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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3)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가언록 한글판 서문(2)

 

염불 수행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합시다. - 청화큰스님

 

 

단편적으로 불교를 공부해서는, 우리 목전에 있는 문제도 본질적인 해결은 절대로 못합니다. 가정이나 사회문제나 항시 모든 문제를 진리의 차원에서, 우주의 본바탕에서 비추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시원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눈 한 줌을 뜨거운 화로에다 넣으면 금방 녹아버리듯, 어느 모습이나 고민이나 진리에서 보면 순식간에 해결됩니다. 진리에서 보면 죽고 살고, 잘 되고 못 되고 문제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에서 보면 우리 생명은 본래로 죽음이 없습니다.

 

불생불멸이라, 우리 생명 자체는 본래 나지도 죽지도 않고, 영생(永生)으로 존재합니다. 내 생명이 몇 십 년 살다가 죽겠지. 내 몸이 지금 안 좋으니까, 몇 년 안 가서 죽겠지. 이러면 항시 불안스럽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죽음이 본래로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용기가 나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우주의 목적의식은, 근본 본()자 원할 원()자 본원이라, 또는 근본 서원 그럽니다. 원래 우주는 생명 자체입니다. 우리는 자칫 산이나 냇물이나 산 위에 있는 절이나 이런 것은 생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인간 정도의 업장을 가진 중생들이 가진 견해이지, 진리의 견해가 못 됩니다.

 

진리는 우리 인간적인 견해, 탐욕심과 분노하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 이런 독스러운 마음이 가셔버린 성자의 경지에서만 참다운 진리가 보입니다. 이것을 견성오도(見性悟道)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견성은 볼 견()자 성품 성()자로 우주의 본래 성품을 본다는 뜻이고, ‘오도는 깨달을 오()자 길 도()자인데, ()는 바로 진리를 말하므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불교 말로 참된 사람, 진인(眞人)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임제 선사가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했는데, 무위진인은 모양이나 이름에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배에 걸리고 무슨 감투에 걸리고 재산에 걸리면 참다운 진인이 못 됩니다.

 

불교의 목적은 무위진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금생에 재산 많이 모으고 감투가 올라가는 것으로 인간의 목적을 생각하면, 정말로 안타까운 속물입니다. 소중한 자기 생명을 갖고서 속물에 바쳐서 일생을 마치면 되겠습니까? 불자님들, 목전에 가족들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히고 설켜서 먹고 살기도 어렵고, 정말로 고난에 처해 있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겠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문제까지도 근본적인 해결은 꼭 진리와 더불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이 빨라지고, 또 어느 고민에도 우리 마음이 불안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한 유출설은 철학자로 플라톤이 맨 처음에 제창했습니다. 물론 더 앞선 분들이 다 알고는 있었지만, 한 체계를 이룬 것은 플라톤입니다. 우주는 모두가 하나의 진리에서 왔기 때문에, 종국에는 모두가 그 역으로 하나의 진리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하나의 진리로 돌아간다는 테오리아(theoria)라는 말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한 체계를 세웠습니다.

 

우주는 인간이 좋다고 생각하고 궂다고 생각하고, 남을 좋아도 하고 미워도 하고 욕심도 내고 하지만, 그런 것도 인간이 잘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런 모든 시행착오를 거쳐서 드디어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그런 도리를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제 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성현들이 철인들이 다 한결같이 하신 말씀을 저는 전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주는 하나의 생명에서 왔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생명으로 귀로(歸路)합니다. 즉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내 아내나 내 남편이나 내 자식이나 모두가 다실은 빨고 더디고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가 다 근본 고향 자리, 진리로 돌아갑니다. 진리에서 왔으니 다른 데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 귀중한 불자님들이 많이 모이셨습니다. 이런 자리를 그냥 그렁저렁 미봉책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좀 납득되기가 어려우셔도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본질적인 진리에 다 비추어서 모든 문제를 풀어가도록 하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야 빨리 근본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본래로 부처이지만, 우리 마음은 지금 여러 가지 못된 생각도 하고, 또 금생에 태어나서 진리에 맞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가 뭣인지 모르고 생활해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 마음의 본성은 진리 그대로 부처님과 똑같습니다.

우리 마음은 시간성이나 공간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해서 더럽혀지지 않고 오염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나쁜 생각이 형체 없이 그림자같이 좀 머물다가 나중에 없어져 버리는 것이지, 우리의 그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킬 수가 없습니다. 극악무도한 사람도 마음 본성은 청정무구한 불심과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본래로 부처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래로 분명히 부처라고 말하지만, 나쁜 버릇이 너무나 많이 붙어 있습니다. 불교로 말하면 무시(無始) 이래로 몇 만 생, 몇 천 생 동안에 우리가 인간도 되었다가, 조금 잘 살고 열 가지 선업을 닦아서 천상도 갔다가, 잘못 살아서 지옥도 갔다가, 이렇게 무수 생 동안 행해온 버릇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 버릇 때문에, 우리가 본래로 부처라는 소식을 들어도 잘 모릅니다.

 

부처님 당시로부터 삼백 년 후에 음광부(飮光部)라는 근본불교 종파가 있습니다. 불교 종파가 한 20가지나 되는데, 20종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째서 음광부라고 했냐면, 음광부를 개설한 위대한 성자가 하도 빛나기때문에 그 성자가 나타나면 다른 빛은 다 들이마신 것처럼 감추어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음광부를 개설한 분은 선세(善世)라는 분인데, 인도 말로 하면 가섭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한문투로 풀이하면 성자라는 분인데, 그분은 십 세도 채 못 된 일곱 살 때 성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믿기지가 않으시지요? 아직도 재롱부릴 나이인 일곱 살 때 성자가 되었다니!

 

우리 인간은 충분히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다라표라는 비구는 14세 때 승려가 되어, 2년 만인 16세에 팔만장경을 통달하고 아라한과를 성취했습니다. 이것도 믿기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마음이 순수하면 교학적으로 아무 것도 안 배우더라도, 우리 마음이 본래로 법신불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만민이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믿으면 우리 공부는 순풍에 돛단배가 됩니다.