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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98)

화두 놓고 염불하세(98)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8. 궁금증 풀고 정견(正見)으로 정진(精進)하세(10)

 

 

염불하는 사람은 주문을 지송하지 말라는 법이야 없소. 다만 주된 수행과 보조 수행을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소. 그래야만 보조 수행도 주된 수행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오. 만약 분별하지 않고 대충 적당히 한꺼번에 본다면, 주된 수행도 중심이 잡히지 않게 되오. 준제주(準提呪)나 대비주() 사이에 어찌 우열의 차이가 있겠소? 마음만 지성스럽다면, 모든 법마다 한결같이 영험스럽게 되오. 그러나 만약 마음이 지성스럽지 못하면, 어떠한 법도 결코 영험스럽지 못할 것이오.

 

왕생주(往生呪)를 범문(梵文: 산스크리트 문자)으로 배운다면 매우 좋을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염송하고 있는 약문(: 한문으로 음역한 간략본인 듯)은 잘못이라고 굳이 분별심을 낼 필요는 없소. 한번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대장경 안의 모든 주문에 대해 '부처님의 본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생기기 때문이오.

 

경전을 번역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할 일 없이 무료해서 한 게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하오. 어찌하여 다른 번역본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있겠소? 천여 년 동안 이 주문을 지송하여 이익을 얻은 사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렇게 천여 년 동안 주문을 지속해온 사람들이 모두 범문(梵文)을 몰랐겠소?

 

배울 것은 정말로 배워야 마땅하지만, 우열이나 승부(勝負)의 분별심은 절대로 내어서는 안 되오. 그러면 스스로 얻는 이익이 불가사의할 것이오, 또 주문 지송의 법은 화두를 드는 것과 비슷하오. 화두를 들 때 논리나 의미의 길이 없기 때문에, 범부의 분별 감정을 잠재우고, 본래 갖추고 있는 진짜 지혜(眞智)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오.

 

주문 지송도 의미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지성으로 간절하게 지송해 가는 것이오. 그렇게 정성을 지극히 다하다 보면, 저절로 업장이 소멸되고 지혜가 밝아지며 복덕이 높아지게 되오. 그 이익은 우리 생각이나 추측으로 미칠 수 없이 막대하오.

 

6) 출가(出家)

 

무릇 불법(佛法)은 구법계(九法界)에 두루 통용되는 공공의 법(公共之法)이오. 그래서 불법은 어느 누구도 닦아서는 안 될 사람이나 닦을 수 없는 사람이 전혀 없소. 재계(齋戒)를 지키며 염불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효험이 널리 퍼져, 정법과 불도가 크게 홍성하며, 풍속과 인심이 순박하고 선량해진다오. 그래서 염불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더욱 아름답고 좋소. 단지 염불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만 염려하면 되오.

 

그런데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일은, 여래께서 정법과 불도를 이 세상에 주지(住持: 안주 유지)시키고 유통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이오. 만약 향상(向上)의 뜻을 세우고 대보리심을 발하여, 불법을 연구하고 자성(自性)을 철저히 깨달은 뒤, 지계 · 선정 · 지혜의 삼학(三學)을 펼치고 정토 염불을 찬탄하기 위해 출가한다면, 현생의 단 한 번 수행으로 단박에 윤회 고해를 벗어날 수 있소. 이런 스님은 많을수록 좋고, 다만 많지 않을까 염려해야 되오.

 

그러나 만약 약간의 신심만 가지고 향상의 큰 뜻은 없으면서, 스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한가하게 놀기 좋아하고, 부처님께 의지하여 구차하게 생계나 해결하기 위해 출가한다면, 이는 말만 불자(佛子)이지, 실제로는 까까중(髡民 : 옛날 죄수들의 머리를 싹 깎았는데, 세간에서 스님을 폄하하여 髡奴라고 불렀음)에 불과하오. 이런 스님은 설령 악업을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불법의 퇴폐 종자()이며, 국가의 쓰레기 인간(廢人)에 불과하오.

 

하물며 계율을 파괴하고 악업을 지어, 불교에 모욕과 수치를 안겨 준다면, 설령 살아 있는 동안 국법은 빠져나갈지 몰라도, 죽어서는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오. 앞으로 출가하려는 사람은 첫째, 진실로 자신과 중생을 함께 이롭게 하려는 대보리심을 발하는 요건과 둘째, 남보다 뛰어난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요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삭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하오. 그렇지 못한 자는 출가할 수 없도록 해야 하오. 여자들은 신심이 있으면 집에서 수행하도록 권하고, 절대로 출가해서는 안 되오. 혹시라도 파탄에 빠지는 경우가 있으면, 불교 문중을 적지 않게 더럽힐까 두렵기 때문이오.

 

남자들이 진실한 수행을 하려면, 출가가 더욱 쉽소, 선지식들을 참방하고 총림(叢林)에 의지해 머물 수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여자가 진실한 수행을 한다면, 출가가 도리어 더 어렵소. 움직일 때마다 세상의 혐의(嫌疑)와 비방을 불러일으키고, 평범한 일상사들도 자기 뜻대로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오. 만약 위(: 국가를 지칭한 듯)에서 삭발 제도를 잘 분간 선택하여, 비구니의 출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법을 보호 유지하고 법문을 정돈 수습하는 첫 번째 요건이 될 것이오.

 

출가라는 일을,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피신과 은둔의 안식처로 생각하오. 더 한심한 자들은 살길이 없어 생계를 해결하는 방편으로까지 여기고 있소. 그래서 요즘 출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뢰배 출신이오. 정법과 불도가 땅바닥에 떨어져 사라지려고 하는 것도, 모두 이러한 부류의 출가자들이 정법을 파괴한 소치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