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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27)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2. 극락왕생은 믿음과 발원 지닌 염불 수행으로(12)

 

 

 

만약 금생에 몸소 진실한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정토 법문에 의지하여야 하여야 하오.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바라면, 확실히 생사를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오. 만약 염불 법문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불교의 진짜 전수(眞傳)를 얻지 못한 자가 생사를 벗어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진짜 전수를 얻은 자라 할지라도, 생사를 벗어날 수 없다오.

 

왜냐하면, 진짜 전수를 얻어 확철대오할지라도, 그것이 진실한 증득은 아니기 때문이오. 증득까지 이르면 생사를 벗어날 수 있지만, 확철대오만으로는 생사를 벗어날 수 없소. 다른 법문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모두 미혹을 끊고 진리의 몸을 증득해야만, 비로소 생사를 벗어날 수 있소. 그러나 정토법문만큼은, 단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만 갖추고, 아미타불 명호를 염송하면 가능하오. 게다가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않고 뭇 선행을 받들어 행하면, 기본 수행(正行)과 보조 수행(助行)이 합쳐져서 극락왕생이 확정될 뿐만 아니라, 그 품위(品位) 또한 매우 높고 훌륭하게 결정된다오.

 

또한 단지 정신이 순수하고 마음이 독실한 사람만 왕생이 확정되는 것이 아니오. 오역 십악과 같은 중죄인의 부류도, 임종에 진실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크게 내어, 깊이 참회하고 뜻과 마음을 다해 염불하면, 몇 마디 염불 소리만으로도 임종과 함께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오. 부처님의 자비는 광대무변하여, 오로지 중생의 제도만 일삼기 때문이오. 한순간 염두만 부처님의 광명으로 돌이키면 곧바로 그 가피력을 받게 되니, 이것이 곧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해 업장을 짊어진 채 왕생한다는 것이오.

 

말세의 중생이 정토에 의지하지 않고 다른 법문을 닦는다면, 단지 인간과 천상의 복록만 과보로 얻고, 미래에 생사 해탈할 수 있는 인연 종자를 심는 데에 그친다오. 미혹을 끊을 힘이 없기 때문에, 생사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어찌 생사(윤회)의 새싹이 다시 돋아나지 않겠소?

 

염불법문의 중점은, 바로 믿음과 발원에 있소. 믿음과 발원이 진실하고 간절하면, 비록 마음속이 완전히 청정해지지 못하더라도,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오. 왜냐하면, 뜻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염불하면, 아미타불을 감동시켜 곧바로 호응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오.

 

마치 강과 바다의 물에 움직이는 모습(물결)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지만, 단지 거센 바람과 큰 파도만 일지 않는다면, 하늘 위의 밝은 달이 뚜렷이 제 모습을 수면 위에 드러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오. 염불로 부처님과 감응의 길이 열리는 것은, 마치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소. 오로지 자기 힘만 믿고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염불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오.

 

보통의 교법을 배우고 닦는 관점에서는, 일반 범부 중생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게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오. 그러나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려는 특별법문에서는, 금생에 곧장 모두 생사를 끝마칠 수 있소. 정말로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만 갖춘다면, 만 명 가운데 한 사람도 결코 누락되는 일이 없다오.

 

말세의 중생들에게는 오직 이 법문만이 믿고 의지할 만하오. 불법의 시운(時運)이 말기에 가까울수록, 이 법문이 더욱더 중생의 근기와 시절 인연에 부합하오. 그 때문에 선지식들이 더욱더 간절하게 이 법문을 제창하고 권장하는 것이오. 그 결과, 진실한 수행으로 마침내 극락에 왕생하는 영험 증거는, 수시로 나타나고 있소.

 

정토법문은 믿음과 발원과 염불수행(信願行)의 세 가지를 으뜸 요건으로 삼소. 믿음과 발원이 있으면, 염불수행의 기간이나 깊이 정도에 관계없이, 모두 왕생할 수 있소. 하지만 믿음과 발원이 없으면, 수행이 설사 주체와 객체 둘을 모두 잊고,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을 모두 벗어나는 경지에 이를지라도, 왕생하기 어렵다오.

 

정말로 주체와 객체 둘을 모두 잊고, 육근과 육진을 모두 훌훌 벗어나 진실한 이치를 몸소 증득한다면, 자력으로도 생사를 해탈할 수 있음은 거론할 필요도 없소. 그렇지만 만약 수행공부가, 단지 그러한 이치를 본(깨달은) 정도이고, 아직 진실로 증득하지 못했다면, 믿음과 발원이 없이 극락왕생하기는 역시 어렵다오.

 

선가에서 말하는 정토(법문)는 여전히 선종에 속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믿음과 발원을 빼버리고 말한다오. 정말 선가의 정토에 의지해서 수행한다면, 더러 크게 깨달을 수는 있을 것이오. 그러나 미혹과 업장을 끊지 않고서 생사를 해탈하려는 것은, 꿈조차 꾸어 볼 수 없는 일이오.

 

범부중생의 신분으로 극락왕생할 수 잇는 것은, 믿음과 발원으로 아미타불을 감동시키기 때문이오. 그래서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하여, 업장을 짊어진 채 왕생하는 것이오. 그런데 지금 믿음과 발원은 내지 않으면서, 게다가 부처와 정토까지 하나하나 자기 마음(自心)으로 돌리고 있으니, 어떻게 부처님을 감동시킬 수 있겠소? 감응의 길이 트여 서로 부합하지 않으면, 중생은 그냥 중생이고, 부처는 홀로 부처로 남게 되오.

 

가로로 특출한 법을 세로용으로 사용한다면, 거기서 얻을 이익은 아주 적고 받을 손해는 무척 클 것이 분명하오. 이러한 이치를 잘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되오. 거기서 얻을 이익이란, 선가에서 말하는 대로, 더러 크게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오. 반면 그로부터 받을 손해란, 믿음과 발원을 빼버려,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할 길이 없어진다는 점이오.

그래서 나는 진짜 정토법문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선가의 깨달음 법어가 쓸모조차 없다.”고 줄곧 말해 왔소. 법문의 기본 취지가 서로 판연히 다르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