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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17)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아미타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소.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억 부처님 땅을 지나면 극락이라고 부르는 세계가 있으며, 거기에는 아미타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지금 설법하고 계신다.”

그 땅은 무슨 까닭에 극락이라고 부르는가? 그 나라의 중생들은 뭇 고통이 전혀 없이, 온갖 즐거움만 누리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부른다.”

 

뭇 고통이 전혀 없이 온갖 즐거움만 누리는 까닭은, 바로 아미타불의 복덕(福德)과 지혜(智慧), 신통력과 도력(道力)이 장엄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오. 여기에 비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3() · 8, 아니 무수한 온갖 고통이 두루 갖추어져 있고, 즐거움이란 조금도 없기 때문에, ‘사바고해라고 부르오. 범어로 사바(娑婆) ‘참아낸다(堪忍 : 인내를 감당하다)’는 뜻이오. 이곳 중생들은 이러한 모든 고통을 당하면서도, 용케도 잘 참아 견디기 때문이오.

 

물론 여기에도 즐거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모든 즐거움은 거의 다가 고통이오. 중생들이 어리석고 헷갈려서, 즐거움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오. 예컨대, 술 마시고 여색에 빠지거나 수렵 · 오락(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들이, 어찌 즐거운 일이라고 하겠소? 어리석은 중생들이 일시적인 감각성의 쾌락에 탐착하여, 차마 놓지 못하고 피곤한 줄도 모르니, 정말로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이오.

 

설사 진짜 즐거움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오래 지속되기가 어렵소. 예컨대, (유가의 거장 孟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첫째로 꼽은) 부모님 모두 생존하시고 형제자매 무사한 (天倫) 즐거움이, 어떻게 항상 유지될 수 있겠소? 즐거운 순간이 한번 지나고 나면, 뒤이어 슬픈 마음이 강하게 일어날 것이니, 즐거움이 전혀 없다는 말도 지나친 주장은 아니리다.

 

이 세상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3고와 8고로 빠짐없이 망라할 수 있소. 3고란, 첫째 보통은 고고(苦苦)이고, 둘째 즐거움은 괴고(壞苦)이며, 셋째 고통스럽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행고(行苦)라고 분류함을 가리키오. 고고(苦苦)란 오음(五陰)으로 이루어진 우리 몸과 마음이 본디 핍박당하는 성질을 지니기에 고통이라고 하는데, 게다가 늘 생로병사 따위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고고라고 일컫는 것이오. 괴고(壞苦)란 즐거움이 무너지는 고통을 뜻하오. 세상에 어떤 일이 오래 계속될 수 있겠소? 하늘(자연)의 도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인간 세상의 일이야 오죽하겠소? 즐거운 상황이 언뜻 나타나는가 싶더니, 금세 괴로운 처지가 들이닥치지 않소? 즐거운 상황이 무너져 사라질 때, 그 고통은 더욱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큰 것이오. 이를 괴고라고 한다오. 행고(行苦), 비록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적절한 듯 보이지만, 그 본성이 항상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흘러 변하기 때문에, 행고(운행하는 고통)라 부르는 것이오. 이 세 고통을 거론하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고통이 없게 되오. 8고는 앞에서 이미 자세히 언급한 것과 같소.

 

만약 이 세상의 고통들을 알아차린다면, 사바고해를 싫어하며 떠나려는 마음이 저절로 솟구쳐 일 것이오. 그리고 서방세계의 즐거움을 안다면, 기꺼이 극락왕생하려는 염두가 강렬히 생길 것이오.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않고 뭇 선행을 받들어 행하여(諸惡莫作, 衆善奉行)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면서, 다시 부처님 명호를 지성으로 간절히 염송하여 서방 왕생을 발원하면, 이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의 제자가 될 것이오.

 

이 사바세계의 똥통보다 더 더럽고 사악한 줄 통찰하며, 서방정토가 우리들의 본래 고향 집임을 믿어야 하오. 그래서 금생이나 내생에 인간세상이나 천상 세계에서 복락을 누리길 바라지 말고, 오직 이승의 과보가 다하여 목숨이 다하는 때 자비로운 영접을 받아 극락 왕생하기만을 발원하는 것이오. 아침이나 저녁이나 오직 이 염불에만 마음을 두어 염송이 지극하고 공덕이 순수해지면, 우리 정성의 감동과 부처님의 응답이 한 길로 서로 통하게 되오. 그러면 목숨이 다할 때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것이오. 정토왕생하면 단박에 무생법인을 깨닫고 되오. 그때 이 사바세계의 부귀영화를 되돌아 본다면, 단지 불길이나 허공의 아지랑이 같을 뿐만 아니라, 감옥과 독약의 바다나 다름없을 것이외다.

 

2) 의심을 끊고 믿음을 내세

 

정토법문에 믿음이 얻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만약 자기의 지혜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면, 마땅히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의 성실한 말씀을 우러러 믿고, 한 생각이라도 의심을 가져서는 결코 안 될 것이오. 의심하면 부처님과 서로 등지게 되어, 임종 때 서로 감응이 통하기 어려울 게 확실하기 때문이오.

 

옛 사람들이 정토법문은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그 궁극의 실체를 아시고, 등지보살(登地菩薩)조차 조금도 알 수 없다.” 고 말씀하셨소. 대저 등지 보살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정토법문을, 하물며 우리 같은 범부 중생이 어떻게 제멋대로 추측하고 비웃을 수 있겠소?

 

정말 생사를 벗어나려는 마음이 간절하고, 정토에 대한 믿음이 철저하여, 한순간도 의혹의 마음이 일지 않아야 하오. 그렇다면 비록 사바 고해를 벗어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바 고해에 오래 머물 길손은 더 이상 아니며; 또 설령 극락왕생하지는 못할지라도, 머지않아 극락에 초대받을 귀빈이 될 것이오. 어진 이를 보면 자기도 그와 같이 되길 생각하고(見賢思齊), 인에 부닥쳐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아야(當仁不讓於師)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구태의연한 세간의 선입견에 매달려, 자칫 한번 잘못으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단 말이오? 혈기와 성품을 지닌 사나이라면, 살아생전에 걸어 다니는 시체나 고깃덩어리 노릇하다가, 죽은 뒤에는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지고 마는 꼴이, 결코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오. 정말 심사숙고하고, 힘써 노력하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