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48)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3. 마음 닦고 염불하는 수행의 요령(20)

 

4) 각 수행 방법에 대한 평가

 

정토 수행이 무르익어 오늘 당장 극락 왕생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오. 그러나 무르익지 않았는데 곧장 왕생하려 들면, 이는 채 자라지도 않은 벼 이삭을 살짝 뽑아 올려 성장을 도와주려다가, 도리어 말라 죽게 만드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꼴이 되오.

그렇게 해서 마장(魔障)이 한번 일어나면, 단지 자기만 극락왕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신심을 후퇴시키는 빌미가 되기 쉽소. ‘염불 수행한다던 아무개를 보니, 염불은 이익도 없이 손해만 있는 것 같더라.’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그 해악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오. 결정코 때를 앞당겨서 왕생하겠다는 억지 마음일랑, 오직 하루 속히 왕생하길 바라는 자연스런 마음으로 바꾸어 먹길 바라오. 설사 한시 바삐 왕생하지 못하더라도, 서운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가 없소. 단지 정성과 공경만 다하다가, 과보가 원만히 이루어진 뒤에 왕생하면 좋지 않겠소? 그러면 적어도 조급하고 망령된 생각 덩어리로 악마를 초래하는 재앙은 없을 것이오.

 

5) 수행인들이여, 힘써 노력하세!

 

인간 세상은 여덟 고통이 두루 갖추어져 있소. 설령 천상에 생겨난다고 할지라도, 복덕이 다하면 다섯 쇠퇴 현상을 피할 수가 없다오. 오직 서방 극락세계만이 어떠한 고통도 없이, 뭇 즐거움을 받는다오. 그래서 경전에도 말씀하지 않소?

 

삼계가 불타는 집처럼 편안하지 못하며,

뭇 고통이 가득 차 있으니 몹시 무섭고 두렵네.

사람 목숨 덧없어 번갯불처럼 빨리 지나니,

마지막 한계 닥치면 서로 돌아보지도 못하네.

 

일체의 현상 세계 유위법은

꿈 같고 허깨비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네.

 

이런 경전 말씀에서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정토 염불 수행에 힘쓰지 않는다면, 목석(木石)같은 무생물과 함께 천지간에 오래 뒹굴어야 하리다. 피가 흐르고 성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생전에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나 시체 노릇이나 하다가, 죽어서는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져도 좋다고 여기겠소?

 

성인의 경지는 너무 고상하다고 위로 밀쳐둔 채, 스스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중생으로 자처하면서, 커다란 경책(警策)을 만나도 분발할 줄 모르고, 성현과 부처 · 조사의 도를 듣고도 행하려 듣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고도 하늘이 인간을 돌보지 않는다고 원망하겠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하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소?

 

마음이 두근거리며 악몽을 자주 꾸는 것은, 숙세의 악업이 나타나는 조짐이오. 현재 나타나는 경계는 비록 선과 악이 엄연히 존재할지라도, 선과 악을 뒤바꾸는 일은 바로 자기에게 달려 있소. 악업이 나타날 때 일심으로 염불에 몰두하면, 악한 인연도 선한 인연으로 전환된다오. 그러면 결국 숙세의 악업도, 도리어 금생의 나를 선으로 인도하는 스승이 되오.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업장에 얽매여, 마치 우물 속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리는 격으로, 고통 위에 고통만 덧보태고 있구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요? 남북이 서로 공격하고, 우리나라와 외국이 서로 대적하여, 최근 삼사 년 사이에만도 죽은 사람이 사오천 만이나 되지 않소? 아마도 인류가 생긴 이래, 이처럼 참혹한 변란은 듣지도 못했을 것이오. 또 태풍과 가뭄 · 홍수 · 지진 · 전염병 등이 세계 각지에서 빈번히 발생하여, 천재지변의 피해도 엄청나오.

 

이러한 시대에 다행히 생명을 부지하면서도, 감히 힘을 다해 정토 염불 수행에 전념하여 극락왕생하려고 원하지 않는단 말이오? 요행히 얻은 사람 몸으로 그저 유유자적하니 세월만 보내면서, 한 법문에 정신 집중하지 않고, 시절 인연과 근기에도 맞지 않는 법문에다 한가하게 힘을 쏟는단 말이오? 그러다가 날숨 한 번 다시 들어오지 않는 때에는, 다시 이러한 지름길 법문을 듣고 싶어도, 결코 요행스런 기회가 없을 것이오.

 

몸은 고통을 불러들이는 근본이고, 사바 고해를 싫어하는 마음은 즐거움을 얻는 기초가 되오. 숙세의 업장이 두텁더라도 현생의 착함이 진하면, 오랜 겁 동안의 무거운 과보도 현세에 가볍게 받도록 바뀐다오. 마찬가지로, 험악한 재난을 다행서도 용맹스럽게 수행을 지속하면, 사바세계의 고통이 왕생을 인도하는 스승이 된다오.

 

숙세(전생)의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면, 원통과 분노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오. 그러나 혹시라도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죄악의 업장이 계속 일어나게 되오. 역경이 닥치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여야 비로소 자기 분수를 알고 하늘의 뜻을 즐겨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또 사바 고해를 싫어하고 극락세계를 그리워해야, 바야흐로 정토 염불을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오.

 

나무아미타불 명호 하나에 대장경의 가르침이 조금도 빠짐없이 모두 포함되어 있소. 그래서 선종과 교법에 두루 통달한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진실한 염불 수행인이 될 수 있소. 또 반대로 하나도 아는 게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단지 입으로 말이나 할 줄 안다면, 그 또한 진짜 염불 수행자가 될 수 있소. 이 두 종류의 사람을 뺀 나머지는, 진실한 염불자가 되든 진실하지 못한 염불자가 되든, 모두 가르침에 의지하는지 여부와 자기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