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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52)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4. 생사(生死) 해탈을 위한 보리심

 

1) 사람 목숨 덧없음을 경책함

 

열 가지 법계(십법계 : · 보살 · 벽지불 · 성문과 六道 중생)의 인과법칙은 하나하나 분명하오. 만약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비록 한둘만 몰 깨뜨려도 악마에 들려 미쳐 날뛰고 지옥의 씨를 심게 되오. 그런데 24가지 원통(圓通) 공부를, 요즘 세상에 누가 다 닦아 익힐 수 있겠소?

 

오직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듯한(如子億母) 염불법문만이, 마음을 지닌 모든 중새잉 받을어 수행할 수 있다오. 단지 깨끗한 염두만 계속 이어진다면, 저절로 (염불)삼매를 몸소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오. 좋고 나쁨을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 (능엄경의) 이 법문을 읽는다면, 누가 감히 오직 힘만 믿고 내세우며, 부처님 힘에 의지하지 않으려고 하겠소? 물론 좋고 나쁨을 모르는 자라면, 정반대일 것이오. 단지 박학통달한 대가가 되기를 원할 뿐, 생사 해탈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오.

 

무릇 수행 공부에 힘쓰는 것은, 본디 생사를 해탈하기 위함이오. 혼자 실컷 공부해도 생사를 끝마칠 수 없음이 분명한데도, 아직도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법문에 의지해 수행할 생각이 없다면, 이야말로 황금을 내버리고 깨를 짊어지는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소?

 

참선 공부를 하여 설령 확철대오했다 할지라도, 예컨대, 오조(五祖) () 선사나 초당(草堂)의 청() 선사나 진여(眞如) () 선사나 단애(斷崖) () 선사 같은 대가들도, 오히려 생사를 해탈하지 못했다오. 그리하여 다시 다음 생을 받는 날이면 도리어 후퇴하여 미혹되고 마니, 전생에 비해서도 크게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하물며 우리 같은 범부야 말할 게 있겠소?

 

정토법문은 여래께서 중새들을 두루 제도하기 위해서 특별히 베푸신 까닭에, 가장 원만하고 빠르며, 가장 넓고도 간단하며 쉬운 지름길이라오.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하겠소? 그밖의 일체 법문은 모두 보고 생각하는 두 미혹(見思二惑)을 완전히 끊어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오. 보는 미혹(見惑)만 완전히 끊기도, 폭이 40리나 되는 큰 강물 흐름을 차단하는 것만큼 어려운데, 하물며 생각하는 미혹(思惑)까지 끊기야 오죽하겠소?

 

보는 미혹을 완전히 끊으면 초과(初果 : 수다원)를 증득하는데, 원교(圓敎)로 치면 초신(初信)에 해당하오. 생각하는 미혹까지 완전히 끊어야 사과(四果 : 아라한)를 증득하게 되는데, 원교로는 칠신(七信)에 해당하오. 초과나 초신의 수준에서는 아직 생사윤회가 있고, 사과나 칠신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생사를 끝마치게 되오.

 

천태(天台) 지자(智者) 대사는 오품(五品)에 거주함을 보이셨소. 비록 깨달음이 부처와 똑같고 오주번뇌(五住煩惱)를 원만히 조복시켰지만, 보는 미혹(見惑)조차도 오히려 일찍이 끊은 적이 없다오. 그렇지만 지자 대사의 본래 경지는 실제로 헤아릴 수가 없소. 임종에 단지 오품에 오른 것은, 말세의 수행자들이 미혹을 끊어 진리를 증득(斷惑證眞)하는 데까지는 힘쓰지 않고, 오직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明心見性) 것을 최고 궁극의 경지로 여길까, 몹시 염려하기 때문이다.” 라고만 말씀하셨소.

 

무릇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 것(明心見性), 이른바 확철대오를 가리키오. 만약 최상상(最上上)의 근기라서 깨닫는 즉시 증득까지 한다면, 동시에 생사까지 해탈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설령 미래세를 죄다 훤히 알지라도, 오히려 다음 생 받는 것을 피할 길이 없소.

 

오조(五祖) () 선사가 소동파(蘇東坡)로 태어나고, 초당(草堂) () 선사가 노공(노공(魯公)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오. 그러나 해인(海印) () 선사가 주방어(朱防禦)의 딸로 태어난 것은 이미 참기 어려운 타락이오. , 안탕(雁蕩) 스님이 진회(秦檜)로 태어난 것은 정말 몹시 불쌍하고 딱한 일이오.

 

얼마나 막심하게 어려운 줄 아오? 자기 힘으로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생사를 해탈하기가! 여래께서 한 평생 설하신 보통의 수행 증득 교리는, 비록 법문이 여러 가지로 다양하지만, 미혹과 업장을 지니고 있으면서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없소.

 

오직 정토법문 하나만이, 단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추고 지성으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여, 극락왕생하는 유일한 길이라오. 미혹과 업장이 얼마나 두텁고 무거운 지를 가리지 않고, 수행 공부의 정도가 얼마나 깊고 내실이 있는 지도 따지지 않으며, 임종 때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하여 그대로 짊어진 째 극락왕생하는 거라오.

 

일단 왕생하기만 하면, 그 즉시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경지에 들고, 생사윤회를 이미 벗어나게 되오. 그때부터 점차 수행 정진하여 몸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고, 부처님 과보까지 원만히 성취하게 된다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말세의 어리석고 열악한 근기의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누구나 현생에 생사윤회를 단박 벗어날 수 있도록 열어 놓으신 특별 법문이라오.

 

교리를 연구하는 이들은, 통상의 교리에 비추어 논단의 증거를 삼으며, 업장을 짊어진 채 왕생하는 사실을 믿지 않소. 항상 생사윤회 속에 머물면서, 중생 제도하는 것을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로 여긴다오. 한시바삐 생사고해를 벗어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오. 진흙으로 빚은 그릇이, 불에 굽기 전에 비를 맞으면 금방 풀어져 버리듯이, 번뇌와 미혹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다음 생을 윤회하면, (수행의 힘이 풀어져) 더욱 미혹되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오. 그러면 자신도 이롭게 하기 어려운데, 어느 겨를에 남을 이롭게 교화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