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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93)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8. 궁금증 풀고 정견(正見)으로 정진(精進)하세(6)

 

 

3) 깨달음과 증득(悟證)

 

철륜이란 곧 제 10(第十信)의 지위인데, 초신()에서는 보는 미혹(見惑)을 끊고, 7(七信)에서는 생각하는 미혹(思惑)을 끊으며, 8, 9, 10신에서는 진사혹(塵沙惑)을 깨뜨리고 무명(無明)을 조복시킨다오. 남악 사 선사가 제 10신에 이르렀다고 밝혔으니, 아직 실상법을 증득하지 못한 것이오. 만약 1품의 무명을 깨뜨려 초주(初住)의 지위를 증득했더라면, 비로소 실상법을 증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지자() 대사는 석가모니불의 화신이신데, 임종에 한 제자가 대사께서 어느 과위(果位)까지 증득하셨는지 여쭙자, 이렇게 대답했다오.

 

내가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다면, 반드시 육근이 청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덜어 남들을 이롭게 하느라, 단지 오품(五品)에 올랐다.”

 

또 우익(蕅益)대사는 임종에 열반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명자위 가운데 진짜 부처님 안목을, 끝내 어떤 사람에게 당부해야 할지 모르겠다(名字位中眞佛眼, 未知畢竟付何人).”

 

명자위에 오른 사람은 여래장 성품을 원만히 깨달음이 부처와 똑같은 정도인데도, 보고 생각하는 미혹을 아직 조복받지 못했으니, 하물며 끊었겠소? 말세에 확철대오했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신분이라오. 이치상으로는 비록 단박 깨달았다(頓悟고 하지만, 미혹을 아직 조복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다시 생명을 받으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오.

 

우익 대사가 명자위(名字位)를 보이셨고, 지자 대사는 오품(五品)을 보이셨으며, 남악 대선사는 십신()을 보이셨소. 비록 세 대사의 본바탕은 모두 헤아릴 길이 없지만, 그분들이 보이신 명자(名字관행(觀行: 五品) · 상사세 과위를 보면, 실상(實相)을 증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고, 후학이 선배를 초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소.

 

이분들은 진실로 후학들이 증득하지도 못했으면서 증득했다고 착각하고 자랑할까 염려하여, 몸소 자신의 과위로 설법하셨소. 후학들이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고, 감히 망령된 자만심에 빠지지 못하도록 예방하기 위해서였소. 그러니 세 대사께서 임종에 당신들의 과위를 몸소 보이신 은덕은, 뼈가 가루가 되도록 몸을 부숴도 다 보답할 수 없다오. 과연 그대들이 이 세 대사를 초월할 수 있는지,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 보시오.

 

만약 염불과 독경으로 선근을 잘 심고 가꾸어, 서방 극락 왕생한 후에 항상 아미타불을 모시며 청정해회(淸淨海會)에 동참한다면, 그 공덕과 수행의 정도에 따라 빠르고 높은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실상(實相)을 증득할 것이오. 이는 전혀 의심할 나위 없는 틀림없는 이치이며, 지금까지 극락 왕생한 모든 분들이 함께 얻고 증명하는 사실이오.

 

깨달음()이란 분명히 훤하게 아는 것이오. 마치 문을 열어 산을 보고, 구름이 걷혀 달이 보이는 것과 같소. 또 눈이 맑은 사람이 돌아갈 길을 몸소 보는 것과도 같고, 오랫동안 가난했던 선비가 갑자기 보물 창고를 연 것과도 같소. 증득()이란 마치 그 길을 걸어 집에 돌아가, 발길을 멈추고 편안히 쉬는 것과 같소. 또 얻은 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과도 같소.

 

깨달음은 마음이 큰 범부(大心凡夫)만 되어도 부처와 같을 수 있소. 그러나 증득은 초지(初地)에 오른 사람이라도, 바로 위의 이지(二地)가 어떻게 발을 들고 어디에 발을 딛는지조차 모른다오. 깨달음과 증득의 이러한 이치 차이를 안다면, 저절로 증상만(增上慢)도 일지 않으며, 후퇴타락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하는 마음은 만 마리의 소()라도 만류하지 못하리다.

 

지자() 대사는 세간에서 석가불의 화신이라고 일컬어지니, 증득하신 경지를 누가 알 수 있겠소? 그런데도 부처께서 중생들을 위해 몸을 나투어 모범을 보이시면서, 몸소 범부로 자처하셨다. 임종에 "내가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다면, 반드시 육근이 청정했을 것이다."고 하신 말씀은, 자신의 경지로 후학들을 훈계한 현신설법(現身說法)이오.

 

대사는 애시당초 미혹을 끊고 진여를 증득하여, 곧장 등각(等覺)의 경지에 오르려고 뜻을 세웠다오. 그런데 불법을 펼쳐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선정() 공부를 많이 거르게 되어, 원교(圓敎)의 오품관행위(五品觀行位)를 증득하는 데 그치셨소. 그래서 자신을 덜어 남들을 이롭게 하느라, 단지 오품밖에 오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소.

 

오품(五品)이란 수희(隨喜) · 독송(讀誦강설(겸행육도(兼行六度: 육바라밀을 아울러 행함) · 정행육도(正行)의 다섯 가지라오. 원교의 오품위(五品位), 여래장의 성품을 깨달음이 부처의 깨달음과 전혀 다르지 않소. 보는 미혹 생각하는 미혹 진사 · 무명 등의 번뇌를 원만히 조복하였으되, 보는 미혹조차 아직 완전히 끊지는 못한 경지라오.

 

만약 보는 미혹을 완전히 끊으면, 초신()을 증득하오. 또 칠신(七信)에 이르면 생각하는 미혹도 완전히 끊기어, 육근을 마음대로 사용하여도 육진(六塵)에 오염되지 않는 실제 증명(實證)을 얻게 되오. 그래서 육근청정위(六根淸淨位)라 부르오. 또 각각의 근(: 감각 기관) 가운데 육근의 공덕을 두루 갖추어 육근불사(六根佛事)를 할 수 있소. 그래서 육근호용(六根互用)이라고도 부르오. 법화경의 법사공덕품(法師)에서 말한 대로라오. 남악 선사가 바로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이셨소.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단지 대지혜를 지닐 뿐만 아니라, 대신통도 가진다오, 그 신통력은 소승의 아라한이 감히 견줄 수도 없을 정도라오, 그래서 남악 선사는 생전이나 사후 모두 불가사의한 일(기적)들이 많아, 보고 들은 사람들에게 모두 깊은 신심을 불러 일으켰다오.

 

남악 선사와 지자 대사 같은 분은 모두 법신대사(法身大士)이시니, 그분들이 실제 증득한 지위가 얼마나 높고 깊은지, 누가 헤아릴 수 있겠소?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단지 앞으로 도를 배우는 데 전념으로 정진할 후학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대강의 곡절만 밝히는 것뿐이오. 그분들이 어찌 정말로 십신상사위(十信相似位)나 오품관행위(五品觀行位)를 증득하는 데 그쳤겠소?

 

우리 같은 범부 중생이 어떻게 감히 그분들을 흉내나 낼 수 있겠소? 우리들은 그저 중요한 계율을 거칠게나마 대강 지키면서, 일심으로 염불하고, 아울러 세간의 선행을 두루 쌓는 것으로 보조 수행을 삼으면 충분하리다. 영명() 대사나 연지(蓮池) 대사의 법문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이롭지 않을 게 전혀 없을 것이오. 불교 모든 종파의 수행 법문은, 반드시 진실한 수행이 일어나 알음알이 분별이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실제 이익이 있게 되오. 단지 정토법문의 관상(觀想) 수행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