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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95)

화두 놓고 염불하세(95)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8. 궁금증 풀고 정견(正見)으로 정진(精進)하세(7)

 

 

3) 깨달음과 증득(悟證)

 

선종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화두(話頭 말머리)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마치 목숨이나 사주처럼 여기오. 시간과 날짜를 따지지 않고 늘상 참구하여, 몸과 마음 세계를 모두 알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확철대오하게 되니, 이 또한 수행이 일어나 알음알이가 끊긴 지경이 아니겠소? 육조 혜능 대사가 단지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곧장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볼(明心見性) 수 있었던 것도, 수행이 일어나 알음알이가 끊긴 지경이 아니겠소?

 

내 생각에는 수행이 일어난다는 '()'자는 의미상 마땅히 수행이 지극해진다는 '()' 자로 써야 할 것 같소. 오직 지극하게 공부에 힘써야만 주체와 객체(: 사물 대상) 두 가지를 모두 잊고, 한마음(一心)이 철저히 드러나기 때문이오. 만약 수행이 지극하지 못하다면, 비록 관상하고 염불할지라도 주체와 객체가 있게 되어, 완전히 범부의 감정으로 일하는 것이고, 완전히 지식 분별이 되고 마오, 완전히 알음알이 분별에 불과한데, 어떻게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겠소?

 

오직 수행 공부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야만, 주체와 객체, 감정과 식견이 모두 소멸되고, 본래 지닌 진짜 마음(眞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오. 그래서 옛날에 죽은 나무 같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도풍(道風)이 고금에 걸쳐 휘황찬란히 빛나게 된 것도, 모두 지극함() 한 글자에 있을 따름이오. 이익을 잘 얻을 줄 아는 사람은, 가서 이익 아닌 게 없으며; 손해를 달게 받는 자는, 가서 손해 아닌 게 없소. 요즘 사람들은 늘상 세간의 분별적인 총명 재주로 불학(佛學)을 연구하다가, 이치의 길만 조금 트이면 곧 몸소 증득()했다고 일컫기 일쑤요.

 

그때부터 스스로 높은 경지에 있는 걸로 여기고, 고금의 인물들을 모두 무시한다오. 현재의 사람들이 자기 안중에 들어 오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소. 천수백 년 동안 계속 세간에 출현하신 고승 대덕들은, 대부분 옛 부처님들이 다시 오셨거나 법신 보살들이 나투신 화신(化身)이신데도, 그는 이런 분들조차 본받을 게 없는 평범한 인물로 치부하고 만다오.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증득했다고 말하는 자가 오죽하겠소?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구천(九天)을 꿰뚫을 정도로 고상하지만, 마음을 살펴보면 비열하기가 구지(九地: 황천) 아래로 떨어질 정도라오.

 

이렇듯이 더럽고 나쁜 버릇은 통절히 제거해야 마땅하오. 그렇지 않으면, 제호: 우유에서 추출한 최고급 精味)를 독 그릇에 담는 것처럼,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오. 만약 한 생각을 되돌이켜 자기 마음을 살피고 궁리할 수 있다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문만이 유익한 게 아니오. 돌이나 벽돌, 등잔 갓과 이슬, 심지어 대지에 널려 있는 온갖 모습과 빛깔과 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제일 의제(第一)의 실상 묘리()가 아닌 게 없다. 독실하게 믿고 힘써 실행하기 바라오.

 

꿈속에서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는 일은, 숙세에 착한 뿌리를 심었다고 할 수 있는 몹시 희귀한 체험이오. 그러나 모름지기 계속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수행에 힘써야, 그러한 꿈이 끝내 헛되지 않게 되오. 만약 범부 중생의 식견으로 크나큰 자만심을 일으켜, "나는 이미 삼보의 가피를 받았으므로, 벌써 성인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망령된 말을 지껄이면서, 아직 증득하지도 못한 주제에 이미 증득했다고 자처한다면, 이는 착한 원인을 가지고 악한 결과를 불러들이는 게 되오.

 

말법 시대의 중생들은 마음과 지혜가 너무 낮고 보잘것없어서, 늘상 이러한 병폐를 범하기 마련이오. 능엄경에서 "성인이라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곧 훌륭한 경계이다. 만약 성인이라고 생각하면, 곧장 뭇 사악의 침범을 당하리라(不作聖心, 名善境界, 若作聖解, 卽受群邪)."고 말씀하신 게 바로 이것이오. 정토법문을 힘써 수행하는 데에 스스로 분발하고 격려하길 권하오. 그러면 장래에 틀림없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오.

 

염불 수행의 중점은 극락왕생에 있소. 그렇지만 염불이 지극하면 또한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볼(明心見性) 수도 있으니, 염불 수행이 현세에 전혀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오. 옛날 명()나라 때 교숭(敎崇) 선사는 매일 관세음보살의 성호를 십만 번씩 염송했는데, 나중에는 전혀 배우지도 않은 경서(經書)를 모두 알게 되었다오.

 

정토십요(淨士十要)와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을 읽어 보면, 비로소 염불의 미묘함을 알 수 있거니와, 나도 이미 누차 언급한 적이 있소. 그런데도 염불 수행이 현세에 전혀 이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토 경론(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내 글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대충 스쳐보고 만 까닭이오.

 

적광정토(寂光淨土)는 비록 바로 이 자리가 맞다(當處卽是)고 하지만, 그러나 지혜가 궁극까지 끊어 버리고 비로자나 법신을 원만히 증득한 자가 아니면, 철저하게 몸소 받아 쓸 수 없소. 원교()의 십주() · 십행(十行) · 십회향(廻向) · 십지(十地) · 등각(等覺) 41지위도 오히려 차례로 나누어 증득(分證)하는 단계라오. 만약 누가 비로자나 법신을 원만히 증득한다면, 이 자리가 바로 적광정토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오. 그러나 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밥을 말로만 먹고 보배를 손으로 세기만 하는 것과 같아서, 굶주려 죽음을 면할 수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