 물은 그치게 할수록 더욱 불어났소. 이 때 갑자기 승가(僧伽) 대성(大聖)께서 금중(禁中: 궁궐에 모습을 나투시니, 황제가 향을 사르고 애걸했소. 이에 승가께서 지팡이를 휘저으며 성 위에 올라서자, 그 엄청난 홍수가 금세 빠져 버렸소. 이에 황제는 불법을 옛 제도대로 복귀한다는 칙령을 내렸다오.

 

그러나 오륙년이 채 못 되어, 휘종은 부자(父子)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소. 금나라는 휘종을 혼덕후(昏德侯: 덕이 혼미한 제후)에 봉하고, 그 아들 흠종(欽宗)은 중혼후(重昏侯: 거듭 더욱 혼미한 제후)에 봉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오국성(금나라 전신인 가 우수리강 송화강 유역에 설치한 五國 부족의 성)에서 죽었다오.

 

무릇 부처님은 삼계의 위대한 스승이며, 사생()의 자비로운 아버지요. 성인 중의 성인이며, 하늘 가운데 최고의 하늘이오. 사람들에게 망령됨을 떨치고 진여에 되돌아오며, 세속 티끌을 등지고 깨달음에 합치하라고 가르치시는 분이오. 허깨비 같은 미혹의 업장을 없애 버리고, 본래 지닌 마음과 성품을 회복하도록 이끄시는 분이오. 이러한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자면, 불법을 굳건히 보호 유지하고 널리 유통 전파시키기에도, 한가한 겨를이 없을 것이오.

 

그런데 어떻게 한 때의 권력과 위세만 믿고서, 중생들의 지혜의 눈을 없애 버리고, 인간과 천상의 탄탄대로를 끊어 버리면서, 스스로 지옥의 깊은 불구덩이를 팔 수 있단 말이오? 그런 자들은 눈앞에서 당장 악보를 당하고, 영겁토록 삼악도에 떨어져, 미래세에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야 마땅하오. 그래야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될 수 있소.

 

세간에 가장 넓고 두터우며 높고 밝은 것은,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을 따를 자가 없소. 그렇지만 해는 중천에 걸리면 기울고, 달도 꽉 차오르면 이그러지며, 높은 산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이 봉우리가 되며, 푸른 바다가 뽕 밭이 되기도 하고, 뽕 밭이 푸른 바다가 되기도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