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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24)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2. 극락왕생은 믿음과 발원 지닌 염불 수행으로(9)

 

 

사실 정토법문은 최고 최상의 근기를 받아들이는 가르침인 줄 알아야 하오. 그래서 이미 등각(等覺)을 증득한 선재동자에게, 보현보살이 십대원왕으로 극락왕생하길 회향하라고 가르쳤소. 정토왕생을 회향하는 법문이야말로, 부처의 과위를 원만히 성취하는 마지막 단계인 것이오.

 

그런데 세간의 미치광이들이 더러 교법의 이치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평범하고 어리숙한 아낙들도 모두 이 법문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승이라고 여겨 무시하기 일쑤라오. 이 법문이 화엄경에서 한 생애에 성불하는 시종일관의 제일 법문인 줄을 모르고 있소.

 

또 지식 견해가 편협하고 보잘 것 없는 바보 중생들은, 자기의 수행 공부가 몹시 얕고 업력이 매우 두터워 어떻게 금생에 단박 왕생할 수 있겠느냐고, 자조(自嘲) 섞인 체념을 곧잘 내뱉는다오. 중생의 심성(心性)이 본디 부처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오역십악(五逆十惡)의 죄를 지어 무간지옥에 떨어질 중생이라도, 선지식을 만나 염불법문을 배우면, 열 번이나 불과 몇 번의 간절한 염불로도 임종과 함께 극락왕생할 수 있는 줄은 모르는 게오. 관무량수경에서 설하신 말씀을 어찌 믿을 수 없단 말이오? 극악무도한 죄인도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우리처럼, 비록 죄업이 많고 수행공부가 적기는 하지만, 오역십악보다는 훨씬 나은 보통 중생들이, 어떻게 자포자기로 이처럼 막대한 이익과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있겠소?

 

여래께서 스스로 이 정토법문을 일체 세간 중생들이 믿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까닭도, 바로 착수하기는 쉬운데 성공률은 매우 높고, 별로 힘들이지 않고, 지극히 원만하면서 가장 가깝고 빠른 지름길이라, 다른 어떤 법문도 크게 능가하는 법문이오. 그래서 숙세에 착한 뿌리를 깊이 심지 않은 중생은, 정말 믿고 받아들여 수행하기가 매우 어렵다오.

 

내가 늘상 부처 아래의 구계(九界) 중생은 이 법문을 떠나서는, 결코 위로 불도를 원만히 성취할 수 없으며;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도 이 법문을 놓고서는, 아래로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없다.“ 고 말하는데, 이는 모두 진실 그대로 전하는 것뿐이오.

 

정토법문은 상중하 세 근기를 두루 포용하는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이 매양 보잘것없는 소승이라고 얕잡아 보고 배척하고 있소. 이는 결국 대승경전을 제대로 펼쳐보지 않고, 지혜의 눈이 트인 선지식도 친견하지 못한 때문이오. 본말이 뒤바뀐 집착의 마음으로, 여래의 시원(始原)적이고 궁극적인 무상도(無上道)를 추측하려는 것은, 마치 봉사가 해를 보고 귀머거리가 천둥 소리를 듣는 것과 똑같소. 그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해가 어떠니 천둥소리가 어떠니 평론하는 것은, 부질없는 지껄임이 틀림없소.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는 정토법문은, 여래께서 중생들을 두루 제도하려고 철저한 대자대비심으로 설하신 것임을 모름지기 알아야 하오. 오직 관세음 · 대세지 · 문수 · 보현 등의 보살만이 궁극으로 이 법문을 감당할 수 있다오. 그런데 사람들이, 어리숙하고 평범한 아낙들도 모두 염불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잘것없는 소승으로 얕잡아 보는 것이오. 마치 작고 희미한 별들도 해나 달과 함께 허공에 떠 있다는 구실로, 하늘을 작게 여기는 것과 같소. 또 작은 벌레들이 사람이나 큰 짐승들과 함께 뭍 위를 기어 다닌다는 핑계로, 대지를 조그맣게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이 법문에 정말로 믿음을 내고 귀의할 수 있는 바탕은, 바로 과거 오랜 겁부터 깊숙이 심어온 착한 뿌리라오. 독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여, 육근(六根)을 모두 추스르고 깨끗한 생각이 계속 이어지면, 평범한 중새의 마음이 곧 여래장(如來藏)이 된다오. 마치 향을 늘 가까이하는 사람에게서는 향 내음이 그윽히 풍겨나듯이 말이오. 지금 부처님과 우리 사이에 마음과 기운이 서로 계속 이어진다면, 임종에 감응의 길이 뚫리면서 부처님의 영접을 받지 않을 수 있겠소?

 

3) 믿음과 발원을 함께 충분히 갖추세

 

설령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을 공경스럽게 닦아, 인간이나 천상의 몸을 받는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인간의 복락(福樂)은 타락의 기본 원인이 된다오. 또 천상은 비록 인간세상에 비해서는 번뇌와 미혹이 맹렬한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천상의 복이 한번 다하는 날엔 틀림없이 아래 세상에 태어나게 되어 있소. 숙세에 쌓은 복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을 누리지만, 그 복을 누리기 때문에 죄업을 짓게 된다오. 일단 죄업을 지으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곧 순식간에 달려 있소. 하물며 천상의 목숨이 다하면서 숙세에 지어 놓은 악업이 무르익은 자는, 그 업력으로 곧장 삼악도에 떨어질테니, 새삼 말할 게 있겠소?

 

그래서 수행인이 올바른 생각(正念)없이 청정한 업을 수행하여, 인간이나 천상의 복록을 보답으로 받는 것을, 옛날의 고승대덕들은 제3세의 원한(第三世怨)이라고 했다오. 법화경에도 삼계가 불타는 집과 같이 평안치 못하고, 뭇 고통이 충만하여 몹시 무섭고 두렵다.“ 고 말씀하셨소. 좋고 나쁨을 아는 자라면, 마땅히 시급히 여기를 벗어나 편안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이, 최상의 계책이오.

 

염불법문은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대어, 삼계를 벗어나고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오. 지금 그렇게 발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믿음이 있겠소? 진실한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간절한 발원을 하기 마련이오. 믿음과 발원이 전혀 없이 단지 아미타불 명호만 염송하면, 이는 여전히 자력(自力)수행에 속하오. 믿음과 발원이 없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큰 서원과 감응의 길이 서로 트일 수 없다오.

 

만약 보고 생각하는 미혹(見思惑)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면, 더러 왕생할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전혀 끊지 못하거나, 끊더라도 말끔히 다하지 못하면, 업장의 뿌리가 아직 남아 윤회를 벗어날 수 없소. 오조(五祖) ()선사와 초당(草堂) ()선사 등의 실화가, 그 확실한 증거라오. 믿음과 발원이 없는 염불은, 선종의 화두 참구와 다를 바가 없소. 그렇게 해서 왕생할 수 있다면, 이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 셈이 된다오.

 

그래서 우익(蕅益 : 智旭)대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왕생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믿음과 발원의 유무에 달려 있으며, 품위(品位)의 우열고하(愚劣高下)는 전적으로 명호 염송의 깊이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