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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75)

원통불법의 요체(75)

 

 

5장 삼계三界 해탈解脫

 

1절 삼계三界와 해탈解脫

 

1. 삼계三界

 

우리가 보통 삼계를 떠난다또는 삼계에 머물러 있다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마는, 삼계三界는 중생이 생사 윤회하는 경계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삼계를 벗어나야 하고 삼계를 벗어나는 것은 이른바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전생의 선근에 따라 비약적으로 빨리 벗어나는 분도 있기는 하나 보통은 점차로 공부 정진 따라서 닦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정에 들어가는 초선정初禪定, 이선정二禪定, 삼선정三禪定, 사선정四禪定 이런 선정은 모두가 다 각 천인天人의 선근 정도와 상응되는 것입니다. 가령, 초선천初禪天에 나기 위해서는 초선정을 닦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초선천에 있지 않더라도 마음 정도가 초선정에 들어갔다면 벌써 초선천에 있는 존재, 그런 천인들과 정도가 같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가 2선정二禪定에 들어가면 2선천에 있는 천인들과 똑같은 능력과 선근이 되는 것입니다.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하고 욕계는 육욕천六欲天으로 되었는데 우선 지거천地居天과 공거천空居天으로 나눕니다. 지거천은 소위 각 원소의 단계인 지진地塵 , 지구나 토성이나 다른 별들이나 질료質料를 의지해 사는 중생들이 지거천입니다. 공거천은 업장이 좀 가벼워서 지거천을 떠나 있는 허공 가운데 사는 중생입니다. 이런 천인들은 몸뚱이가 우리 몸뚱이 같지가 않기 때문에 허공에서 마음대로 공간을 집으로 알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거천에는 사대왕천四大王天 즉 사왕천四王天과 도리천忉利天 수야마천須夜摩天 즉 야마천의 셋이 있고 다시 사왕천 밑에는 동쪽에 지국천持國天, 남쪽에 증장천增長天, 서쪽에 광목천廣目天, 북쪽에 다문천多聞天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욕계의 4왕천 가운데 남쪽 증장천增長天에 딸린 남섬부주南贍部洲 곧 염부제閻浮提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들은 재가, 출가를 불문하고 사실은 벌써 그 업장이 상당한 정도로 정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욕계에 있다 할지라도 얼마만치 욕심을 떠나 있는가? 번뇌를 떠나 있는가에 따라서 그에 상응한 높은 경계에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거천은 도솔천兜率天, 화락천化榮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셋인데 다 천상이니까 천상 나름대로 통력通力도 있습니다. 삼명육통三明六通 같은 원래 법성에 갖추고 있는 통력은 못하더라도 그대로 그 업력에 따른 보통報通이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摩耶(Maha-maay) 부인은 세연世緣을 마치고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역시 그 어머니가 청정하였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세존世尊을 낳았겠지요. 흔히 세간에서 알기는 불교는 자기 부모도 모르고 윤리를 무시한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머님을 위해서 3개월 동안 도리천에 올라 가셔서 어머님과 도리천의 천상인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도 역시 아들을 낳고 7일 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아들에 대해서 두고두고 안스러운 마음이 남아 있었겠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도리천에 올라가서 세상은 허망하고 생사가 본래 없는 것이라고 법문을 하셨을 것입니다. 모자母子의 정이라는 게 그렇게 두터운 것입니다. 우리가 출가할 때 은애불능단恩愛不能斷이나은혜와 사랑을 끊기가 어렵지만 기은입무위棄恩入無爲은혜와 사랑을 버리고 상을 여읜 무위법에 들어가면 진실보은자眞實報恩者진정으로 은혜를 갚는 것이로다! 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는 어머니 마야 부인이 내려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비감悲感에 잠겨 관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불현듯이 관문이 열리고 세존께서는 가부좌한 채로 어머니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시여!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시생멸법是生滅法입니다. 세상일은 다 무상하여 만나면 꼭 헤어지는 것이요, 낳는 것은 필시 죽기 마련이니 슬퍼하지 마시고 이별과 생사를 초월한 부처님 법을 생각하소서라고 하시니 어머니께서 그제야 슬픔을 진정하고 안위妾慰의 미소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도리천도 중생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훌륭한 곳입니다. 도리천에만 가도 음식을 먹고 싶으면 저절로 음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천상들은 분단식分段食을 먹는 것이 아니고 향기만 맡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야마천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이렇게 올라갈수록 받는 안락이나 능력이 더욱더 수승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화락천化樂天은 문자 그대로 가령, 괴로운 경계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시켜서 기쁘고 즐거운 경계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있는 타화자재천은 욕계천의 가장 위층인데 마왕魔王 파순波旬은 여기에 삽니다. 따라서 마왕은 보통 밑에 있는 천상보다도 훨씬 더 능력을 잘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앉아 있으면 더러는 이상한 모양을 내어 나투기도 하고 또 꿈속에 현몽하여 우리 공부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마왕은 하여튼 우리가 욕계를 벗어날세라 친구 모습으로 오기도 하고 이성의 모양으로 오기도 해서 가지가지로 훼방을 놓는 것입니다

 

그다음 초선천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삼매를 닦아서 욕계번뇌를 떠나야 비로소 초선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입정入定이라, 선정에 든다는 것은 욕계번뇌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욕계번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식욕食慾, 수면욕睡眼慾, 음욕婬慾입니다. 욕계서도 식욕과 수면욕과 음욕의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사, 음욕에 있어서도 사대왕천과 도리천까지는 남녀 이성의 결합이 있는 셈이지만 야마천에 올라가면 이성 결합이 없이 단순히 서로 포옹할 정도이고 그 다음 도솔천은 악수만 하는 정도고 화락천은 서로 피차 바라보고 미소만 띄우는 정도이며 그리고 마지막 타화자재천에 오르면 그 음욕이 눈으로만 눈웃음 짓는 정도라고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참으로 미묘하고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해서 그와 같이 욕심을 다 떠나면 초선정에 들어 천상으로는 초선천에 납니다. 중생들이 정진하여 공부가 좀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점검해서 욕심이 남아 있다면 아직 욕계정欲界定이라, 욕계에서의 정신통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른바 명상법이나 닦아서 조금 더 맑아진 것이지 선정禪定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분들은 자기 점검에 엄격해야 합니다.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 대범천大梵天이 초선천의 세 하늘입니다. 이것은 역시 점차로 번뇌가 희박해져 가는 정도에 따라서 층별層別의 차이가 있습니다.

 

2선천에 들어가서는 온전히, 그야말로 광명이 훤히 빛나서 광명뿐입니다. 본래가 광명인데 삼독三毒 오욕심五慾心에 가려 있다가 선정이 깊어짐에 따라 차근차근 빛나는 것입니다. 처음 소광천少光天에서는 조금 덜 빛나고 그 다음에는 무량광천無量光天이라, 훤히 한량없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광음천光音天에는 광명으로 해서 조금도 막힘이 없이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도 마음만 먹으면 광명으로 서로 상통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영통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집이 세고 강강剛剛한 천인天人이 허물을 범할 때 옆에서 충고하여도 듣지 않는 천인들에게는 상대하지 않는 벌을 주는 범단지법梵壇 (brahma-danda)이라 하여 서로 말하지 않고 상대하지 않는 묵빈대처黙擯對處법이 있습니다. 좁게 보면 초선천만 범천梵天이고 넓게는 초선천 2선천 3선천 4선천을 모두 범천이라고 말합니다. 브라만Brahman이 범천에 소속된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범천, 4선천에 있는 중생들은 아직도 중생인지라 서로 그릇된 짓도 하는데 그 가운데 말을 안 들으면 그 벌칙이 상대를 안 해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 들으시려 하자 아난존자가 차익車匿비구와 같이 고집 센 강강剛剛한 비구는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니까 범단지법梵壇之法으로 대처하라하셨습니다. 충고를 하여 들으면 좋은데 안 들으면 우리 출가사문이 서로 싸울 수는 없는 것이고 말하지 않고 상대하지 않는 묵빈대처黙擯對處의 법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3선천의 소정천少淨天은 청청하기는 하나 아직은 번뇌의 때가 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훨씬 더 맑아져서 한량없이 맑은 경계를 얻음은 무량정천無量淨天이고, 그다음은 변정천遍淨天이라, 끝도 가도 없이 삼천대천세계 구석구석까지 맑은 경계입니다. 부처님 나라는 한 삼천대천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삼천대천세계가 무량으로 있는 것입니다.

 

4선천은 번뇌의 그림자가 없는 무운천無雲天, 그리고 번뇌의 구름이 없기 때문에 복이 저절로 오는 복생천福生天, 그리고 넓이가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광대무변한 광과천廣果天입니다. 4선천을 의지해서 정범지淨梵地가 있는데 보통 4선천의 광과천까지는 일반 외도나 천중들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정범지는 청정한 곳이므로 성자만 가는 곳입니다.

 

정범지에 있는 무번천無煩天은 번뇌가 없는 천상경계요, 무열천無熱天은 번뇌가 없으니 항시 청량미를 맛보는 경계요, 선현천善現天은 모두가 다 좋게만 광명으로 보이는 경계로서 우리 중생들은 기분이 좀 나쁘면 다 나쁘게 보이고 밉게 보이겠지만 여기서는 벌써 애증愛憎을 떠난 경계라는 말입니다. 또는 선견천善見天은 모두가 좋게만 보이니 우리의 견해도 응당히 선량하게 되는 경계요, 색구경천色究竟天은 모든 존재의 끄트머리 즉 모든 광명의 본질로서 가장 청청한 광명을 음미하고 생활하는 하늘의 경계입니다.

 

그다음 화음천和音天은 신묘한 음률音律이 우주에 충만해 있는 경계입니다. 우리가 금강경에 색이나 소리로는 여래如來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이 있으니까 색은 별것이 아니고 광명이 별것인가? 극락세계나 영원의 세계는 소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주란 것은 세간적인 때 묻은 색이나 소리를 초월한 영원한 묘색妙色과 묘음妙音이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정확한 수리로써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 자연의 도리에 어긋나고 잘못 살면 역사의 심판을 받습니다.

 

앞서 언급한 광명은 태양 빛같이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청정 적광寂光, 정광淨光입니다. 그런 적광은 영생으로 항시 상주 부동한 것이고, 음향이나 하나의 리듬rhythm도 화명애아和明哀雅라고 하여 법화경이나 또는 화엄경을 보면 천상의 음률 표현을 하고 있는데 보통 우리가 느끼는 명곡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한결 청정하고 무상한 오욕五慾 경계를 떠나버린 청정하고 평온하며 신묘한 음악인 것입니다. 그런 묘음이 우주에는 항시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사, 광명진언光明眞言이나 또는 어떤 진언이나 모든 진언이란 우주에 있는 신묘한 리듬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의미로 풀이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주에는 그와 같이 신묘한 리듬이 항시 있습니다. 우리가 명곡을 들으면 좋아하는 것도 가장 신묘한 리듬이 우리 불성 가운데 원래 존재하기 때문에 명곡을 들으면 그만치 우리 마음도 맑아지는 것입니다.

 

그다음 무색계는 색을 떠나버린 하나의 심식心識 , 마음만 있는 중생이 사는 세계입니다. 무색계의 공무변처空無邊處는 공이 끝도 가도 없는 무량무변의 세계를 다 수용할 수 있는 경계이고 또 식무변처識無邊處는 일체가 유심조唯心造요 만법이 유식唯識이라, 모든 것이 마음으로 통찰해 보이는 경계입니다. 처음에는 텅텅 비어 보였지만 업장이 더 녹아지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 곧 의식인 생명이 충만해 있음을 깨닫는 경계요, 무소유처無所有處는 식이라고 할 것도 없고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도 없는, 이름과 상을 여읜 경계입니다. 또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번뇌가 거의 다 스러져서 번뇌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 번뇌가 있는 것을 지각知覺하지 못할 정도로 청청한 경계이며 3계 가운데 최상의 천상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성도하시기 전 6년 고행 때도 육사외도六師外道한테 가서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습니다마는 그런 가운데도 세[] 외도한테 배웠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공부와 관계가 있고 우리에게도 아주 훌륭한 귀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에 고행외도苦行外道인 발가바Bhargava 선인한테 가서 가지가지의 심각한 고행을 했는데, 어떤 기록에서는 발가바 외도한테 배운 고행은 별것이 아니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그 당시 싯달타悉達多(Siddhartha) 태자가 부처님 같은 분을 만났으면 다시 말할 것도 없이 고행을 별로 않고서도 깨달음을 성취했겠지요. 그러나 고행으로서 미처 해탈을 못했다 할지라도 욕계 번뇌는 초월하여 범천梵天에 날 수 있는 능력은 얻었던 것입니다. 3아승지겁을 닦아온 부처님인지라 고행을 해도 느낌과 얻음이 다르겠지요. 업장이 무거운 사람은 고행을 하면 그것에만 집착해서 고행을 하려고 하지마는 선량하고 총명한 사람은 고행을 해도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행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부처님께서 물었을 때에 범천梵天에 나는 것이라고 함으로 그러면 하늘에 나는 것은 영생永生을 하고 인생고를 다 벗어나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되물으니까 범천에 난다 하더라도 역시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복이 다하면 다시 타락한다고 대답하니까 부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생로병사를 영원히 떠나는 것이요, 그런 하늘에 태어나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하고 발가바 선인을 버리고서 다시 스승을 찾아간 것이 아라라칼마입니다.

 

아라라칼마Alarakalma는 이른바 수정주의修定主義자로서 선정에 드는 공부를 하는 외도의 스승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대체 어떤 공부를 하느냐고 묻자 무색계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닦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소유처는 무색계의 세 번째 하늘이니 상당히 높은 경계지요. 그러니까 그 당시 인도에는 벌써 선정에 깊이 들어간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을 가리켜 신선, 바라문선인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벌써 욕심을 떠난 단계이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자기 스승과 같은 정도로 무소유처까지 들어가는 삼매三昧를 발득發得했습니다. 무소유처에 들어가 보니 재미가 있고 쾌락도 있으며 분별망상은 거의 가셨으나 아직은 삼계내三界內이기 때문에 해탈의 법락法樂은 못되어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정도 같으면 되겠다 싶어 멈추어 버리겠지요. 수승한 근기와 수승하지 않는 사람의 근기와의 차이는 이런 데에 있는 것입니다. 수승한 근기는 보통 웬만한 것에 절대로 머물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라라칼마한테 무소유처까지 들어가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니까 무소유처정을 닦는 것은 모든 괴로움을 떠나 안락스럽고, 오신통五神通을 얻으며 사후에는 무소유처 천상에 태어나기 위함이라’ ‘그러면 생로병사를 해탈하고 영생을 합니까?’ ‘영생은 하지 못하고 다만 오백대겁五百大劫까지는 살고 그 뒤에는 다시 떨어지게 된다고 대답함으로 부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영생 해탈이 목적이라시며 떠나려 하자 자기 아들로서 자기보다 공부가 한 차원 높은 웃다카라마풋타Uddaka Ramaputta에게 찾아가라고 하여 그에게 갔습니다.

 

웃다카라마풋타에게 가서 스승님은 대체로 어떤 공부를 하십니까?’ ‘나는 무소유처를 지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증득證得하는 공부를 한다고 하여 세존께서는 그곳에서 순식간에 비상비비상처정을 증득證得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비상비비상처를 닦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나서 오랜 세월 동안 천상묘락을 누리기 위함이라’ ‘그러면 그곳에서는 영생을 할 수 있습니까?’ ‘영생을 할 수는 없고 팔만대겁八萬大劫을 살다가 선정의 복이 다하면 떨어진다팔만대겁은 그야말로 삼천갑자 동방삭이보다도 훨씬 더 많겠습니다마는 다시 또 떨어져서 잘못하면 지옥에도 간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생로병사를 해탈함인데 여기도 머물 데가 아니구나. 이제는 스스로 혼자 닦아 나가야겠구나!’ 생각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세 선인仙人들은 그 당시 인도의 위대한 스승이지만 그들의 법은 삼계를 벗어나는 생사 해탈의 법은 못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신명을 걸고 좌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현교顯敎에는 없으나 밀교密敎에 있는 법문인데 보리수하에서 싯달타 태자가 공부를 할 때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경각警覺을 시켰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밀교도 공부를 하다 보면 참고 할 대문이 많습니다. 그것은 뭣인가 하면, 천지 우주가 바로 부처님 아닙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우리 자성불自性佛의 기운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서로 화합되어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자성이 부처가 아니라면 제 아무리 두드리고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될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본래가 부처이기 때문에 자기는 몰라도 사실은 자성불이 부처가 되고자 몸부림치는 것을 우리 중생들이 욕심과 진심과 치심으로써 억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애써서 차근차근 거둔다면 자생적으로 본래 자성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성불은 꼭 내 몸뚱이의 머리나 심장이나 어디에 갇혀 있는 것인가?

자성불自性佛은 바로 무장무애한 우주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침투가 안 된 곳이 없습니다. 자성불은 자기 몸이 되고 우주 만유가 다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설사 스승이 없다 하더라도 정말로 바르게만 닦는다면 꼭 자성불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계행 지키고 한사코 공부하려고 정진해 보십시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바른 스승이 생기고 공부할 처소가 생기는 것입니다. 천지신명은 심심 미묘한 것입니다. 한탄할 것은 자기 번뇌요, 다른 것에 책임을 전가시킬 아무런 것도 없습니다.

 

보리수하에서 싯달타가 그와 같이 이제 다른 이에 의지하지 않고 내 스스로가 깨달아야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할 때, 선정禪定도 벌써 삼계내의 가장 꼭대기인 비상비비상처까지 올라갔다고 할 때 정말로 신묘한 지혜가 발동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삼세제불이 감응感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밀교 경전의 표현을 보면 삼세제불이 경각을 시켜서 즉신성불卽身成佛하는 오상성신법五相成身法을 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 복잡한 것은 생략하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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