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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9)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1. 정토(염불)위에 법문 없소.(3)

 

다섯 종파란, 바로 율종(律宗) 교종(敎宗) 선종(禪宗) 밀종(密宗) 정토종(淨土宗)을 가리키오. ()이란 부처님 몸(佛身 : 행동)이고, ()란 부처님 말씀(佛言)이며, ()이란 부처님 마음(佛心)이오. 부처님이 부처님인 까닭도 바로 이 세 가지 법문에 있으며,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도 바로 이 세 가지 법문일 따름이오. 중생들이 정말로 부처님의 계율과 교법과 선정에 따라 수행한다면, 중생의 삼업(三業)이 곧장 그대로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삼업으로 승화된다오. 삼업이 승화되면, 번뇌가 바로 보리(菩提)이며, 생사(生死)가 곧 열반이 되오.

 

그런데 부처님은 또, 중생들이 숙세 업장이 너무 두터워, 행여라도 쉽게 소멸 승화되지 못할까, 몹시 걱정하셨소. 그래서 다라니(陀羅尼), 삼밀(三密), 가지(加持)의 힘음로 자꾸 반복 훈습(薰習)하여, 불성(佛性)을 도야(陶冶)하도록 배려하셨소. 이는 마치 나난이 벌이 뽕나무 벌레에게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하고 축원 기도하면, 이레 만에 나난이 벌로 변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오. 그래도 부처님은 또, 중생들이 더러 근기가 너무도 형편없어 해탈을 얻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생명을 윤회하면 미혹과 타락을 면하기 어려울 것까지 염려하셨소.

 

그래서 특별히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편 법문을 열어놓으신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성현이나 범부나 할 것 없이, 나란히 현생에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바라셨소. 성현은 왕생하는 대로 금방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할 것이고, 범부라도 일단 왕생하면 생사윤회의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게 된다오.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공덕과 이익이 이처럼 불가사의하게 큰 게오.

 

그러나 계율은 교종 선종 밀종 정토종의 진짜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하오. 만 길 고층 누각을 지으면서, 그 터를 견고히 다지지 않는다면, 다 세우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 것이오.

 

반면 정토는 율종과 교종 선종 밀종의 총 귀착지 임을 알아야 하오. 마치 모든 강물이 다 바다로 흘러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오. 정토 법문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위로 불도(佛道)를 이루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신 핵심 방편으로, 시작인 동시에 끝인 법문이라오.

 

그래서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善財)동자가 보현보살의 가피와 계도(啓導)를 받아 등각(等覺)의 경지를 이미 증득한 다음,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십대원왕(十大願王)으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의 과위(佛果)를 원만히 성취하도록 일깨우고, 나아가 모든 화장해회(華藏海會) 중생에게도 똑같이 권한 것이오.

 

그리고 관무량수불경에 보면, 하품하(下品下)의 중생은 이른바 오역십악(五逆十惡)을 저질러 장차 아비(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인인데도,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임종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이나 단지 몇 번만 염송하고 목숨이 다하더라도,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 왕생할 수 있다고 적혀 있소.

 

이를 보면, 위로는 등각(等覺)보살도 정토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으며, 아래로는 극악무도한 죄인조차도 정토 안에 들어갈 수 있소. 그 공덕과 이익은 부처님 한 평생 모든 가르침의 위에 초월해 있소. 부처님의 한 평생 모든 가르침이 한결같이 자기 힘(自力)에 의해 생사고해를 벗어나는 법문인데 반해, 정토법문만은 미혹을 끊지 못한 자라도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에 의지하여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왕생하며, 이미 미혹을 끊은 이는 최상의 경지를 금방 증득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법문이라오. 그래서 일반 보통 법문과 함께 나란히 비교할 수가 없다오.

 

원래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은 모두 오랜 옛날에 중생을 건지려는 큰 서원을 세우셨소. 다만 한 분은 혼탁한 사바 고해에서, 더러움과 고통으로 완고한 죄악 중생을 조복(調伏)시켜 내보내시고; 한 분은 청정한 서방에서 평안히 거처하면서, 정토극락으로 왕생하길 발원하는 선량한 중생을 받아들여(攝受) 수행시키는 것이오.

 

그대들은 단지 평범한 남정네와 어리석은 아낙네들도 염불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그만 정토를 무시하고 마는데, 어찌하여 경전의 부처님 설법은 보지 않소?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와 화장해회 대중 모두에게, 한결같이 십대원왕으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권하지 않소? 화장해회 대중에는 범부나 성문 벽지불이 하나도 없고, 41분 법신대사(法身大士)는 모두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법성을 증득하여, 본래의 원력으로 부처가 없는 세계에 부처로 나툴 수 있는 분들이오. 또 화장해(華藏海)세계에는 정토가 무수히 많은데도, 반드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회향하는 것을 보시오. 과연 극락 왕생이야말로 고해를 벗어나는 현묘한 법문이며, 부처가 되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소. 그래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선종 교종 율종의 모든 총림(叢林)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하며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여 서방 왕생을 발원해 오고 있는 것이오.

 

일체의 중생들이 본래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지니고 있소. 다만 진짜를 놓치고 허깨비를 좇아 깨달음을 등진 채 홍진에 빠진 결과, 온통 번뇌 악업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오. 그래서 오랜 세월토록 생사윤회를 되풀이한다오. 여래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온갖 법문을 설하신 것이오. 중생들이 허깨비로부터 진짜로 되돌아와, 홍진을 훌훌 털고 깨달음에 이름으로써, 그 번뇌 악업이 다시 통째로 지혜덕상을 회복하여, 미래제가 다하도록 고요한 광명(光明)에 안주하기만 바라셨소. 마치 물이 응결하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다시 물이 되듯이 말이오. 본체는 다르지 않지만 작용은 실로 하늘과 땅 차이라오.

 

그런데 중생들은 근기의 상하가 다르고, 미혹의 정도도 가지각색이라, 각각 근기와 인연에 맞추어 실익을 얻도록 해야 하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소. 그 가운데 지극히 원만하고 지극히 급작스러우며, 가장 미묘하고 가장 심오하면서도, 손대기는 쉽고 성공률은 높으며,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빨리 얻으며, 아울러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에 두루 적합하고 모든 법문을 총망라하여, 최상의 성인이나 최하의 범부가 함께 수행하고 나란히 공덕을 성취하는 법문은, 정토만큼 수승한게 없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