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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11)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1. 정토(염불)위에 법문 없소.(5)

 

 

그리고 위산(潙山)선사는 이렇게 말했소.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면서,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을 모두 벗어나 있네. 그 자체 항상스런 진실(眞常)을 드러내며, 말과 글자에 구애되지 아니하네. 마음과 성품은 물듦이 없이 본디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단지 잡념 망상만 떠나면 그대로 여여부동(如如不動)한 부처인 것을!”

 

이렇게 보면,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갖가지 설법과 가르침은, 한결같이 중생들이 본디 지니고 있는 심성을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되돌이켜, 원래 근본자리를 찾으라고 가리킴을 알 수 있소. 그런데 중생들은 근기의 우열이 상당히 다르고, 미혹의 정도도 각양각색이오. 그래서 갖가지 가르침으로 일깨워 주고 다양한 법문으로 고쳐 주지 않으면, 미혹의 구름이 텅 빈 본성을 뒤덮고 있을 터이니, 어떻게 하나하나 자기 마음의 달을 분명히 보게 만들 수 있겠소?

 

그래서 여래께서 맨 처음 불도를 이루신 뒤, 대화엄경을 연설하사 곧장 사바세계 바깥의 큰 법을 말씀하셨소. 먼저 숙세의 근기가 뛰어나고 인연이 무르익은 법신대사들에 한하여, 항상스런 진리를 증득하여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도록 이끄신 것이오. 그 다음 근기가 둔한 중생들을 순순히 간과 천상의 두 부류에게 불도에 들어가는 훌륭한 인연을 맺도록 하셨소. 또 사제(四諦) 십이인연(十二因緣) 육도만행(六度萬行)으로, 성문 벽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맞추어 설법하지 않음이 없소. 이는 모두 점차 수행을 증진하여, 본래 심성의 집에 되돌아 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오. 그러나 이 때는 부처님의 본래 회포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감추어져 있었소.

 

법화회상(法華會上)에 이르러, 권법을 열어 실법을 드러내고(開權顯實), 흔적을 열어 본체를 드러내셨소(開迹顯本).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과 천상, 권법과 소승을 모두 일승(一乘)으로 포용하여, 세 근기의 중생에게 두루 수기(授記)를 내리시고, 출세간(出世間)의 본래 회포를 크게 펼치셨소. 그래서 맨 처음의 화엄경과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면서 처음과 끝이 서로 부합하게 되었으니, 하나의 대사인연(大事因緣) 전체를 남김없이 모두 전하고 당부하신 셈이오.

그런데 또 말세 중생은 근기가 너무도 형편없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이 거의 없소. 그래서 여래께서 다시 정토법문 하나를 특별히 열어 놓으셨소.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들이 성현이나 범부를 가릴것 없이, 현생에 곧장 이 사바 고해를 벗어나 저 극락세계에 왕생한 다음, 거기서 점차 무량 광명과 무량 수명의 부처를 증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오. 이러한 대자대비심은 실로 더할 나위없이 지극하고 심오한 것이라오.

불법은 바다처럼 몹시 넓고 깊으니, 어떤 범부중생이 그 근원을 철저히 궁구하여 한 입에 싹 흡수 할 수 있겠소? 그렇지만서도 올바른 신심을 낸다면, 각자 자기의 분수와 역량에 맞는 이익을 얻을 수 있소. 마치 코끼리나 모기가 바닷물을 들이킬 때, 각자 자기 배를 채우고 나면 그만이듯 말이오. 여래께서 세상에 나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여, 각자 이익을 얻도록 하신 것도 이와 마찬가지오.

 

그런데 말세의 중생은 업장이 몹시 두터운데다가, 선근(善根)은 매우 얕고 마음은 좁으며, 지혜는 보잘 것 없고 수명은 짧기 그지 없소. 게다가 선지식은 몹시 드물고, 악마와 외도는 종횡무진하고 있소. 다른 법문을 수행하여, 현생에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며 생사 윤회를 벗어나기란, 실로 몹시 어렵고도 드문 일이오.

 

오직 정토법문 하나만큼은 오로지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수행의 성공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했느냐를 따지지 않고, 다만 믿음과 발원에만 달려 있소. 믿음과 발원만 갖추면, 비로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열 번만 지극하고 간절히 염불하면, 부처님 자비 가피를 받아 극락왕생 할 수 있다오. 여래의 대자대비가 한 물건도 남김없이 두루 제도하는 줄은 정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가운데 이 정토법문이 특히 가장 주도면밀하고 진지함은, 감탄스럽기만 하오.

 

염불법문의 유래는 진실로 오래 되었소. 우리들의 일념심성(一念心性)이 허공처럼 항상 불변하기 때문이오. 비록 항상 불변하지만, 또한 일념 일념이 인연에 따르지요. 그래서 부처 세계의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아홉 중생계의 인연에 따르게 되고, 성문 벽지불 보살의 삼승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 인연에 따르게 되오.

 

땨르는 인연의 청정과 오염이 다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은 과보도 판이할 수 밖에 없소. 비록 본체는 전혀 변하는게 없지만, 그 작용과 형상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오. 비유하자면, 허공에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운 것과 같소. 허고의 본체는 비록 구름이나 해로 말미암아 늘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지만, 밝게 드러나고 어둡게 가려지는 모습은 함께 나란히 말할 수 없지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여래께서 중생들에게 부처를 생각(念佛)하는 인연을 짓도록 두루 권하셨소.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를 기억하고(億佛) 부처를 생각하면(念佛), 현재와 미래에 반드시 부처를 보게 되고, 부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처와 여래는 법계의 몸(法界身)으로, 모든 중생의 마음 생각(心想)가운데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할 때, 이 마음이 곧 32() 80수형호(隨形好)이다. 이 마음으로 부처를 지으면,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모든 부처의 정변지(正遍知)바다도 마음 생각으로부터 생겨난다.”

 

무릇 부처 세계의 인연에 따르면, 이 마음으로 부처를 짓고, 이 마음이 곧 부처가 되는 것이오. 반면 중생계의 인연에 따르면, 이 마음으로 중생을 짓고, 이 마음이 곧 중생이 되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를 알면서도 부처를 생각(念佛)하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오.

 

염불법문은 여래의 만덕을 갖춘 위대한 명호(萬德洪名)를 인연으로 삼소.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는 명호는, 바로 여래께서 과보의 자리(果地)에서 증득한 위없는 깨달음의 길(無上覺道)이오. 아미타불이라는 과보 자리의 깨달음으로, 염불수행이라는 원인 자리(因地)의 마음을 삼았소. 그때문에 원인은 과보의 바다를 포함하며, 과보는 원인의 근원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