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53)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4. 생사(生死) 해탈을 위한 보리심

 

2) 오로지 부처님 힘에 의지하길 권함

 

이는 모두 자기의 공덕과 능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 중생들이, 약간의 지혜만 갖춘 듯하면 곧바로 무슨 대단한 법신 대사나 되는 것처럼, 스스로 뻐기고 행세하는 것이라오. 그러다가 한 번 잘못 든길이 영원한 잘못으로 빠지기 십상이오.

 

한편 선종을 참구하는 이들은 오로지 화두(話頭) 참구에만 몰두하여,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보기(明心見性)만 바란다오. 근기가 조금만 떨어져도,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보지 못하는 자가 거의 대부분이며, 설사 이미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보았더라도, 미혹과 업장을 완전히 끊지 못하여 여전히 생사윤회를 계속하는 이가, 또 거의 전부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오. 오조 계 선사나 초당 청 선사나 해인 신 선사나 진여 철 선사 등이 확실한 증인이들이오.

 

오호라! 생사(生死) 문제는 너무도 중대하거늘, 어떻게 오로지 자기 힘만 믿고, 부처님 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혹시라도 자신의 힘이 정말로 부처님 힘보다 뛰어나단 말이오? 무릇 일반 사람들의 처세조차도, 크게는 국가(왕조)를 창건하여 정통(正統)을 물려주는 일에서부터, 자게는 자기 한 몸 먹고 입는 데 이르기까지, 뭇 사람들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는,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지 않소?

 

그런데 생사같이 중대한 일에서, 비록 부처님의 힘이 있더라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심사는 무슨 까닭이오? 특출한 자기 능력을 드러내어 맘껏 과시하다가, 끝내 어리석은 바보의 소술로 떨어지고 싶은 것이오?! 그 뜻이 위대하고 가상하다 말해야 할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위대함이 무얼 가리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려.

 

무릇 생사를 끝마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진실로 증명(증득)해야 하오. 만약 단지 깨닫기만 하고 증득하지 못했다면, 번뇌와 미혹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니, 더욱 크게 노력해야 하오. 그렇게 계속 전전긍긍하니 인연따라 단련해 가면서, 항상 깨어 관조(覺照)한다면, 마음가짐이 점차 성인의 지혜와 그윽히 합치하면서, 나와 남이나 시비를 분별하는 범부 감정이 생겨날 수 없으리다.

 

만약 깨어 관조하지 않으면, 여전히 범부의 감정이 치열하게 타오르게 되오. 수행 공부가 높을수록, 감정 견해도 더욱 무거워지는 법이오. 그래서 깨달음에서 다시 미혹으로 들어가는 퇴보도 피하기가 어렵소. 마치 잠에서 깨어났다가도, 일어나지 않고 누운 채 뒹굴다 보면, 다시 잠드는 것과 같다오.

 

옛 사람들은 큰 일(生死)이 분명해지면, 마치 부모를 여읜 듯하다(大事已明, 如喪考妣).” 고 말씀하셨소. 바로 번뇌와 미혹이 완전히 끊기지 않아, 혹시라도 다시 빠져 들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미혹을 완전히 끊은 사람은, 범부의 감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범부의 감정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생사 윤회하겠소?

 

확철대오한 사람의 깨달음이 설령 부처와 같다 할지라도, 그 미혹은 아직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오. 따라서 반드시 한 생각 한 생각 또렷또렷이 깨어 관조함으로써, 범부의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오.

 

이 법문은 온전히 부처님 힘에 의지하오. 비유하자면, 절름발이 장정이 힘써 걸어야 하루에 고작 몇십 리 가겠지만, 만약 전륜성왕의 윤보(輪寶 : 요즘의 제트기나 로케트로 상상해 보면 좋음)를 두루 돌아다닐 수 있는 것과 같소. 이는 전륜성왕의 (복덕) 힘이지. 켤코 자기의 능력이 아니오. 한평생 열심히 수행한 사람은 정말로 이와 같을 따름이오.

 

그리고 오녁십악(五逆十惡)을 지은 중대 죄인이라도, 임종 때 지옥의 모습이 나타나거든 뜻과 마음을 다해 염불하면, 곧장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아 왕생할 수 있소. 정말로 부처님은 중생들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거역과 죄악을 일삼는 자들에게도 연민의 정을 배로 느끼신다오. 자식이 아무리 불효막심하다가도, 한 순간 마음을 돌이켜 부모에게 찾아오면, 부모는 틀림없이 자비로이 맞이할 것이오.

 

자기 힘만 믿고 수행하여 미혹을 끊고 지리를 증득하기란 정말 쉽지 않소. 보는 미혹(見惑)만 끊기도 폭이 40리나 되는 큰 강물 줄기를 가로막는 것처럼 어렵거늘, 하물며 생각하는 미혹(思惑)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그렇게 미혹을 완전히 끊어야, 겨우 초과(初果 : 수다원)를 증득하여, 비로소 성인의 축에 낄 수 있소. 물론 그 후로도 일곱 번 천상에 생겨나고 일곱 번 지상 인간 세계에 태어나길 반복 왕래하며 수행하여야, 바야흐로 생각하는 미혹까지 완전히 끊어 사과(四果 : 아라한)를 증득할 수 있다오.

 

비록 열네 번의 생사만 반복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천상의 수명이 무척 길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세월 개념으로 따지기가 정말 쉽지 않소. 초과를 증득한 성인이 생사를 벗어나기가 오히려 이처럼 어렵거늘, 하물며 미혹과 업장을 온통 갖춘 범부중생은 오죽 하겠소?

 

자기 힘으로 생사를 해탈하는 일은, 숙세의 선근(善根)이 몹시 깊고 두터운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오. 말세의 중생들이 어떻게 감히 넘볼 수 있겠소? 그래서 여래께서 특별히 정토 법문을 여시어, 성인이나 범부나 상중하 세 근기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현생에 생사를 벗어나도록 배려하셨다오. 중생을 구제하고 보호하려는 자비심이, 이보다 더 지극할 수 있겠소?

 

물론 정토 법문 수행도 기본상으로 청정한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선정과 지혜를 함써 닦아야 하오. 그 바탕 위에서, 믿음과 발원으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여 극락왕생을 바라는 것이오. 믿음과 발원이 진실하고 간절하며, 염력(念力 : 염불하는 정신력)이 순수하고 오롯이 집중되면, 현생에도 성인의 경지를 증득 할 수 있고, 임종 때 곧장 최상품의 연화에 올라 불퇴전(不退轉 : 아비발치)의 보살 지위에 들게 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