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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71)

 

 

게송 음미偈頌吟味

 

1) 순치황제 順治皇帝 출가시出家詩

 

이 시간은 가장 졸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순치 황제順治皇帝 출가시出家詩를 풀이하겠습니다. 저희같이 세속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승려가 못되었으면 숨 막힐 수밖에 없는데, 승려가 되는 길 밖에 달리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와 같이 존귀한 신분으로는 그런 자리를 떠나가기라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순치 황제는 중국 청나라 셋째 임금으로서 마치 한국의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이며 호가 순치입니다. 이 출가 시는 예술적인 시 작품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불법佛法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예부터 우리 불가佛家에서도 많이 회자膾炙하고 있는 셈입니다.

 

신라 때 법흥왕法興王도 출가하고 왕비도 출가하고 그다음에 진흥왕眞興王도 출가하고 진흥왕의 왕비도 출가했습니다. 진흥왕은 출가해서 법명이 법운法雲 이고 왕비는 법류法流라고 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것을 보더라도 역시 과거 숙세에 선근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왕위마저도 능히 뿌리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도 많은 격려를 주는 것입니다. 사실 한 나라의 왕이 되어 권력을 부리고 영화를 누리다가 다 뿌리치고 출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순치 황제는 한국 땅 덩어리 20배가 넘는 중국에서 18년 동안 단 하루도 쉴 새 없이 싸워서 중원中原을 통일 시켰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승리를 얻어서 가까스로 중원을 통일시켜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가 되어 마음대로 부귀영화와 호강을 누릴 수 있는 그 자리를 뿌리치고 나왔으니 얼마나 불심佛心이 장한 분이겠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같이 새겨 봅시다.

 

천하 총림叢林이라 해서, 당나라 때에는 양자강을 중심으로 해서 마조도일馬視道一 스님은 강의 서쪽에 가 있었고 석두희천石頭希遷 스님은 강남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선객禪客들은 강북이나 강남을 오락가락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두 분 다 위대한 도인이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퍽 좋았던 것입니다.

 

특히 방거사龐居士같은 분도, 처음에 강남의 석두 스님한테 가서 문법問法을 했습니다. “만법과 더불어서 짝하지 않는 법이 어떤 법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을 떠난 것이 어떤 법입니까? 의 말이나 같습니다. 그러니까 석두 스님은 입을 딱 틀어막았습니다. 말을 더 못하게 말입니다. 석두 스님은 아주 준엄한 분이기 때문에 말 몇 마디로서 그 사람의 불심佛心을 자아내는 분입니다. 방거사로서는 아직은 뜻을 잘 모르지만 불법이라는 것은 결국 말에 있지 않구나, 나에게 괜히 허튼 말을 말고서 마음을 닦으라는 경책이구나그렇게 짐작을 했겠지요. 그곳에서 확실히는 깨닫지 못해서 다시 강서의 마조 스님한테 가서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법이 어떤 법입니까?” 만법에 끄달리지 않는 법이란 성자의 청정한 무루법無漏法이 되겠지요. 마조 스님 대답이 일구흡진서강수一口吸盡西江水서강西江[양자강] 물을 한 입에 들이마시면 말을 해주마고 하였습니다. 대승법大乘法이란 나를 생각하고 너를 생각하고 그런 자질구레한 것을 생각 할 때에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모양도 관념도 몽땅 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양자강 물을 어떻게 다 들이킬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런 대인적 기풍, 큰 그릇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는 말이겠지요. 방거사가 거기서 확철대오 했다고 합니다.

 

順治皇帝出家詩순치황제출가시

 

天下叢林飯似山천하총림반사산 천하총림 산중에는 먹을 것이 두루 있어

鉢盂到處任君餐발우도처임군찬 발우 들고 가는 곳에 음식 걱정할 것 없네.

黃金白璧非爲貴황금백벽비위귀 이 세상에 귀한 것이 황금백옥 아니로다.

惟有袈裟被最難유유가사피최난 어렵고도 제일인건 가사 입는 일이구나.

 

천하총림에는 밥이 산같이 흔하게 있다는 말입니다. 총림에는 어느 곳이나 먹을 것이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절집은 어디를 가나 조금도 거절 않고서 밥을 주지 않습니까? 가사입고 발우만 가지고 가면 도처到處마다 걱정 없이 마치 임금 부럽지 않게 마음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 밭에 사는 것입니다. 바릿대만 가지고 가면 임금 찬수와 같다는 뜻입니다. 또한 황금이나 백옥같이 빛나는 구슬인 백벽白璧이 귀한 것이 아니라 오직 가사袈裟 입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며 또한 가장 귀하고 어떠한 보물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말 아닙니까?

 

朕乃大地山河主짐내대지산하주 산하대지 모두 얻어 내가 주인 되었어도

憂國憂民事轉煩우국우민사전번 나라근심 백성 걱정 일만 더욱 번거롭다.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육천일 백 년 동안 헤어보니 삼만 육천 날들인데

不及僧家半日閑불급승가반일한 승가 절집 한가로운 반나절만 못하구나.

 

 

내가 중국 중원 땅을 통일을 시켰으니 위세가 당당한 산하의 주인이 되었어도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염려하는 걱정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이 되면 편할 줄 알아도 해 본 사람들의 술회나 전기를 보면 굉장히 괴로운 모양 같습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욱 더 번거롭도다. 우리가 백 년 동안, 날 수를 헤어보면 삼만 육천일인데 날이면 날마다 그와 같이 애만 쓰는 생활이란 승가에서 반나절 동안 아주 한가하고 맑은 수행 생활에 미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悔恨當初一念差회한당초일념차 후회되고 한스럽다 애당초에 일념차로

黃袍換却紫袈裟황포환각자가사 자가사를 물리치고 황룡포를 입었구나.

我本西方一衲子아본서방일납자 내가 본래 서방에서 수행하던 납자인데

緣何流落帝王家연하류락제왕가 무슨 인연 업이 있어 제왕가에 떨어졌나.

 

한스럽고 후회되도다. 차라리 애초에 임금이 안 되었으면 사람도 많이 안 죽이고 업을 더 짓지 않았을 텐데 당초에 생각 하나 잘못한 차이로 가사를 입지 못하고 임금의 곤룡포를 입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임금된 것을 가사 입은 것만 못하다고 할 적에 그 얼마나 장한 뜻이겠습니까?

 

나는 본래 서방의 일납자一衲子라고 하니, 아마 자기 전생에 인도에서 부처님이나 도인들 밑에서 공부를 했던 모양이지요. 임금 정도가 되어 가지고 그 자리를 뿌리치고 나올 때는 어렴풋이나마 과거 전생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선근이 있었겠지요. 나는 본래 서방의 한 납자, 수행자였는데 무슨 인연으로 또 얼마나 업을 지었기에 바로 승려가 되지 못하고 제왕가인 임금 집안에 태어났는고!

 

未生之前誰是我미생지전수시아 생겨나기 이전에는 그 누구가 나였으며

我生之後我是誰아생지후아시수 이 세상에 태어나온 나는 또한 누구인고,

長大成人纔是我장대성인재시아 가까스로 자라나서 어른이 된 나이지만

合眼朦朧又是誰합안몽룡우시수 눈감으면 몽롱하는 그는 또한 누구인고,

 

내가 생겨나기 전에는 누가 나였는가 말입니다. 불교라는 것은 자기가 무엇인가? 하는 내내 자기의 근본 문제 아닙니까? 우리가 습마물什麽物 임마래恁麽來, 그 무엇이 이렇게 왔는고? 하는 것도 자기 문제입니다. 실존 철학도 자기 문제 아닙니까. 내가 생겨나기 전에는 누가 나였었고, 태어난 후에 나는 또 누구인고? 우리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못 가지면 공부를 제대로 여법이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과연 나는 누구고 금생에 태어난 뒤에는 나는 누군고?

 

겨우 가까스로 자라나서 성인이 된 나는 또 누구며 한번 눈감고 몽롱해지면 죽어지는 것인데 죽어서 내세에 갈 나는 누구인고? 그러니까 전생에 나는 누구이고, 금생에 나는 누구이고, 내생에 나는 누구인가? 애쓰고 생활하다 한번 눈감아지면 인생은 그만 아닙니까. 사실 우리가 과거, 현재를 생각할 때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거에 이와 같은 몸이 있었습니까? 이와 같은 눈, 이와 같은 손, 이런 몸 이것은 금생뿐입니다. 과거에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또 그 앞에 과거의 업장 따라 받은 그에 걸맞은 몸이 있었겠지요. 미래는 또 금생에 지은 업에 따라서 미래의 몸을 받을 뿐이지 금생과 같은 몸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몸뚱이는 금생뿐인 일과성一過性의 허무한 존재입니다.

 

百年世事三更夢백년세사삼경몽 백 년 동안 세상살이 삼경밤의 꿈결이요

萬里江山一局棋만리강산일국기 만리강산 다투어도 바둑 한판승부로다.

禹疏九州湯伐桀우소구주탕벌걸 우임금이 세운 나라 폭군 걸왕 탕이치고

秦呑六國漢登基진탄육국한등기 진시황이 육국 삼켜 한고조가 터 잡았다.

 

백 년 동안 한평생 허대는 것이 모두가 다 한바탕 꿈이며 내 땅이요, 내 나라요, 만리강산을 놓고 싸워온 것이 따지고 보면 결국은 한판의 바둑놀이나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임금은 요순시대인 순임금 밑에서 아주 물을 잘 다스렸습니다. 중국은 황하의 범람 때문에 고액苦厄을 많이 받았는데 물 다스리는 재주가 있어서 순 임금한데 인정을 받아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우 임금은 아홉 지역九洲을 잘 다스려 하나라를 세웠으나 그 후손인 걸은 폭군이 되어 탕임금이 걸을 치고서 은나라를 세웠습니다. 옛날에 로마가 망하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나라가 망하듯이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불문하고 그렇게 흥망성쇠는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그다음에 은나라는 다시 주나라에 멸망되고 진시황秦始皇이 주나라 및 6국을 다 삼켜서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나중에 한 나라 한 고조漢高祖가 진 나라를 치고 나라를 세워서 임금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설사 영화를 좀 누렸더라도 그런 세상일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兒孫自有兒孫福아손자유아손복 후손들은 저 스스로 복을 짓고 나왔으니

不爲兒孫作馬牛불위아손작마우 마소처럼 애를 써도 자손 위함 아니로다.

古來多少英雄漢고래다소영웅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다소간의 영웅호걸

南北東西臥土泥남북동서와토니 동서남북 여기저기 흙 구덩에 누웠구나.

 

자손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조상이 아무리 큰 나라를 남겨 준다 해도 방탕한 후손 같으면 당대를 지탱하지 못하고 나라를 망칩니다. 그와 똑같이 어떤 누구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자기 업을 자기가 받으므로 자손을 위해서 애쓴다 해도 자식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손兒孫은 스스로 자기들의 복이 있는 것이니, 자손들을 위해서 말과 소를 사고 또는 말이나 소처럼 애쓰는 것이 자손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답게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보배가 되겠지요. 옛날부터 많은 영웅들이 지금은 모두 다 죽어서 여기저기 흙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왕릉이 산더미같이 큰들 무슨 필요가 있고 권속이 삼대같이 많은들 진정한 해탈의 행복에 그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來時歡喜去時悲내시환희거시비 태어날 때 기뻐하고 죽을 때는 슬프지만

空在入間走一回공재인간주일회 공 가운데 부질없이 돌다가는 인간이요,

不如不來亦不去불여불래역불거 그대로도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이 아닌데

也無歡喜也無悲야무환희야무비 기쁠 것도 슬플 것도 또한 역시 없는 거네.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 기뻐하고 죽을 때는 슬퍼하는 것이나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부질없이 공 가운데서 한 바퀴 돌다가는 것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사실 허망하니 부질없이 한 세상 빙빙 돌다 가는 것입니다. 잘못 살면 업만 더하고 잘 살면 업이 좀 적을 뿐이겠지요. 기왕 태어났으면 밑져서 가면 되겠습니까? 과거 전생에 그래도 무던히 지었기에 사람이 되었는데 금생에 파계 무참한 짓만 한다면 결국은 밑지고 가는 것 밖에는 안 되겠지요. 불여불래역불거不如不來亦不去, 무거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라는 법문도 있듯이, 그대로 머물지도 않고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라, 날 때는 기뻐하고 돌아갈 때는 슬퍼하지만 생각해 보면 허망하게 한 세상 그저 꿈같이 살다가 가는 것인데, 본래에서 본다면 머무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데 본래에서 본다면 기뻐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每日淸閑自己知매일청한자기지 매일 맑고 한가하니 자기 자신 깨달아서

紅塵世界苦相離홍진세계고상리 홍진세계 괴로움을 남김없이 여의고서

口中吃的淸和味구중흘적청화미 청정하고 평온하게 선열락을 음미하니

身上願被白衲衣신상원피백납의 내 몸 위에 누더기를 걸치는 것 원이로세,

 

매일 맑고 한가하니 자기를 알고 자기를 깨달아 홍진세계, 때 묻은 세상의 괴로움을 여의고 청정하고 평온한 선열락을 음미하게 되니 내 몸에 오직 누더기 걸치고 공부하는 것만을 서원하는 뜨거운 구도求道 정신입니다.

 

五湖四海爲上客오호사해위상객 오호사해 천지간에 가장 높은 손님되어

逍遙佛殿任君棲소요불전임군서 불전에서 소요하니 임금 살이 부럽잖다.

莫道出家容易得막도출가용이득 도에 들어 출가함이 용이하다 하지 마라

昔年累代重根基석년누대중근기 예로부터 누대 동안 선근 쌓은 공덕이다.

 

오호五湖는 중국에 큰 호수가 다섯 군데 있으니까 중국을 대신하는 말이요 사해四海는 세계를 말합니다. 중국이나 세계나 모든 천지에서 출가사문인 상객上客이 되어 부처님 도량을 소요하면 임금 살이 보다 수승하다는 뜻입니다. 출가가 쉽게 얻은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출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속이 싫어서 출가한다 하더라도 과거 전생에 역시 선근을 많이 심어서 현세에 살기가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현세에 감투를 쓰고 호강하는 것이 아무런 가치 있게 안 보이기 때문에 출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출가가 쉽게 얻어진다고 말하지 말라. 예로부터서 누대 동안 두고두고 선근을 쌓은 공덕이라, 우리는 그런 공덕을 지금 쌓은 과보로 해서 출가사문이 되었습니다.

 

十八年來不自由십팔년래부자유 열여덟 해 사는 동안 자유라곤 없었구나!

山河大戰幾時休산하대전기시휴 산하에서 큰 싸움에 몇 차례나 쉬었던고,

我今撒手歸山去아금철수귀산거 내가 이제 뿌리치고 절산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나관천수여만수 천만 가지 온갖 시름 어이하여 상관하리.

 

순치 황제는 18년 동안 왕위에 있다가 떠났습니다. 18년이나 산하에서 큰 싸움을 벌려 큰 나라로 이룩한 것입니다. 그러니 18년 동안 얼마나 부자유스러웠으며 큰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몇 차례나 안온하게 쉬었을 것인가? 도저히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애쓰고 싸우고 위험한 고비도 많이 넘겨 왔는데 이제는 손을 뿌리치고 산으로 돌아가니, 만 가지 시름과 천 가지 시름이 어찌 나와 더불어 할 것인고! 나한테는 그런 많은 시름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순치 황제 출가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거에 나는 누구였던가? 또는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 또는 앞으로 죽어서 몽롱하니 눈감고서 돌아가는 나는 대체로 누구일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수행자는 념사念死,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대체로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내 죽음은 언제 올 것인가? 또는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수행자가 그때그때 번뇌를 여의는 방편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아무튼 과거의 나 또는 현제의 나,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꼭 가져야 합니다. 그 표준은 규범規範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규범은 필경 부처님의 바른 정법正法을 떠나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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