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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28)

 

 

5) 칠각지七覺支

 

七覺支칠각지(七覺分칠각분七菩提分法칠보리분법)

聖道성도不生불생함은 定慧不調정혜부조하기 때문에 定慧정혜均等균등시키는 이다. 見道位견도위에서 見惑견혹하고 修道位수도위에 있어서 思惑사혹함은 이 七覺支칠각지의 힘에 한다.

 

1. 擇法覺支택법각지般若智慧반야지혜로써 眞僞진위簡擇간택.

2. 精進覺支정진각지勇猛心용맹심으로써 邪行사행을 떠나고 眞法진법勤行근행.

3. 喜覺支희각지善法선법하여 歡喜환희.

4. 輕安覺支경안각지除覺分제각분이라고도 하며 身心신심麤重추중을 끊고 身心신심 輕利安和경리안화케 함.

5. 念覺支염각지항상 定慧정혜明記不忘명기불망하고 이를 均等균등케 함.

6. 定覺支정각지一境일경하여 散亂산란치 않게 함.

7. 行捨覺支행사각지모든 妄念망념을 버리고 一切法일체법捨離사리하여 平心 坦懷평심탄회케 하고 다시 追憶추억하지 않음.

 

七法칠법에 있어서 行者행자浮動유동할 때는 輕安경안行捨행사三覺支삼각지하여 다스리고, 沈沒침몰할 때는 擇法택법精進정진三覺支삼각지하여 을 일으키며 念覺支염각지는 항시 定慧정혜하여 끊임이 없어야 한다.

天台止觀천태지관

 

우리 불자는 복잡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37보리분법菩提分法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근본불교의 수행법이 주로 37보리분법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팔정도八正道를 무시 못 하고 사념주四念住를 무시 못 하듯 이런 법은 다 필요하니까 제정이 된 것이므로 번쇄하지마는 알아두면 공부 정진할 때 크게 참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7보리분법 안에 있는 칠각지七覺支 법문도 굉장히 소중한 법문인데, 공부하는 분들이 팔정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팔정도 다음에 칠각지법문이 나와 있는데도 별로 관심을 안 둡니다. 마땅히 소홀히 할 수 없는 귀중한 법문이요, 특히 참선 공부할 때, 이른바 정혜쌍수定慧雙修할 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칠각지를 칠각분七覺分 또는 칠보리분법七菩提分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인 성도聖道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정혜부조定慧不調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혜균등定慧均等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혜가 앞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인데 분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후를 가리려고 애쓰기도 합니다마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원래 법성 가운데는 정과 혜가 원만 무결하게 원융무애로 갖추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성 가운데 정과 혜가 원만히 갖추어 있기 때문에, 정만 닦으려고 애쓰거나 혜만 닦으려고 할 때는 정혜부조라, 조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심리도 지적知的인 요소, 정적情的인 요소, 또는 의지意志的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너무 지성으로 치우치면 정이 소외를 받으니까 어쩐지 불안스럽고 의지가 부족하면 결연하고 강직한 행동을 못 취하게 되듯이 마땅히 조화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심리적으로는 지와 정과 의라 하지마는 불교적인 사상으로 볼 때는 정과 혜 가운데 다 들어갑니다. 지관止觀이라 하면 지는 정에 해당하고 관은 혜에 해당하며, 앞서 말씀드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도 역시 일상삼매는 혜에 해당하고, 일행삼매는 정에 해당합니다. 모두를 이와 같이 정과 혜에 대비시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부가 빠르게 되려면 꼭 정혜균등이라, 정혜쌍수가 되어야 합니다. 보조국사 어록을 한 말로 말한다면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로 포괄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소중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 것은 정혜부조하기 때문입니다. 정과 혜를 조화시키는 법, 정혜를 균등 시키는 법이 칠각지법입니다. 따라서 주의해서 보시고 그때그때 공부할 때 참고로 하셔야 합니다.

 

정혜 조화법을 마치 공중에 날아가는 새에 날개가 둘이 있어야 잘 날아갈 수가 있고, 또 굴러가는 달구지에 바퀴가 둘이 있어야 바로 갈 수가 있는 것과 같다는 비유 말씀도 있습니다. 도를 깨닫는 자리인 견도위見道位에서 도리에 막힌 번뇌인 견혹見惑을 다 끊어버리고 수도위修道位에서 습기習氣가 되어 있는 번뇌인 사혹思惑을 끊는 것은 칠각지의 힘에 의합니다. 이것이 견도에도 필요하지만 특히 수도할 때 곧 보임保任 수행할 때 미세번뇌, 습기번뇌를 녹일 때 칠각지의 힘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는 택법각지擇法覺支, 택법이란 법을 간택簡擇한다는 말입니다. 불교 술어로는 선택이란 말은 안 쓰고 간택이라 합니다. 반야 지혜로써 법의 진위眞僞를 간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은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판정을 잘 못 합니다. 그러나 반야도리, 제법공諸法空도리에 비추어 봐서 맞는가 안 맞는가 택하는 것입니다. 공부해 갈 때도 부질없이 상대유한적인 문제로 의심하면 그것은 참다운 반야 지혜가 못되겠지요. 반야 지혜에 비추어서 항시 제일의제第一義諦, 본체를 여의지 않는 행법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을 가리는 것입니다.

 

또는 어떤 법이 자기한테 맞는지 간택하는 것입니다. 가사,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너무나 지성적인 것에 치우친 법으로 갈 때는, 본래가 부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힘을 많이 낭비합니다. 또 지성적인 사람들이 감성적인 방법으로 할 때도 거의 그와 비슷한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자기 성질, 원래 품성을 잘 헤아려서 택법을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정진각지精進覺支, 용맹심으로써 삿된 행을 떠나고 진법眞法을 근행勤行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닦는다는 말입니다. 내 평생 이 일로 목숨을 바치겠다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정진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자기 품성이라든가 또는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가장 선행적先行的으로 택법을 한 다음에는 용맹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각지喜覺支, 마음에 좋은 법을 득하여 환희를 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택법을 바르게 하고 용맹정진을 할 때는 부작용이 별로 없고 필연적으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이른바 법회선열法喜禪悅이라는 기쁨이 옵니다. 우리가 택법을 잘 못 하고 또는 계율이나 선정이나 다 여법한 정진을 안 할 때는 진척이 안 됩니다. 법의 진도가 없으면 거기에 따라 오는 환희심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당히 할 때는 필연적으로 희각지라, 마음에 선법을 득하여 환희심을 내는 것입니다.

 

다음은 경안각지輕安覺支, 경안은 앞에서 여러 차례 말씀했습니다마는 제각분除覺分이라고도 합니다. 추중번뇌麤重煩惱, 이른바 거칠고 무거운 번뇌를 없애므로 해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편안스럽게 하는 곧 경리안화輕利安和케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염각지念覺支, 항상 정과 혜를 명기明記하여 불망不忘하고 마음에다 명심해서 잊지 않고 균등케 하는 것입니다. 가사, 우리가 가만히 바보같이 그냥 묵조黙照하고 앉아 있다하면 정을 주로 하고 혜를 무시한 것이 되고 또 진여불성자리, 진여불성은 우리가 더위잡을 수 없는 광대무변한 자리 아닙니까마는, 그 자리만 생각하며 정을 무시하고 갔다 왔다 망동한다든가 오로지 지속적으로 하지 않고서 그때그때 혜만 발동을 시켜서 법성자리만 관조할 때도 역시 공부가 더딘 것입니다.

 

마땅히 지혜로 해서 상이 없고 자타 시비선악이 다 끊어진, 청정무비하고 무량공덕을 갖춘 진여불성자리를 훤히 생각해야 합니다. 훤히 트인 그 자리에다 마음을 두는 것은 혜라 할 수 있고 그 자리를 안 떠나고 염념상속 하는 것은 정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정혜균등이 되어서 선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정혜균등이 안되면 선정에는 못 들어갑니다. 법성에다 우리 마음을 안주시키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앉으나 서나 남하고 얘기할 때라도 마음의 저변에는 영원적인, 생멸이 없는 그 자리를 여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정각지定覺支란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게 해서 산란치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역시 정혜균등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차근차근 공부가 익어지면서 마음이 착 가라앉고 산란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이 되겠지요.

 

다음 행사각지行捨覺支란 모든 망념을 여의고 일체 법을 사리捨離하여 마음을 평심탄회平心坦懷케 하고 다시 추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할 때 과거에 미워했던 생각이 한번 일어나면 더욱 더 미워질 수가 있습니다. 남을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行捨도 중요한 공부입니다. 무엇이 좀 안 되면 그것 생각하느라고 공부가 안되고 또 잘되면 잘됐다고 그러는 것이므로 잘되나 못되나 다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가 죽으나 누가 죽으나, 과거에 창피스런 일을 당했거나, 법성法性에서 볼 때는 그런 것이 사실은 별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부할 때는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칠법에 있어서 수행자의 마음이 부동浮動할 때, 즉 마음이 들뜰 때는 경안輕安과 다 버리는 행사行捨와 또 마음을 오로지 한군데만 집중하는 정3각지를 써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들뜰 때와 너무나 침울해서 혼침이 올 때 가장 공부의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혼침과 도거掉擧는 마음이 가라앉거나 들떠서 곤란스러운 것으로서 공부할 때 두 가지의 큰 마장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들뜰 때는 몸이나 마음이나 번뇌가 다 허망한 것이니까 훨훨히 마치 사자분신獅子奮迅같이, 사자가 갈기를 떨치고 위용을 부리듯이 다 떨쳐버리는 경안輕安이나, 추억하지 않고 다 버리는 행사行拾나 또는 마음을 집중하는 정3각지로 해서 들뜬 마음을 다스리고, 그 반대로 마음이 침울할 때는 택법擇法으로써 보다 더 알맞은 수행법을 철저히 간택하고 정진精進도 용맹심으로 더욱 분발하여 정진을 지속해 나가면 법회선열의 경계를 얻게 되는데 이러한 3각지로써 침울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염각지念覺支로 항시 정혜定慧를 염하여 끊임없어야 합니다. 한량없이 밝은 불성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른바 일상삼매一相三昧의 지혜와 그 법성 자리를 비추어 보는 일상삼매를 지속적으로 닦아나가는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정을 균등하게 닦으면서 마음을 다스려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튼 공부해 나가면서 이 택법 정진, 희 또는 경안, , , 행사 등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조절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칠각지법은 지관법止觀法의 구체적 방법입니다. 지관의 지는 이른바 정에 해당하고 관은 혜에 해당합니다. 지관이나 정혜나 또는 일상삼매, 일행삼매나 다 같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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