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다른 법문들의 경우, 작은 법(小法)은 큰 근기의 사람이 닦을 필요가 없고, 큰 법(大法)은 작은 근기의 중생들이 닦을 수 없는 게 보통이오. 오직 이 정토법문 하나만큼은, 상중하 세 근기의 중생들을 모두 거두어들여, 그 혜택이 골고루 미친다오. 위로는 관음 · 대세지 · 문수 · 보현보살들도 이 밖으로 벗어날 수 없으며, 아래로는 오역(五逆)과 십악(十惡) 죄인 같은 아비지옥의 종자들도 그 가운데 참여할 수 있소. 가령 여래께서 이 법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면, 말세의 중생들은 금생에 생사윤회를 해탈하려는 소원을 이룰 가망이 전혀 없을 것이오.
그런데 이 법문은 이처럼 크고 넓으면서도, 그 수행 방법 또한 지극히 간단하고 쉽다오. 이러한 까닭에 예부터 정토에 착한 뿌리(善根)를 깊이 심어온 인연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의심없이 확실히 믿기가 정말 어렵다오. 단지 우리 범부들만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성문과 벽지불의 이승(二乘) 성현들도 의심하는 분이 많다오. 또 이승의 성현들만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권위(權位) 보살조차 더러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오. 오직 대승의 심위(深位) 보살들만 비로소 철저하게 이해하고, 의심없이 확실하게 믿는다오.
따라서 이 정토법문에 대해 깊은 신심을 낼 수 있다면, 비록 아주 평범한 중생이더라도, 그 종자와 성품은 이미 성문 · 벽지불의 이승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되오. 비유하자면, 황태자는 땅바닥에 넘어지더라도, 뭇 고관대작의 신하들을 여전히 압도할 만큼 존귀한 것과 같겠소. 비록 그 재능과 복덕이 아직 무르익지는 못했지만, 황제의 위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거라오.
정토법문을 수행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소. 믿음과 발원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송하는 수행은, 범부의 마음을 가지고 부처님의 깨달음 바다(佛覺海)에 뛰어드는 것이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에 은밀히 통하고, 미묘한 도에 그윽히 합치할 수 있소.
정토수행법을 설하려고 하면, 다른 모든 법문은 자기 힘으로만 생사를 해탈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 정토법문은 부처님의 힘에 의지해 왕생하기 때문에 아주 쉽다는, 본질상의 차이점을 반드시 설명해 주어야 하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법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의심하게 되오. 터럭 끝만큼이라도 의심을 품으면, 그로 인한 장애가 워낙 커서, 수행할 수도 없음은 물론이오. 또 설사 수행하더라도, 궁극에 실질상의 이익을 전혀 얻을 수 없게 되오. 그래서 염불 수행에 깊숙이 들어가 절정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믿음’ 이라는 첫 번째 요건을 긴급히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정토법문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께서 세우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중생들을 귀의하도록 지도했소. 또 마명(馬鳴)보살과 용수(龍樹)보살이 크게 떨치고, 광려(匡廬) · 청량(淸涼) · 영명(永明) · 연지(蓮池) · 우익(蕅益) 등의 대사들이 힘써 수행하고 전파하셨소. 이는 지혜로운 성현이나 어리석은 범부 할 것 없이, 모든 중생에게 두루 권장하기 위함이오. 그래서 이들 보살고 대사들이 천수백 년 전부터, 일찍이 우리를 위해서 대장경의 교법을 두루 연구하신 다음, 특별히 이 정토법문을 뽑아 내신 것이오.
미혹과 업장을 끊지 못함에도 부처의 후보 자리에 함께 참여 할 수 있고, 금생 한번의 수행으로 사바 울타리를 틀림없이 벗어날 수 있소. 정말 단박에 이루면서도 지극히 원만하고, 지극히 간단하며 쉬운 길이오. 선종 · 교종 · 율종을 두루 하나로 포괄하면서 그들을 훨씬 초월하고, 얕으면서 깊고, 권의(權宜) 방편이면서 실상(實相) 자체라오. 이렇듯 아주 특수한 천연(天然)의 미묘법문이기 때문에, 정토법문을 전하신 것이오.
우리들이 이러한 부처님과 조사들을 우러러 믿고(信仰) 옛 고승 대덕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 어찌 지금 세상에 조금 깨쳤다는 선지식들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낫지 못하겠소? 화엄경은 삼장(三藏)의 임금격인데, 맨 마지막 한 편은 십대원왕(十大願王)을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으로 끝나오. 화장해회(華藏海會)의 대중들이 모두 법신을 증득하신 분들인데도, 한결같이 서방정토에 왕생하여 부처의 과위를 원만히 성취하길 바라지 않소? 그런데 우리가 도대체 어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감히 그분들을 우러러 따르지 않는단 말이오? 그대의 미친 마음을 놓아버리고, 이 정토의 길을 힘써 닦아 가길 바라오. 그 공덕과 이익은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되리라. 어찌 꼭 세상의 모든 지식을 두루 참방한 다음에야, 비로소 정법과 대도를 알려고 한단 말이오?
정말 엄격히 진실되게 논한다면, 대승법문은 법마다 모두 원만하고 미묘하오. 다만 근기가 뛰어나거나 보잘 것 없고, 시절인연이 무르익거나 덜된 차이가 있소. 그래서 그 이익을 얻기가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게 되오.
선도(善導)화상은 아미타불의 화신이오. 그가 정토법문을 전념으로 닦으라고 가르치신 것은, 수행인들이 마음과 뜻이 확고부동하지 못하여 다른 법문을 전하는 스승들에게 흔들려 휩쓸릴까 염려했기 때문이오.
초과(初果 : 수다원) · 이과(二果 : 사다함) · 삼과(三果 : 아나함) · 사과(四果 : 아라한)의 성인이나,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 · 십지(十地) · 등각(等覺)의 보살이나, 심지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차례대로, 허공이 다하도록 법계에 두루 몸을 나투고 광명을 떨치시며, 아주 훌륭하고 미묘한 법문을 설하여 정토 수행을 놓아버리라고 권하시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소. 맨 처음에 오직 정토법문만 전념으로 수행하려 발원했으므로, 그 소원을 감히 어길 수 없었던게오.
선도화상은, 후세사람들이 이 산을 보면 이 산이 높은 것 같다가, 저 산을 보면 저 산이 높은 것 같이 여겨(‘남의 떡이 커 보인다’ 는 우리 속담과 같은 뜻), 도대체 줏대없이 흔들릴 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남겼다오. 수행인들이 여기 저기 다른 법문을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아까운 세월만 헛되이 보낼까 염려하셨소. 그런 요행심을 철저히 죽여 없애 주기 위함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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