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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74)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8)

 

4) 채식은 지계와 자비 수행의 밑바탕

 

그런데 후세에 성현의 도가 스러지고 교화가 쇠퇴하면서, 사람들이 심성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마침내 너나할 것 없이 육식을 집안의 다반사로 습관들이게 되었구려. 자기 한 입만 챙기느라, 다른 생명의 고통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않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다행히 불교가 전래된 이후,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모르면 생사윤회가 그칠 날 없고, 이를 깨달으면 열반을 증득하여 영겁토록 상주한다는, 진실한 원리와 사실이 철저하게 밝혀졌소. 그래서 고물고물한 모든 중생이 과거에 우리 부모였고, 미래에 부처가 될 것임을 알게 되었소. 그러니 감히 잡아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 모두가 각자 자기 자기를 얻도록 해주어야 마땅하오.

 

아니나 다를까, 역대로 거룩한 임과 현명한 신하, 지혜로운 선비와 뛰어난 유생들은, 대부분 부처님의 가르침을 높이 받들어 따르면서 인자한 덕성을 함양하였소. 더러는 육식을 끊고 채식을 하며, 더러는 살생을 금하고 방생을 널리 행하였소. 그토록 훌륭한 덕행과 아름다운 말씀들이 역사책에 수없이 실려 전해지는 것은, 후세 사람들도 이들을 본받아 함께 자비심을 수양하고 만 생명을 사랑하도록 권장하는 가르침이 아니겠소?

 

사람과 다른 동물은 모두 똑같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을 받았으며, 또한 똑같이 지각과 의식 있는 영혼과 심성을 지니고, 같은 천지 사이에 살아가고 있소. 다만 숙세의 죄업과 복덕이 서로 달라, 지금처럼 각기 다른 형체와 의식 수준으로 나뉘었을 뿐이오. 내가 강하고 저들이 약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 살코기로 내 뱃속을 채우면서 쾌락과 만족을 누리는 일이, 바로 전생 복덕의 보답이라고 내세울 수 있겠소?

 

그 복덕이 한번 다하고 나면, 죄업의 과보가 눈앞에 닥쳐 다른 동물로 떨어지고, 마침내 사람들의 부림을 받다가 살육을 당할 줄 누가 알리오? 그 때 몸으로 대적할 수도 없고 입으로는 말도 못하며, 마음속에 차오르는 근심과 두려움과 고통에 휩싸인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기를 먹은 게 큰 죄악이었고, 고기를 먹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나찰임을 알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막고 싶어도, 그때는 이미 어찌할 수 없는 궁지일 뿐이오. 한때 입맛을 위해 미래세 오랜 겁토록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니, 이는 자살에 비해 만 배나 더 참혹하고 끔찍스러운 짓이 분명하오. 어찌하여 이런 짓으로, 그처럼 엄청난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인단 말이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찌 그리도 어리석고 미혹되었단 말이오.

 

그래서 능엄경에 사람이 양을 잡아먹으면, 양은 죽어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은 죽어 양이 된다.” 하였소. 또 입능가경에도 세존께서 고기 먹는 것을 갖가지로 질책하시면서, 모든 중생이 시작도 없는 때부터 생사윤회를 끊임없이 반복해오면서, 서로 부모형제나 처자 또는 친구의 인연을 맺어 왔는데, 지금 생명을 바꾸어 짐승으로 태어났다 해서, 어찌 그들을 함부로 잡아먹을 수 있느냐고 탄식한 내용이 나온다오.

 

다른 생명을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면, 티끌처럼 무한한 영겁의 세월토록 서로 죽이고 잡아먹기를 반복하는데,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며 위아래가 끊임없이 뒤바뀌듯, 윤회보복이 계속된다는 거라오. 사마타(奢摩他; 禪定)와 부처님 출현을 기다려야만, 비로소 그 복수의 사슬이 끊길 수 있다고 하오. 그런데 사마타의 도를 어디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더구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때는 어디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것이오? 그러하거늘, 우리가 가까이는 앞선 성현들의 언행을 본받고, 멀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가 감히 있겠소? 우리가 죽기 싫어하는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여, 지금 잡혀 요리되기를 기다리는 목수들을 건져 준다면, 숙세의 업장을 덜어 내고 착한 복덕의 뿌리를 심어기를 수 있으며, 나아가 살해의 원인을 영원히 끊어버려 함께 무궁토록 장수하는 과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과거 부모이자 미래의 부처이기도 하오.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보호하고 구제하여도 오히려 부족할까 걱정해야 할 판에, 어찌 한 순간 우리 입과 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몸을 죽인단 말이오?

 

물이나 허공, 물속에서 기고 날고 헤엄치는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영명(靈明)한 지각(知覺)과 의식을 갖추었으나, 단지 숙세의 업장이 몹시도 깊고 무거워 우리와 다른 모습의 몸을 받은 걸 우리는 알아야 하오. 비록 그들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먹을 찾고 죽기 싫어 피하는 꼴을 보면, 그들 역시 우리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달을 수 있지 않소?

 

우리는 다행히도 전생의 복덕에 힘입어 인간으로 태어나 지혜로운 마음까지 받았으니, 마땅히 만물이 모두 우리와 똑같이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생겨난 동포임을 알고, 형제의 우애를 도탑게 다해야 할 줄 아오. 그래야 인간이 하늘 및 땅과 함께 삼재(三才)로 자부하며, 천지자연의 생장 변화 이치(眞理)를 참구하고 보필한다는 대의명분이 부끄럽지 않게 되오. 인간과 중생이 각각 자기의 자리를 얻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평화롭게 공존공생하며 타고난 천수(天壽)를 다해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천지자연이 만물의 생명을 낳아 기르는 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의 입맛이나 즐기고 뱃속이나 채우려는 생각만 품고, 자기가 좀 가아하고 재능 있다고 약한 그들을 마음대로 잡아 그 고기를 먹는단 말이오? 그러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전생에 쌓아 둔 복덕이 다하고, 살생의 죄업이 눈앞에 나타나는 날이 닥칠 것이오. 그 때는 인간의 얼굴과 모습을 가꾸고 싶지 않더라도, 업력(業力)에 따라 그들과 서로 자리를 바꾸어 잡아먹히는 꼴이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