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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59)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4. 생사(生死) 해탈을 위한 보리심(8)

 

4) 임종에 갖추어야 할 지혜로운 배와 노(臨終舟楫)

 

옛말에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兎死狐悲).”는 속담이 있소. 짐승 같은 미물도 비슷한 종류(처지)를 서글퍼함이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이고, 더구나 같은 불자인 우리들이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란 게, 고통이 극도에 이르면 성질을 내기 쉬운 법인데, 임종에 성질내는 마음을 품으면 타락하기 가장 쉽소.

 

불경에 보면, 아기달왕(阿耆達王)이 불탑과 사원을 세워 그 공덕이 매우 크고 높았는데, 임종에 시중들던 신하가 부채를 들고 있다가 왕의 얼굴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왕이 고통스러워 성질을 낸 까닭에, 죽어서 그만 뱀의 몸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기록이 실려 있소. 물론 생전의 커다란 공덕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사문(沙門 : 수행스님)을 만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설법을 듣고, 뱀의 몸을 벗어나 천상에 올라갔다고 하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죽은 이의 인식이 완전히 떠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옷을 갈아 입히고 옮기거나 화장을 하면, 그로 하여금 고통스러워 성질을 내게 함으로써, 더욱 타락하도록 조장하는 결과가 되겠소. 잔인한 마음으로 이치를 어기고, 일부러 참혹한 독약을 베풀려는 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소? 내가 죽은 이와 무슨 원수를 지고 무슨 한이 있다고, 선량한 마음으로 악한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지, 정말로 잘 생각해야 하오.

 

만약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득한 일이라, 증거를 댈 수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경전에 기록된 내용도 믿을 수 없단 말이오? 지금까지 불어난 각종 폐단은, 결국 산 사람들이 죽은 이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단지 신속하게 일을 끝마치려는 생각에서, 몸의 따뜻한 기운이 식어감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러한 습관이 반복되어 일상처럼 되었기 때문에, 설령 이러한 이치를 언급하는 자가 있더라도, 도리어 어리석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죽은 이의 고통은 더욱 펴지기가 어렵게 되었소.

 

오호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태어남과 죽음밖에 없소. 태어남은 산 거북이의 등가죽()을 벗기는 것과 같고, 죽음은 산 게를 끓는 물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오.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이 한꺼번에 번갈아 지지고 볶아댈 때, 그 아픔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소?

 

바라건대, 환자를 보살피고 시중드는 모든 사람들은 세심하게 주의하고 신경쓰되, 특히 환자와 쓸데없이 한가한 잡담을 나누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흩어 놓아서는 안 되오. 어수선하게 떠들어대거나 구슬픈 심기를 내색하지 말아야 하오. 오직 환자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버리고, 한마음으로 염불에 집중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도록 권해야 마땅하오.

 

또한, 자신이 스스로 염불 조력(助念)하여, 환자가 그 염불 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따라서 염송하도록 이끌어야 하오. 만약 재력이 넉넉하다면, 여러 스님들을 초청하여, 조를 자서 번갈아 염불해 주도록 안배하여, 염불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게 하면 더욱 좋겠소. 환자가 귓속에 늘 염불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도 부처님의 성호를 늘 염송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부처님의 자비 원력의 가피를 받아 극락왕생할 것이오.

 

만약 재력이 없다면, 가족 모두 함께 마음을 내서 직접 염불 조력함으로써, 최후의 연분을 잘 매듭짓도록 하여야 하오. 사후에 처리할 일들일랑, 행여라도 환자 앞에서 발설하여서는 절대 안 되오. 다만 목탁이나 요령의 박자에 맞춰 큰 소리로 염불하여,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또렷 환자 귓속에 들어가고, 환자 마음이 늘 염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오. 소리가 둔탁(鈍濁)한 목탁은 임종시 염불 조력에 결코 써서는 안 되오.

 

환자의 몸은 앉든지 눕든지, 그의 자세에 자연스럽게 맡기고, 절대로 움직이거나 옮기지 말며, 모두 염불에만 전심전력하시오. 숨이 끊어지고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정신 의식(神識)이 완전히 떠나가기를 기다린 후, 다시 두어 시간은 지나야, 바야흐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힐 수 있소. 만약 몸이 싸늘해져 딱딱하게 굳은 경우에는, 뜨거운 물로 씻기고 뜨거운 수건을 팔이나 무릎 관절에 덮어씌우면, 한참 지나 다시 부드러워진다오. 그때 감실(龕室 : )안에 안치해도 늦지 않소.

 

할 일이 모두 끝나면, 더욱이 계속 염불해야 하오. 독경이나 참회 예불과 같은 다른 불공(佛供)은 그 어느 것도 염불만큼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오.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모든 권속들이 한결같이 이에 따라 실행한다면, 죽은 이나 산 사람 모두 큰 이익을 얻게 되리다.

 

그리고 우리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실 때, 본래 오른쪽 옆구리를 땅바닥에 대고 누우셨기 때문에, 그 자태 그대로 관에 넣어 다비(茶毗 : 화장)하였소. 그러므로 후대 사람들도 각기 자연스러운 자세에 따라서, 앉아서 입적한 사람은 감실에 안치하고, 누워서 열반한 사람은 관에 안치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오랜 습관이 풍속으로 굳어져, 아마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또한 각자 편리한 대로 행하도록 그 뜻에 맡기면 되오.

 

사람이 죽은 후에 나타나는 좋고 나쁜 모습과 감응은, 원래 사실상의 근거가 있소. 좋은 곳(善道)에 나는 사람은, 몸의 열기가 정수리()에 모이면 성도(聖道 : 극락세계)에 올라가고, ()에 모이면 천상(天道)에 생겨나며, 심장()에 모이면 인간(人道)에 환생하고, ()에 이르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지며, 무릎에 이르면 축생(畜生道)으로 태어나고, 발바닥에 몰리면 지옥(地獄道)에 떨어진다오. 그래서 대집경(大集經)의 임종징험게(臨終徵驗偈)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소.

 

頂聖眼天生 정수리는 성인에, 눈은 천상에 생겨나고,

人心餓鬼腹 사람은 심장에, 아귀는 배에 모연든다.

畜生膝蓋離 축생은 무릎을 통해 떠나가고,

地獄脚板出 지옥은 발바닥으로 빠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