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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64)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5. 수행인의 마음가짐은 오직 정성과 공경!(4)

 

이러한 대승 경전을 정성과 공경을 다 해 받아 지니고 독송할 수만 있다면, 자신과 남이 함께 수승한 이익을 받고, 유명(幽冥 : 무형의 陰界)과 현명(顯明 : 유형의 陽界) 중생 모두 자비 광명의 은혜를 입게 되오. 마치 여의주(如意珠)가 아무리 원해도 부족함이 없고,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이, 마음대로 나투어 소원을 채원 주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이듯 말이오.

 

능엄경(楞嚴經)에서 말한대로, 아내를 구하면 아내를 얻고, 자식을 구하면 자식을 얻으며, 삼매를 구하면 삼매를 얻고, 장수를 구하면 장수를 얻으며, 이렇듯이 계속 나아가 대열반을 구하면 대열반조차 구할 수 있소. 대열반이란 바로 궁극의 과보 공덕이지 않소?

 

만약 여래의 본래 마음을 논하자면, 계경(契經)의 모든 위신력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오. 다만 중생의 의지와 발원이 너무도 형편없이 약하고 작은 데다가, 정성조차 지극하지 못해, 경전의 위신력(공덕력)에 곧장 그대로 계합(契合)하지 못하는 것뿐이오. 그래서 각자 마음 쓰는 대로, 자기 소원만큼만 채우는 것이오.

 

요즘 사람들은 승가나 속세를 막론하고, 불경을 펼쳐 봄에 전혀 정성과 공경이 없소. 온갖 태만과 모독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오. 이런 나쁜 습관이 하도 오래 계속되어 왔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소. 여래의 가르침이 담긴 글을, 그저 못 쓰는 휴짓조각처럼 여기기 일쑤요. 경전의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혀 이익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설사 여래의 진실한 의미를 깊이 안다고 할지라도, 고작 구두삼매(口頭三昧)와 번지르르한 낯빛에 지나지 않소. 마치 굶주린 자가 밥을 말하고, 가난한 자가 보배를 세어 보기만 하는 것과 같소.

 

비록 연구의 공덕은 있을지라도, 실증(實證)의 이익은 절대로 없소. 하물며 태만과 모독의 죄가 하늘을 가득 채워, 그 고통을 오랜 겁토록 기약 없이 받아야 한다면, 오죽하겠소? 착한 원인(동기)으로 악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오. 설령 장래에 제도 받는 원인이야 되겠지만, 그때까지 받을 고통이 얼마나 크겠소? 그래서 안쓰럽고 슬픈 마음에서, 경전 독송 자세의 이해득실을 간략하게나마 감히 말하는 것이오. 부처님 가르침대로 받들어 행하여, 손해는 보지 않고 이익만 얻기를 바라는 뜻에서라오.

 

금강경에 보면,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곧 부처님이나 존귀한 자가 계신 것과 같다.” “어느 곳이나 이 경전이 있으면, 일체 세간의 천상 · 인간 · 아수라 · 등이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이곳이 바로 탑이므로 모두 공경스럽게 예배드리고 주위를 돌며 온갖 꽃과 향을 뿌려야 하리라.“는 등의 말씀이 여러 번 나오지 않소?

 

왜 이와 같이 하도록 말씀하셨겠소? 일체의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누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법이, 모두 이 경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오. 모든 대승경전이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경전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한두 군데가 아니라오.

 

진실로 모든 대승경전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고 보살들의 스승님이며, 삼세 여래의 법신사리(法身舍利)이자, 구계(九界 : 보살 · 벽지불 · 성문과 육도) 중생들이 고해를 벗어나도록 인도하는 자비로운 배(慈船)라오. 비록 가장 높은 부처의 과보를 증득할지라도, 여전히 법을 공경해야 하오. 근본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열반경(涅槃經)에서도 법은 부처님의 어머니이니, 부처님은 법으로부터 생겨난다. 삼세 여래께서 모두 법을 공양한다(法是佛母, 佛從法生, 三世如來, 皆供養法).“고 말씀하셨소. 하물며 우리 범부 중생은 온몸이 업장투성이로 뒤덮여, 마치 중대 죄수가 오래도록 감옥에 갇혀 풀려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신세인데, 어찌 법을 경시할 수 있겠소?

 

그런 처지에서나마, 숙세에 심은 착한 뿌리의 복덕 인연으로 불경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오? 마치 장기수가 사면 조서를 받기라도 한 것과 같으니, 경사와 행운이 끝없이 크오. 그러니 진실로 불경에 의지하여 삼계에 길이 하직 인사를 올리고, 생사윤회의 감옥을 영원히 벗어나서, 몸소 세 가지 몸(化身 · 報身 · 法身)을 증득하고, 곧장 열반의 고향까지 도달해야 하지 않겠소? 이렇게 끝없는 이익이 모두 경전을 듣는(聞經)데에서 얻어지오. 그런데 어찌 망령되고 방자한 편견으로, 경외심을 품지 않고, 마치 속세의 유생들이 책 읽듯이, 태만과 모독을 자행할 수 있겠소?

 

만약 법회를 청하는 재주(齋主)나 법회를 여는 스님들이 모두 각자 정성과 공경을 다한다면, 그 이익은 정말 말할 수 없이 크오. 마치 봄이 대지에 돌아오면 초목이 무성히 소생하고, 달이 하늘 한복판에 떠오르면 모든 강물에 달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과 같소. 그래서 당사자는 업장이 소멸되고 지혜가 밝아지며, 복록이 높아지고 구하는 게 모두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오. 또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들은 모두 극락정토에 왕생하고, 오랜 겁 동안 원한과 은혜를 맺어온 법계의 의식 머금은(含識) 중생 모두가 함께 삼보의 자비 광명을 받아 보리(菩提) 인연의 종자를 뿌리게 되오.

 

그러나 만약 재주(齋主)가 정성스럽지 않으면, 금전을 보시한 공덕은 유한하고, 불법을 업신여긴 죄는 무궁하게 되오. 또 스님들이 정성스럽지 못하면, 이는 북이나 바라 · 피리(法會에 쓰는 악기)따위를 경전으로 삼고 북채나 휘두르는 일로 의식을 치르는 것에 불과하오. 삼보(三寶)와 천룡(天龍)이 강림하시는 때와 장소에서, 거칠고 서툴며 성의 없는 지루한 행동으로 책임이나 때우려고 한다면, 어찌 되겠소? 그 죄악의 산이 우뚝 솟아오르고, 복덕의 바다가 바짝 말라 버리며, 생전에는 온갖 재앙을 당하다가, 사후에는 무거운 견책을 받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