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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51)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4. 생사(生死) 해탈을 위한 보리심

 

1) 사람 목숨 덧없음을 경책함

 

광음(光陰)은 재빨리 흐르고 계절은 끊임없이 바뀌어, 한 순간 한 찰나도 머무르지 아니하오. 이것은 어쩌면 조물자(造物者)가 우리 인류와 일체 중생들에게 넓고 긴 혀(廣長舌)를 드러내어, 목숨이 덧없고 부귀영화도 길지 않으니, 한시 바삐 돌아갈 길을 찾아 윤회고해를 벗어나라고 설해주시는, 위없는 미묘법문(無上妙法)이 틀림없소.

 

생사 문제는 너무나도 중대하고, 덧없음(無常 : 죽음)은 재빨리도 찾아온다오. 남의 일을 귀로 듣고 제아무리 놀라고 두려워해도, 자신에게 몸소 닥쳐 겪는 고통과 절실함만은 훨씬 못한 법이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오. 임종을 기다렸다가 닦으려니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업력(業力)에 끌려 정신을 잃고 말 것이오.

 

그래서 옛 속다음에 총명한 지혜로도 업장을 대적할 수 없거니와, 부귀영화로 어떻게 윤회를 벗어날 수 있으리오?” 라는 말씀이 있소. 생사의 관건이 닥쳐오면, 하나도 의지할 게 없소. 오직 아미타불만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뿐이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이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고, 알면서 진실로 믿고 실세로 염불하는 사람은 더더욱 적구려.

 

섣달 그믐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로, 미리 잘 준비하고 처리해 놓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빚쟁이나 원한 품은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와, 편안히 설을 쇠지 못하도록 잡아 묶고 들볶을 것이오. 임종은 인간 한평생의 섣달그믐날이라오. 믿음과 발원과 염불수행(信願行)의 세 가지 밑천 양식(資糧)을 두루 갖추어 놓아야 하오. 그렇지 못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貪瞋癡)의 세 가지 악습이 여전히 남아있다면, 무량겁 이래의 빚쟁이와 원한 진 중생들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아우성치며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정토법문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임종에 어찌할 줄 모르고, 업력에 끌려 다음 생을 받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소. 하지만 설사 안다 할지라도, 진실되게 힘써 수행하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악업에 이끌려 육도윤회를 계속하게 되오. 윤회 고해 벗어날 요로(要路)를 찾으려고, 오직 매 순간 생각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은 뒤 삼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다면, 염불이 저절로 순수해지고, 정토수행도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오. 그러면 어떠한 세속 홍진의 사물도 그의 정념(正念)을 빼앗거나 어지럽히지 못하리다.

 

그리고 극락왕생을 바라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오. 만일 오늘 당장 죽는다면, 오늘 곧장 서방극락에 왕생하면 되지 않겠소? 이것이 바로 이른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는 공자님 말씀이오.

 

어찌하여 오늘 꼭 죽어야 할 운명인데도, 죽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치면서, 세속의 경계와 인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놓아버릴 수 없단 말이오? 그러다가 미련과 집착이 자애가 되어, 정토의 경지가 나타나지 않고, 업력에 따라 다음 생을 받을 선악의 경계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그때는 꼼짝없이 나타난 선악도(善惡道)에 생겨나야 하고, 극락왕생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말것이오.

 

그래서 정토수행을 하는 사람은, 오늘 죽어도 좋고, 앞으로 120세를 더 살다가 죽어도 좋다고 여겨야 하오. 모든 것을 이전의 업력에 내맡긴채, 자의 비교하고 따지는 망상일랑 내어서는 안 되오. 믿음과 발원만 진실하고 간절하다면, 과보가 다하여 목숨이 끝날 때, 정신의식이 홍진의 수고로움을 하직하고 훌쩍 정토에 뛰어들 것이오. 그 순간 구품 연화가 피어나면서, 부처님께서 수기(授記)를 내리시리다.

 

2) 오로지 부처님 힘에 의지하길 권함

 

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다시 북에서 남으로 일만여 리를 왕래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보아 왔소. 그 가운데 평소 스스로 참선이나 교법에 통달했다고 자부하며, 정토법문을 마치 오물처럼 여기고, 행여 자신을 더럽힐까 꺼리던 사람들이 많았소. 그런데 그들이 임종에는 대부분 손발을 어지럽게 휘저으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는 걸 많이 목격하였소. 반대로 착실하고 차분히 계율을 지키면서 염불하던 사람들은, 설령 믿음과 발원이 지극하지 못해 상서로운 모습까지 나타나지는 않았을지라도, 모두 평안히 운명하였소.

 

그 까닭은 무엇이겠소? 본디 맑고 깨끗하던 마음의 물이 분별로 말미암아 출렁거리고 흐려지며, 또 의식의 파동이 거세게 용솟음쳐 흩어지다가도, 부처님 명호로 말미암아 맑고 고요하게 응집되기 때문이라오. 그래서 지혜롭다고 잘난 체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듯 전념하는 이만 못하다오. 기교를 부리기에 도리어 형편없이 되고 마는 것이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체의 대소승과 권실(權實)법문은,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공덕과 힘에 의지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해야, 바야흐로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소. 만약 미혹과 업장이 터럭 끝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결정코 생사고해를 벗어나기 어렵소. 그래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오랜 겁을 거치며 수행하는데, 개중에는 역량이 충분하여 후퇴없는 용맹정진으로 해탈할 수 있는 이도 있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언뜻 깨달은 듯하다가 이내 미혹되고, 잠신 전진하는 듯하다가 오래 후퇴하며, 영겁토록 벗어날 기약 없이 윤회하고 있다오. 나와 그대들이 오늘까지 아직 범부 중생인 까닭은, 모두 상중하 세 근기가 두루 가피를 입을 수 있으면서도 지극히 원만하고 재빠른 정토법문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오.

 

능엄경은 정토법문을 모르는 자가 읽으면 정토법문을 파괴하는 일등 공신이 되고, 반대로 정토법문을 아는 자가 읽으면 정토법문을 크게 떨치는 훌륭한 전도자가 되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자기 힘으로 도를 깨닫기는 몹시 어려운데, 정토 염불로 극락왕생하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