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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67)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1)

 

장주(長州)의 팽()씨 집안은 청초(淸初) 이래 과거 급제로 천하에 으뜸이었는데, 장원급제만도 네댓 명이나 되고, 형제 모두 삼정갑(三鼎甲 : 甲科 3人 壯元 榜眼 探花)에 급제한 경우도 있다오. 그런데 그 집안은 대대로 불법을 받들어 행하면서, 비록 장원한 재상일지라도 매일같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과 음질문을 독송하였소. 정성스러운 뜻과 정직한 마음으로,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에게 덕택을 베푼 귀감이, 바로 여기에 있었소.

 

멋모르고 미쳐 날뛰는 자들은, 이러한 책들이 그저 세속의 범부나 아낙 사이에 읽히는 글로 여기는데, 이는 성현이 왜 성현이 되었고, 사람이 어떻게 사람 노릇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소. 살아서는 걸어 다니는 고깃덩이나 움직이는 시체와 같고, 죽어서는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지겠지만, 그 죄악의 업보는 소명하기 어려우니, 영원히 삼악도에 떨어져 고생할 자들이오. 한때 시끌벅적하게 스스로 박학다식하고 통달한 인물이라고 떠들다가, 후대에 이름조차 들리지 않는 자가 얼마나 많소?

 

그리고 행여라도, “우리 집안은 본디 빈한하여, 널리 음덕을 쌓고 크게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고 핑계대지는 마시오. 몸과 입과 뜻 삼업(三業)이 모두 사악하면 이보다 더 큰 죄악이 없으며, 반대로 삼업이 모두 착하면 이보다 더 큰 선행이 없다는 이치를 알아야 하오.

 

인과법칙을 믿지 않고, 죄와 복이 모두 일정한 응보임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안사전서(安士全書) 등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자상히 일러주어, 인과법칙을 믿고 나아가 불법을 믿게 하며, 마침내 염불 수행으로 서방극락에 왕생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행이 없소. 한 사람만 이렇게 이끌어도 그 공덕이 무한한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을 제도한다면 오죽하겠소?

 

그러나 자신이 흠 없이 실천궁행하여야만 비로소 남들을 감화시킬 수 있소. 자기의 배우자나 자녀가 따라서 믿고 함께 받들어 행할 때, 남들도 저절로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착하게 감화될 것이오. 어찌 선행을 베풀고 음덕을 쌓는 일이 재산이나 지위에 달려 있다고 하겠소?

 

천하의 모든 일은 다 인연이 있기 마련이오. 일이 이루어지고 어그러지는 것은, 모두 그 인연이 조종하고 결정하오. 비록 겉보기에는 일을 이루거나 어그러뜨리는 사람(의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성패의 실제 권력은 자신이 심은 과거의 원인에 달려 있으며,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연분(現緣)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자신의 운명을 알고 하늘의 뜻을 즐겨 따르면서,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는 일 없이, 자신의 현재 처지에 편안히 만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어디에 가든지 자유자재롭지 않음 없게 되리다.

 

2) 인과응보의 이치

 

인과응보의 법칙은 불교에 입문하는 첫걸음이자, 유교의 대학(大學)에서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 하며 자신을 닦고 집안을 거느리며 나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중요한 바탕이기도 하오. 그러므로 인과법칙은 세간이나 출세간의 성인 모두가, 천하를 다스리고 중생을 제도하는 중대한 권능이오.

 

지금 세상에서 만약 인과응보를 나라 구하고 백성 구제하는 급선무로 삼지 않는다면, 설령 그대의 지혜와 재주와 도덕이 제아무리 높고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모두 헛것에 지나지 않게 되오. 도리를 말하지 않으면, 왕법(王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옛날 성현들은 어느 누구도, 전전긍긍하며 자기를 꽉 붙잡아 자기를 꽉 붙잡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없었소. 그래서 그 마음이 빈곤 궁핍이나 부귀영달에 따라 오락가락 흔들리지 않았소. 맹자가 말한 대로, 곤궁하면 홀로 자신을 착하게 닦고, 영달하면 천하 중생을 두루 바르게 교화한 것이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일상생활과 언행에서, 부자 형제간이나 부부 사이조차도 하나하나 법대로 하지 못하는구려. 조그만 지식이나 식견이 있어도, 곧바로 특출한 위인이나 되는 것처럼 함부로 떠들어 대오. 권세를 얻지 못했을 때는, 망령되고 맹목적인 주장을 횡설수설하여, 세상을 현혹시키고 중생을 속이는가 하면; 일단 자리를 차지한 경우에는, 포악하고 못된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어, 나를 망치고 백성을 해치기 일쑤라오.

 

이러한 병폐의 뿌리는 모두, 그의 부모나 선생들이 맨 처음 가르칠 때부터, 일찍이 인과응보의 도리를 제대로 일깨워 주지 않은 데서 비롯되오. 가령 조금만 인과응보의 법칙을 안다고 해도,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으킬 때마다, 저절로 조심과 두려움이 들어, 감히 제멋대로 방종하지는 못할 것이오. 설사 성현이 되려고 바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깊은 연못에 임하여 얇은 살얼음을 밟듯이 어찌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기에 천부 자질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더욱 가깝고 얕은 곳으로부터 손대야 한다오. 선이 조그맣다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 말며, 더구나 악이 조그맣다고 무심코 저질러서는 안 되오.

 

어려서부터 길들여, 타고난 천성처럼 만들어야 하오. 마치 어린나무에 버팀목을 받혀 곧게 세워 주면, 크게 자라서는 줄기를 일부러 구부려 뜨리려고 해도 구부러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오.

 

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할 때, 급하면 바깥 증상을 다스리고, 여유가 있으면 근본 원인을 다스리는 게 의술의 기본이라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목구멍에 종기가 부어올라, 음식도 삼키기 어렵고, 숨까지 내쉬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반드시 먼저 그 종기를 풀어 가라앉힌 다음에, 병의 근원을 찾아 오장육부를 잘 조리(調理)해야 하지 않겠소? 만약 종기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선 당장 사람이 죽을 판인데, 설사 병을 뿌리째 뽑을 수 있는 훌륭한 처방과 신령스런 약초가 있다고 할지라도, 어느 세월에 써 볼 재간이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