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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5)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가언록 한글판 서문(4)

 

염불 수행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합시다. - 청화큰스님

 

그러기에 신라 때 원효스님도 마을에 다닐 때, 표주박을 때리면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그렇게 많이 불렀습니다. 고려 초기에 대각국사 의천 대사도 그렇게 했고, 또 보조 국사도 염불 주문을 보면 그렇게 했고, 나옹 대사, 태고 대사 다 그렇지요. 그런 분들은 될수록 복잡한 것을 다 합해서, 하나의 진리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도 아미타불로 하시고, 거기다가 나무(南無)는 아미타불에 귀의한다’, 우리 모든 생명이라든가 역량 모두를 아미타불로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본래 아미타불인 것이고 아미타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 쪽에다 자기의 온 정력과 정성을 다 바쳐야 되겠지요.

그 다음에 중요한 문제는 아미타불에 대한 관념입니다.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면서 아미타불을 부를 것인가? 그냥 이름만 부르면,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이 여태까지 익히고 배우고 습관성을 붙여 놔서, 자꾸만 잡스러운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렇기에 우리 마음의 소재를 어디다가 둘 것인가? 그것이 중요한데, 아미타불은 사람 같은 모양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소박한 단계에서는 부처님 상호를 관찰해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모양 상호는 만덕을 갖춘 3280수형호라, 부처님 얼굴은 조금도 흠절이 없습니다. 지혜로 보나 덕으로 보나 또는 능력으로 보나, 만능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상호가 나왔습니다.

불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3아승지겁이라는 무수한 세월 동안 몇 천 번 도 넘게 자기 몸을 일반 중생한테 희생하고 순교했습니다. 한 겁도 무량세월인데, 백 겁 동안 3280수형호라는 그런 근본 상호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복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 상호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닮아야 하겠구나 하고 염불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직 상을 덜 떠난 염불인 것이고, 부처님의 참다운 법신은 우주 어디에나 언제나 무엇이나 충만해 있는 하나의 생명의 광명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무량광명 아닙니까? 아미타불 별명 가운데 무량광불도 있습니다.

 

또 아미타불은 바로 낳지 않고 죽지 않는 우주의 생명 자체, 영생의 생명이기 때문에,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부처님의 이름은 한도 끝도 없는 부처님의 공덕을 다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이름 가운데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름과 더불어서 부처님 공덕을 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선 한도 끝도 없이 잘 생긴 얼굴을 관상하면서 나도 닮아야 되겠구나, 나도 만적을 다 갖추기 위해서는 모든 중생을 위해서 시시때때로 자기라는 관념을 줄이고 정말로 공평무사한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나 한도 끝도 없이 빛나는 아미타불을 외우시면 좋습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말하면, 우주의 참다운 모습을 담아서 하는 염불이기 때문에, 실다운 실()자 모습 상(), 실상 염불입니다. 또는 법신염불(法身念佛)이나 진여염불(眞如念佛)이라고 하는데, 실상염불과 다 같은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철학적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 됩니다. 우주의 도리 그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상호를 관찰하는 것은, 아직 상을 두어서 철학적인 염불은 못 되고 하나의 방편 염불입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모아져서 하나로 통일되면, 그 때는 깊은 염불삼매라, 오직 부처님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거기에 낄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소박하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부처님 이름만 외다가 우리 마음이 오직 하나로 통일되는 게 염불삼매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으로 부처님의 원만 덕성을 상상하면서 염불삼매에 들어도 좋습니다.

 

여러 가지 교학도 많이 배우시고 조금 철학적으로 정말로 우주의 실상에 맞게끔 염불해야 되겠구나.’ 그런 분들은 실상염불, 법신염불, 진여염불을 하면서, ‘우주의 끝도 갓()도 없이 만덕을 갖춘 진리가 어디에나 충만해 있구나, 다만 우리 중생이 어두워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하면, 이것이 이른바 가장 고도의 철학적인 염불이 됩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얼마나 공부를 해야 그렇게 될 것인가, 그런 의심을 품으시겠지요. 사실은 그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불은 할수록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다른 작은 너무 지나치게 하면 몸도 무거워지고 마음도 피로해지지요. 그러나 염불이라는 것은 목소리를 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니까, 소리를 내도 좋고 안내도 좋고, 또는 가만히 앉아서 가부좌를 해도 좋고 걸으면서도 해도 좋고, 또는 반쯤 앉아서 하든 반쯤 서서 하든 어떻게 하나 좋습니다. 조금도 제한이 없습니다. 또는 누워서 해도 무방합니다. 염불은 조금도 피로함이 없습니다. 우리 건강상황에 따라서 편리한 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 생각생각 거기에 다른 잡념이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통일되어서 삼매에 들어갑니다. 꼭 염불삼매에 들어가야 공덕이 나옵니다. 염불삼매에 안 들어가면 참다운 공덕은 미처 못 나옵니다. 한 번 하면 한 번 한 만큼 공덕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삼매에 들어가야 무위진인이라, 참다웁게 견성 오도한 그러한 성자가 됩니다.

 

그것이 항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자가 안 되고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생에 안 되어도 본래가 부처인지라, 우리는 꼭 성자가 되고 맙니다. 꼭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이 사바 현상세계에 나투었다가 다시 부처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갈 길이고, 모든 존재가 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아까 말한 테오리아, 모든 존재가 중심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나 흙, 하나의 원자 모두가 다 가장 중심적인 그 에너지, 우주 기()에서 다 나오고 있습니다. 우주의 기가 천차만별로 형성되었다가 다시 우주의 기 하나로 돌아갑니다. 하나에서 와서 모두가 되었다가, 모두가 다 하나로 되는 것이, 영겁으로 되풀이되는 우주의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