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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76)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10)

 

4) 채식은 지계와 자비 수행의 밑바탕

 

하물며 명색이 신명이라면, 반드시 총명하고 정직한 덕성을 지니고, 마땅히 사람들이 지은 선악대로 화복을 공평히 내리는 원칙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가축을 죽여 자기에게 제사 지낸다고, 죄악을 지은 자라도 복을 내려주고, 반대로 자기에게 희생을 바쳐 제자 지내지 않으면, 선행을 행하는 이에게도 재앙을 내일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면, 그 신명의 심성과 덕행은 시정(市井) 잡배와 다를 게 뭐가 있겠소? 그런 존재를 어떻게 총명하고 정직한 신명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소? 총명하고 정직한 신명이라면, 결코 이러한 요괴(妖怪)나 마귀(魔鬼)같은 짓은 하지 않으며, 오직 도덕(道德)과 인의(仁義)에 따른 일만 행할 것이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단지 육식이 좋은 걸로만 여기고, 마침내는 자기가 피비린내 나는 더러운 음식을 탐닉하는 것처럼, 신명 또한 그러한 줄로 잘못 미루어 짐작하는 게요. 그래서 서로 본받아, 아무도 잘못인 줄 모르는 것이오. 비유하자면, 고자리가 똥을 먹으면서, 하늘의 신선도 당연히 자기처럼 그렇게 훌륭한 맛을 즐기리라고 착각하고, 늘 그 똥을 신선에게 바쳐 복덕을 내려 주길 바라는 것과 같소.

 

사실 지금 도살당하는 저 짐승들은, 거의 대부분이 모두 과거 전생에 다른 희생을 잡아 신명께 제사 지내던 자들로, 지금 자기 살을 먹는 사람들이 당시 자기가 저지른 살생의 과보를 갚아 주기만 바라는 처지라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일반 대중은, 아직도 짐승을 잡아 신명께 제사 지낸다는 소문을 들으면, 곧 기뻐 날뛰면서 큰 복덕을 짓는 일로 여기는구려. 장래에 자신들이 이러한 짐승으로 바꾸어 생겨나 사람들에게 도살 될 때는, 이미 입은 있지만 말은 할 수 없고, 죽음을 피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처지가 될 거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이오.

 

하물며 불법(佛法)에 깊숙이 들어가 부처님의 가장 큰 기본 계율을 받아 지니고, 평생토록 채식하기로 결심한 출중(出衆)한 고매한 사람이, 아무 까닭도 없이 육식을 탐닉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써가면서까지, 수없는 생명을 죽여 신명께 제사 바치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겠소? 그러한 짓은 천리(天理)에 어긋나고 성현을 모독하는 패역무도한 죄악으로, 미래 영겁토록 매 생애마다 그렇게 피살당하는 짐승이 되는 과보를 받을 것이니, 어찌 몹시 슬프지 않겠소?

 

세상 사람들은 질병이 있거나 위험과 재난 등이 있는 경우, 염불로 기도하고 선행을 닦을 생각을 안 하고, 망령되이 귀신에게 제사 지내 도움을 청하려 들기 일쑤요. 그래서 산목숨을 죽이니, 본디 재난을 초래한 업장에, 살생의 죄업을 새로 덧보태는 셈이오. 정말 불쌍하기 짝이 없소.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외부 환경의 인연(因緣), 대부분 전생의 업장 때문에 말미암는 것이오. 그래서 질병이나 고난이 생기면, 곧 염불과 선행을 닦고 숙세의 죄업을 참회하는 게, 최상의 해결 방편이자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오. 그렇게 하여 업장이 소멸되면, 질병도 낫고 재난도 점차 사라지는 것이오. 귀신들은 자기들도 아직 업장의 바다(業海) 가운데 잠겨 있는 형편인데, 어떻게 사람들의 업장을 소멸시켜 줄 수 있겠소?

 

설사 막대한 위력을 지닌 정직한 신명(正神)이라 할지라도, 그 위력은 부처나 보살에 비하면, 마치 반딧불을 햇빛에 견주는 것과 같다오. 불제자(佛弟子)로서 부처와 보살께 기도하지 않고 귀신에게 기도하는 일은, 부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사견(邪見)이라는 걸 알지 않으면 안 되오.

 

또 일체의 중생이 모두 과거의 부모이자 미래의 부처들이므로, 이치상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며, 모든 중생의 목숨을 아끼고 사랑해야 마땅하오. 세속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라, 부모에게 진수성찬을 봉양하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은, 절대로 품어서는 안 되오. 불법을 들어보지도 못한 일반 속이들이야 육도윤회와 인과응보의 사리를 모르기 때문에, 부모에게 진수성찬 바치는 것이 효도라는 사견과 망언을 일삼을 수 있고, 또 그 허물을 용서받을 수 있소. 그러나 이미 불법을 들어 이치를 안 사람이, 과거의 부모 친척을 살해하여 현재의 부모를 봉양하거나 장례 또는 제사 지내는 행위는, 단지 효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곧바로 천리(天理)와 불법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패역무도가 된 다오.

 

그래서 통달한 선비와 지혜로운 사람들은, 불법의 진실한 이치를 들으면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한결같이 세속의 임시방편적인 절충 법문에 따르려 하지 않는다오. 이러한 임시방편의 절충 법문은, 아마도 세속 중생의 미혹된 감정에 잠시 따라주는 타협안으로 세워진 것이 분명하며, 삼세의 인과법칙을 통달하는 여래의 정도(正道)는 결코 아니라오.

 

세상의 모든 악업 가운데, 살생이 가장 무겁소. 온 천하를 통틀어 살생의 죄업을 전혀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마 씨도 종자도 없을 것이오. 설사 평생토록 산목숨을 몸소 죽인 적이 결코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매일같이 육식을 하면 곧 매일같이 간접 살생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오. 살생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고기를 얻을 수가 없지 않소? 사실 백정(도살업자)이나 사냥꾼, 어부들은, 모두 육식하는 사람의 수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대신 살생을 하는 것에 불과하오.

 

그러나 육식을 하느냐 채식을 하느냐 문제는, 실로 우리의 성품과 정신이 항상 승화하느냐, 타락 침몰하느냐에 직접 관련되오. 나아가 천하 통치가 태평성대를 이루느냐, 혼란무도에 빠지느냐 에도 근본 원인이 된다오. 따라서 결코 사소한 일로 하찮게 여길 수 없소.

 

요컨대, 자기 목숨을 자중 자애하고 천하 백성을 두루 사랑하여, 모든 사람이 안락하게 건강 장수하며 뜻밖의 재난과 사고에 당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들은, 마땅히 살생을 끊고 채식을 몸소 실천하며 널리 권장해야 할 것이오. 채식이야말로 천재지변과 사고를 예방하고 줄이는 제일 신묘한 법문이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