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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25)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2. 극락왕생은 믿음과 발원 지닌 염불 수행으로(10)

 

이는 천불(千佛)이 세상에 나오셔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철칙(鐵則)이오. 이 말에 믿음이 간다면, 그대는 서방 왕생할 희망이 있게 되오. 평생에 믿음과 발원이 전혀 없는 사람은, 임종에 결코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댈 수 없소. 임종에 선과 악이 갑자기 동시에 나란히 나타나는 경우, ‘아미타불네 글자가 나타나지도 않는 사람이 왕생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설령 나타나는 사람이라도 역시 왕생할 수 없다오. 왜냐하면, 본인이 왕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오. 부처님께 구하지 않는 까닭에,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을 수 없는 것이오.

 

화엄경에는 가령 중생의 악업이 실체와 형상이 있다면, 시방 허공계도 이를 다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소. 또 옛 고승 대덕은 “(중생의 임종 갈림길이) 마치 사람이 빚을 졌을 때, 힘이 센(채권) 자가 먼저 끌어가 버리듯이, 마음의 실마리가 수없이 갈라져서, 가장 무거운 쪽으로 쏠려 떨어진다.”고 말씀하셨소.

 

지금 선과 악이 모두 함께 나타나는데, 믿음과 발원이 없기 때문에, 악업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오. 자기 힘에만 의지하면, 악업이 터럭 끝만큼만 남아 있어도 생사 고해를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오. 하물며 악업이 많은 자야 말할 게 있겠소?

 

또 믿음과 발원이 없이 염불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에 이르는 사람은, 끝없이 수많은 가운데 더러 한둘쯤 왕생할 수 있다오. 혹시라도 이러한 경우를 모범으로 본받아, 천하의 후세 일체중생들이 정토에 왕생하지 못하도록, 착한 뿌리를 송두리째 끊어버리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오. 왜냐하면 자기의 힘에만 의지해, 업장이 다하고 텅 빈 일념(一念)의 경지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할 수 있는 자는, 온 세상을 통틀어 한둘이나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이오.

 

가령 사람들이 각자 이런 방법에 따라 수행하여, 믿음과 발원을 옆으로 제쳐두고 따르지 않는다면, 무수한 중생들이 영원히 고통바다 속에서 벗어날 기약없이 윤회할 것이오. 이 모두가 그런 한마디 말이 잘못 인도한 결과인데도, 그 말을 한 사람은 오히려 득의양양하며 몹시 고상한 척 자만에 차 있을 것이오. 자기 말이 부처님 지혜의 명맥(佛慧命)을 끊고, 중생들을 그르치는 미치광이 독설이 되는 줄은 모르고 말이오. 어찌 슬프지 않겠소?

 

세간에서 선업(善業)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는,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오. 믿음과 발원을 원만히 갖추고 극락에 왕생하는 정업(淨業)에 대비하면, 그 선업도 결국 악업이 될 뿐이오. 정토법문은 별도로 특별한 안목으로 보아야 하며, 통상의 교법이나 의리와 나란히 견주어서는 안 되오. 만약 여래께서 이 법문을 여시지 않았다면, 말세 중생 가운데 생사를 해탈하는 자는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임종에 반드시 서방극락에 왕생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평소 굳게 지녀야 하오. 또 보통 평범한 사람의 몸은 내세에 다시 받고 싶지 않다는 따위의 발원을 하지 마시오. 설령 인간이나 천상의 왕, 또는 스님도 원하지 마시오. 출가해서 하나를 들으면 천 개를 깨닫고, 대총지(大總持)를 얻어 불법 교화를 널리 펼치고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하는 고승 대덕의 몸이라도, 내세에 받을 염두일랑 손톱마치도 해서는 안 되오. 이러한 과보도 마치 독풀이나 죄의 숲처럼 보고, 혹시라도 받고 싶다는 마음을 한 순간도 결코 내지 않아야 하오.

 

이와 같이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야만, 자기의 믿음과 발원과 수행(염불)이 비로소 부처님의 서원에 감응을 얻고, 부처님께 거두어질 수 있다오. 감의 길이 서로 트이고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으면, 곧장 구품연화(九品蓮華)에 올라 윤회 고해를 영원히 벗어나게 되오.

 

서방극락세계는 보통 범부 중생들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설사 소승 성인(성문 · 벽지불)이라도 갈 수 없다오. 그곳은 대승의 불가사의한 경지이기 때문이오. 소승 성인도 마음을 돌이켜 대승으로 향하면 갈 수 있소. 범부 중생은 믿음과 발원으로 부처님을 감동시키지 않는한 설령 그밖의 모든 뛰어난 수행을 닦으면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는 염불 수행까지 병행하더라도, 극락에 왕생할 수 없다오. 그래서 염불법문에서는 믿음과 발원과 수행(염불)의 세 가지 법이 가장 요긴한 종지(宗旨)라오. 세 법이 솥발(鼎足)처럼 원만히 갖추어지면, 틀림없이 왕생하게 되오. 만약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없으면, 설령 진실한 수행(염불)이 있을지라도, 왕생할 수 없는 것이오. 하물며 유유자적하니 한가하게 입으로 염불 시늉이나 하는 사람이 왕생하겠소?

 

믿음과 발원과 수행의 세 가지는, 정토십요(淨土十要)에서 모두 자세히 설하고 있소. 그 가운데 제 1요인 아미타경요해(阿彌陀經要解)에 특히 가장 정밀하고 상세히 해설하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라오.

 

서방정토에 왕생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오. 만약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없으면, 설령 염불수행을 할지라도, 부처님과 감응이 서로 통할 수 없소. 그래서 단지 인간과 천상의 복록만 얻고, 미래에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원인 종자만 심는데 그치오. 정말 믿음과 발원만 함께 갖추면, 만 사람 가운데 하나도 빠뜨림 없이 모두 왕생하게 되오. 영영(永明)선사가 사료간(四料簡)에 서 만 사람이 닦으면 만 사람이 모두 간다.” 고 말씀한 것도, 바로 믿음과 발원을 함께 갖춘 수행을 가리키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