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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12)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1. 정토(염불)위에 법문 없소.(6)

 

 

마치 향기가 배인 사람은 몸에서 향 내음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요. 또 나난이 벌이 뽕나무 벌레를 업어다가 나를 닮으라고 으레 축원하면, 마침내 나난이 벌로 변화한다는 옛 싯구와도 비슷하오. 염불법문이 현생에 부처를 짓고, 평범한 중생을 성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기능과 힘은, 부처님이 한 평생 설하신 모든 가르침의 법문을 초월하는 것이오.

 

다른 모든 법문은, 모두 자기 힘에 의지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해야, 비로소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소. 하지만 염불법문만은 자기의 힘(自力)과 부처님의 가피력(佛力)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소. 그래서 이미 미혹을 끊고 업장을 소멸시킨 수행인은 법신(法身)을 금방 증득할 수 있고, 미혹과 업장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중생도 그대로 짊어진 채 극락왕생할 수 있다오.

 

이 법문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어리석은 아낙이나 머슴조차 그 이익을 직접 얻을 수 있소. 하지만 다른 한편 지극히 그윽하고 미묘하여, 등각(等覺)보살이라도 그 범위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수행하지 못하거나,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은 전혀 없소. 손대기는 쉬우면서 성공률은 높고, 힘은 적게 들이면서 효험은 재빨리 얻게 되니, 실로 여래의 한 평생 가르침 가운데 가장 특별한 법문이라오. 따라서 보통의 다른 교리나 수행 법문과 함께 비교하거나 평론할 수 없다오. 말법시대 중생이 복은 적고 지혜는 얕으며, 업장은 두텁고 죄악은 무거운데, 이 정토 법문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힘에 의지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한 뒤 생사윤회를 벗어나려고 생각한다며, 정말 천번 만번 어렵고 어려운 일이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뒤, 여산(廬山)에 백련사(白蓮社 : 연화정토 결사)가 창설되어 한 사람이 제창하자 백여 명이 화답했소. 그 뒤를 이어 많은 이가 정토법문을 수행해 왔는데, 큰 공덕이 현저한 분으로 우선 북위(北魏)의 담란(曇鸞)대사가 있소. 담란은 헤아릴 수 없이 신비한 분이오. 무슨 사정으로 남조(南朝)의 양무제(梁武帝)를 만난 뒤 북쪽으로 돌아가자, 양무제가 수시로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담란 법사는 육신 보살이시다.” 라고 말했다는 거요.

 

()나라와 수(0나라 때에는 지자(智者)대사가 있었소. 또 당()나라 때는 도작(道綽)대사가 담란대사의 교화를 뒤이어 정토법문을 전념으로 닦았는데, 한 평생 정토삼부경을 강의한 횟수만도 2백 번이나 된다오. 도작의 문하에 선도(善導)화상이 나왔으며, 승원(承遠) 법조(法照) 소강(小康) 대행(大行)스님에 이르러서는, 연화정토의 기풍이 안팎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소.

 

이로 말미암아 모든 종파의 선지식들이 정토의 도로써 은밀히 닦아 두드러지게 교화를 펴면서, 자신과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기 시작했소.

선종 같은 경우에는, 돈오의 지극한 향상일로(向上一路)만을 오직 제시(單提)하기 때문에, 한 법도 세우지 않아 부처조차 설 자리가 없소. 하물며 염불로 정토에 왕생하길 바라겠소? 이는 하나를 없애면 일체가 모두 없어지는 진제(眞諦)로서, 이른바 한 티끌도 받지 않고 성품의 본체(性體)를 드러내는 실제 진리의 자리(實際理地)라오.

 

그러나 수행을 확실히 논하자면, 한 법도 폐지할 수 없소.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한 끼 밥도 먹지 말라고 하는데, 하물며 염불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폐지하겠소? 이는 한 법을 세우면 모든 법이 다 서는 속제(俗諦)로서, 이른바 불교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리지 않고 성품의 모습(性具)을 드러낸다는 것이오.

 

만약 반드시 속제를 내버리고 진제를 말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이미 진제가 아니오. 육신도 존재하지 않는데, 마음이 어디에 깃들어 있겠소? 속제에 부닥쳐서 진제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진제일 것이오. 눈을 통해서는 보고 귀를 통해서는 듣는 것처럼, 사대와 오온을 통해서 심성이 드러나는 것이오.

 

이상이 옛부터 여러 조사들이 정토법문을 은밀히 닦아온 대강의 요지라오. 다만 기록으로 널리 드러내어 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조사들의 본래 의도를 깊이 헤아려 알 수 없었던 게오.

 

그러나 백장(白丈)선사는 병든 스님을 위한 기도와 입적한 스님을 화장하는 법을 모두 정토에 귀의하도록 규정하였으며, “수행은 염불이 든든하다.”고 말했소. 진헐(眞歇) ()선사는 정토 법문은 최상의 근기를 직접 받아들이며, 중하 근기의 분류도 함께 끌어들인다.” 고 말했소. 조동종(曹洞宗) 문하에서는 모두 은밀한 수행에 힘쓰는데, 정토법문으로 부처를 보기가 선종에서는 더욱 간단하고 쉽기 때문이다.” “부처나 조사나, 교종이나 선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정토 법문을 수행하여 한 근원으로 함께 돌아간다.” 고도 말했소.

 

그리고 영명(永明)대사는 고불(古佛)의 화신으로, 원력을 타고 세상에 나오신 분이오. 이 분이 바야흐로 뚜렷한 말로 가르침을 설하고, 글을 써서 널리 전하게 되었소. 그러고도 수행자들이 길을 뚜렷이 구별하지 못해 이해득실이 혼란스러워질까 두려워하여, 사료간(四料簡 : 淨土有無를 네 범주로 나눈 간단한 법문)이라는 게송 한 편을 지어 간단명료하고 지극하게 설법하셨소. 이는 팔만대장경의 으뜸 요강이자, 갈림길을 바로 인도하는 스승이라 할 것이오. 수행자들에게 80자밖에 안 되는 짧은 게송으로, 생사윤회를 벗어나 열반을 증득하는 요긴한 길을 단박에 깨닫도록 이끄시니, 중생을 제도한려는 그의 노파심은 천고에 다시없을 것이오.

 

그 뒤로는 여러 종사(宗師)들이 모두 분명한 말로 이 정토법문을 두드러지게 찬탄하는 가르침을 펼쳤소. 예컨대 장로(長蘆) (), 천의(天衣), (), 원조(圓照) (), 대통(大通) (), 중봉(中峯) (), 천여(天如) (), 초석(楚石) (), 공곡(空谷) () 등 여러 위대한 조사들께서, 비록 선종의 법맥을 이어 전하면서도, 정토염불을 특히 두드러지게 찬탄하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