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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73)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7)

 

4) 채식은 지계와 자비 수행의 밑바탕

 

물론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먹이 사슬의 자연법칙으로 해명한다면, 사리상 그럴듯하오. 그렇다고 마음속에 맺힌 원한 감정이 내생(來生) 대대로 복수할 엄두를 품지 않을 리가 있겠소? 사람이 설령 만물이 피살 될 때 겪는 고통까지 생각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도살될 때 원한이 심령 깊숙이 맺혀, 나중에 내가 그에게 피살될 것이라는 보복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이오? 또 하늘(자연)이 낳아 기르는 생명을 잔인하게 해치면, 하늘(자연)이 장차 내 복과 수명을 빼앗을 것은 두렵지 않단 말이오?

 

사람들은 오직 자기 가족끼리만 모여, 몸과 마음 안락하며 만사가 뜻대로 순조롭고 장수하기만 바란다오. 정말 그러고 싶거든, 마땅히 대자비심을 발하여 다른 생명을 사려주는(放生) 착한 일에 힘써야 하오. 그러면 천지신명이 모두 우리가 만물을 사랑하는 정성에 감동하여 우리를 보우하게 되고, 우리가 바라는 바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오.

 

만약 우리가 재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해서,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온갖 생명을 잡아, 그들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은 채, 우리 자신의 입과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다면, 과연 하늘() 및 땅()과 더불어 우주의 세 근본 존재(三才)가 된다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리고 우리와 만물은 함께 생사고해를 윤회하면서, 시작도 없는 때부터 지금까지, 때로는 그들이 우리 부모형제나 처자가 되기도 하고, 거꾸로 우리가 그들의 부모형제나 처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그들이 사람이나 다른 짐승으로 우리에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거꾸로 우리가 그들의 손에 살해되기도 하였을 것이오. 친척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살해한 은혜와 원한을 차분히 생각해 본다면, 부끄러워 살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서둘러 참회하고 고쳐도 오히려 때늦을 것이오.

 

하물며 여전히 구태의연한 인습에 얽매여 미혹된 편견을 고집하고, 하늘이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은 본디부터 인간의 먹거리로 주시기 위함이라고 강변한단 말이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미혹과 업장이 두터워, 정말 윤회고해를 벗어날 길이 없게 되오. 그런데 만에 하나라도, 저들의 죄업이 모두 소멸하여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 착한 뿌리(善根)가 뻗어나 정법을 듣고 수행에 정진함으로써,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마침내 불도(佛道)를 이룬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아직도 타락해 있다면, 마땅히 그들이 자비와 연민을 베풀어,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 불성을 깨닫도록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오. 그러니 어찌 한 때의 강한 힘과 재주만 믿고 오랜 세월토록 구원받지 못할 죄업을 저지를 수 있겠소?

 

우리는 이러한 업보 윤회의 이치를 모르지만, 여래께서는 훤히 들여다보고 계신다오. 이러한 진실을 몰랐을 때야 그만이었지만, 이제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배워 알게 된 이상, 부끄러움과 자비 연민을 이기지 못해야 마땅할 것이오. 우리가 숙세의 착한 복덕으로 다행히 인간 세상에 태어났으면, 마땅히 저들과 전생에 맺고 맺힌 원한 감정을 풀어버리도록 살생을 피하고 방생을 실행하며, 모든 생명이 각각 자기 자리를 얻도록 해주어야 하오.

 

나아가 염불 독경의 공덕으로, 그들이 악도(惡道)를 벗어나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회향 기도해 줄 필요가 있소. 설령 그들이 업장이 너무 무거워 곧장 왕생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자신은 이러한 자선 공덕으로 서방정토에 결단코 왕생하기를 간절히 기원해야 마땅하오. 그렇게 왕생하기만 한다면, 곧 평범을 초월하여 성현의 경지에 들고, 생사윤회를 영원히 벗어나 부처의 과보를 증득해 갈 것이오.

 

옛날 불교가 동방에 전래되지 않았을 때는, 유교의 성현들이 세간의 윤리 도덕으로 교화를 폈다오. 그래서 우리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육도 윤회를 반복하는 사실과, 미혹을 끊어 진리를 증득하고 평범을 초월하여 성현이 되는 수행의 이치 등은, 아직 뚜렷이 알려지지 않았소. 그러기에 살생을 금지하는 계율까지 세우지는 않았소.

 

그렇지만 우리 중국의 옛 성현들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으로 만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놓아준 가르침이 수없이 많다오. 아주 확실하게 역사 기록으로 후세에 전해지는 행적만도 적지 않소. 서경(書經)에는 짐승, 물고기, 초목까지도 모두 춤추었다는 기록이 있고, 문왕(文王)의 덕택은 해골까지 덮어 주었다고 전해지오. 논어에는 낚시질은 하더라도 줄낚시나 그물질은 안 하며, 주살을 쏘더라도 밤에 잠자는 짐승을 사냥하지는 않는다는, 공자의 말씀이 적혀 있소. 맹자는 산목숨을 보면 그것이 죽는 것은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에, 짐승이 도살당하면서 지르는 비명 소리만 들어도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한다는 측은지심을, 인정(仁政)과 왕도(王道)정치의 출발점으로 강조하였소.

 

또 주()나라 예법에 따르면, 제후는 정단한 이유(중요한 일) 없이 소를 잡지 않으며, 대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양을 잡지 않고, 선비는 정당한 이유 없이 개, 돼지를 잡지 않으며, 서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진기한 음식, 곧 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오. 그런가 하면, 간자(簡子)가 비둘기를 놓아 주고, 자산(子産)이 물고기를 물에 넣어 기르며, 수후(隨侯)가 뱀을 살려 보옥을 얻고, 양보(楊寶)가 참새를 구해준 일과 같은 방생의 행적도, 수없이 전해지오.

 

이러한 문헌 기록만 보더라도, 살생의 악업은 유가의 성현들도 결코 금하지 않은 게 아님이 분명하오. 다만 세간의 중생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임기응변의 방편도덕을 따른 결과, 완전히 끊도록 요구하지 못한 것일 따름이라오. 무릇 당시 상황으로 보아, 정당한 이유(중요한 일)로 목숨을 죽인다면, 그 살생은 정말 적었을 것이오. 더구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일은 일 년에 며칠도 안 되었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