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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72)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6)

 

3) 운명을 바꾸는 노력이 진정한 수행

 

불교에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지나간 죄업을 참회하고 과오를 고치며 선행을 닦아, 중생으로 하여금 지나간 죄업을 참회하고 과오를 고치며 선행을 닦아, 반드시 어떠한 악도 짓지 않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도록 가르친다오. 계율로서 몸을 붙들어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하지 않고, 선정으로 마음을 추슬러 잡념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혜로써 미혹을 끊어버려 본래 성품을 환희 보는 것들이, 모두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수행의 노력이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수행하면, 위로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거늘, 하물며 그보다 낮은 과보들이야 얻지 못하겠소? 그래서 능엄경(楞嚴經)에 아내를 구하면 아내를 얻고,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조용하고 정조 있는 아내를 구한다는 뜻이오. 그렇지 않다면, 속된 아내야 어찌 굳이 보살께 구한단 말이오?) 자식을 구하면 자식을 얻으며, 장수를 구하면 장수를 얻고, 삼매를 구하면 삼매를 얻으며, 이렇듯이 계속 나아가 대열반을 구하면 대열반을 얻을 것이라 말하였소. 대열반이란 최고 궁극의 부처님 과보인데, 이러한 것조차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얻으리니, 그 노력의 위대함이 어찌 한계가 있겠소?

 

원료범(袁了凡) 선생이 공()선생을 만나, 자기의 전후 일들을 계산해 준 것이 하나하나 모두 딱 들어맞아 가자, 마침내 운명이란 처음부터 한번 정해진다고 믿었다오. 그런데 나중에 운곡(雲谷)선사를 만나 그 가르침을 받고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수행해 나간 결과, 공 선생이 전에 계산해 준 운명이 더 이상 조금도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오.

그러나 거꾸로 원료범 선생 같은 현인도, 만약 나쁜 짓을 함부로 자행했다면, 공 선생이 계산해 준 운명이 역시 들어맞지 않게 되었을 것이오.

 

이런걸 보면, 성현들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침에는, 오직 수행의 노력을 중시하며, 여래께서 중생을 교화함에도 또한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소. 그래서 부처님이 설하신 대승이나 소승, 권의(權宜)나 실상(實相)의 법문들이, 어느 것 하나 중생들로 하여금 허망한 미혹의 업장을 완전히 끊어 내 버리고, 본디 갖추어 지니고 있는 불성을 철저히 깨달아 증득하라고 가르치지 않음이 없다오. 그래서 세상에 지극히 어리석고 둔한 사람들도 수행의 노력을 꾸준히 오래 지속하면, 마침내 위대한 지혜와 말재주를 얻게 된다오.

 

열자가 모든 것을 다 운명(숙명)으로 되돌린 주장은, 사람들이 성현 되기를 희망하는 염원과 의지를 꺾으면서, 반대로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찬탈하고 간사한 죄악을 자행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이단(異端)이고 사견(邪見)인 셈이오. 하근기의 일반 중생들이, 이러한 숙명론의 폐단가 해악을 무진장 입을 것은 물론이오. 또한 상근기의 지혜로운 사람들조차도, 때맞춰 민첩하게 분발하고 수행하려는 용기와 의지를 적지 않게 상실하고, 마침내 성현의 경지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평생토록 한낱 평범한 중생에 눌러 앉고 말 것이오. 이렇듯 열자의 글은 세상에 완전히 백해무익할 따름이니, 어찌 보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겠소?

 

 

4) 채식은 지계와 자비 수행의 밑바탕

 

천지의 큰 덕은 만물을 낳아 기르는 생명력이고, 여래의 큰 도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는 자비심이라오. 사람과 만물이 비록 모습은 다를지라도, 심성은 한 가지라오. 무릇 보살 · 벽지불 · 성문의 성현 삼승(三乘)과 천상 · 인간 · 아수라 · 축생 · 아귀 · 지옥의 평범한 육도 중생은, 여래께서 보시기에는 누구나 똑같은 한 자식에 불과하오.

 

왜냐하면, 그들 모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으며, 또 모두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오. 성현의 삼승은 그만 두고라도, 육도 중생만 해도 그렇소. 겉보기에는 비록 그들이 처한 신분 지위나 그들이 각자 받는 고통과 쾌락이 하늘과 땅처럼 현격히 차이 나오, 하지만 그들 모두 미혹과 업장을 다 끊지는 못하여, 아직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했기는 매일반이라, 천상세계도 복이 다하면 아래로 내려오고, 지옥 중생도 죄가 소멸되면 다시 위로 올라오는 법이오.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며, 위아래가 서로 번갈아 뒤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오.

 

우리가 지금 다행히 인간의 몸을 받았으니, 이리저리 궁리하고 갖은 방법을 다해, 우리만 못한 중생의 생명을 보호하고 아껴 주어야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소? 천지가 만물을 낳아 기르는 덕을 몸소 느껴 보고, 우리가 타고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어진 천성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오. 만물이 모두 우리처럼 천지간에 생겨나고, 똑같이 천지의 보살핌으로 자라는데, 우리와 똑같이 삶에 탐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소?

 

어진 사람은 해골까지 흙 속에 묻어 가려주고, 막 자라나는 풀과 나무는 가지도 꺾지 않는다오. 하물며 우리의 입과 뱃속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뭇 생명들을 칼로 자르고 가르며, 불에 굽거나 물에 삶고, 기름에 지지고 볶는 고통을 당하도록 요구한단 말이오? 이러한 중생들도 시작도 없는 때(無始)부터 일찍이 아주 높고 귀한 지위에서 대단한 위엄과 권세를 누려 왔을 텐데, 그러한 위엄과 권위를 잘 이용하여 공덕을 쌓을 줄은 모르고, 도리어 그를 빙자하여 악업만 지었을 것이오. 그 결과 죄악이 누적되어 하등 중생으로 타락하여, 입으로 말도 못하고 마음에는 지혜와 사려분별도 없으며 몸에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도 타고나지 못해, 지금 같은 재난을 당하게 된 걸 우리는 꼭 알아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