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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7)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1. 정토(염불)위에 법문 없소.

 

위대하도다! 정토(염불) 법문의 가르침이여! 이 마음으로 부처를 삼고(是心作佛) 이 마음이 곧 부처라며(是心是佛), 사람 마음을 곧장 가리키는(直指人心) 자도, 오히려 정토의 기특함에는 손색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즉념으로 부처를 생각하고(卽念念佛) 즉념으로 부처를 이룬다며(卽念成佛), 오랜 세월 동안 수행 증득하는(歷劫修證) 자는, 더욱이 정토의 고상한 기풍을 드날려야 할 것이오.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에게 두루 가피를 주고 율종 교종 선종을 통틀어 포섭함이, 마치 때맞춘 단비가 만물을 윤택히 적셔 주고,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소. 편협하고 원만한(偏圓)교리나 돈교와 점교(頓漸)를 포함한 일체의 법문이, 바로 이 법계(법계 : 정토 법문)로 부터 흘러나오지 아니한 게 없소. 또 대승과 소승 및 권의와 실체(權實)를 비롯한 일체의 수행이, 모두 이 법계로 귀결하지 아니함이 없소.

 

미혹과 업장을 다 끊지 않은 채로 부처의 후보 자리에 오를 수 있으니, 금생에 단박 보리(菩提 : 깨달음)를 원만히 이루게 되오. 구계(九界 : 十界 중 부처의 경계를 제외한 보살 벽지불 성문 및 육도 중생계를 가리킴) 중생들은 이 법문을 떠나서는 위로 부처의 도를 원만히 이룰 수 없고, 시방 모든 부처님도 이 법문을 놓고서는 아래로 뭇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없소.

 

이러한 까닭에, 화엄해회(華嚴海會)의 대중들이 모두 십대원왕(十大願王)을 따르고, 법화경에서는 한결같이 모두 모든 법문의 참모습(諸法實相)을 증득했다고 일컫는다오. 정토 염불이 가장 뛰어난 방편 수행임은, 마명(馬鳴)보살이 기신론(起信論)에서 보여 주었소. 또 정토 염불이 가장 쉽고 빨리 도달하는 길임은, 용수(龍樹)보살이 바사(婆娑 : )에서 밝히고 있소. 석가모니불의 후신(後身)이라는 지자(智者)대사가 십의론(十疑論)을 설하면서 오로지 서방극락에 초점을 맞추었고,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이라는 영명(永明)대사는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종신토록 염불을 행하며 가르쳤소.

 

삼승(三乘)과 오성(五性)을 막론하고, 모두 진실하고 항상스런 법(眞常)을 증득하도록 모으고 최상의 성인부터 최하의 범부까지 함께 피안(彼岸)에 오르도록 인도한다오. 그래서 구계 중생이 모두 귀의하고, 시방 제불이 함께 찬탄하시며, 천경(千經)과 만론(萬論)이 나란히 밝히고 있소. 그러니 정말로 부처님의 한 평생 교화(一代時敎)가운데, 가장 지극하고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일승(一乘)의 가르침이라고 일컬을 만하오. 착한 공덕의 뿌리를 심지 않으면 영겁토록 만나기 어려운 법문이거니와, 일단 보고들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익혀야 할 것이오.

 

가르침과 이치와 수행과 과위(敎理行果)는 불법의 으뜸 강령이며, 부처를 그리워하고 부처를 생각함(億佛念佛)은 실로 불도를 얻는 지름길이라오. 예전에는 인연 따라 어느 한 법문을 수행해도 이 네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만약 정토(염불)법문을 놓을 것 같으면 과위의 증득(果證)은 전혀 없게 된다오. 진실로 성인이 떠난 시간이 이미 오래 되었고, 사람들의 근기가 보잘 것 없이 하찮아서,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지 않으면 해탈하기가 절대로 어렵소.

 

옛 사람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렵고(人身難得), 문명의 한 가운데 태어나기 어려우며(中士難生), 부처님 법 듣기 어렵고(佛法難聞), 생사윤회 끝마치기 어렵다(生死難了).”고 하셨소. 우리들은 다행히 사람 몸 얻어 문명의 한 가운데 태어났고, 부처님 법까지 듣고 있소. 다만 불행히도 죄악이 많고 업장이 무거워, 스스로 미혹을 끊고 삼계를 벗어나 생사윤회를 벗어날 힘이 없으니, 몹시 부끄러울 따름이오.

 

그런데 또다시 천만다행으로, 우리 여래께서 철두철미한 대자대비심에서 임기응변의 대방편 권법(權法)을 설하셨소. 천하의 모든 중생들에게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정토법문(淨土法門)을 열어 놓으신 것이오. 이를 보고 듣는 것은, 정말로 행운 중의 막대한 행운이오. 무량겁 이래로 착한 뿌리를 깊이 심어온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불가사의한 법문을 들으면, 나아가 단박에 진실한 믿음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할 수 있겠소?

 

내가 듣건대, 정토는 부처님의 본래 회포를 궁극으로 다 털어놓으신 법문으로, 일체의 선종 교종 율종 등의 법문을 훨씬 초월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모두 총망라한다고 하오. 간략히 말하자면, 한 마디 한 구절이나 한 게송 한 경전으로 남김없이 포괄하지만; 자세하게 널리 말하자면, 비록 삼장(三藏) 12()의 심오한 교법이나 오종(五宗) 역대 조사들의 미묘한 논설로도 다 해석할 수 없다오.

 

설령 천하의 모든 중생이 함께 정각(正覺)을 이루어, 광장설(廣長舌)을 드러내고 신통력과 지혜력으로 한 티끌 한 찰나마다 쉼 없이 치열하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다할 수 있으리오? 진실로 정토 법문이 본디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라오.

 

한번 경전을 보시오. 화엄경은 삼장 가운데 임금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맨끝 편에서 십대원왕으로 귀착되지 않소? 또 법화경은 심오하고 미묘하여 모든 경전의 으뜸이라고 꼽히는데, 듣는 즉시 극락왕생하여 등각(等覺)보살과 가지런한 지위에 오른다고 서랗지 않소? 그러니 천경(千經) 만론(萬論)이 도처에서 정토로 귀의하도록 가리키는 것도, 모두 유래가 있지 않소?

 

그래서 문수보살이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보현보살이 권장 격려하며, 여래께서 대집경(大集經)에서 말법 시대에는 이 법문이 아니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고 수기(授記)하셨소. 또 용수(龍樹)보살도 바사(婆娑 : )에서 행하기 쉬운 길이니 빨리 생사윤회를 벗어나라.”고 간명하게 보이셨소. 역대 고금의 성현마다 한결같이 정토로 귀향하는 것이, 어찌 터무니없겠소? 진실로 부처님의 한평생 설법이 모두 염불법문의 주석(註釋)이나 다름없소.



이뿐만 아니오. 무릇 눈 생각의 육근(六根)이 산하대지나 명암(明暗) 색공(色空) 등 일체의 경계(境界)에 대해, 보고 듣고 맛보고 느껴 아는, 소리 향기 맛 등인들, 어느 하나 정토를 드러내어 알리는 문자가 아니겠소? 추위와 더위가 서로 번갈아 닥치고, 늙음과 질병이 육신을 핍박하며, 홍수 가뭄 질병 전쟁이나 악마 사견(邪見) 등이 잇달아 생겨나는 현실은, 또 어느 하나 사람들에게 한시 바삐 극락왕생하길 간절히 발원시키는 채찍(警策)이 아니겠소? 그러니 넓게 말하자면 끝이 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