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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97)

화두 놓고 염불하세(97)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8. 궁금증 풀고 정견(正見)으로 정진(精進)하세(9)

 

 

 

4) 선종과 교종

 

결국 교법으로 참선을 파괴하고, 참선으로 교법을 파괴하는 거라오. 눈먼 길잡이가 눈 먼 대중들을 이끌고,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셈이라오. 후학들에게 옛 사람들의 향기롭고 훌륭한 수행 규범은 들려 주지못하고, 도리어 부처님을 경시하고 조사들을 능멸하며 인과 응보의 법칙을 부정하는 죄악만 본받게 하는 것이오.

 

교법은 상중하 세 근기의 중생들이 두루 혜택을 입고,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를 모두 포괄하오. 마치 성왕의 현명한 법령을 온 천하가 높이 받들어 칭송하고, 잘나거나 못나거나 똑똑하거나 바보거나, 모든 백성이 잘 알아 지켜야 하는 것과 같소. 법령에 복종하지 않는 백성이 하나라도 있으면 엄형에 처하듯이, 부처님의 교법도 믿고 따르지 않는 중생이 하나라도 있으면 삼악도에 떨어지게 되오.

 

선종은 오직 상근기만 혜택을 입고, 중하근기의 중생들은 포섭하지 못하오. 마치 장군이 비밀스런 특명을 내리면, 아군의 진영 안에서만 알 수있을 뿐, 진영 밖의 사람은 설령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있더라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과 같소. 그래서 전군(全軍)이 적군을 섬멸시키고 천하태평을 가져올 수 있소.

 

군령의 기밀이 한번 누설되면 삼군(三軍)이 모두 몰살당하듯, 조사(祖師)의 법인(法印)이 한번 누설되면 다섯 종파가 모두 망하게 되오. 그래서 아직 깨닫기 전에는 오직 화두만 참구 하도록 단속하고, 참선에 관한 책을 떠들어 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오. 조사의 본래 뜻을 오해하여, 미혹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힐까 정말로 염려하기 때문이오. 이러한 것을 누설이라고 부르는데, 그 해악은 정말 막대하오.

 

궁극의 근원은 둘이 아니지만, 거기에 이르는 방편은 여러 문이 있소. 선종 가문의 방편은 아주 특별한 예외여서, 모든 말과 글을 완전히 쓸어 없애버린 듯하오. 그래서 본의를 얻지 못한 자는 말을 떠난다는 취지를 체득하지 못하고, 단지 술지게미나 핥는 격이오.

 

선종에서 뜻으로 이해하려는 길을 한번 열어 놓으면, 힘써 참구하려 들지 않을 것이오. 교종에서 원만하고 융통스런 경지를 섣불리 배우면, 사물의 모습(事相)을 모조리 파괴할 것이오. 오직 크게 통달한 선비만, 이 양쪽의 이익을 함께 얻을 수 있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제호(醍醐)와 감로(甘露)를 그릇에 담아 독약으로 변하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만다오.

 

교법은 비록 중하근기의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긴 하지만, 최상의 근기가 아니면 크게 통달할 수 없소. 너무 광범위하고 방대하기 때문이오. 반면 참선은 비록 중하근기의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두기가 어렵지만, 상근기의 사람은 크게 깨달을 수 있소. 단순하게 지키기 때문이오.

 

교법은 세간법과 불법, 사물과 이치(事理), 성품과 형상(性相) 모두를 통달하고, 나아가 대개 원해(大開圓解: 원만한 이해를 크게 열어젖힘. 선종의 확철대오에 해당함)하여야만, 비로소 인간과 천상을 모두 인도하는 스승 (人天導師)이 될 수 있소. 반면 참선은 하나의 화두 참구하여 깨뜨리면, 본래 진면목을 친견하여, 선종의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 마음을 곧장 가리켜 줌)의 가풍을 펼칠 수 있소.

 

불법이 크게 흥성하는 시대에 불법을 크게 통달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선종에 따라 참구하는 게 좋겠소. 마치 용을 다 그려 놓은 상태에서, 한 점 눈동자만 그려 넣으면 즉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소. 그러나 불법이 쇠퇴한 때나, 타고난 근기가 다소 떨어지는 사람들은, 교법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마땅하오. 마치 보통 기술자가 기물을 만들면서 자와 컴퍼스를 팽개치면, 끝내 규격에 맞는 제품을 완성할 수 없는 것과 같소.

 

요즘 세상에 부처님 은혜를 갚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싶다면, 선종에서는 선종의 가풍을 오로지 펼치면서, 교종의 법인(法印)도 모름지기 존중이로 어떤 법문을 닦는다고 안 될 게 있겠소? 그러다 보면, 참선 수행도 없고 염불 공덕도 없어, 쇠침대에 누워 구리 기둥을 껴안으면서, 억만검과 천만 생이 지나도록 믿고 의지할 사람 몸 하나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이오.

 

만약 자신이 온통 업장투성이의 범부 중생인 줄 안다면, 여래의 위대한 서원력에 의지하지 않고는, 결코 현생에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는 줄도 알아야 하오. 정토 법문은 부처님의 한 평생 가르침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비견할 수 없는 위력을 지녔소.

 

주문 지송과 경전 독송은, 죄악과 업장을 소멸시키고 복덕과 지혜를 심는 수행으로는 마땅하오. 그러나 만약 신통력을 구하려는 망령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 지엽을 쫓아가는 잘못된 생각이오. 그렇게 잘못된 생각이 마음에 단단히 맺힌데다, 이치도 분명하지 않고 계율을 지니는 힘도 견고하지 않으며, 보리심 (菩提心)도 생기지 않고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이 편협하게 치열해지면, 반드시 악마에 붙들려 미쳐 날뛰는 때가 올 것이오.

 

무릇 신통을 얻고자 하면, 모름지기 먼저 도()를 얻어야 하오. 도를 얻으면 신통은 저절로 갖추어지기 마련이오. 만약 도에는 힘쓰지 않으면서 오직 신통만 구한다면, 신통을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설사 얻는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도에 장애가 될 뿐이오. 그래서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배우지 못하도록 엄금하신 것이오. 세상에 이런 잘못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늘상 적지 않기 때문에, 상세히 언급하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