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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78)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12)

 

5) 재앙의 연유를 아는가?

 

시대가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들며, 사람마다 자기 직업을 즐겨 생산에 힘쓰고, 나아가 자비와 평화인애겸양을 서로 행하고 본받아 미풍양속을 이룬다면, 설령 어쩌다 열에 한둘 정도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저절로 착하게 감화될 것이오. 대들보 위를 넘어 오는 군자(梁上君子)를 불쌍히 여기면, 그가 도둑질을 영원히 끊을 것이고; 방안에 숨어 들어온 좀도둑에게 선뜻 베풀어 주면, 그 뒤로 금방 착한 선비가 될 것이오.

 

옛 사람들은 인애와 자비로 정치를 하여, 백성들을 친자식처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오. 심지어 다른 종류의 중생들까지 감화시켜, 호랑이가 영역 안에 들어오지 않고, 물고기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따위의 상서로운 조짐이 자주 나타났소. 역사 책에 기록되어 전하는 사례만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소. 정말로 각자 자비와 선량으로 대하기만 한다면, 불량배나 도적들이 창칼을 들고 양민을 약탈하거나 유린하는 난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불법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하고(下學上達 :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인용), 처음부터 시작하여 끝까지 마치는, 가장 중요한 도()임을 반드시 알아야 하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위로는 존경할 만한 도()가 없고, 아래로는 준수할만한 법()이 없이, 서로 해치고 죽이는 짓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소.

 

단지 자기의 뜻만 통쾌하길 꾀하면서, 국가 민족의 존망이나 민생의 고통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행태들은, 모두 인과응보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폐단들이오. 그래서 나는 늘상 인과(因果)야 말로 세간과 출세간을 막론하고, 성인이 천하를 평안히 다스리고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대권(大權)이다.” 라고 강조한다오. 지금 세상에 만약 인과응보의 법칙과 생사윤회의 이치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설령 부처님과 조사들, 성현들이 한꺼번에 나오신다고 할지라도, 천하가 태평스럽고 백성들이 안락하도록 다스릴 방도가 달리 없을 것이오.

 

세상에 도덕이 쇠퇴하고 인심이 각박해진 것은, 지금까지 속된 유생(儒生)들이 도덕이 실천궁행에 있는 줄은 모르고, 줄곧 말단 지엽만 좇아 왔기 때문이오. 무릇 유가에서 가장 중요한 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 감정욕망을 이기고 예의로 돌아감)’ 한사존성(閑邪存誠 : 사악함을 막고 정성을 간직함)’ 같은 이치는 내팽개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오.

 

그리고는 오직 사장(詞章 : 詩詞文章)을 암송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출세하는 밑천으로 삼았소. 다시 말해, 성인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참구하여 만물 중생을 교화 양육하던 근본적인 도(), 명리(名利)와 부귀영달을 얻는 수단적인 기예()로 전락해 버린 것이오. 성인을 모독하고 멸시당하며, 천지를 위배하고 거역함이 지극히 막심하오.

 

그래서 글공부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글의 의미도 모르고, 몸으로 글의 이치를 실행하지 않았소. 그을 지을 때는, 으레히 효도()우애()충실()신의()예절()청렴()수치()의 도덕을, 터럭만큼도 빠뜨리지 않고 기막히게 표현해 낸다오. 하지만 실제 마음 쓰고 일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러한 분위기가 전혀 없는 것이오. 정말 배우가 연극하는 모습과 똑같소.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을 꼭 진짜처럼 연출해 내지만, 사실은 자기의 속마음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가식일 따름이오.

 

이런 폐단이 한번 시작된 뒤 점차 극심해져, 진위(眞僞)와 본말이 분간조차 하기 어렵게 뒤섞이고 말았소. 그래서 천부의 자질을 타고난 인재들이, 대부분 망령되고 미친 짓들을 익숙히 배우면서, 요순임금이나 주공(周公)공자 같은 성인의 발자취를 본받아 따르기를 아주 수치스럽게 여겨 왔소.

 

심지어 성인의 경전을 내버리고 서구화를 숭상하여, 한 사람 제창에 백사람이 부화뇌동 하는 풍조가 크게 일고 있소. 마침내 사악하고 비열한 소인배들이 거리낌 없이 제 생각을 마음대로 자행하려고, 자기에게 장애가 되는 건전한 윤리강상(倫理綱常)을 봉건 유물로 매도하여 뒤집어엎고, 군중들에게 크게 해로운 도적 짓을 성급히 저지르려는 주장까지 제창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소.

 

그러니 백성들은 평안할 리가 없고, 천재지변과 인재(人災) 사고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오. 국가 운명은 위태롭기 짝이 없고, 민생은 갈수록 도탄에 빠지고 있소. 이들의 짓은, 밤길을 가는데 등불을 없애고, 물길을 가는데 배를 빼앗는 것과 같소. 그러니 밤길에 넘어지지 않고, 물길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소?

 

근래 세상의 도덕과 인심이 극도로 타락하고, 천재지변과 인재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소. 세상을 걱정하는 지혜로운 선비들은, 이러한 과보가 모두 살생의 죄업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오. 다른 동물도 살생해서는 안 되는 줄 안다면, 더구나 죽일 리는 절대 없을 것이오. 이로부터 각자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으로 서로 돕는다면, 저절로 풍속이 개선되고, 천지자연도 화기(和氣)로 감응할 것이오.

 

방생(放生)은 원래 살생을 금지하는 것이고, 살생의 금지(戒殺)는 반드시 채식으로부터 시작됨을 꼭 알아야 하오. 만약 사람마다 각자 살생을 금지하고 채식을 한다면, 집안 분위기가 자비롭고 선량해지며, 사람들의 행실이 예절 바르고 후덕해질 것이오. 풍속이 순박해지고, 날씨가 온화하며 농사가 풍년이 든다면, 어떻게 총칼을 들고 서로 해치는 병란이 생길 수 있겠소?

 

이것이 바로 천재지변과 인재사고를 예방해소하고, 근본바탕을 청정하게 바로 잡을 수 있는 제일 요긴한 방법이오. 무릇 집안이 화목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며, 천하가 태평스럽고 백성들이 안락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모두 살생을 금지하고 방생을 실행하며 채식으로 염불하는 가운데서 구하기를 부탁하오. 그렇게만 구한다면, 얻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