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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68)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2)

 

인과응보의 법칙은 바로 지금 세상의 종기를 가라앉히는 미묘한 법문이오. 그러나 인과법칙은 증상과 근원을 함께 치료하는 약이라오. 낮은 근기의 초보자는 잘못을 고쳐 선행을 닦아 나갈 수 있으며, 높은 근기의 통달자는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셈이오. 아래로는 어리석은 범부나 아낙으로부터, 위로는 부처의 과보를 원만히 성취하기까지, 한결같이 이 인과 법칙의 보약을 떠날 수 없으니, 어찌 단지 바깥 증상만 치료할 뿐이겠소?

 

인과응보의 법칙은 세간이나 출세간의 성현 모두가, 평범을 갈고 닦아 성스러움을 정련(精鍊)해낸 거대한 용광로와 같소. 만약 맨 처음에 인과법칙의 궁리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설사 선종과 교학에 통달한 뒤라도, 인과응보의 사슬에 잘못 걸려드는 수가 있소. 한번 인과응보에 잘못 걸리면, 타락은 분명한데, 거기서 헤어나 올라올 길은 참으로 막연하게 되오.

 

인광응보의 원리가 너무 얕고 쉽다고 무시하면 안 되오. 여래가 정각을 이루는 것이나 중생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 모두, 인광응보의 테두리를 벗어남이 결코 없으니 말이오. 범부의 마음이 비좁아, 경전에서 거창한 인과응보를 설한 내용은, 혹간 잘 이해하고 깨닫기 어려울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마땅히 세간의 가깝고 쉬운 내용을 통하여서, 그러한 뛰어난 법문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삼아야 할 것이오. 예컨대, 문창음질문(文昌陰)이나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 같은 글은, 익숙하게 읽고 음미하여 실행한다면, 누구나 모두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생사윤회도 벗어날 수 있다오. 또 안사전서(安士全書)도 정말로 세상을 정화하고 백성을 선도하는 중요한 책이오.

 

()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조과(鳥菓)선사에게 물었소.

어떠한 것이 부처님 법문의 대의(大意)입니까?”

조과선사가 대답했소.

어떠한 악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

그러자 백거이가 놀라 물었소.

이 두 구절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이에 조과 선사가 이렇게 답변했소.

비록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말하기는 쉬워도, 여든 넘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소.”

 

우리는 이 말이 불법을 배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가르침인 줄 알아야 하오. 사실 이 두 구절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가장 간략한 계율 경전이라오. 절대로 천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안 되오. 모름지기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으키는 곳으로부터, 자세히 살펴야 하오. 만약 이러한 공부를 끝까지 확장 발전시킨다면, 위로 불도를 이룰 수 있소. 하물며 그 밖의 복록이나 지혜 따위 같은 과보야, 말할 것이 있겠소?

 

계율과 선행을 내보이는 것은, 인간과 천상을 여는 탄탄대로요. 인과응보를 밝히는 것은, 화를 피하고 복으로 나아가는 최상의 계책이라오.

 

불교의 오계(五戒)를 유교의 오상(五常)으로 대비하면, 산목숨 해치지 말라는 인()이고, 남의 물건 훔치지 말라는 의(), 사음하지 말라는 예(),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신()이오. 그리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마음이 늘 맑고 뜻이 엉기되,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고 이치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니, 곧 지()가 될 것이오.

 

오계를 모두 잘 지니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세상(人道)에 태어나게 되니, 이는 유교의 오상과 대체로 같소. 다만 유교에서는 오직 그 뜻만 다하고 있을 뿐인데, 불교는 그로 말미암는 과보까지 함께 밝혀 주는 것이 조금 다르오.

 

십선(十善)에는, 죽이지 않고(不殺), 훔치지 않고(不盜), 사음하지 않는(不邪婬) 세 가지 신업(身業), 거짓말 않고(不妄語), 번지르르한 말(음담패설 포함) 않고(不綺語), 두 말(이간질) 않고(不兩舌), 험담(욕설) 않는(不惡口) 네 가지 구업(口業), 욕심 부리지 않고(不貪), 성질 부리지 않고(不瞋), 어리석음 부리지 않는(不癡) 세 가지 의업(意業)이 있소.

 

이는 대체로 오계와 같지만, 오계가 다분히 몸을 추스르는 것이라면, 십선은 다분히 마음을 추스르는 점이, 조금 다를 것이오. 십선을 모두 갖추면, 틀림없이 천상 세계에 생겨나게 되오.

 

부모에게는 자애를 말하고, 자녀에게는 효성을 일깨우며, 형제에게는 우애를 일러주는 따위의 각종 윤리 도덕의 가르침은, 모두 사람들에게 각자 분수를 지키고 도리를 다하도록 권장하여, 세간의 모습과 형편에 따라 출세간의 법을 닦도록 인도하는 것이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터럭 끝만큼이라도 어그러지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거나 천상에 생겨나는 것 모두, 사람들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과보임을 널리 밝히고 있소. 이는 여래께서 지극한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 오직 즐거움만 누리도록 인도하기 위해서라오. 그래서 광장설(廣長舌)을 드러내는 수고로움도 아까지 않으시고, 중생을 위해 정성을 다해 설하신 거라오.

 

경전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고 하였소. 정말 괴로운 결과를 받고 싶지 않다면, 모름지기 먼저 나쁜 원인을 끊어야 하지 않겠소? 만약 항상 착한 원인만 닦는다면, 틀림없이 즐거운 과보만을 늘 받게 될 것이오.

 

이는 서경(書經)에서, “착한 일을 하면 상서로움이 내리고, 착하지 아니한 일을 하면 재앙이 내린다.”고 한 말이나, 주역(周易)에서 선행을 쌓은 집안에서는 반드시 경사가 남아넘치고, 악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남아넘친다.”고 한 말과 다를 게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