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33

 

 

부처님 법은 불가사의 법인데 이 화엄경(華嚴經), 화엄경은 부처님 같은 경전 가운데도 소승이나 대승이나 모든 그런 법문을 다 총 망라했단 말입니다. 그런 총 망라한 법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들의 안목에는 다 이해할 수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가령 화장세계(華藏世界), 화장세계는 그야말로 참 훤히 핀 그 연꽃 같은 세계, 연꽃도 그냥 연꽃 같은 세계일 뿐만 아니라 광명(光明)으로 충만 된 세계란 말입니다. 광명으로 충만 된 세계이기 때문에 이른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그때는 바로 말하면은 광명세계(光明世界)입니다. 광명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는 광명세계가 바로 실상세계(實相世界)입니다.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이것은 하나의 가상세계(假想世界)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자체가 지금 어떠한 정도가 돼있는가? 우리가 지금 범부인가 성인인가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만큼 모든 것의 참다운 모습을 알고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한 깊은 내성이 필요합니다. 자기 존재 한계를 알아야 보다 깊은 진리를 탐구하게 되겠지요. 화장세계 즉 광명세계인데 광명세계는 그 끝도 갓도 없이 광명으로 충만 된 세계입니다. 그런 광명도 태양 광선이나 또는 다른 엑스레이(Xray) 그런 광선이나 말입니다. 그런 정도의 광선이 아니란 말입니다.

 

바로 생명(生命)의 광명입니다. 태양광선이나 엑스레이 광선이나 그런 것은 기멸(起滅)이 있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있지마는 부처님 세계인 그 광명세계, 광명은 낳고 죽음도 없고 일어나고 소멸도 안 되는 영원히 존재하는 그러한 생명의 광명세계입니다. 따라서 그 세계는 바로 모든 세계의 근본자리입니다. 우리 마음도 역시 광명으로 충만 된 그런 세계입니다. 또는 다른 산천초목(山川草木)이나 하늘에 있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나 모두가 다 그런 것도 모양은 산이요 냇이요 또는 해요 달이요 그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근본 본바탕에 있어서는 모두가 다 광명세계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연기법(緣起法)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들으셨지요.

연기법을 모르면 불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도 연기를 알면 부처를 아는 것이고 부처를 알면 바로 우주의 진리 법을 안다그런 말씀을 하셨단 말입니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연기법을 소개하시는 분들이 그냥 그 소승연기, 소승연기법(小乘緣起法)을 주로 말씀하시고 대승연기법(大乘緣起法)은 별로 말씀을 안 하신단 말입니다. 다 그럴 바는 아니지만은 일반 그 학자분들도 그런 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대승연기법을 별로 말씀을 안 하신단 말입니다. 그러나 대승연기법을 말씀하셔야 그래야 온전한 연기법이 됩니다. 대승연기법을 제가 말씀드리기 전에 대승과 소승에 대한 간단한 그런 한계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소승불법(小乘佛法)에서는 모든 것이 상식적으로 우리 인간이 보는 그대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그런 쪽에다 주로 말씀을 하셨고, 또는 더 나아가서는 모든 것은 다 참다운 나랄 것이 없이 내 몸뚱이도 지수화풍(地水火風) 4(四大)와 또 우리 의식(意識)은 우리 관념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 우리가 감수(感受)하고 상상(想像)하고 의욕(意慾)도 하고 우리가 분별시비(分別是非)하고 그런 것이 합해서 우리란 인간존재가 있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인제 이런단 말입니다.

 

즉 잠시간 물질적인 요소와 또는 정신적인 요소가 합해서 우리 인간존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씀합니다. 즉 따라서 그런 것은 모두가 다 허망무상(虛妄無常)하지 않는가? 물질적인 존재도 시시각각으로 전변(轉變) 무상(無常)해서 변화무상한 것이고 우리 마음도 역시 우리가 감수 하는 것이나 우리가 상상 하는 것이나 우리 의욕이나 모두가 다 순간순간 그 지나가고 만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관념이나 우리 육체나 기타 이 우주를 구성한 모든 것은 다 다 허망한 거란 말입니다. 허망무상한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존재하는 것이지 참말로 실지로 있지가 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경전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包影)이라, 이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 이것은 꿈이나 또는 허깨비나 그림자나 또는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나 이런 것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로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먼저 이러한 그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모두가 다 무상 한 것이다. 항상 존재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건부로 잠시간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알으셔야 됩니다.

 

그렇게 알아야 욕심도 낼 필요가 없는 것이고 감투나 그런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이 혼미를 느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중요한가 잘 모르니까 이것저것 우선 우리 범부 중생의 눈으로 좋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고 하지만은 그 눈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가 다 정말로 다 꿈같은 것이다. 분명히 안다고 생각할 때는 그런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소승불법은 주로 방금 제가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이 상식적으로 보는 이런 것은 잠시간이지 만은 무상한 것이지만은 존재한다고 본단 말입니다.

 

또는 내 몸뚱이나 내 마음도 나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 이와 같이 존재 한다고 본단 말입니다. 이런 차원의 가르침이 소승불법입니다. 지금도 참다운 가르침은 그야말로 심오(深奧)해서 잘 알 수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2500년 이상 그 오랜 옛날에 또는 일반 사람들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 것이고 무식 대중이 대부분인데 말입니다. 그런 때 있어서 부처님께서 고도한 그런 법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차원에서 말씀을 하셔야 되겠지요.

 

그러나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그 상식적인 차원에서 말씀을 하셨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본뜻은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불법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인생의 번뇌(煩惱)는 놓을 라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고는 없앨래야 없앨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그냥 우리가 생각하고 또는 우리말도 함부로 하고 또는 행동도 우리가 함부로 하고 이런 차원에서는 업()만 짓고, 업을 지어 놓으면 또 필연적으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되겠지요.

 

그러나 부처님 법의 대요는 우리 인간존재나 삼계 모든 존재의 그런 고통을 떠나게 해서 영생해탈(永生解脫)의 영원한 행복(幸福)을 우리한테 맛보게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란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은 그 중생 차원에서 근기에 맞추어서 하신 법문은 이것은 소승불교인데, 소승불교는 우리 인간의 그런 고통이라든가 인간 번뇌를 모조리 소멸을 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 근기가 조금 그 순숙(純熟)돼서 좀 익어져서 성숙단계에 이르를 때는 그때는 대승불법(大乘佛法)을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대승법 초기에는 주로 제법(諸法)이 공()이라 여러분들 반야심경(般若心經), 반야심경을 항시 외이시고 또 금강경(金剛經)도 여러분 외이시지 않습니까.

 

반야심경 도리나 금강경 도리는 모든 법이 본래(本來)로 공()이다. 이런 소식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법이 본래로 공이라는 소식을 모르시면 대승불법이 못 됩니다. 대승불법이 못 되면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 인생고(人生苦)를 인생의 그런 고액(苦厄)을 모조리 없앨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인들은 깊이 명심 하셔야 됩니다. 인생고를 떠나서 영생해탈의 참다운 자기, 참다운 자기를 발견해서 영원한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 불법인데 방금 제가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불법은 그냥 그렁저렁 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생각이 발라야 됩니다. 우리 생각이 바르다는 것은 뭣인고 하면은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못 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중생은 그 무명심(無明心) 때문에 무지(無智) 때문에 어두워서 탐욕심(貪慾心)이나 또는 성 내는 마음이나 또는 어리석은 마음이나 그런 마음을 항시 지금 내고 우리가 업장을 짓고 있단 말입니다.

 

이래서는 우리가 항시 제자리걸음, 금생에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다시 또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때는 고통을 맛보고 생사(生死)를 떠날 수 없겠지요. 부처님 법은 생사를 초월해서 앞서도 영원한 영생의 죽지 않는 그런 행복을 우리가 얻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 이 보다도 더 귀중하고 더 심오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어떠한 것이나 모두가 다 부처님 법 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승려라고 해서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서구(西歐)의 그런 지성들이나 말입니다. 동양의 그런 위대한 학자들이나 모두가 지금은 그렇게 인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과 우주의 그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 인생과 우주의 근원자리 이러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면 제대로 밝히지를 못했다 이런단 말입니다. 기독교나 유교나 도교나 이슬람교나 그런 종교도 마찬가집니다. 모두가 다 부처님 법 가운데가 다 들어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많으면 그런 것을 아주 예를 들어서 증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만은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어느 것이나 심오하고 심오하지 않고 또는 이 정밀 현대의 정밀과학이나 말입니다. 모두가 다 부처님 법에 다 들어 있습니다. 아까 제가 지금 일반분들이 소승연기법을 주로 말씀하시고 대승연기법을 별로 말씀 안하신다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근데 대승연기법 대승연기법을 꼭 깊이 새기셔야 됩니다. 대승연기법을 새겨 두셔야 그래야 우리 생활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대승연기법은 이것은 마명(馬鳴)대사(大師) 마명스님은 부처님으로 부터서 정통조사 가운데 12대째 분입니다. 열두 번째 조사가 마명대사입니다. 마명대사는 대승불교의 할아버지라고 하는 그런 분입니다.

 

마명대사가 내 놓으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라, 일어날 기(), 믿을 신(), 대승의 믿음을 일으키는 대승의 믿음을 내는 그러한 내용을 담은 경전이 대승기신론입니다. 우리 스님네는 다 공부를 하셨지만 일반 불자님들은 대승기신론을 안 보신 분들은 꼭 지금 한글로 풀이한 것도 있으니까 꼭 보시기 바랍니다. 대승불법의 할아버지 같은 분이 마명스님인데 마명스님께서 비로소 그 대승의 참다운 신앙을 일으키는 그러한 법문을 체계 있게 말씀하신 것이 대승기신론입니다.

 

부처님 법문은 대승 소승을 다 포함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는 중생의 그릇이 짧아서 어려운 법문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승법문은 될수록 숨기고 말입니다. 중생이 아는 그런 차원 법문을 많이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가 조금 성숙한 다음에는 꼭 대승법문을 해야 온전히 중생을 다 중생의 고액을 완전히 제도 할 수가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신데서 마명대사가 대승기신론을 냈단 말입니다.

 

대승기신론 가운데서 이른바 대승의 연기법이 있습니다. 연기법, 연기법이란 것은 인연 연(), 일어날 기(), 무엇으로 부터서 인연이 화합되어서 무엇이 된다. 쉽게 말하면 그런 것입니다. 어느 것이나 조건이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의 만법은 모두가 조건부(條件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헌데 그런 조건부도 역시 소승연기법은 이것과 저것과 합해서 된다. 상대적인 무엇 무엇이 어울러져서 무엇이 있다 이런 정도란 말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그런 식이란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우리인간의 참 깊은 그런 뿌리 깊은 번뇌를 다 녹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는 그런 연기법은 부처님 법의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서 하신 그러한 법문은 못 됩니다. 대승연기법은 뭣인고 하면은 우리 중생의 제한된 안목에서는 안 보인다 하더라도 이 우주에는 본래로 근원적으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존재합니다. 이런 부처님 술어는 여러분들이 꼭 외어 두셔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제 불법을 그냥 그렁저렁 상식적인 차원에서 공부하지 않고 정말로 깊이 있는 우리 생명 자체의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